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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반호 ㅣ 현대지성 클래식 12
월터 스콧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8월
평점 :

오랜만에 매우 재미있는 책 한권을 만났다. 한 세대의 시대상과 문화적 분위기를 가장 정확하면서도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길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 한권을 접하는 것이라는 의견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본서는 12세기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한 최초의 역사소설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저자 '월터 스콧' 은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의 창시자로 불리며 그가 쓴 본서는 지금도 전 세계 수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탁월한 저작 중 한권이다. 오죽하면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에 선정 될 정도로 본서가 가지는 그 문학적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진중한 무게감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본서가 그 내용과 스토리의 구성에 있어 독자들의 피부로 체감되는 글읽기의 난이도에 있어서 결코 난해하고 복잡하며 무겁지 않고, 도리어 쾌활하고 유쾌하며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본서가 가지는 또 하나의 매력이며 반전적인 요소이다.
이야기는 12세기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여 중세 영국을 주 무대로 등장시킨다. 영국을 점령한 노르만 귀족들에 대항한 색슨인들의 저항과 투쟁에 대한 스토리가 전체적인 줄거리의 틀을 형성한다. 십자군 원정을 떠난 사자심왕 리처드 1세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그의 동생 존 왕자는 노르만 귀족들과 연합하게 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본서의 주인공 기사 아이반호의 활약, 그리고 그를 둘러싼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로맨스, 유대 고리대금업자 아이작을 통한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사회에서의 인종과 종교 차별의 어두운 면이 가감없이 펼쳐진다.
개성이 뚜렷한 다양한 등장인물들은 본서의 재미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노르만인들로부터 영국 왕실의 자주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색슨 귀족 세드릭, 그의 충성스러운 하인으로서 등장하는 돼지치기 거스와 광대 왐바 등은 한편의 소설 속에 그 재미와 풍미를 돋우는 감초와 같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함으로서 자칫 역사소설이 가지는 지루함과 건조함의 우려를 한번에 불식시켜준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등장 인물을 구상하고, 그 인물들을 스토리 사이 사이에 적절하게 배치하여 이야기를 매끄럽게 끌어나갈 수 있는 윤활유의 역할로 지정한 저자의 창의력과 문학적 구성력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이렇듯 저자의 탁월함과 노력에 의해 독자는 700여페이지의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본서를 부담이 아닌 즐거움으로 집어들고 완독을 향해 정주행할 수 있는 것이리라.
본서가 가지는 또 한가지 재미 있는 점은 책의 스토리 가운데 <로빈후드의 모험>의 주인공인 록슬리(로빈후드)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시대적 배경을 함께 하는 다른 소설의 주인공을 까메오로 등장시킴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통한 반가움을 극대화시킨다. 마치 씨줄과 날줄이 엮어져서 하나의 훌륭한 직물이 탄생되는 것과 같이 <아이반호>라는 씨줄과 <로빈후드의 모험>, <캔터베리 이야기>와 같이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중세 영국으로 설정한 다른 소설들을 날줄로 하여 완성도 높은 탁월한 저작 한권을 탄생시킨다.
18세기 중후반 영국 산업혁명의 시기에 태어난 저자 월터 스콧은 당시 영국을 휩쓸던 새로운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구조의 파격적인 변화를 목도하는 가운데 영국 사회의 거대한 쓰나미와 같은 구조적 변화 속에서 당황하며 자칫 자신들의 정체성을 망각하기 쉬운 영국민들에게 <아이반호>라는 탁월한 역사소설 한권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저자가 생존하는 동안 최고 부수를 기록한 우리가 말한는 소위 '대박'을 친다. 영국 앵글로 색슨족의 위엄과 기백은 산업혁명이라는 그 이전까지 결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삶의 변화 속에서 인간 본연의 위치와 영국인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이드 해줄 수 있는 저작으로 대중들에게 급속도로 퍼져 나갔던 것이다.
이렇듯 잘 짜여진 작품 하나가 사회 전반에 끼치는 그 파급력과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중적인 힘을 드러낸다. 특별히 그것이 어느 한 민족의 역사를 토대로 짜여졌을 때 가지는 힘은 메가톤급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앵글로 색슨 귀족, 노르만 귀족, 수도원장, 수도사, 중세기사, 유대인, 광대, 향사 등등 여러가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이며 동시에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익명의 대중 가운데 하나로서 나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비춰볼 수 있게 끔 만드는 그 엄청난 숨은 저력을 지닌 본서의 매력은 지금도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