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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고백록 ㅣ 현대지성 클래식 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8월
평점 :

톨스토이하면 아무리 문학의 문외한이라 해도 귀동냥으로 한번은 들어보았을법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이름이 알려져있는 러시아의 대문호이다. 본서는 4세기 초대 기독교의 위대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과 더불어 세계 3대 고백록에 꼽히는 탁월한 저작이다.
1828년 러시아의 부요한 가문에서 태어난 톨스토이는 어린 시절 철학서적 등을 통해 인생과 종교에 관한 문제들에 눈을뜨기 시작했고, 청년 시절 자신의 성장 배경이었던 러시아 정교회의 믿음과 신앙에 대한 불신을 인정하게 된다. 본서는 총 16장으로 단편집 형식의 짧막한 구성을 특징으로 하는데 톨스토이 그가 자신의 유년 시절부터 청년 시절을 지나오면서 자신이 어떻게 삶의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며 인간의 삶에 관한 고민들에 대해서 어떠한 과정들을 거치며 해답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는지에 대해 매우 담담하게 기록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껏 인류의 역사 가운데 존재했던 탁월한 지성들의 가르침에 대해 귀기울인다. 구약 성경 전도서의 저자인 솔로몬,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인도의 성인 석가모니까지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현인들의 가르침 속에서 자신이 품고 있는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 인간은 삶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 왜 살아가는지? 에 관한 그의 인간 내면의 매우 근본적이고 원색적인 철학적 사유에 대한 정답을 탐구한다.
그러나 그의 깊은 고뇌와 고민들로 인해 발현된 그의 존재적 의문은 시대를 주름잡았던 현인들의 가르침 속에서도 좀처럼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난제였다. 그러는 와중에 하루 하루 흙을 먹고 살아가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농노들의 삶 속에서 발견한 기독교 신앙을 통해 저자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삶의 목적, 가치에 대한 그의 말할 수 없는 깊은 고민과 고뇌의 진정한 해답의 단초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오직 신앙만이 인류에게 삶의 의문에 대한 대답들을 제공해주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략> 신앙은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려면 반드시 무엇인가를 믿어야 합니다. 인간은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p75~76
그것은 오직 인간의 삶의 목적, 의미 즉, 무엇을 추구하고 왜 살아가며 어디로와서 어디로 가는지와 같은 가장 근원적인 사유에 대한 탁월한 답변으로서 인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적 존재에 대한 신앙과 믿음안에서 자신의 삶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탁월한 철학적 견해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없었으며 뛰어난 인간의 이성적 지식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그의 인생의 의미에 대한 타는듯한 목마름과 갈망이 평생을 풍요로움 속에서 살아왔던 그와는 전혀 다른 힘없고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이었던 농노들의 신앙적 삶을 통해 명쾌한 정답을 발견할 수 있었던 점은 톨스토이의 삶에 있어서 극적인 대목이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불후의 역작을 집필하고 나서도 계속적인 자살의 유혹에 흔들려야만 했던 그의 무의미하고 공허한 삶의 한켠에 소망이라는 작은 불빛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좋은 소식을 통해 전해졌을 때의 그 형용할 수 없는 감동과 감격은 이책을 통해 전해져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이후 저자는 러시아 정교회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기독교 무정부주의자의 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목을 매달 것인가? 권총 자살을 할 것인가? 와 같이 자살의 방법과 시행을 고민했던 천재적인 문호의 삶에 한줄기 빛을 비춤으로서 삶이라는 것이 살만한 것이다라는 존재적 깨달음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재정렬할 수 있었던 것이 기독교 신앙이었다는 사실 하나는 그 이후 그가 정교회로부터의 파문과 함께 러시아 정부의 눈엣가시 같은 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 사람의 진솔한 삶의 고민과 개인적인 고뇌를 듣고 있노라면 원하든 원치 않든 자연스럽게 그러한 고민과 질문들은 어느덧 나의 고민과 연결되며 나의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끄집어 내지곤 한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무게감있는 질문들은 한번도 던져보지 않고 먹고 살기에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인생을 반추할 수 있는 계기가 얼마나 될까? 친구 또는 주변 지인들과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자신의 삶의 고민과 깊은 사유를 공감할 수 있어도 말할 수 없이 행복한데 하물며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위대한 저작들을 수없이 집필함으로서 인류의 지성적 발전에 지대한 공적을 올린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이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가 가졌던 그 고민과 고뇌의 흔적을 그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듣고, 그의 체취를 따라가는 것만큼 신나고 흥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본서는 기독교 신앙으로 귀결되는 종교서적이라기 보다는 온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존재 자체의 근원적인 질문과 고뇌라는 보편적 주제에 대해 우리 같은 범인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우리보다 먼저 한 시대를 살다간 위대한 성학이 우리를 대신해서 고민해주고 정답을 발견하여 남긴 우리가 어렸을 때 즐겨 보았던 동아전과의 뒷편 해답지와 같은 풋풋함이 느껴지며 동시에 종교의 여부를 떠나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독자들에게 충분히 공감받을 수 있는 보편타당성을 지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