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진관
신은미 지음 / 마들렌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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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제주도란 깊은 안식과 쉼을 허락해 준 장소였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제주도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있기에 제주도는 내게 완전히 낯선 땅은 아니다. 혹자는 하와이보다도 더 좋은 곳이 제주도라고 평할 정도로 제주도는 정말로 신이 우리 나라에  허락하신 최고의 비경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천혜의 땅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주도가 정작 삶의 터전이 될 때는 왠만한 의지가 아니고서야 섬의 구석 구석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이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갈 때 경복궁 한번 쉽게 가 볼 수 없었던 것과 피차 마찬가지 상황인 것 같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마음을 먹고 계획을 세워서 내려가야지만 볼 수 있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의 비경을 한장의 사진 속에 담아 펼쳐 낸 작은 포토 에세이집 한권을 만난다. <제주 사진관>이라는 이름의 이 작은 책자는 숨막힐 듯 아름다운 땅 제주도의 구석 구석을 저자 자신이 직접 발로 밟으며 휴대폰이라는 어쩌면 자연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문명의 작은 이기 속에 담아 만들어 낸 작품집이다.

저자 자신이 10여년의 평범한 직장 생활을 떨쳐버리고 마치 노마드와 같은 여유와 관조적인 삶의 매력을 마음껏 누렸던 땅, 제주도는 그야말로 신비스러움으로 가득차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의 땅으로서 그 가치가 입증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본서의 특징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소위  관광명소로서의 제주도가 아닌 제주도 토박이 현지인들만이 알 수 있는 그야말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숨겨진 비경과 절경의 제주도 곳곳을 10인치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휴대폰 앵글에 담고, 그것을 책으로 엮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리고 담겨진 사진 하나 하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예술작품들이 된다.

본서는 46곳의 제주도의 숨겨진 명소를 소개한다. 각 장소를 소개하며  친절하게도 주소와 주차 여건, 주의할 점 등과 같은 소소히 챙길 내용들을 빠짐없이 이야기해준다는 점에서 단순 포토 에세이의 성격을 넘어 작은 여행 가이드 책자와 같은 기능적인 부분도 간과하지 않은 매우 자상한 센스가 옅보이는 책이다. 또 한가지 본서를 감싸고 있는 겉표지는 일반적인 단행본 도서에서 볼 수 있는 단순 날개 겉표지가 아니다. 표지를 분리해서 펼쳤을 때 제주도 지도가 그려져 있는 아기자기한 여행 가이드맵임을 발견했을 때 나의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4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제주도 원주민들조차 깡촌이라 불리는 촌에서 지냈다. 지나다니는 사람 한명 찾기 어려운 깡촌 바닷가 마을, 맑고 청명한 파란 하늘 아래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주말 오후 동네 바닷가에 앉아 먼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쳇말로 멍때리며 느끼는 그 작은 제주도 바닷가 마을의 고즈넉함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육지에서 온 우리들을 '육지것' 들이라고 다소 경계하며 부르셨던 제주도 촌 마을 구멍가게 할머니의 알아듣기 어려운 구수한 제주도 방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의 장소, 그리고 시간들...그것을 사진으로 엮어 작은 책 한권으로 아름답게 꾸며 낸 본서를 통해 다시 그 때 그 시간의 제주도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길을 헤치고 들어갔을 때 눈 앞에 펼쳐지는 새벽 안개에 둘러싸인 울창한 수풀과 하늘을 향해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도록 빛나는 풀잎에 알알히 맺힌 영롱한 아침이슬, 그리고 새들의 지저귐과 이름모를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바로 이와 같이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처녀와 같은 땅, 제주도...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나의 아련한 추억과 기억 속 어느 한켠에 로망으로만 자리잡고 있는 땅이지만 그 언젠가 다시 기회가 된다면 본서를 들고 다시 제주땅을 밟게 될 그 날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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