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성중) 


 리뷰를 작성하려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이 책의 글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좋았기 때문에 무얼 하나 콕 찝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일단 작가인 캐럴라인 냅은 본인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정말로 깊고 분석적이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인의 삶을 그리고 그 속에서의 생각과 감정을 꾸밈없이 풀어낸다. 그 풀어낸 이야기는 놀랍게도 나와 같은 면을 보여주고, 나와 같은 생각을 말하고, 내가 평소에 관심이 있고 통찰하고 있는 분야를 다룬다. 첫 챕터인 '홀로'안에 있는 세 단편(겨우 3개..)을 다 읽자마자 이렇게 대단한 작품을 읽게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럴라인은 마치 '나' 같았지만 나보다 더한 경험과 깊은 면이 있었으며 나는 그런 면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캐럴라인의 글은 한 가지 주제에서조차 한 두문장의 인상적인 구절을 꼽는 것이 매우 힘들다. 모든 문장이 짜임새있게 유기적이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그냥 캐럴라인의 글은 한 문장 한 문장씩 읽다가보면 어느샌가 그 세계에 빠져버리게 된다는 것을.. 모든 문장이 제몫을 한다는 것을.. 직접 읽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혼자있는 시간>

 16p - 나는 혼자 산다. 내가 모든 가구를 직접 고르고, 모든 그림을 직접 걸고, 모든 잡동사니를 정확히 내가 원하는 위치에 두고 있는 집에서.


 17p - 내가 이렇게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은 (중략) 내게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기 때문이다. 고립은 ㅡ고립되고 싶은 충동은ㅡ 두려움과 자기 보호에 관련된 일이다.


 20p - 고독은, 내 경험상, 자칫하면 미끄러지는 경사로다. 처음에는 안락하게 느껴지지만, 종종 아무런 경고도 자각도 없이 훨씬 더 어두운 것으로 변신할 수 있는 상태다.


 21p - 이것은 자족감으로 가장한 두려움의 목소리, 독립성으로 가장한 고립의 충동이다. // 고독은 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은 의기소침이 되고, 의기소침은 무기력과 절망이 된다. 나는 문득 고개를 든다. 이미 나는 고립되어 있다.


 23p - 캐럴린 하이브런은 자신의 삶에서 달성하고자 평생 애써온 이상이 "사적인 공간이 충분하되 지속적인 교유가 있는"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 그 적절한 혼합을 발견하는 것은 대단히 사적인 문제다. (중략) 안전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상태는 언제 자신을 제약하는 상태로 변할까?


 24p - 나는 종종 그 충동에 탐닉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일인지, 아니면 자기 파괴적인 일인지 헷갈린다.

  고독을 좋아하고 자처하면서도 이것이 지속되면 어느 순간에 고독은 고립이 되어버린다. 나도 혼자 있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면 가끔씩 외로워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시간은 충분히 보장받아야 한다. 개인적인 시간과 타인과 교류하는 시간을 어느 정도 선에서 유지하는 것이 'sweet spot'이 되어 줄지를 생각해 보아야겠다.


 <수줍음의 옹호>

 28p - 대화 기술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지. 이제 우리는 대화 대신 인터넷, 이메일, 자동화 기계를 통해서 접촉할 수 있다. 그리고 (놀랍지 않게도) 그 결과 우리는 수줍음을 점점 더 많이 타게 된다.


 29p - 나는 늘 남들도 그 사실을 받아들여서 내 수줍음을 나라는 사람의 핵심적이고 변하지 않는 속성으로 이해해주기를 기대했다. 


 34p - 수줍어서 말이 나오지 않고 떨리는 나를 꺼버리고 상당히 침착한 나를 내세워서 그 뒤에 숨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줍음과 침착함은 골치 아픈 결합이다. 두 가지가 함께하면 어떤 무표정한 모습, 냉담함으로 해석되기 쉬운 딱딱한 모습이 연출된다.


 35p - 수줍음은 오해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36p - 내가 그 침묵을 메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침묵을 메우는 데는 ㅡ한가한 잡담을 나누든 진심으로 관계를 맺는 대화를 나누든ㅡ 노력이 든다.


 39p - 이건 내가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야, 수줍음의 동굴을 나가서 이웃과 어울리려고 애써볼 기회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잡담을 나눠야 한다는 사실과 내가 탐내는 유대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놓고 저울질해보았다. // 내가 훌륭한 일을 해냈다는 것, 두려움과 고독 대신 위험과 친목에 표를 던졌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그리고 약속한 날이 오자 나는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심한 독감에 걸려서 몸져누웠다. 나는 정말 아팠다. 아무튼 그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ㅋㅋㅋㅠㅠ정말!!!)

 나는 본래에 되게 수줍은 사람이다. 뭐, 소심하고 소극적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나만의 수줍어지는 상황과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학창 시절에(그리고 지금까지도) 선생님과 같은 가르침과 보살핌을 주는 존재를 선망하고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들 앞에 서면 수줍음이 워낙 많았던 것 같다. 카카오톡으로는 말은 잘 해도 막상 그 앞에 서면 말이 없어지니까 중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나더러 카카오톡 친구 같다고 말씀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내가 선생님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사실 잠깐 싫어하기도 했다ㅋㅋ.) 내가 친구들 부모님 앞에서 조용해지자 친구는 "엄마, 은미 이렇게 조용한 애 아니야."라고 말할 정도다. 내 지금 베스트 프렌드는 나더러 낯만 안 가리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인기가 많았을 텐데, 이 매력을 본인만 아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자랑인 것 같지만 자랑 맞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훨씬 수줍음이 많았다. 발표를 전혀 하지 않아 선생님이 강제로 연습시키려고 방과 후에 남기기도 하였다(아주 지옥이였다.). 그런 걸 생각해 보니 나 나름대로 수줍음을 이겨내려고 많이 노력했고 지금도 수줍음이 있지만 그걸 내가 드러내지 않는 기술을 터득한 것 같다. 발표도 씩씩하게(?) 잘하고 오히려 나서는 게 재밌다고 느끼는 지경이니. 많이 발전한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구나. 하하하. 앞으로도 Get out of your comfort zone >,.< 해야겠다!


 

 <명랑한 은둔자>

 40p -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이 말을 다시 들어보라. 산뜻하고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만약 누군가가 어제 내게 내 존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보라고 말했다면 나는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을 것이다. 나는 독신 여성이에요. 서른여덟 살이고, 좀 외톨이처럼 살아요. 이 말이 슬픈 노처녀를 연상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내 목소리에 변명의 기미가 어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휴, 미안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지금이면 진작 결혼했어야 하는 건데, 하고 말하는 듯이 약간 멋쩍게 어깨를 으쓱했을지도 모른다.


 47p - 왜 혼자 지내는가가 아니라 그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으로 바뀐다. 왜 혼자 지내지않는단 말인가? (중략) 중요한 일이건 엉뚱한 일이건 내 생활의 모든 세부 사항을 손수 쓰는 작가다. (중략) 나는 홀로 있는 상태가 그렇게 변덕을 맘껏 발산하도록 해준다는 점이 좋다.


 48p - 내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사회적 기술은 근육과도 같아서 위축될 수 있고, 내가 경험한 바로도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지극히 간단한 사회적 행동 마저도 ㅡ누구를 만나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외식을 한다거나ㅡ엄청나고 무섭고 피곤한 일철머 보이기 시작한다.

 (중략) 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즐길 때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익하다.


 49p - 나는 혼자 있는 걸 늘 대단히 편하게 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만끽할 줄은 잘 몰랐다. 혼자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초조해지지 않는 것, 연애의 틀 밖에서도 안락과 위로와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 ㅡ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ㅡ 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것은 잘하지 못했다.

 나는 시리얼 그릇을 들고 거실로 가서 TV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로 명랑하게. 이게 내 집이야. (♥♥!!!)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혼자 산다는 것을 이토록 발랄하게 표현해내다니! 앞으로 누가 물어보면 나도 이렇게 대답하리라.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혼자 책읽고 뒹굴뒹굴거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니? 호호호." (ㅋㅋㅋ)


 114p - 이 모임의 사람들은 내가 책을 썼는지 말았는지, 무슨 책을 썼는지, 책이 서점에서 잘 팔리는지 따위를 두고 법석을 피우지 않는다. (중략) 여기에는 놀라운 자유가 있다. 그 덕분에 나는 매일 잠시나마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고, 현재에만 집중하고, 훨씬 더 즐거운 관심사를 두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회를 얻는다.

 나를 어떠한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냥 내 모습 자체를 좋아해주는 사람. 참 좋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요소들도 나의 모습에 해당되고 안볼래야 안 볼 수 없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사실 이 사람을 잘 모르더라도 그냥 함께 있는 것 자체로 좋으니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런 관계도 참 좋은 것 같다.


<음식이 적이 될 때>

 165p - 걸어서 퇴근하면서 룸메이ㅡ들이 ㅡ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친구들이었다ㅡ 집에 없기를 기도했다. (ㅋㅋㅋ아ㅠㅠ나도 호주에서 그랬었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구!!!)


 166p - 그들은 또 다른 친구에게 중국 음식을 사오라고 내보낸 동안 식탁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다들 웃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니까 잠시 못 견디게 부러웠다. 그것은 정말 느긋하고 정상적인 풍경이었고, 나는 그것으로부터 너무 떨어져 있었다.


 167p - 그러나 나는 친구들에게 합류하지 않았다. (중략) 그런 순간에 나는 내가 외롭다는 사실, 내 삶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알아도 어쩔 수가 없었다.


 176p - 굶을 힘이 있는 사람에게는 바뀔 힘도 있다.


 굶을 힘으로 굶지말고!! 기필코 바뀌어야지!!



 198p - 나는 아직도 어리다. 내 삶을 타인과 공유할 것인가 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고사하고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결정을 내리기에도 어리다고 느낀다. //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인 건 맞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시기이기도 하다고.


 212p - 진실은 무릇 무척 단순하지만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죠.


 239p - 한마디로, 여자로 자랄 때는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부담은 허리가 휘도록 지면서 매력적인 데 따르는 즐거움은 거의 누리지 못한다.


 256p -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간직하고 어떤 방식으로 간직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외적인 측명ㄴ과 내적인 측면에서 자기 삶을 어떻게 조직하는가를 보여주는 작은 증거다. 누군가를 더 잘 이해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가 쌓아둔 물건들을 살펴보라.


 262p - 우리는 늙고 아픈 사람들을(그리고 대체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머릿속에서 훨씬 더 쉽게 지워버린다. 

 (중략) 그리고 솔직히 병에 걸려 죽어가는 과정에 공감하기란 워낙 괴롭고 어려운 일이라서ㅡ상상력을 한껏 발휘하지 않고는 그런 경험을 추체험하기 어렵다ㅡ (생략).


 269p - 내게 혼돈과 무질서는 인간의 삶과 인간관계에 따르기 마련인 요소라는 사실을 설득시켜줄 사람, (중략) 모든 걸 통제하려는 마음을 버려!



 히히히


 <집의 개념을 다시 만들기>

 270p- 문득 자신이 이 세상에 홀로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만약 보금자리처럼 느껴지는 공간이 있다면 살아가기가 한결 안전하고 즐거우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신은 집꾸미기에 착수한다. 우선, 당신은 예산을 확보한다. 7개월 만에 잔고를 확인해보고 깨닫는다. 젠장! 내가 가진 돈은 커피 여과지를 가까스로 살 수 있을 정도인데, 어떻게 집 꾸미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사는 걸 정당화할 수 있지? 이런 건전하지 못한 생각은 당장 머릿속에서 추방하라. 패배적이고, 집 꾸미기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일 뿐이다.

 게다가, 모름지기 성공적인 집 꾸미기란 금전적 고려가 아니라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인식하는 데 달린 법이다.

 (중략) 아무튼, 당신이 가까스로 구입할 여력이 되는 아름다운 물건이 많은 곳으로 가서 그 자기 이해와 욕구 평가를 실시하도록 하라.


 272p - 세심하게 배치된 장식품들과 수집물들과 의미 있는 잡동사니들이 가득한 집에 앉아 있으면 얼마나 아늑할지 상상하라. 집을 보금자리로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얻기 힘든 즐거움인지 생각해보라.


 275p - 집 꾸미기는 (중략) 외로움을 견뎌보겠다고 마음먹는 일, 고독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법을 익혀보겠다고 마음먹는 일과도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뉴욕 타임스" 십자말풀이를 쥐고 편히 앉아서 스스로에게 축하의 순간을 맛보도록 허락하라. 

 흑.. 이런 말을 해줘서 고마워요 캐럴라인.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 여기 있었네.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 것인 줄은 몰랐다. 집을 꾸미는 절차(물품 구매, 운반, 조립, 배치하는 과정)를 주르륵 읽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내가 자취하고 싶다고, 자취해서 직접 인테리어도 하고 그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면 다들 나더러 돈을 못모을 거라며 부정적인 말뿐이였다(ㅠㅠ). 그런데 이렇게 캐럴라인 냅 언니가 적극적으로 마음껏 집을 꾸미라고 말해주니 어쩌면 사치스럽지만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뭐라하든 내 행복은 내가 지킨다!(?)


 288p - "평범해지는 건 즐거운 일이더라고요." 그는 말했다. "실수할 수 있는 인간, 복잡한 감정과 흠과 결함을 갖고 있는 인간이 되어도 된다는 게 얼마나 안도감을 주는지 몰라요."


 289p -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이상에 견주어 측정하면서 살다 보면, (중략) 편안함과 즐거움과 재미를 잊게 되고, (중략) 현재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감각을 잃게 된다. (중략) 늘 다음에 통과할 후프를, 다음에 뛰어넘을 허들을, 다음에 우승할 시험을 기다리면서 살게 된다. //

 네 사람이 모여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조와 제이크와 킴벌리에게 야유하고, 음식과 우정과 웃음이라는 동지애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 속으로 느긋하게 빠져들어 두어 시간을 보내는 저녁. 특별할 것이라곤 전혀 없는 시간이었지만, 어느 순간에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세 사람을 바라보면서 나 같은 인간에게는 드문 감정인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모두 그 방안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저 내가 그것들을 알아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발버둥 칠 필요도, 시험을 통과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안락과 기쁨이었다.

 평범한 행복은 평범하기에 쉬이 간과하게 되는 것 같다. 항상 큰 행복을 추구하고 쫓지만 그 이전에 평범하고 사소한 행복이 일상 전반에 존재해야 내 삶이 행복하다. 평범한 행복을 놓치지 않도록.


  299p - 행복이 외부적인 것에서 오리라는 환상(흠,,), 내 바깥의 무언가가ㅡ새 직장, 새 관계, 새 장소가ㅡ 내 안의 구멍을 채워줌으로써 나 스스로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듯한 오나전함의 감각을 제공해주리라는 환상이다.


 300p - 워낙 단골이어서 내가 들어서기만 해도 내가 피우는 담배를 집어주는 편의점, 내가 매일 아침 들러서 커피와 스콘을 사는 빵집, 그런 사소한 반복이 주는 편안한 익숙함. //

 내 일은 보스턴에 있다. 언니와 오빠도, 이제 가족 못지않게 중요해진 절친한 친구들도 여기 있다. 내 심리상담사도, 내 역사도 여기 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은 물론 알지만 흠... 아직 잘 모르겠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스펙타클 재밌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헤헤. 반복되고 지겨운 건 딱 질색이야!


 306p - 그때 나는 어떤 옷을 입어야 좋을지 한참 고뇌했다. 어떤 모습을 보여준다지? (중략) 그 일 이후로 나는 어떤 사람의 옷장 내용물이 그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얽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307p - 자연스러운 자신감과 멋을 보이고 싶다. // 이것은 내면과 외면을 일치시키려는 시도라고, 두 가지가 발맞추어 가도록 하려는 시도라고, 이것은 평생에 걸치는 과정이다.

 나도 옷 좀 사야겠다. 살이 찌면 옷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어차피 예쁜 옷을 입어도 안예쁘니까(흑흑). 그래도 이제 어엿한 으른으로 사회에 나가야하니 슬슬 신경 좀 써볼까 한다! 내 정체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옷들로 잘 골라봐야지.


 318p - 내가 어려서부터 스스로 느꼈던 대로 부족한 존재라는 사실이 들통날 거라고 생각했다. (중략) 저 손님은 나보다 나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미용사와의 관계도 더 오래되고 풍성한 것이 분명했다.

  냅 언니 기죽지마라!!!!! 당신은 누구보다도 더 멋진 사람이라구!!!!! 당신과 나와의 관계는 이미 풍성하다 못해 넘쳐 흐른다구!!!!! 아무도 당신을 작게 보지 않아ㅠ. 걱정말고 자신감 가지기!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


 <분노 표현의 기술>

 322p - 하지만 분노가 유한한 것이라거나 하물며 정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다. (중략) 살다 보면 이따금 우리의 분노를 자극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중략) 해롭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재료이지만 레시피에서 아예 빼버릴 수는 없다.


 323p - 가장 중요한 요령은, 분노를 표현하는 것과 참는 것의 상대적 비용을 저울질함으로써 언제 싸울지를 잘 고르는 것이다. 


 325p - 화내는 것이 효과가 있으려면ㅡ어느 쪽에게든 생산적이거나 유익하려면ㅡ 관련된 두 사람이 기본적으로 서로 신뢰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괴로운 시기를 견뎌보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분노라는 동전의 뒷면은 친밀함일 때가 많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겁나면서도 때로 가치 있는 일인 것은 그 때문이리라.

 분노한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그만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아무런 존재도 아닌 사람에게 분노하면서 감정낭비하고 싶지 않아! 


<내 인생을 바꾼 두갈래근>

 339p - 팔은 내가 내 몸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쁘게 여기는 유일한 부위다.

 물론, 이것은 이 자체로 승리의 선언이다. 여성이 자신의 몸과 맺는 관계는 폭풍우와 싸움과 가차 없는 자기 검열일 때가 너무 많으니까 말이다.

 (중략) 나는 깡말랐고, 굴뚝새처럼 가냘팠고, 윤곽선에 지나지 않는 몸이었지만, 그럼에도 망상에 사로잡힌 내 정신의 일부는 스스로 최고로 강하고 의지가 굳다고 느꼈으며, (중략) 그 모습에 내 마음은 어두운 기쁨으로, 무언가를 잘 장악하고 있다는 왜곡된 감각으로 차올랐다.

 (중략) 그리고 결국 그 느낌이 내게 주는 쥐꼬리만 한 자부심에 의지하여 산다는 것은 크래커로 연명하는 것만큼이나 지속적이지 못한 일이었다.


 343p - 내가 내 팔에서 느끼는 만족은 전적으로 사적인 것이고, 이 점이 그 만족감을 특히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몸매에 관한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열정과 어떤 일을 할 줄 아는 능력들에서 비롯한 미적 기쁨, 안에서 나와 밖으로 드러난 아름다움. 날개가 된 나의 팔, 이것이 바로 해방의 정의라고, 나는 믿는다.

 이렇게 해방으로 끝나는 이 책!!! 감동의 눈물이 흐른다..ㅠㅠㅠ!!! 식이장애와 관련한 내용은 이 책이 아닌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에서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고 다루고자 한다.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분량이 좀 길어질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장황하게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도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많아 내 생각을 제대로 나타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캐럴라인 냅 = 나' 라고 무방할 정도(?)이니 그녀의 글을 필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다. 헤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녀 이야기 (리커버 일반판, 무선)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중)

디스토피아라서 진도가 천천히 나가고 있따 ㅎ_ㅎ,,,

얼른 읽고 싶은데 현실은 수술실 공부해야 함 ,, 또르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온갖 좋지 않은 일들을 겪고 상심한 노라가 죽기로 결심한 후, 삶과 죽음에 경계에 있는 미지의 세계(?)인 도서관에 가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는 스스로 인생(책)을 골라 살아볼 수 있는데, 주인공 노라가 지금까지 살면서 후회한 선택들을 생각해 보고 해보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며 그 과정 속에서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이다! 크,, 일단 판타지적인 전개가 너무 기대가 되었던 책인데, 판타지적 요소뿐만 아니라 삶과 인생에 대한 고찰을 여러 각도로 할 수 있어서 정말 정말 좋았다!!!



 일단은 갑분 결혼에 대한, 너무 공감가서 인상 깊었던 구절!

<후회의 책>을 계속 멍하니 바라보며 노라는 부모님이 서로를 사랑한 적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결혼 적령기가 되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하고 결혼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음악이 멈출 때 가장 옆에 있는 사람을 붙잡는 게임처럼. - P58

 : 사랑은 너무 타이밍이다ㅎ.. 타이밍이 맞는 것도 인연이겠지만 그렇다고 음악이 멈출 때 그냥 옆에 있는 사람을 붙잡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인간 관계..

애쉬는 SNS를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가 외로워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다들 서로 미워하는 것 같더군요." 애쉬가 말했다. "어설프게 알기만 하는 친구들로 과부하 상태라서요. 던바의 수라고 들어본 적 있습니까?"

옥스퍼드 대학의 로빈 던바가 알아낸 법칙인데 인간은 150명의 사람만 알고 지내도록 만들어졌다는 이론이다. - P185


  노라는 인간관계에 세 가지 침묵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화가 났다는 걸 수동적으로 드러내는 침묵이 있고, ‘우린 더는 대화가 통하지 않아‘라는 침묵도 있고, 마지막으로 에두아르도와 노라가 키워온 듯한 침묵,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침묵이 있다. 그저 함께 있고, 함께 존재하는 침묵이었다. 자기 자신과 기꺼이 침묵할 수 있는 것처럼.- P299


나는 고독만큼 함께하기 좋은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P185

 : 난 SNS(인스타그램) 중독자다ㅎ. 처음엔 한두 개 올리던 것이 일기를 쓰게 되면서 매일 쓰게 되었고, 일기는 접었지만 지금은 또 스토리라는 기능이 또 생겨서 아무 때나 막 올리기 쉽다. 재밌는 건 좋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것 같아서 줄이고는 있다. Anyway, 여기서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닌데! 요즘 생각하는 것은 인스타그램에 나랑 별로 안 친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ㅎ. 적당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랑 소식을 주고받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 보면 과해 지기 십상이고 무의미한 관계만 느는 것 같다. :(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을 꼽자면 일단 편한 사람이다! 나는 낯을 많이 가려서 초면인 사람은 조금 불편한데, 조금 많이 마주치고 만나고 이야기하다가 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을 여는 것 같다. 왜 그렇게 마음을 꽁꽁 싸매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편한 사람이 좋다. 그리고 불현듯 침묵이 찾아와도 이미 마음이 통하고 있어서 침묵도 괜찮은 사람이 좋다. :)

 물론 가장 친한 친구는 나 자신이다! 나 혼자가 제일 편해! 정말 고독만큼 함께하기 좋은 친구가 없다는 것이 공감이 많이 갔다.


 

 인생에서 흔히 하는 착각

"노라. 네 원래 삶에서 볼테르는 다른 어떤 생에서보다 오래 살았어. (중략) 처음 몇 년간 볼테르가 고생하기는 했어도 넌 볼테르에게 최고의 삶을 선물해줬어. 볼테르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힘든 삶도 많이 있단다." -P98 


이 세상에는 댄처럼 실제로 이루고 나면 싫어하게 될 꿈을 꾸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한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자신의 망상 속으로 타인을 밀어넣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P113


하지만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이해하면 사는 게 훨씬 쉬워질 거예요. 슬픔은 본질적으로 해복의 일부라는 사실도요.(중략) 하지만 영원히 순수한 행복에만 머물 수 있는 삶은 없어요. 그런 삶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더 불행하게 느껴질 뿐이죠." - P258

 : '내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좀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건 착각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났을 수도 있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 사실 그건 가장 잘한 것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내가 항상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오며 바라왔던 꿈, 그 꿈을 이루면 과연 행복할까? 그 꿈을 이루면 본인이 생각했던 기쁨을 100% 느낄 수 있을까? 그것도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살아봐야 안다. 그러니 후회를 할 필요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어떤 인생에도 슬픔이 없지는 않다. 사람마다 정도만 다를 뿐. 그냥 내 선택을 믿고 경험하고 느끼고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수밖에. 나도 지나간 삶에 후회하고 다른 선택지를 자꾸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결론은 제자리다. 생각은 끝도 없고 어디에도 답은 없다. 답은 지금 내 인생에 있다.

 


 나 한 사람으로 살아가면 된다.

이 삶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노라는 다른 것들, 다른 삶, 다른 가능성을 갈망했다. - P301


마침내 노라는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게 되었다.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전해지는 귓속말처럼 이젠 자신의 이름마저 아무 의미 없는 소음처럼 들렸다. -P308


그 외의 백만 가지 사람이 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놓쳤을지 몰라도 노라는 어떤 면에서 여전히 그런 사람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녀였다. 그녀는 그 모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한때는 그 사실이 우울하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극이 되었다. 왜냐하면 잊는 마음 먹고 노력하면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P381


우리는 그저 눈을 감은 채 앞에 있는 와인을 음미하고, 연주되는 음악을 듣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다른 삶에서처럼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살아 있으며, 동일한 범주의 감정에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 한 존재만 느끼면 된다. - P392

 : 나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 물론 다른 사람의 좋은 점, 잘난 점이 부럽기는 하다. 내가 어느 구석이 특출나거나 잘나게 태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20년 넘게 나는 나로 살아와서 나에 대한 그리고 내 인생에 애정이 있다. 다른 잘나가는 사람, 부자인 사람이 되어도 순간은 좋겠지만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라는 존재로써 누릴 수 있는 모든 삶을 누리고, 이룰 수 있는 모든 삶을 이룰 거야!



 내 안에도 불이 있다.

그녀 안에는 불이 있었다.

이 불이 그녀를 따뜻하게 해줄지 혹은 무너뜨릴지 그녀는 궁금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불에는 아무런 동기가 없었다.

오직 그녀에게만 있었다.

힘은 그녀의 것이었다.- P236

 : 내가 매일 생각하는 표현이랑 같은 표현이 여기에도 적혀있었다. 내 안에 불이 너무 뜨거워서 나를 타버리게 한 적도 있다. 그래서 무서워서 다시는 불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이 필요할 때라는 것을 알기에 다시 조심스럽게 불을 피워보고자 한다. 이번에는 나를 따뜻하게 해주기를.



 이 책을 이런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본인 인생에 후회가 되는 점이 있거나 다른 선택지에 대한 미련이 있는 사람에게. 아마 인생에서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소중한 한 사람으로서 본인의 값진 인생을 살아나갔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려하다

 : 글이나 말, 곡선 따위가 거침없이 미끈하고 아름답다.


 '유려한 문장' (사전)

 '글이 굉장히 유려하고 흥미로운 삽화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겨울서점)



-여실히

 : 사실과 꼭 같이

 : 실제로는 이것과 같다. 실제로는 이것이다. 


 '그의 말이 거짓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전)

 '다시 한번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겨울서점)



 <겨울서점- 우리 몸에 대한 거의 모든 것, 믿고 읽는 빌 브라이슨의 신작 [바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린이라는 세계 (리커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사실 이 책의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막 끌리는 책은 아니었다. 내용이 기대가 되는 소설도 아니었고 에세인데 주제가 어린이였기 때문에 '내가 어린이를 키우는 엄마나 가르치는 유치원 선생님도 아니고 굳이 봐야 할까?' 하고 넘겼다. 그런데 알라딘이든 서점에 가서든 자꾸 이 책이 눈에 보이고, 평도 좋고(나는 참 귀가 얇은 사람..^^;), 결정적인 이유는 옛날에 헌혈하고 받은 문화상품권을 서점에 가서 써야 하는데 (정말로 사고 싶은 책들은 이미 다 샀기 때문에) 딱히 살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래 이거나 읽어보자, 하고 고른 책! 

 사실 초반에 읽다가 덮을까 말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작가님이 글을 잘 못쓰신다는 느낌이 강해서 더이상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돈 주고 산 책이니 강제로(?) 끝까지 읽었다. 조금 읽다보니 재미있는 부분들도 나와서 결론적으로는 꽤 괜찮은 내용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괜찮은 내용들을 엮는 스타일이 나와는 맞지 않은 건 사실이다.)


 초반에는 어린이 책답게 아이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멘트가 많이 나온다. 어린아이들을 상상하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재밌고도 가볍게 책을 읽어나갔다.

 25p - "정말 성수신찬이었어요." (진수성찬이지ㅎ)

 29p - "삼일 차 농구인이시죠." (이제 막 농구를 시작한 선생님께)

 66p - "엄마! 여기 김소 있다. 영만 있으면 (김소영)선생님인데." ('튀김소보로'를 보며

 68p - "우스...꽝?" "홰앳?" (글자의 느낌이 이상한 아가들..ㅋㅋ)

 72p -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 제 마음이 있어요." (마음을 선물하는 아이ㅠ)

 

 그러다가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도 다룬다. 물론 성인이 되기 전에 우리 모두 어린 시절을 겪어왔지만 우리의 감각은 모두 달라져있고 기억 또한 희미하기 때문에 어린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어린이를 어린이의 관점으로 보려는 시도 또한 일상생활에서 하지 않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자연스럽게 '어린이의 관점에서 세상은 어떤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101p - "그보다 큰 이유는 거기 나오는 집들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102p - "그 어린이는 어떤 상황에서 TV를 보고 있을까? 누구와 볼까? 부모와 함께 볼까? 혼자 볼까? 무엇을 하면서 볼까? TV가 놓인 곳은 어디일까? 그 어린이는 화면 속 아이를 부러워할까? 자기 현실과 너무 먼 일이라 아무 상관이 없을까? 만일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정말 아무 상관이 없을까? 그런 생각에 화면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화려한 것을 보여 줘야 한다면 차라리 세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면 좋겠다. 어느 집 넓은 거실보다는 그쪽이 더 좋은 환상 아닐까."

 분명히 어딘가엔 TV 프로그램 속 한 연예인 집의 넓은 거실에서 마음껏 노는 어린아이를 보며 알 수 없는 괴리감 혹은 박탈감을 느끼는 아이가 있지 않을까. 하물며 나도 느끼는데 어린아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226p - "바로 이 점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감상하고 싶어 하는 것."

 227p -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는 대상화된다. 어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어린이를 속여 공포심을 조장하거나 울게 하는 등 어린이의 반응을 지켜보는 TV 프로그램도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이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아동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세이브더칠드런)

 반대의 경우로 내전이 끊이지 않는 시리아의 한 가정에서 아버지가 폭탄을 놀이라고 생각하게 했다는 걸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자주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의 엄마가 정말 병원에 소풍 온 것처럼, 정말 재미있는 것처럼 아이에게 말한 것. 이것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어린이를 웃게 하는 어른이 되어야지! :)


 150p - "사랑은 마음이라는 자원을 필요로 하는데, 자원이란 것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대체로 바닥이 난다."

 151p -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 어린이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적 정서적 성장을 돕고, 좋을 때 좋게 헤어지는 것. 직업 윤리와 진실한 자세만 있다면, 굳이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고도 성과가 있다고 믿는다."

 157p - "내가 사훈이니 뭐니 하며 재는 동안에 사랑은 이미 흐르고 있었다. 어린이로부터 내 쪽으로.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내 마음에 사랑이 고여 있을 리가 없다."

 어린이를 대할 때 '꼭 사랑으로 대해야 할까'에 관한 것.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참 좋지만, 사람이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음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작정 퍼줄 수만은 없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기도 하고.) 같은 맥락으로 많은 사람들을 챙기고 싶어도 누구에게나 사랑을 퍼 줄 수도 없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살아감에 있어서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 같다.


 162p - "학대 대물림은 범죄자의 변명에 확성기를 대 주는 낡은 프레임이다. 힘껏 새로운 삶을 꾸려 가는 피해자들을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예비 범죄자'로 보게 하는 나쁜 언어다."

  지금까지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비행청소년 혹은 범죄자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비행이나 범죄가 합리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단지 마음 한편엔 '안타까운 사정이 있었네..'라는 마음이 들었을 뿐. 하지만 이렇게 그들을 이해하는 것 같은 생각도 사실,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해자들을 예비 범죄자로 보게 되는 꼴이니까. 조심해야겠다.


 181p - "양육자가 아니어도 '남의 집 어른'은 얼마든지 될 수 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나는 끝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친구 역시 아이 없이 나이 들어가는 나의 삶을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 자리가 떨어져 있다는 것이 예전처럼 서운하지 않다. 언제든지 손 내밀 수 있는 자리에, 잘 보이는 곳에 내가 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216p - "격려인지 으름장인지 모를 말들"


 218p - "아이를 낳으면 안된다는 말은 (중략) 아이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된다.미래에만 해당되는 말이라면 괜찮을까? 미래의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정되는 셈이다."


 219p -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이 파트는 또 내가 꽂혀있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내용!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아이를 낳든 안 낳든. 제발 자기네들이 돈 내주고 키워줄 거 아니면 으름장 놓지 마라~~~! 지금 이 사회가 아이를 키우기 마냥 좋은 사회도 아니고 :(.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말자!" 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냥 본인이 마음 가는 대로, 여력이 되고 키우고 싶으면 키우고 아니면 아닌 거다ㅎ.


 209p - "'노 키즈 존'이든 '노 배드 페어런츠 존'이든, 차별의 언어인 것은 마찬가지다. 쏘아보는 쪽이 어린이인가 부모인가가 다를 뿐이다."

 딱히 차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노 키즈 존'.. 상황에 맞게 사용될 수도 있겠지만 차별이 될 수도 있다. 차별이 아닌 척하는 '노 배드 페어런츠 존'도 어쨌든 차별이다. 차별하는 세상에서 자란 어린이들은 커서 우리를 차별할지도 모르는 것이다ㅎ.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어린이를 존중하자!"이다. 식상하지만 그래도 어린이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는 어린이를 다방면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다. 나도 다 큰 줄만 알았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어린이들은 어려서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게 당연하지만, 생각보다 아는 것도 많고 속도 깊다. 이미 다 커버린 어른들이, 망각하고 있었던 어린이들의 세계를 잠깐 엿보는 것도 좋은 공부인 것 같다.



 +) 사실 책을 읽으면서 '말하던 내용의 결론을 빼먹고 다른 상황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혹은 '굳이 이걸 이렇게 써야했나..?' 혹은 '주어와 문장의 호응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기도 했다. 약간 의식의 흐름대로 쓰인 글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내용은 좋은데 문장이 조금 찜찜하게 느껴져 더 읽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참고(?) 읽긴 했다. 국문학과를 나오고 출판계에서 일한 작가님이 쓰신 에세이라,, 내주제에 뭐라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중 하나 예를 들면, 

 

 44p - 아빠가 다시 "사 줄게. 아빠를 줘야 계산을 하지" 하는 걸로 봐서는 혹시 아빠가 마음이 변해 안 사줄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 아빠가 다시 "사 줄게. 아빠를 줘야 계산을 하지" 할 때도 책을 놓지 않는 걸로 봐서 아이는 혹시 아빠가 마음이 변해 안 사줄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앞 문장의 주어는 아빠이고 '하는 걸로 봐서는'의 주체도 아빠인데, 뒤 문장에서 걱정하는 주체는 아이인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아래처럼 고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글알못이지만 내 생각이다.) 아몰랑ㅎ.

 책을 읽을 땐 이처럼 불편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소재의 책은 꽤 신선했다. 읽고 나니 앞으로 어린이에게 더욱 신경을 쓰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뒷부분으로 갈 수록 더 괜찮은 느낌. 작가님이 말하는 대목에서도 웃긴 코드가 많아 재미가 쏠쏠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