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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리커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사실 이 책의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막 끌리는 책은 아니었다. 내용이 기대가 되는 소설도 아니었고 에세인데 주제가 어린이였기 때문에 '내가 어린이를 키우는 엄마나 가르치는 유치원 선생님도 아니고 굳이 봐야 할까?' 하고 넘겼다. 그런데 알라딘이든 서점에 가서든 자꾸 이 책이 눈에 보이고, 평도 좋고(나는 참 귀가 얇은 사람..^^;), 결정적인 이유는 옛날에 헌혈하고 받은 문화상품권을 서점에 가서 써야 하는데 (정말로 사고 싶은 책들은 이미 다 샀기 때문에) 딱히 살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래 이거나 읽어보자, 하고 고른 책!
사실 초반에 읽다가 덮을까 말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작가님이 글을 잘 못쓰신다는 느낌이 강해서 더이상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돈 주고 산 책이니 강제로(?) 끝까지 읽었다. 조금 읽다보니 재미있는 부분들도 나와서 결론적으로는 꽤 괜찮은 내용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괜찮은 내용들을 엮는 스타일이 나와는 맞지 않은 건 사실이다.)
초반에는 어린이 책답게 아이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멘트가 많이 나온다. 어린아이들을 상상하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재밌고도 가볍게 책을 읽어나갔다.
25p - "정말 성수신찬이었어요." (진수성찬이지ㅎ)
29p - "삼일 차 농구인이시죠." (이제 막 농구를 시작한 선생님께)
66p - "엄마! 여기 김소 있다. 영만 있으면 (김소영)선생님인데." ('튀김소보로'를 보며)
68p - "우스...꽝?" "홰앳?" (글자의 느낌이 이상한 아가들..ㅋㅋ)
72p -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앤 제 마음이 있어요." (마음을 선물하는 아이ㅠ)
그러다가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도 다룬다. 물론 성인이 되기 전에 우리 모두 어린 시절을 겪어왔지만 우리의 감각은 모두 달라져있고 기억 또한 희미하기 때문에 어린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어린이를 어린이의 관점으로 보려는 시도 또한 일상생활에서 하지 않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자연스럽게 '어린이의 관점에서 세상은 어떤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101p - "그보다 큰 이유는 거기 나오는 집들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102p - "그 어린이는 어떤 상황에서 TV를 보고 있을까? 누구와 볼까? 부모와 함께 볼까? 혼자 볼까? 무엇을 하면서 볼까? TV가 놓인 곳은 어디일까? 그 어린이는 화면 속 아이를 부러워할까? 자기 현실과 너무 먼 일이라 아무 상관이 없을까? 만일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정말 아무 상관이 없을까? 그런 생각에 화면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화려한 것을 보여 줘야 한다면 차라리 세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면 좋겠다. 어느 집 넓은 거실보다는 그쪽이 더 좋은 환상 아닐까."
분명히 어딘가엔 TV 프로그램 속 한 연예인 집의 넓은 거실에서 마음껏 노는 어린아이를 보며 알 수 없는 괴리감 혹은 박탈감을 느끼는 아이가 있지 않을까. 하물며 나도 느끼는데 어린아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226p - "바로 이 점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감상하고 싶어 하는 것."
227p -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는 대상화된다. 어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어린이를 속여 공포심을 조장하거나 울게 하는 등 어린이의 반응을 지켜보는 TV 프로그램도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이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아동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세이브더칠드런).
반대의 경우로 내전이 끊이지 않는 시리아의 한 가정에서 아버지가 폭탄을 놀이라고 생각하게 했다는 걸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자주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의 엄마가 정말 병원에 소풍 온 것처럼, 정말 재미있는 것처럼 아이에게 말한 것. 이것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어린이를 웃게 하는 어른이 되어야지! :)
150p - "사랑은 마음이라는 자원을 필요로 하는데, 자원이란 것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대체로 바닥이 난다."
151p -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 어린이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적 정서적 성장을 돕고, 좋을 때 좋게 헤어지는 것. 직업 윤리와 진실한 자세만 있다면, 굳이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고도 성과가 있다고 믿는다."
157p - "내가 사훈이니 뭐니 하며 재는 동안에 사랑은 이미 흐르고 있었다. 어린이로부터 내 쪽으로.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내 마음에 사랑이 고여 있을 리가 없다."
어린이를 대할 때 '꼭 사랑으로 대해야 할까'에 관한 것.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참 좋지만, 사람이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음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작정 퍼줄 수만은 없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기도 하고.) 같은 맥락으로 많은 사람들을 챙기고 싶어도 누구에게나 사랑을 퍼 줄 수도 없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살아감에 있어서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 같다.
162p - "학대 대물림은 범죄자의 변명에 확성기를 대 주는 낡은 프레임이다. 힘껏 새로운 삶을 꾸려 가는 피해자들을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예비 범죄자'로 보게 하는 나쁜 언어다."
지금까지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비행청소년 혹은 범죄자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비행이나 범죄가 합리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단지 마음 한편엔 '안타까운 사정이 있었네..'라는 마음이 들었을 뿐. 하지만 이렇게 그들을 이해하는 것 같은 생각도 사실,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해자들을 예비 범죄자로 보게 되는 꼴이니까. 조심해야겠다.
181p - "양육자가 아니어도 '남의 집 어른'은 얼마든지 될 수 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나는 끝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친구 역시 아이 없이 나이 들어가는 나의 삶을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 자리가 떨어져 있다는 것이 예전처럼 서운하지 않다. 언제든지 손 내밀 수 있는 자리에, 잘 보이는 곳에 내가 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216p - "격려인지 으름장인지 모를 말들"
218p - "아이를 낳으면 안된다는 말은 (중략) 아이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된다.미래에만 해당되는 말이라면 괜찮을까? 미래의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정되는 셈이다."
219p -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이 파트는 또 내가 꽂혀있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내용!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아이를 낳든 안 낳든. 제발 자기네들이 돈 내주고 키워줄 거 아니면 으름장 놓지 마라~~~! 지금 이 사회가 아이를 키우기 마냥 좋은 사회도 아니고 :(.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말자!" 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냥 본인이 마음 가는 대로, 여력이 되고 키우고 싶으면 키우고 아니면 아닌 거다ㅎ.
209p - "'노 키즈 존'이든 '노 배드 페어런츠 존'이든, 차별의 언어인 것은 마찬가지다. 쏘아보는 쪽이 어린이인가 부모인가가 다를 뿐이다."
딱히 차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노 키즈 존'.. 상황에 맞게 사용될 수도 있겠지만 차별이 될 수도 있다. 차별이 아닌 척하는 '노 배드 페어런츠 존'도 어쨌든 차별이다. 차별하는 세상에서 자란 어린이들은 커서 우리를 차별할지도 모르는 것이다ㅎ.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어린이를 존중하자!"이다. 식상하지만 그래도 어린이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는 어린이를 다방면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다. 나도 다 큰 줄만 알았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어린이들은 어려서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게 당연하지만, 생각보다 아는 것도 많고 속도 깊다. 이미 다 커버린 어른들이, 망각하고 있었던 어린이들의 세계를 잠깐 엿보는 것도 좋은 공부인 것 같다.
+) 사실 책을 읽으면서 '말하던 내용의 결론을 빼먹고 다른 상황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혹은 '굳이 이걸 이렇게 써야했나..?' 혹은 '주어와 문장의 호응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기도 했다. 약간 의식의 흐름대로 쓰인 글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내용은 좋은데 문장이 조금 찜찜하게 느껴져 더 읽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참고(?) 읽긴 했다. 국문학과를 나오고 출판계에서 일한 작가님이 쓰신 에세이라,, 내주제에 뭐라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중 하나 예를 들면,
44p - 아빠가 다시 "사 줄게. 아빠를 줘야 계산을 하지" 하는 걸로 봐서는 혹시 아빠가 마음이 변해 안 사줄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 아빠가 다시 "사 줄게. 아빠를 줘야 계산을 하지" 할 때도 책을 놓지 않는 걸로 봐서 아이는 혹시 아빠가 마음이 변해 안 사줄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앞 문장의 주어는 아빠이고 '하는 걸로 봐서는'의 주체도 아빠인데, 뒤 문장에서 걱정하는 주체는 아이인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아래처럼 고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글알못이지만 내 생각이다.) 아몰랑ㅎ.
책을 읽을 땐 이처럼 불편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소재의 책은 꽤 신선했다. 읽고 나니 앞으로 어린이에게 더욱 신경을 쓰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뒷부분으로 갈 수록 더 괜찮은 느낌. 작가님이 말하는 대목에서도 웃긴 코드가 많아 재미가 쏠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