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지나가는 오후의 상상 시산맥 기획시선 56
최인숙 지음 / 시산맥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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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 시집, 구름이 지나가는 오후의 상상, 시산맥사

시집 제목처럼 시인은 세심한 관찰력 위에 상상력을 탑처럼 쌓으며 시상을 전개한다. 제목이 시의 중심 소재를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곳곳에 보인다. 예를 들어 등 뒤 가려운 곳 그 중에서도 “손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바나나가 열린다. 이때 바나나는 가려운 등-효자손-손가락처럼 변주되는 식이다. 이런 변주 방식이 단조롭지 않고 무한 확장성을 가진다. 쉽게 읽히면서도 뻔하지 않게 시상을 전개하는 방식이 능숙함이 느껴진다.




- 바나나 17쪽

바나나는// 등이 가려울 때 열린다// 손이 닿지 않는 그곳은// 습한 열대// 그는 돌아앉았던가 허리를 굽혔던가// 바나나는 그때마다 다른 음으로 흔들리고// 익는다// 매달릴 때마다 하나씩 없어지는// 저 손가락




- 아코디언 고양 42-43쪽 부분

하양 고양이 검정고양이/ 고양이들이 지붕 위를 걸어 다니면/ 아코디언 속에서 고의적으로 늙어가는 고양이/ 서른일곱 마리가 다섯 손가락 사이에서 담을 넘어 다니며/ (중략)



- 관계자 외 출입금지 47쪽 부분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다급하게 두드릴 때조차/ 어둠은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에 눈을 맞추고/ 거만하게 그러나 초점 없이 내려다볼 것이다/ (중략)



- 만약에 젤리처럼, 67쪽 부분

허물어지는 것에 기댈 때가 있죠. 두 개의 짙은 눈썹만으로 공원에 걸린 시계는 11시 5분. 배고프기에는 조금 이르고 잠들기까지는 조금 긴 시간. 스케치북을 꺼내 의자 위에 펼쳐놓으면 다시 겨울이라 불러도 될까요. (중략) 바이러스 이름을 모르고 감가가 끝나는 것처럼 나는 봉지 속 약을 삼키고 열에 들떠 눕고, 시계는 늘 같은 시간을 가리키며 훌쩍이는데.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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