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17
김기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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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 지성사

 

1. 하나를 오랫동안 바라보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속도의 시대에 나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가는 경쟁자들의 거친 숨소리를 보내고 한 지점에 멈추어 그 하나를 바라보기에는 시간 외에도 여유가 필요하다. 여유가 물질적 여유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듯이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풍요로운 사랑을 하는 커플을 많이 보았다. 고등학생, 대학생 때 대부분 우리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했지만 마음은 지금보다 부유했다고 생각한다. 시청역에 내려 덕수궁과 정동길을 걸으면 악취나는 은행열매도 내 앞과 옆에 놓인 사랑의 눈빛으로 다 덮을 수 있었다.

 

 

2. 「곱추」「소」등 한 사물을 오랫동안 바라보기의 최고봉 가운데 한 사람이 김기택 시인이다. 김사인 시인의 말씀처럼 ‘해부학적 시선과 미시적 관찰’이 시의 조제원리다. 설득하는 방식이 아닌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시를 엮어 나가기 때문에 누구나 읽고 공감하기 좋은 시들이 많다. 그렇다고 가벼운 것은 아니다. ‘죽음, 노년’을 다루는 시가 많고 풍자를 통해 사회비판적인 작품도 있다. 시 읽기의 초심자부터 난해한 관념과 어지러운 수사에 갇힌 중급자 이상의 독자도 자꾸 들쳐보게 만드는 시집이다.

 

 

- 넥타이 10-11쪽 (김기택)

 

목이 힘껏

천장에 매달아 놓은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공중에 들린 발바닥이 날개처럼 세차게 바닥거린다

 

목뼈가 으스러지도록 넥타이가 목을 껴안는다

목이 제 안에 깊숙이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넥타이에 괄약근이 생긴다

 

발버둥치는 몸무게가 넥타이로 그네를 탄다

다리가 차낸 허공이 빙빙 돈다

몸무게가 발버둥을 남김없이 삼키는 동안

막힌 숨을 구역질하는 입에서 긴 혀가 빠져나온다

 

벌어진 입이 붉은 넥타이를 게운다

수십 년 동안 목에 맸던 모든 넥타이를 꾸역꾸역

게운다

게워도 게워도 넥타이는 그치지 않는다

 

바닥과 발끝 사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줄어들지 않는 한 뼘의 허공이

사람을 맨 넥타이를 든든하고 받쳐주고 있다

 

3. 뒤집힌 폭포 (박동민)

 

윗물이 아랫물에게

쏴아쏴아 침 튀기며 말했다

진정한 용기는 아래를 향한 도약

쏟아내는 폭포처럼

힙겹게 내린 오기의 뿌리를

더 깊게

더 멀리

더 힘차게

 

아랫물이 윗물에게

우아하게 말했다

진공관을 타고 오르는 사이펀 커피처럼

뜨끈한 김을 내뱉는 오줌발처럼

피 튀기게 틔운 오기의 싹을

더 높이

더 넓게

더 향기롭게

 

분수(分數)를 알아야지, 그 말이 역류하니

분수(噴水)처럼 살라는 말로 들렸다

 

그러나 아,

뒤집힌 폭포는 몇 초도 안 돼

고개 숙이고

말라버리고

 

얼어버린 내 발은

오줌 묻은

오줌발이 되었다

 

번복은 반복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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