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The fault in our stars (정호승 산문집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읽고)

1. 정호승 시인의 시와 글을 좋아한다. 기독교 문화를 가진 가정에서 자랐고, 군대시절 군종병까지 했을 정도니 기독교 이념에 바탕을 둔 성찰이 울림을 준다. 비 기독교 신자인 내가 읽기에도 전혀 거부감이 없이 자연스레 시와 글에 녹여 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교에도 조예가 깊다. 화순 운주사 와불에 관한 글, 성철 스님을 찾아뵌 이야기, 법정스님에 관한 글 등 불교에 관한 얘기도 많다. 기독교와 불교가 대립적 관계가 아니기에 이상할 건 없지만 개인적 생각으로는 기독교는 시인의 생래적 종교로서 불교는 성인이 되고 문학을 하고 되면서 더욱 짙게 영향을 준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를 좋아하는 까닭은 '시인 같지 않은 시인'이기 때문이다. 동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집 세고 욱하지만 은근 정이 많은 아저씨라는 인상을 받았다. 층간소음때문에 윗집에 달려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따지는 아저씨기도 하지만 첨성대 주변에서 결혼사진을 찍다가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신혼부부를 위해 몇 시간을 같이 반지를 찾는 정 많은 아저씨다.

문학을 위해 인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인생을 위해 문학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자체가 예술임을 말한다.

2. 시인의 산문집 '우리가 어느 별에서'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단번에 생각난 영화가 있다.
작년에 개봉한 '안녕, 헤이즐' 원제는 The Fault In Our Stars'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애서 착안해 지은 제목인데, 시저 암살 음모를 주도한 캐시어스는 브루투스를 끌어들이면서 “친애하는 브루투스여, 잘못은 우리 운명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네”라고 말한다. 개인에게 닥치는 행운과 불운은 결국 자신이 과거에 내린 결정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원작자 존 그린은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정반대로 뒤집는다. 잘못은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별에, 우리의 잘못된 운명에 있는 거라고.
영화 '굿 윌 헌팅'의 유명한 대사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와 동일한 맥락이다.

3. 같은 텍스트라도 누가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읽는가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달라지듯 나에겐
잘못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별에 있다는 중심 메시지를 갖고 읽어 나가니 도드라진 부분들이 있었다. 고향을 떠나 수년을 지하에서 일하는 광부의 꿈은 "내 소원은 땅 위의 직업을 갖는 거지예(42쪽)" '공씨책방'이라는 헌 책방을 지킨 공선생은 책을 내도 헌 책방에서 남아 있을 수 있는 생명력 긴 책을 내야 한다(156쪽)고 말했다.

장진성 시인 '탈북자'(215쪽)라는 시에서
'탈북자/우리는 먼저 온 미래/ 오고야 말 통일을 / 미리 가져온 현재'라고 노래한다.

탄광 광부, 헌 책방 주인, 새터민, 일자리를 구하는 청춘,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모두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고 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4. 시인의 글 답게 곳곳에 지나쳐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글귀와 에피소드가 많다. 특히 '나의 첫 키스'란 에피소드에서는 사촌누나와의 창문을 사이에 두고 '유사키스'를 했고, 사촌누나가 자신에게 애틋한 감정이 있었다고 추측하는 부분이 있어 놀랐다. 이야기 자체의 놀라움보다는 그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267쪽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뜨기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걷고 있느냐

5. 메모

나무는 그리 급할 게 없다. 나무들은 우리 사람들처럼 한 해를 한 달처럼 한 해를 하루처럼 살지 않는다. 나무는 하루를 한 해 처럼 산다. (308쪽)

연애편지중(266쪽) 내가 별 없는 밤 하늘이라면, 당신은 그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 첫 눈 오는 날 만나자 중(312쪽)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요강 속에 고인 오줌 빛깔 같은 추깃물(356쪽)

물을 안주고 학대하면 꽃이 핀대
너무 사랑하지 말고 한번 홀대를 해봐

봄은 왜 오는가? 꽃이 피기 위해서 온다.

인간이 꽃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 인간을 아름답게 한다.
(103-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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