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즙 배달원 강정민
김현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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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나를 파악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나 자신을 파악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아봤자 좋은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의사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 내가 의학 용어로 말하자면 '양가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술을 끊고 싶다. 그렇지만 두렵다. 술을 끊으면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인가. 끊고 싶으면서도 끊고 싶지 않다. 끊고 싶다. 그렇지만 끊고 싶지 않다.

10%

"미제국주의의 습속과 서구의 천박한 상업자본주의의 산물인 생일 케이크를 아이들의 생일상에 굳이 올려야 하는가, 그보다는 우리 고유의 떡을 찧어 나누어 먹는 것이 전통적이면서도 민족적인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좋다 이거야. 근데 그 떡을 누가 찧을 건데! 토끼가 찧어줄 건 아니잖아? 결국 내가 찧겠지! 알다시피 내가 거기서 맡은 직분이 한두 개가 아니지 않겠어? 그런데 이 민주적인 사람들이 왜 나한테만 김민주 선생님, 까라면 까야죠, 이런 식으로 나오는지 참......"

민주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렇다. 역시 단가가 저렴한 사람인 나도 함께 탄식할 수밖에.

"사람값이 제일 싸다니까! 사람이 제일 싸다고!"

29%

"아직 젊은데, 언제 멀쩡한 일 할 거예요?"

글쎄요,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런 말들과 함께 대강 넘어가긴 하는데, 뭐는 멀쩡한 일이고 뭐는 안 멀쩡한 일이란 말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멀쩡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늘 꾹 눌러 참는다. 멀쩡한 일과 멀쩡하지 못한 일의 경계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내 노동의 값을 얼마나 후려치고 있는지는, 오늘 유독 야구를 좋아하는 어느 손님 때문에 알게 되고 말았다.

"할머니~"

"왜, 아가?"

"저 이렇게 술 많이 마셔서 어떡해요......?"

할머니는 솥을 휘젓던 국자를 잠시 내려놓더니 나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가, 걱정하지 마라. 안 들어갈 날이 곧 온다."

"정말요?"

"그럼, 기다리고 있으면 저절로 안 들어갈 날이 곧 와. 그런께 걱정하지 말어."

42~43%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주책을 너무 떤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네, 많이 떠셨어요."

문을 열려던 팀장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섰다.

"지금 뭐라고요?"

"주책 너무 떨었냐고 물어보셨잖아요. 맞다고요. 너무 떠셨어요. 저는 이미 다 봤으니 할 수 없고, 다른 지원자들한테는 안 하시는 게 좋겠어요. 개인사 캐묻는 불쾌감은 물론이고 업무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이게 무슨 면접입니까? 제가 써낸 희망 연봉 아실 텐데요. 겨우 그 푼돈 받겠다고 왔는데 정견 발표회도 아니고 면접과 무관한 주장을 한참 하시니 굉장히 무례하시네요. 앞으로 주의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다 팀장님이 오빠 같고 아버지 같아서 드리는 말씀인 거 아시죠?"

62%

할머니는 한 번 더 과자를 뿌리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다 살겠다고 그러는데, 얼마나 이뻐. 살겠다고 하는 것들은 다 이뻐......"

살겠다는 것들은 다 이뻐. 물론 잘 살겠다고 악에 받친 사람들은 무섭지만 그저 살겠다는 것들은 이쁘다. 그리고 이제 함부로 비둘기가 징그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가 그럴 자격이 있단 말인가. 살겠다고 하는 것들끼리.

79%

"나는 비겁한 인간이에요."

"......"

"늘 나는 준비 기간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내 인생은 진짜가 아니라고, 나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고. 내가 진심으로 마음먹고 출발하면, 금방 뭐든지 해낼 수 있다고. 내가 녹즙 배달을 1년 반 넘게 한 것도, 어떤 사람들은 내가 궂은일 해내서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걸 그만두면, 진짜 인생을 살아야 되니까. 삶에 대한 핑곗거리가 없어지니까."

88%

김현진, <녹즙 배달원 강정민> 中

+) 이 소설은 알코올의존증을 치료하러 병원에 다니면서도 계속 술을 마시는, 웹툰 작가가 되고자 애썼지만 쉽지 않은 현실에 퇴사해 녹즙 배달 일을 하는, '강정민'씨의 일상을 담고 있다.

책의 표지에 실린 캐릭터로 강정민의 삶 혹은 성격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작품이었는데, 읽으면서 내내 짠하지만 유쾌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원작의 감수성을 살려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하면 어떨까 바라기도 했다. 인물 캐릭터가 분명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이 꽤나 현실적이라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 거라 느낀다.

녹즙을 판매한 만큼 수당을 받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강정민과, 어린이집 양호 선생님이나 실제로는 어린이집의 온갖 일을 다 하는 '김민주'의 일상을 통해 작가는 여성 청년의 사회생활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청춘과 뼈아픈 현실을 핑계로 끝없이 술을 마시고 술 없는 인생은 상상조차 못하는 강정민은 단짝 김민주와 함께 낮술과 밤술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삶에서 지우고 싶은 순간들을 만들곤 한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건 이렇게 위태롭고 안타깝게 보이는 순간도 어느새 피식, 하고 웃게 만드는 뼈 있는 대사와 흡입력 있는 상황 묘사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아픈 거나 웃픈 현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위트와 재치 혹은 유머로 그 순간을 가려보는 젊은 청춘들. 이 작품에는 이들이 마주 선 현실과 그 안에서 버티는 이들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물론 이들 외에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정말 참 열심히들 산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이들도 다양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호락호락하지 않은지 씁쓸하면서도 발랄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담아낸 소설이다.

알코올의존증 문제, 데이트 폭력, 노동자의 처우 개선 문제, 성희롱 문제, 취업의 어려움, 먹고살기 고단한 현실 등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소재를 담았음에도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게 읽힐까.

읽는 내내 몇 번을 웃으며 참 재미있게 잘 본 소설이다. 슬픈데 명랑한, 어린 시절에 보던 유쾌한 만화들이 떠오른다. 묵직하면서도 유쾌 상쾌 통쾌한 사실을 가득 담아낸 그런 구성을 이 소설에서도 만날 수 있다.

웃픈 현실에서, 그리고 알코올의존증에서, 진솔한 자기 객관화와 적당한 거리 두기를 시작한 어른 강정민의 삶을 응원하며 소설 읽기를 마쳤다.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다. 생존의 어려움과 사는 것의 고단함을 이렇게 슬프게, 아프게, 그런데 재미있게 담아내다니. 서사를 이어가는 힘이 탁월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유쾌하고 발랄하며 현실적인 소설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알코올의존증으로 걱정인 이들에게, 취업 전선에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그리고 사회에서 받은 차별로 속상한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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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영미권 출간 기념 특별판)
김수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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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것

우리 삶에서 곧 사라질 존재들에게

마음의 에너지를 쏟는 것 역시 감정의 낭비다.

지나갈 인연을 붙잡아 악연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마음 졸여도, 끙끙거려도, 미워해도

그들은 어차피 인생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8%

자신에 대한 수치심, 무가치함은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 감정을 숨기고자

냉소로 무장하고

문제의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며

변명 뒤에서 자신을 보호한다.

그런데 문제는 변명으론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데 있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변명에는 사실 그 자신도 속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 과거에 묶여 인생 전체를 소진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자책과 원망을 소거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투명하게 재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마주 봄 끝에 가장 중요한 건

다시 시작하는 데 있다.

13%

심리학자 나다니엘 브랜든은 건강한 자존감을 위한 두 기둥을 자아 효능감과 자기 존중감이라 말했다. 자아 효능감이란 현실적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이자 자신감이고, 자기 존중감은 스스로를 존중하며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스스로를 충분히 의식하지 못한 채 타인과 사회의 시선에 질질 끌려 사는 것으론 결코 자존감에 닿을 수 없다. 그렇기에 단단한 자존감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은 분명하다.

'나답게 살아가는 것.'

22%

걱정은 내일의 슬픔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힘을 앗아간다.

ㅡ 코리 텐 붐

38%

삶이라는 모호함을 견딜 것

우리는 삶에 확신을 얻고 싶어 점을 본다.

하지만 노스트라다무스가 관 뚜껑을 열고 나온다 해도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그건 점쟁이가 내공이 없어서, 혹은 복채나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의 본질이 모호함에 있기 때문이다.

삶이란 결국,

모호함을 견뎌내는 일이다.

삶의 안정감은

불확실을 완벽하게 제거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불확실과 맞서며 얻어진다.

39~40%

문제를 안고도 살아가는 법을 배울 것

당신도 그럴 수 있다.

너무 지쳐서, 나 자신이 지긋지긋해서,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런 나 자신을 내팽개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살다가 어떤 불행을 마주한다 해도

충분히 슬퍼하고 괴로워했다면

그 원치 않는 사실과도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자.

당신의 고단함이 별것 아니라서

혹은 다들 그렇게 사니까, 같은 이유가 아니라

당신에겐 가장 애틋한 당신의 삶이기에

잘 살아내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50%

화상이 생겼을 때 흉터가 남지 않는 법

  1. 연고를 바른다. 2. 자주 바른다. 3. 계속 바른다.

다른 방법은 없다.

상처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꾸준히 나아지려 노력하는 것이다.

71%

자유롭게 살고 싶거든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을 멀리하라.

ㅡ 톨스토이

84%

우리는 누구도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없고,

누구도 우리를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타인의 행복은 우리의 영향권 밖의 일이며

우리의 행복 역시 타인에게 위임할 수 없는 거다.

그러니 자신의 행복을 방치하지 말자.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은

애정과 사랑은 나누되

자신의 행복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니,

부디 다들 알아서 행복하자.

87~88%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끝나지 않던 질문.

내 나름의 답을 이야기하자면,

우리 좋은 삶을 살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노래와 좋은 책과 함께하며

날씨가 좋은 날 햇볕을 쬐는 것.

나는 그 일상의 따스함이 좋은 삶의 전부라 생각한다.

95%

김수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中

+) 이 책의 저자는 '나'라는 존재의 가치에 대해, 그리고 '나'의 삶에서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단단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삶을 존중하며 살기 위한 방법, 나답게 살기 위한 방법, 인생에서 자주 찾아오는 불안감을 견디는 방법,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 더 나은 세상과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방법 등을 제안한다.

이 책은 가벼운 느낌의 에세이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문장 하나하나에서 확고한 느낌의 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에는 깊이 공감하며 동의하면서도 또 어떤 생각에는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단단한 사람이 되기까지 저자가 용기 있게 살아온 모습이 떠올라 부럽기도 했다.

자기 생각을 지키고 또 변화가 필요하다면 과감히 선택하며, 혹여 지난 선택이 틀린 거였다면 그때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멋지게 인정하는 것.

저자의 에세이는 이렇게 솔직하고 과감한 문장들로 작성됐다. 어떻게 그렇게 단정적인 표현을 잘 사용할까 생각했다. 그건 저자가 말한 저자 자신, 즉 '나'답게 살면서 스스로 '나'를 인정하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는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의 삶이,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언급하면서도 타인과의 원활한 관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고민 등을 끝없이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는 멋진 독자들에게 저자의 문장이 든든한 지지대가 될 것이라고 느꼈다. 또 나로 살고 싶은 소망이 있는 이들에게는 이끎의 시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어떻게 자존감을 찾고 지키는지 알고 싶은 이들, 우리의 삶에서 무엇보다 나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에 확신을 얻고 싶은 이들, 그러면서도 더 나은 세상과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같이 고민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그리고 타인과의 비교를 멈추고 자기만의 삶을 꾸리고 싶은 이들, 자기 삶을 먼저 생각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든든한 응원의 문장, 단호한 의지의 문장, 따뜻한 위로의 문장을 만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사는 것에 지치고 자기 삶에 위축된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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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임시 보관 중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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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만약, 한 번 더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내 인생을 방해하는 요소는 모조리 배제해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이제 결혼은 하지 않겠다. 물론 아이도 낳지 않을 거다.

내 인생을 살고 싶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까.

여자의 인생도 당연히 남자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할 터이다. 나도 사실은 오타니 선수처럼 내가 원하는 외길을 똑바로 걸어가고 싶었다.

pp.12~13

"대체 누가 비웃는다고 그러셔? 영양 밸런스가 만점인데."

"그런 도시락이 어딨어? 비상식이야."

"이걸로 충분하다니까. 남의 시선 따위 아무려면 어때!"

"오늘 마사미, 뭔가 멋있는데." 하고 오빠가 말했다.

"그렇잖아, 오빠. 남들이 뭘 해줄 건데? 남의 뒷말이나 하면서 즐거워하는 타인들, 평생 상대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사람들하고는 가까이하지 않는 게 더 좋아."

그런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알았더라면 인생이 얼마나 편했을까.

p.65

옛날부터 여자는 이과나 수학 과목 못한다고 근거 없이 단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뒤집어 말해서, 남자가 이과 과목이나 수학을 못하면 쪽팔리는 일이라고 각인되어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 교사도 '남자다움'이라는 주술에 갇힌 희생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거라고 생각하니, 당시의 내가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p.160

"뭐였던 걸까......"

정말로 뭐였던 걸까, 내 인생은.

뭘 위해 열심히 애써왔던 걸까.

p.347

실패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 같은 인간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까지 비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예방선을 쳐둔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원래와 똑같은 상황일 뿐이라고 나 자신에게 수없이 일러둔다.

사회 풍조에 대한 분노는 물론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거듭되는 자신감 상실이 습성이 되어서 평생 사소한 일에도 걱정이 앞서는 데다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태도가 여자의 몸과 마음에 깊이 배어든다.

그런 연쇄를 끊어내고 싶었다.

p.362

"기타조노는 어떤 인생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글쎄, 갑자기 그렇게 물어보면......"

"나는 말이야, 매일 설레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

"매일이라니, 그건 불가능하지."

"그럼 바꿔 말할게. 평생 살면서 설레는 횟수가 많은 사람이 성공!"

"그건 사람마다 다른 거 아닐까? 평온하고 안정된 삶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잖아."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하지만 나는 달라. 죽을 때까지 설레며 살고 싶어."

pp.430~431

가키야 미우, <인생 임시 보관 중> 中

+) 이 소설은 일본의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의 '만다라 차트'를 따라 그리던 63세 '기타노조'가 만다라 차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63세 주부였던 그녀는 탄탄한 인생 설계로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았어야 한다고 종종 생각한다. 그때 완벽한 인생 설계를 해온 오타니 쇼헤이의 삶이 눈에 들어왔고, 본인도 그런 삶을 꿈꾼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말을 비웃는다. 남편과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고 속상하던 그녀는 우연히 만다라 차트를 그리다가 중학생이었던 과거 시절로 돌아가는 경험을 한다.

그곳에서의 삶을 제2의 인생으로 여기고 남녀 차별에 맞서 자기 삶을 꾸려가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여성으로서 제약이 많았던 그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기타노조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뿌리 깊이 박힌 사회적 고정관념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현실적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같은 시절로 타임 슬립해 돌아온 '아마가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제2의 인생을 공유한다.

이 책은 남녀 차별의 모습을, 정확히는 여성이 차별받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차별의 모습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방 출신이기에 받는 차별적 시선, 학벌에 의한 무의식적 차별, 나이 차와 경력에 의한 무시, 한 집안의 가장으로 헌신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고정관념, 어떤 집안과 결혼했느냐에 따라 생기는 편견 등도 담겨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타노조와 아마가세는 그들 각자가 짊어진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애쓰고, 작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수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에 맞서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과거의 어느 한 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를 상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든 언제든 각자 맡은 역할에 자기만의 고충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혹시 다시 현재로 돌아간다면 제1 혹은 제2의 삶이 아닌 제3의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닐지 궁금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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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시런니가 필요해 - 인생 신생아 은시런니의 사이다표 드립뱅크
유은실 지음 / MY(흐름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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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네가 그만 힘들어하면 좋겠어.

곧 지나갈 시간에 그만 아파했으면 좋겠다.

힘든 일 하나로 머릿속과 마음속이 온통 분주하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 일이 생각나고, 텔레비전을 보다 깔깔 웃다가도 금세 울상이 된다. 지나고 나면 다 별일 아닌데...

지나고 나면 괜찮아진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도 힘든 일에 마음을 내어 주는 걸 보면 아직 덜 살았나 보다.

p.40

ㅡ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덜덜덜.. ㄴ.. 나... 떠.. 떠는 거 아니야.)

마법의 주문

"괜찮아." 이 한마디가 갖고 있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언제 어디서든 무슨 일이 있든 주문처럼 짧게 읊조리고 나면 기적처럼 진짜 괜찮아진다.

"나는 괜찮아."

"오늘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다 잘될 거야."

p.45

ㅡ 인생의 리즈 시절은 신생아가 틀림없어.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아이쿠...)

게으름에 깔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무기력과 게으름은 엄연히 다르다. 게으름은 스스로가 지금의 상황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 단지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할 일을 미루는 것. 그럼 좀 안 될 것도 없잖아?

p.67

사람의 습관이라는 게 무섭지. 알면서도 자꾸만 기대하는 게 습관이 돼 버렸어.

(쿨쩍...)

나보다는 돌이 나은 것 같다.

실망은 기대에 비례한다. 기대가 커질수록 실망도 커진다. 그러나 기대를 조금 한다고 해서 실망을 조금 하지는 않는다.

기대와 실망 속에서 일희일비하는 나를 보고 있으면 차라리 나보다는 돌이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92

탁상 밑으로 들어가 실컷 울다 나왔으면....

아무도 날 찾지 않았으면....

어른이 되면 눈물이 마르는 줄 알았는데. 숨어서 울게 되는 거였다.

p.128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모든 일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과는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한 대답이다.

p.187

삶은 삶은 달걀이다. 진심 뻑뻑하다.

p.208

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상대방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괜스레 부담스러워질 때가 있다. 언제부터 친절을 대가성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순수하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까지도 의심하는 나를 볼 때면 어렸을 적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친절 뒤에 욕심을 숨기고 가면을 벗지 않는 어른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슬프다.

p.233

은시런니, <은시런니가 필요해> 中

+) 이 책은 인스타그램에서 어른들을 위한 그림 에세이로 유명한 저자가, 그중에서 독자들이 공감한 그림 에세이를 모아 엮은 것이다.

핵심을 잘 살린 그림 캐릭터는 물론 적재적소에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문장과 진심으로 공감하게 만드는 진지한 문장들까지 잘 담아냈다.

어른의 삶과 어른이의 삶 모두를 헤아리는 저자의 생각과 위트가 그림과 글에 잘 드러나고 있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또 때로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문장들을 보며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이라고 느꼈다.

가끔 그림 혹은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책 속 캐릭터를 보며 이런 그림들을 배울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그림일기 형식으로 구성했으나 날짜와 관계없이 읽을 수 있다. 하루에 몇 장씩 읽고 싶은 부분을 선택해 보아도 글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또 저자 개인적인 일기가 아닌 직장 생활을 하는 이들,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 감정 변화가 심한 이들,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이 읽으면 반가우리라 본다.

인생을 코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담아냈고,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짧은 문장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책이다. 재미있는 만큼 아프기도 해서 공감도가 높은 책이었다.

고된 삶을 살아가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어루만지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위로와 응원 그리고 이해의 손길을 받을 수 있는 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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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더 유쾌하게 사는 법
위전환 지음 / 지식과감성#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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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노자는 말한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억지로 이기려고 싸우지 마라. 물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할 때, 당신의 마음은 가장 평화로울 것이다. 그리고 다투지 않으므로 평온하고, 평온하므로 마음이 즐거운 것이다.

혹시 행복해지기 위해 이것저것 잔뜩 채우려고만 하지는 않는가? 노자는 그 반대라고 말한다. "그릇의 쓸모는 빈 공간에 있고, 방의 쓸모는 문과 창의 빈틈에 있다."

흙으로 그릇을 빚어도 그 안이 텅 비어 있어야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다.

pp.18~19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와 부딪히는 바위와 같아라. 바위는 엄숙히 서 있고, 물거품은 그 주위에서 잠든다."([명상록], 4.49)

산은 인간이 보기에 영원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구의 일부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격변이 산 자체를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황제는 자신의 삶을 휘몰아치는 파도가 아닌, 파도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바위'나 '산'처럼 생각했다.

pp.46~47

- 잔이 깨졌는가? 그저 잔의 본성대로 일어난 일일뿐이다.

세상 모든 것은 잠시 빌려 쓴 것이고, 언젠가는 본성대로 돌아간다.

따라서 잔이 깨졌을 때 화를 내는 것은 '잔에게 잔답게 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격이다. 에픽테토스가 발견한 유쾌함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잠깐 머물다 가는 손님'처럼 대하는 여유에 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착각 때문이다.

"네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일어나게 하려 하지 말고 일어나는 대로 그것을 원하라. 그러면 평화로울 것이다."

pp.55~56

매일 아침을 맞이하며 "오늘은 내가 살 수 있는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라고 담담하게 생각해보자. 이 대범한 자세는 우리에게 지금 하는 일에 최대한의 주의를 집중하게 만들고, 삶의 밀도를 높여줄 것이다.

p.112

마르탱은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려 했으나, 결국 깨닫는다. "생각 없이 일하라. 그것이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p.120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Now)"이다. 우리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다. 앞으로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 이 세상에 보내졌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지금 눈앞에 있는 불완전한 모든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명쾌한 진리는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살아가게 한다.

p.147

단테는 그 절망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절망을 벗어날 방법을 찾았다. 자신의 혼란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져야만, 비로소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새로운 멘토, 즉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새로운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길을 잃어야만 새로운 길잡이를 찾을 수 있는 법이다.

p.192

위전환, <나이 들수록 더 유쾌하게 사는 법> 中

+) 이 책은 고전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를 바탕으로, 우리가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어른임을 느낄수록, 그리고 한 해 한 해 나이 들수록 인생을 유쾌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철학자들의 핵심 철학과 고전 속 명문장을 찾아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다.

우선 장자, 노자, 정약용, 사마천의 <사기>, <명상록>, <소크라테스의 변명> 등을 언급하며 자기 안의 감정을 다스리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방법들을 공유한다.

퇴계 이황, 맹자, 에피쿠로스, <논어>, <월든>, <수상록>, 도연명의 <귀거래사>,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등을 제시하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가치를 찾아 지금의 우리 삶을 점검하자고 조언한다.

또 율곡 이이, <세한도>, <열하일기>, <파우스트>, <오디세이아>, <신곡> 등을 들어 지적이고 예술적인 사고와 호기심이 인생을 모험과 즐거움으로 이끌 수 있음을 강조한다.

<삼국지>, <사씨남정기>, 키케로의 <우정에 관하여>,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등을 통해 사람 사이 관계의 의미와 공동체 내의 행복을 발견하는 법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나이 들수록 어려운 인생을 가볍고 산뜻하며 유쾌하게 살라고 조언한다. 그 말의 뿌리에는 그간 우리에게 전해내려온 고전 속 지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고전의 명문장을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전 내 인상 깊은 부분을 가볍게 골고루 살펴본 기분이 들었다.

또한 철학자의 주요 사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서 고전을 다양하게 만나고 싶은 청소년들이 읽어도 무난하다고 생각했다.

가볍게 고전에 대한 지식, 인문학적 교양 등을 쌓고 삶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보고 싶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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