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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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좀 진부한 것 같아. 처음엔 꽤 재밌었는데 이것저것 사려다 보니 뭘 아는 게 있어야지. 돈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
 "예를 들면?"

" 음........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옷 가게도 그렇고 자동차도 그렇고. 뭐 그런 거지. 세금을 어떻게 빼돌릴지도 잘 모르고."

 수진은 불분명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부정적인 웃음이 아니란 거였다.

 "그래서 오빠는 부자가 못 되는 거야. 부자들은 돈을 쓰는 것보다 돈을 버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거든."

p.86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예전에 없던 새로운 버릇이 생긴 건 확실해. 이를태면 한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는 거야. 아침에 출근하는 동안 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거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고, 결국은 시간 낭비일 뿐인데도 집착하게 돼."

 "그건 프로그래머가 아니라도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하는 거 아냐?

 "그렇지. 그런데 문제는 단순한 가정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을 실제로 준비하고 대비한다는 거야. 자연적이고 물리적인 상황에서는 그런 태도가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겠지. 가령 태풍이 들이닥치거나 낙뢰가 내리칠 때를 대비한 행동 요령을 숙지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그런 태도가 비상식적으로 여겨진다는 거야. 인간은 이상하리만치 신뢰나 믿음에 의지하려 들거든."

 "당연한거 아냐?"

 "그래. 그 당연한 인식이 내게서 사라지고 있는 거야."

p.115

 

 

신경진, <슬롯> 中

 

 

+) 심사위원들의 지적대로 이 책은 매우 잘 읽히는 장점이 있으나 오문이 있고 도박사들의 정보를 인용하여 전달하는 형식이 상투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도박을 반복하게 되면 그것이 곧 일상이며 그것에서도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는 주제의식의 전달은 새로웠다. 하지만 나는 정보 전달과 서술에 의존하고 있는 소설의 형식이 작품의 진지함을 떨어뜨린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좀 더 현실적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정보 전달자를 제3의 인물로 선정하고 진행했다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좀 더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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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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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잘 잡는다고 했던가. 이 말은 새에 관해서만 부분적으로 맞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고작해야 먹이가 되려고 일찍 일어난 것이란 말인가. 똑같이 일찍 일어났는데 누구는 하루 밥벌이를 하는데 반해 바로 그 밥벌이 때문에 다른 누구는 생명을 잃는다. 그렇다면 일찍 일어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새로 태어나는가 혹은 벌레로 태어나는가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사자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8

 

십 년 동안은 우선 네가 무얼 하고 싶은지 찾아보는 데에 써봐. 그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일이야. 또 너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해.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하고 비슷해.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쓸데없는 일인데 그런 쓸데없는 공부가 인문학이고 그런 걸 공부하는데가 대학이야.

p.142

 

- 뭐든지 하고 싶었던 그때에 해야 되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왜 하고 싶었는지 잊어버리게 되거든. 나한테 미대는 그래. 이제 와서 가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처럼 강렬하게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말이지. 뭔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왜 하고 싶었었는지에 대해서조차 잊어버리게 되거든. 자꾸 그러다보면 결국에는 하고 힢은 것이 없어져버려. 우물이라는 것은 퍼내면 퍼낼수록 새로운 물이 나오지만 퍼내지 않다보면 결국 물이 마르게 되잖니. 그런 것처럼 욕구라는 것도 채워주면 채워줄수록 새로운 욕구가 샘솟지만 포기하다 보면 나중에는 어떤 욕구도 생가지 않게 되어버리는 거야. 그러니 너도 쉽지 않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자꾸 만들어서 해봐.

pp.153~154

 

박현욱, <동정 없는 세상> 中

 
 

+) 하하하, 이 책에 대해 거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참을 웃었다. 이 책은 수능을 본 고등학생인 나와, 미용실을 하는 엄마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만년 백수로 지내는 삼촌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나'는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면서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그럴듯하게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고교생들이 고민하고 궁금해하는 것들을 쓰고 있다.

 

박현욱은 <아내가 결혼했다>를 쓴 소설가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무척 재미있게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은 그를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일상적인만큼 누구나 거쳤을법한 성장기, 그 시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무엇보다 나의 오해는 동음이의어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는데, 설마 하고 처음 몇 장을 넘기며 크게 웃었다. 이 소설가다운 재치다. 하나의 맥락으로만 살펴보면 살짝 싱거운 맛이 있지만, 폭넓게 확대하여 본다면 인생 전반부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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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가 뜬다 - 제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권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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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들을 이렇듯 잘라버리다가 문득 눈을 뜨면 쓰레기통 속에서 깨어나는 게 아닐까? 째깍째깍, 통통통, 딱딱딱 ……. 도대체 어떤 것이 진짜로 손톱 깎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가식적인 인간들을 이렇게 정리할 수만 있다면 세상은 좀더 살만할텐데. 노련한 세상을 건전한 역사의식으로 패주어야 하는데. 더러움을 보내는 일은 상황에 따라 오히려 찜찜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손톱과의 대화에 곧 흥미를 잃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양이 냉동창고’를 향해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찬바람이 귓속을 후벼 파듯이 들어왔다. 그렇게 달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가 나를 와락 끌어안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숨을 느끼고 싶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김에 쉬어가고 싶었다. 숨 쉬고 싶었다.

p.77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나는 전자에 해당한다. 국영수는 물론 국사, 국민윤리, 불어, 사회문화, 문학, 물리, 화학, 지리, 생물 등을 단 3년 만에 패스하라는 슈퍼맨 공화국의 지령을 받은 사람답게 잡스럽게 공부했으니까. 결과적으로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을 비율로 따지면 구 조선의 슈퍼맨 공화국이 최고 순위에 랭크할 것이다.

p.81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그만큼 멀어질 줄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거리두기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인간관계의 법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인데 말이다.

pp.109~110

 

“세상에서 제일 나쁜 건 ‘보통’ 추구야. 특히 일본 사회에선 더 심하지. 교육도 표준, 인간성도 표준이 아니고선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어. 이른바 철저한 ‘표준 인간’이 되어야 해.”

“표준 인간?”

“집단주의, 적당한, 고정관념 같은 단어가 표준 인간들이 좋아하는 단어지. 학벌, 집안, 돈 그런게 표준이란 얘기가 아냐. 그들의 사고 방식이 표준 지향이란 말이지.”

p.171

 

권리, <싸이코가 뜬다> 中

 

 

+) 이 책을 읽으면서 권리라는 작가의 생년월일을 살펴보게 되었다. 내 나이 또래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맞았다. 우리 세대가 느꼈을 억압적 교육 상황에 대한 불만의 심리가 지독하게 독설적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중고등학교 시절은 우리에게 막대한 부담감을 안겨주는 때이다. 이 책의 곳곳에서 작가는 그 시절 그렇게 몰아치게 공부한 것들이 실상 사회에서 도움되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공공연하게 외친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표준화된 인간에 대해 비판하는데, 나중에는 무엇이 표준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서술자의 목소리는 당찬 것을 넘어서서 울분에 차있다. 철저하게 갇혀 살았기에 그 안에서 쌓인 분노가 폭발하듯이 한 글자 한 글자가 쓰여졌다. 그렇기에 작가는 평범하다는 것에 대해서, 평범하다거나 표준이라는 말의 근원적인 개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와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이 책에는 특별한 서사나 갈등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일본에서 공부하는 서술자가 일본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 혹은 인간에 대해 떠올려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칫 구성이 헝클어질 수 있음에도 작가 나름의 열을 지워 적었다.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석이 많이 달렸는데, 어려운 용어에 대한 설명과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말의 덧붙임이 대부분이다. 고교 1등이 <인간 실격>을 읽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철저하게 비판하는 점에서 어쩐지 웃음이 나오며 공감이 갔다.

 

과연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교육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표준화된 인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그러나 서사가 없어서 그런지 그닥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어쩐지 다 읽고 나서 허무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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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UP 사설 수능.내신 모의고사 모음집 하반기 언어영역 고3 (테이프 별매) - 2009
골드교육 편집부 엮음 / 골드교육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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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가장 권위 있는 모의평가 사설기관의 연합문제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만든 모의고사를 풀어보는 경험도 좋지만, 

평가원 혹은 교육청 모의고사 외에 고교생이라면 필수적으로 사설 모의고사를 풀어보아야 한다.

사설 모의고사 높은 수능 적중률을 믿을 수 있고 수준 높은 출제위원들의 예상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답 및 해설(책속의 책), 듣기 파일 CD mp3 제공,듣기평가 무료 다운로드 
권말부록 - 2009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 문제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반기, 하반기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시기별로 맞추어 풀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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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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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는 없었으리라. 왜냐하면 그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을 때에, 활발히 진행되는 위협적인 화학 공식들의 작용으로 인해 세상이 고요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폭발하는 가운데 조금씩 그 베일을 벗는 것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p.32

 

자, 이거야. 지금이 몇시인가? 지금이 몇 시인가? 이 짧은 문장이 날 얼마나 고문하는지 네가 알기라도 한다면! 아니 오히려 그렇지 않아. 그로 인해 내가 괴로워하는 것이지. 나는 내 의식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어. 난 그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고. 이건 사실이야. 미셀. 그게 나를 죽이고 있어. 그렇지만 다행히도 사람은 논리적으로 살지는 않지. 삶이란 논리적인 것이 아냐. 그건 어쩌면 일종의 불규칙한 의식 같은 거야. 세포의 질병이지. 어쨌든 아무렴 어때. 그건 이유가 되지 않으니까.

p.75

 

그것은 너무나도 단순해서 눈에 확 띄고, 사람을 미치게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해괴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 삶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삶 속에 있으면서 그 삶을 붙잡는 동시에 그 삶이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자신이 정신병자 수용소에서 탈출했는지 아니면 탈영병인지를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또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 그에게 장차 닥칠 일은 바로 이랬다. 너무도 많이 세상을 보니 세상이 그의 눈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버렸다. 사물들을 수백만 개의 눈, 코, 귀, 혀, 피부로 수백만 번이나 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다시 느끼고 하다 보니 그는 다면체 거울처럼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제 그 거울의 면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그는 기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p.95

 

 

르 클레지오, <조서> 中

 

 

+) '조서'란 어떤 사건에 대해 조사한 사실을 기록한 글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아무 것도 확실히 알 수 없다. 작가의 말대로 '아담 폴로'라는 주인공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는지 군대에서 탈영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나는 탈영병보다 정신병원 탈출자가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현실과 환상의 간극을 조절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정신병원을 탈출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지 않을까. 탈영병의 위치까지 수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담 폴로는 해변가의 언덕 집에 숨어 살면서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선을 긋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기에, 아니, 자신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 정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세상과의 인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세상과의 소통으로 볼 수는 없다. 어찌되었든 주인공은 스스로 자신을 닫아버린 자이다. 그가 만나는 여자 '미셸'이나 해변가의 '개' 등은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연결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냐가 아니라 무엇이냐,라는 질문의 설정이 매우 흥미롭다. 사람들이 얽히고 설킨채 살아가며 자연과 문명이 섞이며 돌아가는 것이 삶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 가운데서 지독한 고독을 겪고 있다. 자신이 인간인지, 자연인지, 하나의 사물인지 정확히 가늠하지 못한 채,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번쯤 겪었을 심리적인 통증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스스로를 잃어버린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누구인지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고민해야 할 근원에 대해 잘 그려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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