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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잘 잡는다고 했던가. 이 말은 새에 관해서만 부분적으로 맞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고작해야 먹이가 되려고 일찍 일어난 것이란 말인가. 똑같이 일찍 일어났는데 누구는 하루 밥벌이를 하는데 반해 바로 그 밥벌이 때문에 다른 누구는 생명을 잃는다. 그렇다면 일찍 일어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새로 태어나는가 혹은 벌레로 태어나는가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사자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8
십 년 동안은 우선 네가 무얼 하고 싶은지 찾아보는 데에 써봐. 그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일이야. 또 너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해.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하고 비슷해.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쓸데없는 일인데 그런 쓸데없는 공부가 인문학이고 그런 걸 공부하는데가 대학이야.
p.142
- 뭐든지 하고 싶었던 그때에 해야 되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왜 하고 싶었는지 잊어버리게 되거든. 나한테 미대는 그래. 이제 와서 가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처럼 강렬하게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말이지. 뭔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왜 하고 싶었었는지에 대해서조차 잊어버리게 되거든. 자꾸 그러다보면 결국에는 하고 힢은 것이 없어져버려. 우물이라는 것은 퍼내면 퍼낼수록 새로운 물이 나오지만 퍼내지 않다보면 결국 물이 마르게 되잖니. 그런 것처럼 욕구라는 것도 채워주면 채워줄수록 새로운 욕구가 샘솟지만 포기하다 보면 나중에는 어떤 욕구도 생가지 않게 되어버리는 거야. 그러니 너도 쉽지 않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자꾸 만들어서 해봐.
pp.153~154
박현욱, <동정 없는 세상> 中
+) 하하하, 이 책에 대해 거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참을 웃었다. 이 책은 수능을 본 고등학생인 나와, 미용실을 하는 엄마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만년 백수로 지내는 삼촌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나'는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면서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그럴듯하게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고교생들이 고민하고 궁금해하는 것들을 쓰고 있다.
박현욱은 <아내가 결혼했다>를 쓴 소설가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무척 재미있게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은 그를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일상적인만큼 누구나 거쳤을법한 성장기, 그 시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무엇보다 나의 오해는 동음이의어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는데, 설마 하고 처음 몇 장을 넘기며 크게 웃었다. 이 소설가다운 재치다. 하나의 맥락으로만 살펴보면 살짝 싱거운 맛이 있지만, 폭넓게 확대하여 본다면 인생 전반부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