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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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는 없었으리라. 왜냐하면 그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을 때에, 활발히 진행되는 위협적인 화학 공식들의 작용으로 인해 세상이 고요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폭발하는 가운데 조금씩 그 베일을 벗는 것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p.32

 

자, 이거야. 지금이 몇시인가? 지금이 몇 시인가? 이 짧은 문장이 날 얼마나 고문하는지 네가 알기라도 한다면! 아니 오히려 그렇지 않아. 그로 인해 내가 괴로워하는 것이지. 나는 내 의식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어. 난 그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고. 이건 사실이야. 미셀. 그게 나를 죽이고 있어. 그렇지만 다행히도 사람은 논리적으로 살지는 않지. 삶이란 논리적인 것이 아냐. 그건 어쩌면 일종의 불규칙한 의식 같은 거야. 세포의 질병이지. 어쨌든 아무렴 어때. 그건 이유가 되지 않으니까.

p.75

 

그것은 너무나도 단순해서 눈에 확 띄고, 사람을 미치게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해괴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 삶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삶 속에 있으면서 그 삶을 붙잡는 동시에 그 삶이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자신이 정신병자 수용소에서 탈출했는지 아니면 탈영병인지를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또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 그에게 장차 닥칠 일은 바로 이랬다. 너무도 많이 세상을 보니 세상이 그의 눈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버렸다. 사물들을 수백만 개의 눈, 코, 귀, 혀, 피부로 수백만 번이나 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다시 느끼고 하다 보니 그는 다면체 거울처럼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제 그 거울의 면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그는 기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p.95

 

 

르 클레지오, <조서> 中

 

 

+) '조서'란 어떤 사건에 대해 조사한 사실을 기록한 글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아무 것도 확실히 알 수 없다. 작가의 말대로 '아담 폴로'라는 주인공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는지 군대에서 탈영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나는 탈영병보다 정신병원 탈출자가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현실과 환상의 간극을 조절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정신병원을 탈출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지 않을까. 탈영병의 위치까지 수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담 폴로는 해변가의 언덕 집에 숨어 살면서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선을 긋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기에, 아니, 자신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 정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세상과의 인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세상과의 소통으로 볼 수는 없다. 어찌되었든 주인공은 스스로 자신을 닫아버린 자이다. 그가 만나는 여자 '미셸'이나 해변가의 '개' 등은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연결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냐가 아니라 무엇이냐,라는 질문의 설정이 매우 흥미롭다. 사람들이 얽히고 설킨채 살아가며 자연과 문명이 섞이며 돌아가는 것이 삶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 가운데서 지독한 고독을 겪고 있다. 자신이 인간인지, 자연인지, 하나의 사물인지 정확히 가늠하지 못한 채,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번쯤 겪었을 심리적인 통증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스스로를 잃어버린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누구인지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고민해야 할 근원에 대해 잘 그려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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