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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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선생의 글을 다시 읽으니 선생이 내게 묻는다.

너는 지식인이냐.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너는 권력과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사람이었느냐. 

p.48

 

부르주아지는 자신이 지배하는 곳 어디에서나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 인간관계를 파괴했다. 부르주아지는 사람을 타고난 상전과 묶이게 했던 잡다한 봉건적 유대를 냉정하게 끊어버렸다. 그리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벌거벗은 이해관계와 비정한 '현찰 계산' 말고는 아무런 유대도 남지 않게 되었다. (중략) 부르주아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교환가치로 대체했으며, 문서로 보증되고 정당하게 획득한 수많은 자유가 있던 자리에 단 하나 양심 없는 거래의 자유를 세웠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정치적 환상에 가려져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도 잔혹한 착취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 마르크스와 엥겔스, [공산당 선언p.61

 

행복하게 살려면 되도록 권력을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내 인생도 내가 바란 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결국 나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 가담했고, 권력을 행사하는 일에도 참여해보았다. 역시 그랬다. 권력은 마주 서 있을 때보다는 함께 서 있을 때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p.157

 

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효용 함수는 나의 행복이 오로지 내 자신이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다고 가정한다. 타인의 소비는 나의 행복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경제학의 공리이다. 그러나 베블런은 이것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나의 행복은 내가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 또는 내가 소유한 부의 절대량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사람의 것보다 많으냐 적으냐에 좌우된다. 부를 축적하는 경쟁에서는 남을 이기는 것이 행복의 열쇠다.

p.226

 

 

유시민, <청춘의 독서> 中

 

 

+) 책을 읽으면서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이 한 권의 책인데 읽는 사람에 따라 깨닫고 느끼는 것들이 다를 수 있다니. 저자가 읽은 책들 중에서 몇 권은 내가 읽은 것이고 몇 권은 잘 모르는 것이다. 그가 읽은 책에 대해 논할 때 그는 과거의 느낌과 현재 책을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의 차이에 주목한다.

 

나 또한 그러는 편이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그 당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책읽기와 감상이 기억에 남게 된다. 이 책을 보면서 매력적인 책들이 제법 많고, 내가 그것들을 천천히 읽으며 올 겨울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정치를 했던 사람으로서 본 몇 권의 책들에 대한 감상은 나에게 깊이 다가 왔다.

 

지식인이 아니라 지성인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오래된 고전들을 꺼내 읽으며 예전에 자신이 느꼈던 것과 지금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싶다. 그건 성숙이나 발전의 측면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 '차이'에 집중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며, 앞으로의 자신에 대해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어쟀든 저자의 이번 책은 어려운 고전들을 다 읽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적절한 책이다. 물론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자칫 저자의 의견에 동화되는 위험은 있으나, 고전들에 대해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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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예보
차인표 지음 / 해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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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경멸하는 부류는 잘 모르면서 묻어가는 인간이다.  하나도 안 웃긴데 남들이 웃는다고 따라 웃는 사람들, 사실은 하나도 안 슬프면서 남들이 슬퍼한다고 같이 우는 사람들, 줘 터져서 대자로 뻗었는데 남들이 오뚝이처럼 일어난다고 따라 일어나는 인간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남들이 사랑한다고 말하니까 자기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인간들.

p.37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해서 더 이상 불행해질 수 없는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간단하다. 줬다 뺏으면 된다.

p.138

 

사랑은 하는 겁니다. 내일이나 모레 할 거라고 얘기하거나 계획하는 게 아니고 그냥 지금 바로 하는 것, 그게 사랑입니다.

상대방을 위해서 이 수많은 것을 하는 마음, 그것이 사랑하는 마음이고요, 이 모든 것을 받는 상대방,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먹거나, 자거나, 꾸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것입니다.

p.225

 

산다는 것은 누리는 것이다. 인간은 마음껏 누리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하늘에 걸어놓은 태양빛을 누리고, 누군가 뿌려놓은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활짝 펼쳐져 있는 파란 하늘 아래에서 잘살면 된다.

p.223

 

글이 사람을 안아줄 순 없겠지만, 안아주고픈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다고 믿기에 나는 이 글을 끝까지 썼다. 집필 과정은 천지를 창조한 신의 권력을 마음껏 누려보는 영광과 시작한 창조를 끝내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형상화해야 하는 고통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 '작가의 말' 부분

 

 

차인표, <오늘 예보> 中

 

 

+) 만약 작가가 필명을 사용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작가에 대한 색안경을 끼지 않고 책을 읽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소설은 현실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어려운 세 사람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랑으로 귀결이 되지만 재미있는 작품이다. 지루하지 않았고 읽으면서 좋은 구절도 제법 많아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설이었다.

 

되도록이면 작가에 대한 편견을 버리려고 노력했는데, 오히려 그런 부분이 읽을 때마다 떠올라서 살짝 불편했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쓰여진 소설들에 비해 상당히 노력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부분부분 문장이나 글의 흐름에 어색한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구성을 꼼꼼하게 계획했고, 인물 개개인의 특성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기에 전체적인 내용에는 문제가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보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 저자의 말대로 "사랑은 하는 것이다. 지금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게 사랑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사람의 마음에 대해,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헤 보았다. 작가는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나 뿐만이 아닌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고 감동받았다. 다음 작품도 기대되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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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뜨겁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61
채호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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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맑은 물 아래 또렷한 조약돌들

당신이 보낸 편지의 글자들 같네.

강물의 흐름에도 휩쓸려가지 않고

편안히 가라앉은 조약돌들

소근소근 속삭이듯 가지런한 글자들의 평온함

그러나 그중 몇 개의 조약돌은

물 밖으로 솟아올라 흐름을 거스르네,

세찬 리듬을 끊으며 내뱉는 글자 몇 개

그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겠죠,

그토록 자제하려 애써도

어느새 평온함을 딛고 빠져나와

세찬 물살을 가르는 저 돌들이

당신 가슴에 억지로 가라앉혀둔 말이었겠죠, 

당신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심장 속에 두근거리는.

 

 

채호기, <손가락이 뜨겁다> 中

 

 

+) 이 시집에서 채호기 시인의 "손가락"은 신체의 일부가 아닌 '나'와 '당신' 사이의 '매개 언어'이다. 그것은 순식간에 '글자'로 둔갑한다. 또 그것은 '말'이 되고, '시'가 되어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 된다. "당신 편지를 읽는 것만으론 부족해 / 편지지에서 글자를 딴다. / 투명한 물 아래 선명하게 보이는 / 그것들에게 손을 뻗는다. / 물의 살에 손을 집어 넣을 때 /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 일렁이는 물결, / 일그러지는 글자들"([강물의 심장] 부분)

 

이 책에는 상대방과 마주서서 하지 못한 말에 대해 시와 글자로 전달하는 시가 많다. 그것은 미처 하지 못한 말일 수도 있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순간을 놓친 뒤늦은 고백같다고나 할까. 그건 두 사람이 극복할 수 없는 시공간의 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거리감이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감이 두 사람 사이에 메아리처럼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내 삶은 건널목의 순간들에서 / 가는 방향을 바꾼다. / 빤히 바라보이는데도 건널 수 / 없는 순간들이 삶의 이정표다. // 안타까움은 건너다보이는 당신의 / 눈이 먼저 내 쪽으로 건너오는 것. / 당신의 눈에 담긴 내가 내 삶을 / 앞질러 당신 쪽에 있기 때문이다."([건널목] 부분) 시 '건널목'은 화자와 당신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심리적인 거리가 시공간의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아련하고 몽환적인 그 순간의 긴장을 잘 살린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채호기 시인에 대한 나의 기대감을 낮추지 못한다면 나는 앞으로 그의 시에 대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그가 지은 <수련>, <밤의 공중전화> 등등의 시집에 대한 감탄으로, 나는 요즘 그의 시집에 대해 너무 평범하지 않나 실망하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가 썼던 과거의 시들을 들추어보고 그의 시 속에 살아있는 상징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싶다. 조만간 과거 그의 시집들을 꺼내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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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의 삶
스와보미르 므로제크 지음, 유혜자 옮김, 카발 그림 / 하늘고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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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말로 올바른 결정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성공을 쟁취한 것이다. 이번에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는 변화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변화는 변화로 남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이 더 심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변화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p.10   [기분전환 - 혁명]

 

스와보미르 므로제크, <초보자의 삶> 中

 

 

+) 이 책은 폴란드 작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의 단편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사회의 위선을 위트 있게 표현했다. 일상 속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을 다룬 짧은 이야기가 일러스트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현대사회의 소소한 일상들을 포착하는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 어떤 주제라도 짧은 이야기로 촌철살인적인 풍자를 만들어내는 점이 훌륭하다. 이 책은 단편의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있는데, 한 편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 글의 제목을 곱씹어본다면 읽을수록 웃음이 난다. 씹을 수록 맛이나는 글이 많다. 정치는 물론, 사회, 인간 내면 등등을 풍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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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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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거야."

진이가 말한다. 그리고 내가 그 말을 잇는다.

"어쨌든 심장 뛰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거야."

p.41

 

비밀을 나눠갖는 것이 관계를 공고히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가까운 사람들만이 비밀을 공유할 수 있으며, 비밀의 공유 여부가 관계의 척도라고 믿었다. 하지만 비밀이 때때로 폭력이 된다는 것도 잘 알았다. 비밀을 공유하자는 것은 무거운 짐을 나눠지자는 것이었다. 짐을 나눠들자고 덤벼드는 비밀은 너무나 일방적이어서 원하지 않아도 짐을 질 수 밖에 없었다.

p.136

 

비겁하다. 진짜 나쁜 사람은 당신 같은 사람이야. 강한 사람한테는 꿈쩍도 못하면서 약한 사람들한테만 신경질 부리는 사람. 경찰도 아니면서 경찰 노릇 하는 사람. 자발적으로 완장을 차고 위원장 노릇 하는 사람. 그러면서 뭔가 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 억압받고 상처받은 자의 숭고한 얼굴을 하고 진실이니 사명이니 정의니 외치는 사람. 자기의 희생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사람.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강요받은 것도 아니면서 추적하고 고발하고 차단하려는 사람.

p.181

 

 

천운영, <생강> 中

 

 

+) <생강>은 '한 고문기술자와 그의 딸'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진 고문기술자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실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소설로 옮기는 대신, 고문기술자 아버지와 그 딸이라는 두 인물의 관계와 그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남자의 직업은 고문기술자인데,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조직과 조직의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런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자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비난한다. 처음에 인정하지 않던 그도 조직의 아버지의 배신에 철저히 무너진다.

 

그의 딸은 아버지가 늘 당당하고 멋진 경찰이라고 믿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의 직업을 알게 된다. 아버지를 찾으며 비난하는 사람틀 틈에서, 아버지에게 고통당한 사람들 틈에서 딸은 혼란스러움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증오로 바뀌고, 아버지가 떳떳하게 자수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아버지가 비겁하고 비열하다고 느끼면서 딸은 점점 방황하게 된다. 물론 그들 사이에 어머니가 있다. 남자의 아내이자 딸의 엄마인 여자는 처음에는 아버지를 맹목적으로 따르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접하고 세상의 외면을 받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도 점차 지쳐간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사의 이야기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과 뒤섞여 살고 있는 우리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선'이라고 믿은 것이 '선'이 되지 않을 때의 당혹스러움, '악'임에도 불구하고 '악'이라 믿지 않을 때의 당황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우울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꼼꼼한 서사가 쉼없이 책을 읽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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