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에 대해 인문학이 답하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지음, 조성환.이우진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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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종래에 '근대'라고 하면 봉건적인 중세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산업혁명, 자본주의, 국민국가, 합리주의, 자유주의 등으로 대변되는 진보되고 발전된 세련된 시대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반면에 인류세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한 인위적인 기후변화가 일어난 시기를 가리킨다. 그래서 인류세 개념에는 인류가 전대미문의 위기 상항에 직면한 '어두운' 시대의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p.ⅹⅲ

차크라바르티는 기후변화를 이 시대를 대변하는 '시대 의식'으로 보고 있다. '시대 의식'은 야스퍼스의 개념으로, 쉽게 말하면 '문명의 위기 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야스퍼스에 의하면 이러한 시대 의식은 분과적 학문의 관점에서는 접근하기 어렵다. 즉 전체적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비록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은 분과적이고 전문적이어야 할지라도, 인류 '공통'의 시대 의식은 전문적인 학문 분야를 넘어서야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 차크라바르티의 생각이다.

p.ⅹⅶ

시대 의식은 우리가 공통적인 것을 구성해야 할 긴급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의 사고 실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인 것에 사로잡혀 당파적인 것이 될 위험이 있는 개념적 투쟁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시대 의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감수할 수밖에 없는 위험입니다.

p.23

그렇다면 시대 의식으로서의 기후변화는 분할된 정치적 주체로서의 인류인 '호모'와 지질학적 힘으로서, 하나의 종으로서, 집단적이고 의도하지 않은 형태의 존재인 이 행성의 생명의 역사의 일부로서의 '앤트포로스' 사이의 분열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pp.77~78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닥친 지구 시스템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집단적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 역량은 정보에 입각한 정치적 의지에 의해 동원되어야 한다.

- J.L. 브룩

p.85

우리 인간은 정치적으로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 내부의 불의/정의와 복지의 역사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노력과 무관하지 않고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후변화의 위기는 인간과 무관한 생명의 연대기와 지질학의 연대기에 우리를 내던짐으로써, 우리를 분할하는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정치사는 계속해서 우리를 분할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분할의 정치사를 단지 자본주의 역사의 맥락에서가 아니라, 지질학적이고 진화적인 역사라고 하는 훨씬 광대한 캔버스 위에서 생각해야 할지 모릅니다.

p.103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인류세에 대해 인문학이 답하다> 中

+) 이 책의 저자는 지구의 기후 변화와 기후 위기 현상에 대해 지금까지의 관점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 중심, 자연 중심 등의 어느 한 측면, 혹은 자연과학적, 지질학적, 인문학적 등의 어느 한 학문이 아니라 지구적이나 세계적이라는 말을 넘어서서 조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를 '행성적 사고'로 언급했는데, 인간을 행성과 생명의 역사적 흐름 속에 두고 자연사와 인간사의 통합인 새로운 지구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언급한 '행성, 인류세, 앤트포로스와 호모, 생명과 시대 의식' 등의 개념은, 여러 인문학자들의 의견을 살펴 정리하고 다듬으며 새롭게 정의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지구 인문학자이면서 인류세 인문학자로 기후 변화와 관련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사람이다. 비교적 작고 얇게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테너 강연'인 [인류세 시대의 인간의 조건]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기후 변화를 인류세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쉬운 내용은 아니다. 여러 인문철학자들의 이론을 근거로 본인의 주장을 펼치기 때문에 천천히 곱씹어 읽어야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기존 학문에서 벗어나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는 저자의 모습에 감탄했고, 인류세와 시대 의식 등의 낯선 개념으로 기후 변화를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이 새로운 분야에 호기심이 있거나, 기후 변화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보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 책이었다. 소논문을 읽는 느낌이었으니 대중적이라기보다 전문적인 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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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 인생 절반을 지나며 깨달은 인생 문장 65
오평선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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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다거나, 아주 싫다거나

극단적으로 모난 성질은 감춰야 할 때다.

자기 주관을 없애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타인의 다양한 생각을 받아줄 수 있는

둥글둥글한 유연함과 공감 능력을 갖추면 된다.

과거를 돌아보면 강하게 주장했으나

정답이 아닌 것이 참 많았음을 깨닫는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4~5%

인생을 지날 때는 평탄한 길도 걷다가

굴곡진 길도 걸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이참에 잠시 쉬었다 가자.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 가장 높이 난다.

반드시 다시 웃는 날이 올 것이다.

12%

행복의 문은 한쪽이 닫히면 다른 쪽이 열리는 법이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힌 문만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은 보지 못한다.

- 헬렌 켈러

19%

숨이 막힐 정도로 분주하게 달리지만

문득 그 자리에서 멈칫할 때가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리지?

왜 내 어깨는 늘 이렇게 무겁지?

대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어나기 위해

열심히 살을 만든다.

어느 순간 마디를 만들며 숨 고르기를 한다.

그렇듯 인간도 마디를 만드는 시기가 찾아온다.

마디 없이 곧게 자란 인간은 없으니 말이다.

45%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차피 삶은 불안의 연속이다.

차라리 지금을 웃게 하고 지금을 살아가자.

행복은 생길 때마다 곧바로 다 써버려야 한다.

행복은 저축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내일의 행복마저 당겨 써도 좋다.

내일의 행복은 내일이 밝으면

그때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76%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

- 에픽테토스

90%

오평선, <그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中

+) 이 책은 2016년에 출간한 에세이집이다. 저자의 짤막한 단상들을 모아 엮은 것인데, 이 책의 몇몇 구절들이 SNS에서 유행하며 작가가 2022년에 새로운 글들을 추가해 재출간했다.

저자는 인생의 절반을 지나며 여러 직접적, 간접적 경험에서 깨달은 것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그렇게 농익은 지혜가 때로는 비유를 통해, 때로는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마음에 와닿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문장 한 문장에 머리가 두둥, 하고 울리거나 마음이 쿵, 하고 울릴 때가 있다. 이는 같은 순간을 겪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을 이끌어내는 문장들 때문이다.

나이 들면서 어떤 생각으로 사는 것이 좋은지, 어떤 마음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남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행복을 누리는 기쁨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단상 사이사이 아름다운 명화와 성현들의 명언이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클래식을 들으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이 든다.

이 책에는 나이대에 상관없이 읽어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문장들이 있다. 각자의 경험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마음을 다독일 순간을 만날 수 있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각자 봉착한 어떤 문제나 답답함 혹은 막막함을 앞두고, 조금은 가뿐하게 그리고 조금은 덜 심각하게 지나갈 수 있는 지혜로움을 전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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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더 귀하다 - 아픔의 최전선에서 어느 소방관이 마주한 것들
백경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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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병원 기록에 의하면 남자는 오래도록 심장병을 앓아서 재작년인가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게다가 당뇨 합병증으로 몸속 여기저기가 망가진 상태였다. 그래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목숨을 잃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 놓쳤기 때문에 남자가 목숨을 잃은 것 같았다. 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하늘이 돕는 상황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는데, 내가 죽였다. 변변치 않은 나를 향한 의심과 질책이 폭우가 되어 쏟아졌다. 마음의 댐은 늘 한계 용량에 가깝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문을 열었다. 꽁꽁 막아둔 기억이 벌컥벌컥 밀려 나왔다.

p.28

이후로 다행이란 말은 나에게 구급차 내 금기어가 되었다. 뭐든 내 기준으로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 벗겨지지 않고 까져서, 잘리지 않고 찢어져서, 죽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란 말은 보통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요새는 그냥 속으로만 뇐다.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그건 당신의 삶이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안도하는 내 마음의 소리다. 나름 애틋함의 표현이다.

p.42

나는 스스로 '사람을 돕는 사람'이라는 데서 오는 우월감에 도취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건 원래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 말이다.

결국 제일 인간답지 않았던 건 나였다.

p.54

편지엔 저희 같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하단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같은 사람이란 말이 왜 그렇게 우울하게 들렸는지 모릅니다.

사실, 세상에 큰 죄를 짓는 건 가난이 아니라 큰돈인데 오히려 가난을 죄라고 말한다는 참 우스운 일입니다.

당신 아들은 그런 나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 당신을 모욕하고 삶에서 영영 떨어뜨려 놓은 사람을 두고 편지에 은인이라고 썼습니다.

pp.64~65

마주하는 모든 죽음에 눈을 빼앗기면 마음이 남아나질 못한다. 그래서 출동부터 귀소까지 머릿속에 주문처럼 뇐다.

내 가족 아니고 내 친구 아니다. 그게 룰이다.

pp.71~72

대신 세상에서 보통 사람이 가지는 역할이 하나 있다. 그건 가장 보통의 역할이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바로 타인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는 것, 그래서 세상을 보통 사람들의 온기로 채우는 것이다. 나는 그 역할이 우리가 사는 땅에 지금껏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믿는다.

p.105

우울한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미안해. 여하튼 네가 죽으면 내가 너무 힘들어. 그러니까, 완벽한 해결책이 되진 않을 텐데 이렇게 한번 해보는 건 어때?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밖으로 나가서 걷는 거야.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으면 억지로 뭐도 좀 먹고, 목마르면 편의점에서 물도 사다가 마시고. 그러다가 막 뿜뿌가 오는 물건이 눈에 들어오면 질러버리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걷는 거니까. 그렇게 걷다 보면 꼭 괜찮은 사람을 만난다거나 쓸 만한 뭔가를 줍게 되어 있거든. 인생이 그래.

p.199

백경, <당신이 더 귀하다> 中

+) 이 책은 소방관으로, 119 구급 대원으로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단상 형식으로 담고 있다. 정확히는 저자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저자가 접한 죽음들, 저자가 느낀 감정들을 진솔한 문장으로 쏟아냈다.

평생 누군가의 죽음을 한두 번 보는 것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방관이나 구급 대원들은 거의 매일 한 두 번씩 죽어가는 사람의 고통스러움과 이승을 떠나 저승의 길에 들어선 이들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그 심적 동요는 상당한 충격이라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직업으로 반복되면서 저자는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에 거리두기를 한다. 그게 스스로의 위치에서 흔들리지 않고 올곧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여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진상일 수 있나 싶은 사람들부터, 구급 대원을 만나서 정말 다행인 사람들, 형식적으로는 돕지 않아도 되지만 인간적으로 돕게 되는 사람들까지.

너무나 솔직하게 쓰인 이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에 함께 슬퍼했고 아파했고 속상했고 씁쓸했다. 또 저자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왜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며 동감했다.

소방관들과 구급 대원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 책이었다. 어떤 직업이 사명감이 없겠냐마는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가장 위급할 때 제일 먼저 접하는 그들의 몸과 마음이 어떨지 깊이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또한 인간에게 실망하면서도 인간에게 희망을 갖는다는 걸 이 책의 여러 사람들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저자의 말처럼 보통 사람이 따뜻한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를 위해, 그리고 저자가 만나는 사람들과 숭고한 죽음을 위해 심리적 거리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보다 먼저 지켜야 할 규칙들과 선을 따라 행동하는 것, 그게 더 많은 이들을 살리고 더불어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지 않나 싶다.

당신이 더 귀하다는 저자의 말에 새삼 뭉클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세상에 숭고하지 않은 죽음도 없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이들을 위해 마음을 다하는 소방관과 구급 대원들의 모습에 감사함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소방관의 삶과 마음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타인의 고통을 마주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진솔한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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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신춘문예 시 깊게 읽기
민용태.박태만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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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시가 명품이 되려면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정도는 가져야 한다고 민용태 교수님은 강조한다.

첫째는 시에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철학적 사유의 깊이만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얻는 체험, 느낌 그리고 감동이 그 소재가 되어야 한다.

둘째는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독창성, 그것은 남과 다르다는 것이다.

셋째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비전은 앞을 내다보는 눈이다. 시인은 예언자적 영감을 가져야 한다.

pp.8~9

신춘문예에서는 시가 지나치게 서정적이거나 발이 땅에 붙어 있지 않은 환상이나 상상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반드시 현실 비판적인 의식이나 문명 비판적인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는 그런 측면에서 아주 좋은 점수를 얻고 있지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이기적인 자기중심적 진화 때문에 새는 벽에 부딪히고 깨진다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p.23

개와의 공놀이가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이지요.

제대로 된 시가 되려면 어떤 형태로든 마지막에 가서는 어떤 구체적인 의미를 밝히지 못하면, 상징이 주는 감동을 주지 못하면, '이 시는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거야?' 독자들이 의아해할 것입니다.

p.48

우리는 우리의 수업에서 최상의 텍스트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가 이런 시를 보면서 공부하고 자극을 받을 수 있다면, 매년 실시되는 신춘문예는 충분히 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 시는 매우 잘 쓴 작품입니다. 대단히 철학적이거나 교훈적인 글은 아니지만, 일상성과 반복을 통한 개인적 상징을 만들어 낸 시입니다.

이 시가 좋은 시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첫째, 일상적인 주제를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왼편'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연상이나 비유법을 쓰지 않고도 '개인적 상징'을 독창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결론을 내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네 편'과 '내 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가까워지고 익숙해지고 있다는 내용으로 잘 정리했다는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pp.58~59

대단히 야단스러운 시적 표현을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선, 가식, 진짜가 아닌 가짜, 그것들이 우리에게 와닿았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시라고 합니다. 시적인 미학은 한 군데도 찾을 수 없는 산문시를 아이러니 기법을 써서 성공시킴으로써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 낸 훌륭한 시를 읽었습니다.

p.98

우리들이 이 시에서 제일 눈여겨봐야 할 시어는 바로 어깨입니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어깨가 적셔지는, 그러다가 심하면 과로사도 하게 되지요? 우리 사회는 그런 것을 인정해 주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래도 시인은 꿋꿋하게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때요, 감동적이지요? 남들은 실체가 없다고 하는데, 시인은 여기에 있는 것을 느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식과 관념의 세계가 물방울을 통해 존재한다는 점을 충분히 느끼게 하지요? 시를 공부하는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시를 만났을 때 감동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p.161

  • 신춘문예 시 비결

첫째, 신춘문예 시는 너무 짧거나 너무 길어서도 안 된다. 평균 18행 이상 25행 이하 정도가 좋다.

둘째, 신춘문예 시는 산문성이 뛰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신춘문예 시는 산문성이 짙은 만큼 아이러니 수사법의 활용이 절대적이다.

넷째, 신춘문예 시는 기발한 은유나 상징을 창출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신춘문예 시는 지나치게 실험적이거나 혁명적이어서는 안 된다.

pp.337~345

민용태, 박태만, <"2024 신춘문예 詩" 깊게 읽기> 中

+) 이 책은 제목에서 연상되듯 작년 2024년 신춘문예 시 부문에 등단한 작품들을 분석한 평론을 엮은 것이다. 정확히는 민용태 시인의 시문학 강의록이라고 볼 수 있다.

민용태 시인이 문학 전공자가 아닌,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춘문예 당선 시를 해설한 강연을 박태만 저자가 다듬어 평론서로 만들었다.

이 책은 2024년 여러 신문사에서 등단한 시인들의 당선작품 11편과 신작시 20편을 함께 담고 있다. 시 작품 한 편을 먼저 싣고, 뒤이어 그 시에 대한 저자의 분석을 담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

각 시에 대한 분석은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쉬워 공감이 간다. 또한 시를 읽어내는 방법을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서 깨닫는 바가 있다. 시 창작법을 배울 수 있는 만큼 시 분석법도 배울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신춘문예 심사위원의 심사평에 대부분 공감한다. 하지만 간혹 심사평에 제시되지 않은 점을 설명하며 심사평과 결을 달리하는 해석도 내놓는다.

그런 부분은 문학 작품을 보는 눈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신춘문예 당선작과 신예 시인의 신작들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어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시 창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당연히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2024년 각 언론사의 당선작들을 읽으며 분석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 평론 공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읽어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한 편의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은지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문학 전공자가 아닌 대중을 위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성실하고 알찬 책이었다. 신춘문예를 목표로 시 창작법과 시 분석 방법을 익히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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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라면 군주론
김경준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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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군주론>은 인간의 본성, 조직의 성격, 리더십, 통치 기술 등에 걸쳐 핵심을 꿰뚫고 있다. 수없이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p.10

기업, 개인을 포함해 어떤 집단도 생존을 위해 구사하는 책략과 속임수는 본능적이다. 물론 개인이든 조직이든 위장과 속임수만으로 성공할 순 없다. 장기적으로는 결국 성실하고 신뢰를 지키는 개체가 살아남고 발전한다.

현실을 살아가는 근본은 신뢰와 성실이다. 그러나 위장과 속임수로 가득 차 있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순진함으로는 생존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위장과 속임수에 속지 않도록 자신을 방어하면서 적절히 대응하는 역량을 현실적으로 갖춰야 한다.

pp.53~54

사람을 지배하는 건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다.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논리적 근거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감정을 합리화하고자 논리를 동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사람들은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다.

지식인과 리더의 차이점은, 지식인은 논리를 만들지만 리더는 사람을 움직인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리더는 사물을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사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미지를 만들어 소통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p.88

'완벽한 선을 추구하지 말고 악해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 속에서 파멸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지키려는 군주는 악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ㅡ [군주론] 15장

p.106

'인간은 두려워하던 자보다도 애정을 느끼던 자에게 더 가차 없이 해를 입힌다. 원래 사람은 이해타산적이어서 단순히 은혜로 맺어진 애정쯤은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기회가 생기면 즉시 끊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에 대해선 처벌이라는 공포로 묶여 있기에 결코 모르는 척할 수 없다.'

ㅡ [군주론] 17장

p.167

지식인은 논리로 말하고 리더는 결과로 말한다.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지식인이 인정을 받지 못하듯, 의도했던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리더도 평가받기 어렵다.

p.263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이 지점에서 현재적 생명력을 갖는다. 그는 선악을 부정하는 반도덕이 아니라 선악을 초월하는 초도덕을 주창했고, 부정적 비관도 아니고 막연한 낙관도 아닌 긍정적 현실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에 기반한 낙관주의로 평가할 수 있다.

p.323

김경준, <오십이라면 군주론> 中

+) 이 책은 제목에서도 연상되듯,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지금의 시대에 대입해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군주론>의 핵심적인 구절들을 직접 인용해, 오십 대의 나이쯤에 꼭 한 번을 읽어야 할 인간의 생존 전략들을 풀어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리더가 되기 위해 어떤 덕목이 필요한지, 선과 악 그리고 자애로움과 엄격함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안팎의 위기와 흔들림에 대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군주론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이 책은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읽으면 조직을 현명하게 통솔하는 방법과 리더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 등을 배울 수 있다.

개개인이 읽어도 대인 관계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은지, 미래를 위한 진취적 선택으로 무엇이 있는지, 방황하게 되는 삶의 전환점에서 어떻게 올곧은 자세를 취할 수 있는지 습득할 수 있다.

<군주론>의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고,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26가지 방법들을 명확히 제시하며, 그에 맞는 다양한 역사적, 사회문화적 사례를 들고 있기에 신뢰감이 생긴다.

누군가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동의하겠지만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파격적인 주장과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판단이 담긴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점을 고려하여 현재의 인생에서 마키아벨리의 전략을 부드럽게 접목하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문장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극단적인 주장이 아니라 단호한 표현으로 드러냈다고 본다.

읽는 이들이 자기의 삶에 필요한 전략들을 선택해 활용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생각의 전환으로 바뀔 수 있는 선택은 많기 때문이다. 꼭 오십의 나이에 한정해 읽을 필요도 없다고 본다.

인생의 지혜를 <군주론>을 바탕으로 얻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어렵지 않은 내용들이고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싶은 개인이라면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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