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Time Difference K-픽션 10
백수린 지음, 전미세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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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눈은 지난 십여년 동안 불씨가 꺼진 방처럼 서늘하고 어두웠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비밀이 있는 법이다. 아무에게도 발설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들통 나서는 안되는 비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29%

시간이 흐르면 꽃이 피고 진다. 그리고 시간이 더 많이 흐르면 마른 가지에서 또다시 움이 튼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단지 그런 것뿐이지도 몰랐다. 시간의 흐름이 허락하는 선한 치유.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간을 살아낼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30%

하여 그녀는 그와 같은 이름의 화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적어 보낸 말들을 떠올린다.

"힘써야 할 싸움이 많구나. 견뎌야 할 고통이 많구나. 올려야 할 기도도 많구나. 그러면 결국 평화가 오겠네."

43%

백수린, <시차> 中

+) 처음 읽으면서는 몰랐다. 여기서 말하는 '시차'의 개념이 중의적이라서. 근데 읽을 수록 서사적 구조를 잘 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모가 결혼 전에 낳은 아들, 외국에서 살던 그가 조국을 방문하자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주인공이 그를 만나 한국의 이곳 저곳을 함께 다닌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잊고 지낸 시간들과 마주한다. 동생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시간.

시차,라는 말은 이 소설에서 단순히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의 시차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물들 개개인의 시차가 그들의 상황에서 녹아있고, 그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묘한 감정선이 작품에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곰곰이 떠올려보니 동생을 잃어버리는 엄청난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을까 싶다. 그들의 부모 역시 아이탓을 할 수는 없겠지. 하나 남은 아이마저 잃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이 소설 속 시차는 시간이 아니라 시각의 차이도 가능하지 않을까. '차이'라는 것에 주목해서 본다면 이 작품은 역시 구조를 잘 짠 소설같다. 작가의 잔잔한 어조도 소설의 분위기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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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생 자르기 Fired K-픽션 13
장강명 지음, 테레사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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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가씨도 처음 자기네 회사에 면접 볼 때에는 그런 태도가 아니었을걸? 성격이야 싹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최소한 근태는 나쁘지 않았을 거야. 그걸 자기가 망친 거지. 지각해도 아무 말 않고, 손님 접대를 안 해도 아무 지적도 안했지? 그러니까 애가 그렇게 된 거야. 사람들이 다 자기나 나 나 같지 않아. 어떤 사람들한테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자세를 교정해 주고 질책을 해줘야 돼. 자기는 알량한 동정심 때문에 그걸 안 한 거지.

29%

회사라는 게 그래요. 조직에서는 합리적이라고 결정하는 게, 당하는 개인 입장에서는 참 매정하죠. 나도 혜미씨랑 똑같은 처지에요. 이러고 일하다가 회사가 너 나가, 그러면 짐 싸야지.

31%

- 걔 불쌍하다고, 잘 봐주려고 했었잖아. 가난하고 머리가 나빠 보이니까 착하고 약한 피해자일거라고 생각하고 얕잡아 봤던 거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 걔도 알바를 열 몇 개나 했다며. 그 바닥에서 어떻게 싸우고 버텨야 하는지, 걔도 나름대로 경륜이 있고 요령이 있는 거지. 어떻게 보면 그런 바닥에서는 우리가 더 약자야.

32%

- 이게 처음부터 다 계획이 돼 있던 거니?

32%

장강명, <알바생 자르기> 中

+) 이 책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을 잘 드러내는 소설이다. 주인공 남편의 언급처럼 약하고 가난하니까 무조건 순진한 피해자일꺼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산이라는 점을 주인공에게 말해준다. 이 소설 속 '약자'로 등장하는 '혜미'는 산전수전 다 겪은 알바생이고, 그렇게 지내오며 자신이 어떤 자세로 회사라는 조직에서 생활해야 하는지 배운 여자다.

주인공은 그걸 모르고 그저 사회적 약자니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것 같으니까

어리숙한 약자라고 생각한 혜미의 모습을 예상했으나 그와 달리 알바생은 꼼꼼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이 소설을 갑과 을의 전환된 관계를 보여준다는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이 상대방의 지위와 성격까지 마음대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을 제시한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며 또 한번 소설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가볍지 않고 심지어 좀 불편하고 사실적인 이야기임에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전개로 다음 상황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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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Run Away K-픽션 23
조남주 지음, 전미세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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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네 보호자다. 내가 우리 딸 지금처럼 티 없이 지켜줄 거야."

"저도 곧 스물아홉이고 사회생활이 오 년 차인데 제가 정말 티끌 하나 없을 것 같으세요?"

아버지는 내가 티끌 정도가 아니라 움푹움푹 옹이투성이이며 스스로 그 옹이들을 별로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16쪽

남들은 미쳤다고 하겠지만 나는 그게 아버지가 보내는 메시지인 것 같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이곳은 경치가 좋구나. 너무 걱정 마라. 엄마에게 말하지 마라. 지리산을 오르고 제주 바다를 구경하고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시며 젊은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걷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아버지 없이도 남은 가족들은 잘 살고 있다. 아버지도 가족을 떠나 잘 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언젠가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35쪽

조남주, <가출> 中

+) 단편 소설들을 좀 읽어봐야지 싶다가 정말 우연히 'K-픽션' 시리즈를 접했다. 한국 소설들을 영어권 독자에게 소개하는 시리즈인지, 한글로 단편 소설을 싣고 영문 번역본을 같이 담고 있는 책이다. 아이디어가 좋은 것 같아서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 책들 중에서 또 정말 우연히 이 소설을 선택했다.

짧은 단편 소설이라서가 아니라 책을 집어 든 순간 나는 순식 간에 소설에 빠져들었다. 이 소설은 한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가출을 하게 되면서 두 아들 내외와 막내 딸, 그리고 어머니의 반응을 담고 있다. 처음 어머니가 자식들을 불러 아버지의 가출을 알리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그때 그런 상황임에도 자식들이 평소 좋아하던 청국장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어머니. 어쩌면 그 어머니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부장적 세대 속의 수많은 어머니일지 모른다. 결혼해서 출가하거나 독립한 자식들은 처음에는 아버지를 찾고자 전단지도 붙여보고 아버지의 가출을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차차 아버지의 가출은 가족들이 모이면서 걱정하는 하루 이틀 정도의 일, 즉 일상적인 일이 되어 간다.

어머니는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자식들을 위한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놓고, 자식들은 그것을 먹으면서 자책감이 들었다가 곧 익숙해진다. 어쨌든 밥은 먹어야 하니까. 아버지가 사라지면서 이 집안에서 어머니의 지위는 변한다. 아니다. 그건 변한 게 아니라 새로 발견하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말에 늘 순종적인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제 자식들에게 들리게 된다. 어머니는 그동안 목소리를 안냈던 걸까, 못냈던 걸까.

저자는 이런 장면들을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그려낸다. 가족들의 반응을 보며 나는 우리나라에 뿌리 깊히 박힌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족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들의 사연은 뻔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구나. 당연한 것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고, 이미 당연했어야 하는 것이 이제와서 당연해지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아버지의 가출은 막내딸이 내뱉은 말처럼 '아버지의 생에서 책임감이라는 티끌로 뭉친 옹이'를 풀어내는 일종의 독립이라고 생각한다. 막내딸이 독립할 때 기를 쓰고 반대하는 전형적인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을 꼭 닮았다. 그런 분들이 70대가 되어갈 때 느끼는 허무감이랄까 헛헛함을 이 집안의 아버지는 가출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니 그 가출은 표면적인 의미의 가출이 아니라 아버지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새로운 출발이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삶의 모습들을 각자 접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에게 준 막내딸의 신용카드 사용 문자가 딸에게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모습으로 재현된다. 이 가족들은 이제 새로운 모습에 각자 적응하며 지내고 있는 모습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그것이 잘 적응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새로운 변화라는 것이 의미있는 것 같다.

이 소설을 다 읽고 잘 쓴 소설 같아서 작가가 누구인지 찾아보았다. 내가 요즘 너무 책을 안읽었나 싶을 정도로 익숙하지 않은 작가였다. 누구지? 하고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다. 꽤 유명한 작가구나.. 한동안 언급이 많이 된 소설책을 쓴 사람이었다. (사실 <82년생 김지영>을 아직 읽지 않은 상태라 그 책의 작가가 누구인지 몰랐다. 책 제목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근데 그분이었다.)

어쨌든 모처럼 흡인력 있는 소설을 읽은 것 같고, 앞으로 저자의 작품들을 두루 읽어봐야지 싶다. 그리고 이 시리즈, 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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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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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지금껏 본 적 없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역할을 가진다는 것이 사람을 이토록 빛나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분들을 보며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46%

"간병이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을, 살아가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필요한 곳에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70%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80%

오구니 시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중에서

+) 사실 소설책인 줄 알고 빌렸다. 그런데 읽으면서 보니 에세이집이었다. 저자는 방송국 PD였는데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그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다니거나 휴식기를 가졌다. 그러면서 암이 발견되어 암환자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치매 환자들을 보게 되고 간병인들의 삶을 보면서 독특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문 셰프가 요리를 하고 치매 환자가 종업원이 되어 메뉴 3가지를 파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한국 출판계와 방송계에서 이것을 우리 나라에 소개한 것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종업원들이 실수해도 손님들이 그런 실수를 부드럽게 넘겨주는 모습, 그것에서 저자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의 자세를 발견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아파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그것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큰 만족감과 보람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아픈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기다려주는 인내와 실수해도 웃어 넘기는 배려가 사회를 좀 더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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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읽다 -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조종하는
프레데리케 파브리티우스.한스 하게만 지음, 박단비 옮김 / 빈티지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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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가장 잘 느끼는 사람들은 이미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27%

균형적인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을 통해 감정 불균형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할 수 있다. 우리가 오랜 기간에 걸쳐 검증된 방법인 운동, 건강한 식단, 충분한 수면을 추천하면 고루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방법들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정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27%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뇌를 더욱 잘 통제한다. 당신의 목표가 감정조절이라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통제력이다.

27%

진정한 감사는 상황을 다르게 보는 것이다.

28%

내향적인 사람들이 모두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외향적인 사람들이 무조건 공감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을 구분하는 특징은 에너지다. 내향성에게 사회적 상호작용은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일인 반면, 외향성에게 사회적 상호작용은 에너지의 원천이다.

73%

프레데리케 파브리티우스, <뇌를 읽다> 중에서

+) 이 책은 뇌과학과 심리학을 같이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주된 뼈대는 뇌과학이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뇌구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뇌의 어느 부분들이 사람들의 성향을 만들어내는지, 어떤 호르몬들이 사람들의 감정을 동반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렇다고 꽤 어렵거나 하는 책은 아니다. 이해하기 쉬운 용어들을 활용해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인간의 심리와 감정, 스트레스, 심지어 사람들이 지닌 성향이 조직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어찌보면 어디선가 한번쯤 본 내용 같은데, 그것을 주장하는 근거가 뇌과학이니 객관적으로 여겨지기에 믿음이 생긴다.

여러 실험들을 통해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 이 책의 저자는 뇌과학이 일반인에게도 쉽게 다가오는 학문임을 몸소 보여준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기존에 읽었던 자기 계발서적들의 객관적 근거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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