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회고록
디디에 에리봉 지음, 송태현 옮김 / 강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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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세기 프랑스 지성사를 관통하는 사람의 대담집이라 호기심을 갖고 읽어보았지만, 생각보다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성장기와 지적 형성 배경을 말하는 부분들은 지루하면서도 생소한 프랑스 인명들이 마구 등장하여 아무래도 낯설고, 정작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들--이른바 '(탈)구조주의'라는 사상적 흐름을 주도했던 일군의 학자들, 이를테면 푸코, 라캉, 바르트 등과의 관계를 회고하는 부분--은 이들에 대한 레비스트로스 자신의 냉소와 적대감으로 가득차 있어 당혹스럽기도 하고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다. 레비스트로스는 대담 내내 자신의 보수적 성향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그의 보수성은 2차 세계대전 전후 아주 좋은 조건으로 미국에 남아 교수가 될 수 있었음에도 프랑스행을 고집한 것과 같은 삶의 구체적인 문제부터, 자신의 구조주의적 방법론을 '과학'으로 바라보고자 하여 '속류화된' 구조주의자들의 논의들과는 엄격히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것 등의 학문적 태도, 그리고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오염'되는 프랑스어의 현실을 개탄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화두에 이르기까지 줄곧 일관된 양상으로 이어진다. 특히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강조했던 사르트르에 대해 적의와 냉소를 보이고 '68년 5월'을 평가절하하는 부분에서는 적잖이 실망스럽다. (비슷한 나이이고 대중 앞에 나서는 일도 거의 없었으나, '68년 5월'에서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예감했던 모리스 블랑쇼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디디에 에리봉의 질문은 대체로 무난한 편이지만, 이처럼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된 대목에서는 매우 날카롭고 매서워 레비스트로스의 진면목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인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그러한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레비스트로스는 지금/여기의 문제들보다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멀리 떨어진 것에 더욱 흥미를 느낀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러한 언명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인류학 전반과 레비스트로스의 학문세계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도록 할 수 있으면 이 책의 의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유별난 보수성 덕분에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싹 가졌지만. 참고로 이 책에는 '80년대 초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의 에피소드가 짤막하게 실려 있는데, 책의 전반적인 내용과 무관하지 않은 부분이어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한국의 현실이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해서 이래저래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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