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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2010년 신간 도시여행자. 사실 이 책을 자세히 보기 전까지는
기행문일 줄 알았습니다. 10년간 요시다 슈이치의 여행과 관련된
기행이 아니라도 여행 관련 에세이쯤으로 생각했는데
전혀 아닌, 그저 단편이었습니다.

10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입니다.

읽고 나서 정리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앞의 5개 단편의 화자는 여자이며
(중간에 남자로 바뀐 단편도 있긴 합니다), 뒤의 5개의 단편 화자는 남자입니다.

전 세계의 각지 내용이 10개의 단편에 각각 담긴 줄 알았는데
주로 일본, 도쿄 이야기가 많습니다.
한국을 좋아하는 작가 답게 서울이 나오는 단편이 하나 있구요.
그의 고향 나가사키도 잠시 등장합니다.

단편은 어지간해서는 그 작가를 돋보이게 할 수 없는 것 같은데
요시다 슈이치는 특유의 감각이 있어서 많이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딱 '요시다 슈이치' 스러운 단편들이고 10년 문학의 정점
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책 표지 디자인은 참 멋있는데 띠지의 멘트가 조금 오해를 불러오네요.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원래 제목은 이 마지막 단편 제목인 '캔슬된 거리의 안내'라고 합니다.
'캔슬된'이란 표현을 국내에선 잘 안쓰니 다른 제목을 붙인 것 같긴한데
'도시여행자'라는 제목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10개의 단편이 상당히 골고루 담겨있어서 한번에 읽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요시다 슈이치는 감정적인 면을 건드려서 다독(多讀)이 힘들더라구요.
좀 쉬었다가 읽곤 하는데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다 봤네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있고, 앞으로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이야기도 있고..
계속 사랑얘기가 되었다면 '첫사랑 온천' 같겠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아무래도 단편이다 보니 따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나날의 봄 (다마가와 강. 도쿄)
회사 여자 선배와 남자 후배 이야기. 노골적으로 여자 선배는 후배에 관심을 표명하지만
사랑 쪽의 관심이 아닌 그저 흥미를 가진 것처럼 얘기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랑 이야기도 좋습니다. 드라마틱하지는 않은 수수한, 일상같은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가 더 드라마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하 5도 (서울)
위의 단편에서도 잠시 한국 여행 이야기가 등장했는데 여기서는 아예 배경입니다.
요시다 슈이치는 한국을 참 좋아하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아직 '동경만경'은 안봤는데
드라마로 봤었고, 종종 짧게라도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실연 당한듯한 여자. 추운 서울에서의 이야기.

'중뿔나게', '외따로' 같은 단어가 나와서 마치 한국 저자인가 싶은 생각 들 정도입니다.
한국 여자랑 사귀었거나, 친구가 있거나, 한국에 대해서 배우는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떤 면에선 한국 소설 같기도 합니다.
특히 남자 주인공은 한국인으로 나오는 정말 한국 사람적인 모습 같습니다.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다른 두 나라의 사람들. 서로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요.



태풍, 그 후 (도쿄인듯?)
가출한 한 여자의 고뇌. 사랑 이야기는 아니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사람에 대한 고달픔을 가지면서도 사람에게 하소연하고 싶어하는 마음.
수영하는 장면들이 인상 깊습니다. 여기서는 타이완 영화가 나옵니다.



새벽 2시의 남자 (사이쿄선 주조역, 이케부쿠로 부근)
이 소설 내용은 노코멘트 해야겠네요.
요시다 슈이치도 간혹... 잔인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그리다 섬뜩할 정도의 이야기도 되고..
뭐 그 정도의 얘기는 아니지만요.


- 여기까지는 화자가 여자 (영하 5도 뒷부분은 남자) -
- 아래부터는 화자가 남자


젖니 (도쿄 외곽)
화자인 고야. 리카코와 그녀의 아들 류세이와 함께 살고있습니다. 류세이는 조금
방치된 것 같은, 그것이 아동학대라면 그럴 수 있는 느낌입니다.
 
돈도 없어서 위험한 일에 가담해볼까도 하는 그. 얼마 전부터 영화 스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영화 아역이 오지않아 대신 류세이가 하게됩니다.

류세이는 젖니가 빠졌는데 고야가 그것을 밟습니다. 이 장면과 영화 내용인, 아동학대 당하는
아이가 그 집에서 뛰어나오는 장면이 교묘하게 겹쳐서, 젖니는 부모에게 받은 뗄 수 없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이 빠졌다는 것은 벗어난다는 것. 그리고 고야가 그것을 밟아 피가
났다는 것은 류세이에게 당한다는 것.

쯤으로 상징적인 소재들이 얽혔다고 해석해봤는데 어떨런지요.
배경은 도쿄에서 한시간 반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녀석들 (도쿄인듯?)
어릴 때 딸을 못낳은 엄마의 한으로 여자 옷을 입고 자란 무네히사.
사진학교를 다니는 중에 '액체풍경' 사진으로 칭찬을 받습니다.
(국물 위에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찍은 사진의 연작)

한명빼고 나머지가 다 칭찬했다는데 그 한명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유학생 이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정말 사진을 찍기위해 들어온 사람.
나머지는 사진 찍는 걸 남들에게 말하고 싶은 부류. 국물 위에 떠 있는 기름이
만들어 내는 문양을 사진찍는 것, 그것이 마치 남자와 여자와도 섞이지
못하는 그 자신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사카 호노카 (호노카: 희미함, 여렴풋함, 그윽함 등을 뜻하는 단어. ) (오사카)
고등학교 친구 히로시와 만난 화자. 히로시는 다들 대학 갈 때 혼자 직장 생활을 시작한 친구.
20년이 지나서 보니 출세 코스에 있는 안정적인 회사원이 되어있습니다. 남들 대학에서 놀 때,
그는 대학 못갔다는 컴플렉스로 공부한듯. 오사카 오면 소개해주겠다면서 잘 아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는 여자가 끊이지 않는 남자. 자신은 화려한 여자를 좋아하는데 막상 화려한 여자들은
그를 만나 평범해지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대학 친구 오노. 전화해보니 그도 오사카랍니다.
호텔에서 만나서 이야기 하다가 잠이 들고, 다음 날 각자의 길로 갑니다.

39세의 남자가 앞으로 인생에 대해서,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는 면이 보이는 단편입니다.

화자는 자신이 사귀는 히로미. 3년 연상이라 아이는 생각하지 않기에 결혼하는 것도
바라지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호노카'를 사감으로써
그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호노카: 쿠키 '명과 오사카 호노카')
결국 제목은 오사카에서의 '호노카'를 느끼고, 사랑하는 히로미에게 그 '오사카 호노카'를
선물함으로써 마음을 표현한다는..



24 Pieces (도쿄)
제목의 의미가 뭘까 24시간? 하다가 혹시 싶어서 세어보니 짧은 글이 24개로 되어있네요.
친구 여자 친구를 탐합니다. 하루 함께 했는데 친구에게 죄 짓는 기분이라 도저히 지속할 수
없어서 먼저 물러났는데 그녀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내용의 화자의 맘을 표현하는 짧은 24개의 글.
혹여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긴 합니다.



등대 (어딘지 안나옴. 도쿄는 아닌듯)
밤길을 산책하는 나. 이름없는 동행이 함께하는데 참 안맞는 사이같습니다.
체형 운운 하길래 엄마 인가 했더니 20년 후의 나. 지금은 열여섯.
매주 일요일 밤의 산책. 즐겁고 반가운 미래의 내가 아니라 덮어두었던
자신의 감정을 헤집는 공포스러운 존재. 등대 또한 그런 의미로 쓰인 것 같습니다.



캔슬된 거리의 안내 (나가사키, 도쿄)
화자 나쓰세는 고향 나가사키에서 온 형과 지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폐허가 된
무인도에서 가이드 역할을 했던 당시 삶을 회상하고, 짝사랑하는 깃코와 있었던
일을 소설로 씁니다. 그리고 형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감정들을 풀어냅니다.
전부 다 제대로 된게 없습니다. 나도, 주변 사람들도.
제목은 아마 그 폐허가 된 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요.





* 나오는 음악
노라 존스턴
로비 윌리엄스


나날의 봄


 p. 11   한국 여행 중에 갈비를 둘러싸고 벌인 작은 말다툼.
한국에 대한 거 또 등장


 p. 14 다테노는 헤어진 애인을 마치 지금부터 사귀기 시작하는 여자인 것처럼 말한다.


 p. 15 "휴일엔 자죠."
    "잠만 잔다고?"
    내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그는 잠깐 생각하는 척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뒹굴거리면서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죠. "


 p. 19 누군가를 천천히 좋아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을 천천히 인정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천천히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역시 불가능한 것 같다.


 p. 20 예전에 어렴풋이 머릿속에 그린 이상이 조금씩 변해 버린듯 느낀 것은 어쩌면 무언가가 지워진 그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새롭게 덧그려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하 5 도


 p. 29~30 기온은 끔찍할 정도로 낮았다. 아직 장갑을 사지 않은 탓에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어도 손가락으로 얼음을 만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지금 몇 도쯤이나 되는지 알고 싶었지만, 온도계를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도쿄처럼 여기저기에 온도가 표시된 전광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울 거리는 그 추위 때문에 강렬한 색조를 자아냈다. 그렇다고 원색에서 빚어내는 선명함은 아니고, 거대한 얼음 덩어리 속에 이 대도시가 들어 있는 듯한 맑고 찬 인상이었다.
투명한 얼음의 아름다움. 멀리 바라다보이는 산들까지도 얼어붙은 맑고 찬 풍경. 난생처음으로 나는 추위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p. 34 한국에서는 좁다는 뜻의 비유로 '메뚜기 이마' 같다는 표현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고양이 이마' 라고 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읽은 일본 소설에는 그렇게 나와 있었다.
'메뚜기 이마' 같다는 얘기 첨 들어본다. 찾아보니 김대중 전대통령의 연설에도 나오긴 했네..



태풍, 그 후


 p. 47 빗줄기가 거세지고 어두운 수면이 소란스러워졌다. 비 때문인지 울타리 너머에 있는 거리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이 세상이 빗줄기가 내리치는 수영장밖에 없은 것 같았다.


 p. 48 실제로 그날 밤 그녀를 따라 호텔 52층에 있는 바에 왔다.
    "도쿄 밤하늘에 의자를 늘어놓는 것 같은 바야. "
    ... 실제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순간, 밤하늘로 발을 내딛는 느낌이었다.


 p. 52 창밖으로 먹구름이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번갯불이 이따금 커다란 창을 푸르께하게 물들였다. 눈을 감자 내가 지상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데 있다는 실감이 났다. 떠 있는 게 아니라 뭔가에 떠받들린 듯한 느낌.


 p. 53 수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수영장에는 잔물결 하나 일지 않아, 마치 도쿄의 밤하늘에 깊고 푸른 구멍이 뻐끔히 뚫린 것처럼 보였다.


 p. 54 " ... 결국은 모두가 뭔가를 항변하고 싶은 거야."
    반쯤 물에 잠긴 귀에 그녀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하고 싶은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괴로움과, 하고 싶지 않은 말을 강제로 해야 하는 괴로움은 과연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울까.



24 Pieces


 p. 165~6 그녀가 사는 동네까지 가는 전철 경로를 머릿속에 줄곧 떠올린다. 도쿄에서 오직 그녀는 존재하는 느낌. 도쿄에 오직 나만 존재하지 않는 느낌.



등대


 p. 183~4 옛날에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이런 공상을했다. 미래에서 찾아온 나에게 질문하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는 재미 있는 공상이라며 기뻐했는데 막상 질문을 생각하기 시작하자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 대답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편이어야 할 미래의 자신이 적이 된 것 같았다. 즐거울 줄 알았던 공상이 어느새 악몽처럼 느껴졌다.



캔슬된 거리의 안내


 p. 231~2 흔들리지 않는 그네와 한쪽이 땅바닥에 닿은 시소. 나는 불현듯 손에 든 원고지를 시소 한쪽에 놓고 다른 한쪽에 내가 타면 균형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 235 미술관 같은 곳은 평생 인연이 없을 줄 알았고 조르조 데 키리코 라는 화가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그 작품 앞에 서보니 뭐랄까, 고요히 다가온 뭔가가 몸속을 휙 빠져나가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잘 표현하긴 힘들지만 어쨌거나 그림에는 조각이든 그앞에 서면 어느새 쉽게 물러날 수 없는 기분에 젖어들고 말았다.


 p. 258 느슨하기 때문에 바람에 흔들려 진동하고 격렬한 소리를 낸 것이다. 분명 그 느슨함은 내 안에도 있다. 그렇기에 이토록 심하게 진동하며 붕붕 소리를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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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사라지던 날
유르겐 도미안 지음, 홍성광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만을 보고 '태양은 왜 사라졌을까?' '태양은 다시 돌아올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갖고 이 책을 읽게 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류의 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읽는 것이 실망감이 적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다른 분 서평을 통해 이 책의 내용을 조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독일 저자라는 점에서 조금 예상한 부분이 있었지요.

제 선입견인지 모르겠는데 유럽 쪽 소설들은 대게가 철학적인 사유와 연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내의 소설 시장에서 그렇지 않은 - 쉽게 읽을 수
있는 - 일본 소설의 시장이 커진 것은 아닐까.. 란 생각도 하게되네요.
그렇지만 이 책 자체는 어렵거나 무거운 사고를 필요로해야하는 문체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역자의 이야기처럼 유럽쪽 고전들을 많이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일부분들이 어떤 책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것과 연관시켜 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내용 안에서 책 이야기도 종종 나옵니다.

40살의 프리랜서 사진작가 로렌츠.
3년 전에 너무 사랑했던 마리를 잃고 무감각하게 살아오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상 기온 현상이 생기더니 빛이 없어지고 사람들이 사라집니다.
빛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의 일기를 적어둔 것입니다.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지고 계속 눈이 내리는 현상이 지속됩니다.
무서워서 다른 곳으로 갈수도 없고, 필요한 물건들은 다른 집에서 조달해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겪는 절망과 자살 충동, 시도. 그리고 적응.
이런 내용들이 진행됩니다. 사실 앞부분은 조금 지루한 면이 있긴 했어요.
마치 동일한 하루 하루의 반복이, 내가 로렌츠가 된듯하게..
절망감과 지루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듭니다.

너무 사랑했던 마리와의 일을 추억하고
그 안에서 이 주인공은 너무나도 올바르지 못했던,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점을 밝히면서 더더욱 혼자라는 절망감을 내세웁니다.
결국 마리의 무덤에 가서 죽으려고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다른 생존자를 만나게 됩니다.
핀 이라는 남자인데 자신과 정 반대되는 성향을 갖고 있고
이 일들을 대처해왔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온 세계에 자신 밖에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자살을 하려고
갔다가 만났고, 핀 또한 식량이 없어서 자살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같이 돌아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둘은 너무도 잘맞아서 혹시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여깁니다.
그리고 고열에 시달리는 어느 날, 약을 가지러 갔던 핀이 사라집니다.

며칠을 더 견디던 로렌츠는 온도가 올라가고 있고, 빛이 점점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후 남쪽으로 떠날 결정을 하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과거'에 매여있지 말라는 메시지인듯 합니다.
작가에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있는 그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닌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심리 상태랄까요, 절망의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고,
마리에 대한 그리움이나 죄책감, 그리고 핀과의 즐거움이나 행복감.
결국 그들이 없어도 자신은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아닌 '태양'을 더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겪으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이 '제대로 살아가는 것'
임을 깨달았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 제대로 살아가는 것은 누군가와 만나고 존재해야하는 것이기에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수는 없지만, 당연히 있어야할 것이
없는 세상 속에서는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결국 마리도 핀도 이 로렌츠에게는 과거입니다.
그리고 빛이 없었던 과거 또한 이제는 지나갔습니다.
괴로움과 절망이 지나가고, 앞으로 나아갈 자신만이 남은 것입니다.

+ 우연히 이 책과 오사키 요시오, '아디안텀 블루'를 같이 읽게 되었는데
내용이 참 비슷합니다. 아디안텀 블루의 경우엔 세상은 그대로 있긴 하지만요.
사랑을 잃고 살아가기 힘든 남자 주인공의 얘기랄까요.
그래서 관련책으로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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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교수의 영국 문화기행 - 영국 산책, 낯선 곳에서 한국을 만나다
김영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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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지않으면서 여행책을 보는 것은 괴로워서 꺼렸었는데
유럽 여행을 전후로 여행책자에 유독 관심을 갖게 되었네요.
워낙에 요즘은 다양한 유형의 책들이 출판되어서
대략 여행 일정/정보 관련 책자, 에세이로 크게 나눌 수 있겠지요.
이 책도 에세이에 속합니다.

대신 단기간 여행은 아니고 저자가 1년 동안 영국에서 머물면서 겪었던 일을
적은 내용이라 단기 여행과 다른 정보들이 좀 있습니다.

저도 단기 여행으로 영국을 접한 거라, 되려 다녀와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알게된 책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단기 여행은 주요 장소들만 알게되고
가게되잖아요. 정보를 찾을 때도 그런 것 위주로 찾게 되구요.

저자는 1년간 영국에 방문학자로 체류하면서 한국교환교수로 온 교수의
자택에서 살게된 특징이 있어서 생활의 흔적도 느낄 수 있지요.
집 주변을 늘 산책했다고 하는 점에서 저도 한가로이 영국에 머물며
산책해봤으면 좋겠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답니다.

잠시 체류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도 무료 의료를 지원하는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되었구요 (물론 실상은 빠른 대응이
안된다는 뒷얘기가 있다고 하지만요)

책이 단순히 유명한 곳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저자의 이야기들로 되어 있어서
의외로 두껍고 글이 있는 편입니다. 얇은 소개 책자들도 워낙에 많아서요.
그런 책들도 싫어하진 않지만, 이렇게 두꺼우면 왠지 이득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국문학 전공하신 분이라 아무래도 감성적인 글입니다. 자신의 단골집들을
나열한 글에선 왠지 부럽기도하고, 나는 그렇게 삶을 감사하며 즐기며
살고 있는 것일까.. 생각도 해보게되었지요.

저도 가봤던 곳들, 그렇지만 몰랐던 이야기들에 고개도 끄덕이게 되었구요.
저도 찍었던 표지판들, 반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장소에는 부러움도 느끼고
다시 꼭 가보겠다는 다짐도 했지요.

전 세계의 금융위기로 황실도 절약한다는 이야기가 왠지 우리 나라 정치인들을
떠올리게 되었구요. 또 세금 안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되더군요

근위병으로 유명한(?) 버킹엄궁이나 찻잔으로 유명한(?) 로얄 알버트 좌상
좀 잘못 알고 있나요 ^^; 그리고 수많은 전시들이 이루어진다는 박물관들을
들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여기에서도 잠시 등장합니다.

이외에도 저자의 전공이라 언급되는 영국의 '한국학 강좌' 이야기도 있구요.
생각보단 많아서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더 다양하고 인기있었으면, 싶지요.
영국 대학 학비 언급도 있는데 너무 비싸기는 하더라구요.
미국은 교포들이 많은데 영국은 주로 영국이나 유럽 학생들이 듣는다고 합니다.
최근 국내에서 돌아다니다보면 외국인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는데
우리 나라도 좀 더 학문적인 접근에 욕심낼 수 있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되는 면이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워크숍에 관한 얘기도 있는데 지도상 동해 표기 문제도 거론되었는데
참 가슴이 아프네요. 일본의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기구와 대학들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도 분통 터지구요.
학문도 경제력으로 좌시되는 것일까요.. 하긴 피렌체의 대부호 가문에서
수많은 역사서를 사들임으로 그 르네상스의 꽃이었던 피렌체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은 사실이긴 하니까요. 가슴 아픈 이야기는 이쯤해두구요.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한 단편, 정말 당장 가보고 싶은 책마을(웨일스, 헤이 온 와이).
워즈워스의 고향, 맨유이야기, 이름은 다 들어봤을 에든버러.
그리고 뒷쪽에 짧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프랑스 이야기도 실려있어 반가웠습니다.
루브르도 좋았지만 가지 못했던 오르세와 오랑주리 이야기도 짧았지만 좋았구요.

'영국 문화' 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책이지만 저자의 감수성이랄까요,
어떤 인간과의 관계랄까,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들 같은 것에 더 공감하고
생각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느끼는 애정이 결코 없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요즘은 참 강팍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더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흔한 말이지만,
'만나면 헤어지고, 오면 가야 하는 것이 인생사가 아니던가.' p. 317
라고 끝맺는 것이 이 책에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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