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2010년 신간 도시여행자. 사실 이 책을 자세히 보기 전까지는
기행문일 줄 알았습니다. 10년간 요시다 슈이치의 여행과 관련된
기행이 아니라도 여행 관련 에세이쯤으로 생각했는데
전혀 아닌, 그저 단편이었습니다.

10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입니다.

읽고 나서 정리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앞의 5개 단편의 화자는 여자이며
(중간에 남자로 바뀐 단편도 있긴 합니다), 뒤의 5개의 단편 화자는 남자입니다.

전 세계의 각지 내용이 10개의 단편에 각각 담긴 줄 알았는데
주로 일본, 도쿄 이야기가 많습니다.
한국을 좋아하는 작가 답게 서울이 나오는 단편이 하나 있구요.
그의 고향 나가사키도 잠시 등장합니다.

단편은 어지간해서는 그 작가를 돋보이게 할 수 없는 것 같은데
요시다 슈이치는 특유의 감각이 있어서 많이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딱 '요시다 슈이치' 스러운 단편들이고 10년 문학의 정점
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책 표지 디자인은 참 멋있는데 띠지의 멘트가 조금 오해를 불러오네요.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원래 제목은 이 마지막 단편 제목인 '캔슬된 거리의 안내'라고 합니다.
'캔슬된'이란 표현을 국내에선 잘 안쓰니 다른 제목을 붙인 것 같긴한데
'도시여행자'라는 제목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10개의 단편이 상당히 골고루 담겨있어서 한번에 읽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요시다 슈이치는 감정적인 면을 건드려서 다독(多讀)이 힘들더라구요.
좀 쉬었다가 읽곤 하는데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다 봤네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있고, 앞으로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이야기도 있고..
계속 사랑얘기가 되었다면 '첫사랑 온천' 같겠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아무래도 단편이다 보니 따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나날의 봄 (다마가와 강. 도쿄)
회사 여자 선배와 남자 후배 이야기. 노골적으로 여자 선배는 후배에 관심을 표명하지만
사랑 쪽의 관심이 아닌 그저 흥미를 가진 것처럼 얘기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랑 이야기도 좋습니다. 드라마틱하지는 않은 수수한, 일상같은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가 더 드라마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하 5도 (서울)
위의 단편에서도 잠시 한국 여행 이야기가 등장했는데 여기서는 아예 배경입니다.
요시다 슈이치는 한국을 참 좋아하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아직 '동경만경'은 안봤는데
드라마로 봤었고, 종종 짧게라도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실연 당한듯한 여자. 추운 서울에서의 이야기.

'중뿔나게', '외따로' 같은 단어가 나와서 마치 한국 저자인가 싶은 생각 들 정도입니다.
한국 여자랑 사귀었거나, 친구가 있거나, 한국에 대해서 배우는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떤 면에선 한국 소설 같기도 합니다.
특히 남자 주인공은 한국인으로 나오는 정말 한국 사람적인 모습 같습니다.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다른 두 나라의 사람들. 서로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요.



태풍, 그 후 (도쿄인듯?)
가출한 한 여자의 고뇌. 사랑 이야기는 아니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사람에 대한 고달픔을 가지면서도 사람에게 하소연하고 싶어하는 마음.
수영하는 장면들이 인상 깊습니다. 여기서는 타이완 영화가 나옵니다.



새벽 2시의 남자 (사이쿄선 주조역, 이케부쿠로 부근)
이 소설 내용은 노코멘트 해야겠네요.
요시다 슈이치도 간혹... 잔인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그리다 섬뜩할 정도의 이야기도 되고..
뭐 그 정도의 얘기는 아니지만요.


- 여기까지는 화자가 여자 (영하 5도 뒷부분은 남자) -
- 아래부터는 화자가 남자


젖니 (도쿄 외곽)
화자인 고야. 리카코와 그녀의 아들 류세이와 함께 살고있습니다. 류세이는 조금
방치된 것 같은, 그것이 아동학대라면 그럴 수 있는 느낌입니다.
 
돈도 없어서 위험한 일에 가담해볼까도 하는 그. 얼마 전부터 영화 스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영화 아역이 오지않아 대신 류세이가 하게됩니다.

류세이는 젖니가 빠졌는데 고야가 그것을 밟습니다. 이 장면과 영화 내용인, 아동학대 당하는
아이가 그 집에서 뛰어나오는 장면이 교묘하게 겹쳐서, 젖니는 부모에게 받은 뗄 수 없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이 빠졌다는 것은 벗어난다는 것. 그리고 고야가 그것을 밟아 피가
났다는 것은 류세이에게 당한다는 것.

쯤으로 상징적인 소재들이 얽혔다고 해석해봤는데 어떨런지요.
배경은 도쿄에서 한시간 반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녀석들 (도쿄인듯?)
어릴 때 딸을 못낳은 엄마의 한으로 여자 옷을 입고 자란 무네히사.
사진학교를 다니는 중에 '액체풍경' 사진으로 칭찬을 받습니다.
(국물 위에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찍은 사진의 연작)

한명빼고 나머지가 다 칭찬했다는데 그 한명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유학생 이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정말 사진을 찍기위해 들어온 사람.
나머지는 사진 찍는 걸 남들에게 말하고 싶은 부류. 국물 위에 떠 있는 기름이
만들어 내는 문양을 사진찍는 것, 그것이 마치 남자와 여자와도 섞이지
못하는 그 자신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사카 호노카 (호노카: 희미함, 여렴풋함, 그윽함 등을 뜻하는 단어. ) (오사카)
고등학교 친구 히로시와 만난 화자. 히로시는 다들 대학 갈 때 혼자 직장 생활을 시작한 친구.
20년이 지나서 보니 출세 코스에 있는 안정적인 회사원이 되어있습니다. 남들 대학에서 놀 때,
그는 대학 못갔다는 컴플렉스로 공부한듯. 오사카 오면 소개해주겠다면서 잘 아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는 여자가 끊이지 않는 남자. 자신은 화려한 여자를 좋아하는데 막상 화려한 여자들은
그를 만나 평범해지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대학 친구 오노. 전화해보니 그도 오사카랍니다.
호텔에서 만나서 이야기 하다가 잠이 들고, 다음 날 각자의 길로 갑니다.

39세의 남자가 앞으로 인생에 대해서,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는 면이 보이는 단편입니다.

화자는 자신이 사귀는 히로미. 3년 연상이라 아이는 생각하지 않기에 결혼하는 것도
바라지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호노카'를 사감으로써
그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호노카: 쿠키 '명과 오사카 호노카')
결국 제목은 오사카에서의 '호노카'를 느끼고, 사랑하는 히로미에게 그 '오사카 호노카'를
선물함으로써 마음을 표현한다는..



24 Pieces (도쿄)
제목의 의미가 뭘까 24시간? 하다가 혹시 싶어서 세어보니 짧은 글이 24개로 되어있네요.
친구 여자 친구를 탐합니다. 하루 함께 했는데 친구에게 죄 짓는 기분이라 도저히 지속할 수
없어서 먼저 물러났는데 그녀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내용의 화자의 맘을 표현하는 짧은 24개의 글.
혹여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긴 합니다.



등대 (어딘지 안나옴. 도쿄는 아닌듯)
밤길을 산책하는 나. 이름없는 동행이 함께하는데 참 안맞는 사이같습니다.
체형 운운 하길래 엄마 인가 했더니 20년 후의 나. 지금은 열여섯.
매주 일요일 밤의 산책. 즐겁고 반가운 미래의 내가 아니라 덮어두었던
자신의 감정을 헤집는 공포스러운 존재. 등대 또한 그런 의미로 쓰인 것 같습니다.



캔슬된 거리의 안내 (나가사키, 도쿄)
화자 나쓰세는 고향 나가사키에서 온 형과 지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폐허가 된
무인도에서 가이드 역할을 했던 당시 삶을 회상하고, 짝사랑하는 깃코와 있었던
일을 소설로 씁니다. 그리고 형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감정들을 풀어냅니다.
전부 다 제대로 된게 없습니다. 나도, 주변 사람들도.
제목은 아마 그 폐허가 된 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요.





* 나오는 음악
노라 존스턴
로비 윌리엄스


나날의 봄


 p. 11   한국 여행 중에 갈비를 둘러싸고 벌인 작은 말다툼.
한국에 대한 거 또 등장


 p. 14 다테노는 헤어진 애인을 마치 지금부터 사귀기 시작하는 여자인 것처럼 말한다.


 p. 15 "휴일엔 자죠."
    "잠만 잔다고?"
    내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그는 잠깐 생각하는 척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뒹굴거리면서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죠. "


 p. 19 누군가를 천천히 좋아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을 천천히 인정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천천히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역시 불가능한 것 같다.


 p. 20 예전에 어렴풋이 머릿속에 그린 이상이 조금씩 변해 버린듯 느낀 것은 어쩌면 무언가가 지워진 그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새롭게 덧그려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하 5 도


 p. 29~30 기온은 끔찍할 정도로 낮았다. 아직 장갑을 사지 않은 탓에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어도 손가락으로 얼음을 만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지금 몇 도쯤이나 되는지 알고 싶었지만, 온도계를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도쿄처럼 여기저기에 온도가 표시된 전광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울 거리는 그 추위 때문에 강렬한 색조를 자아냈다. 그렇다고 원색에서 빚어내는 선명함은 아니고, 거대한 얼음 덩어리 속에 이 대도시가 들어 있는 듯한 맑고 찬 인상이었다.
투명한 얼음의 아름다움. 멀리 바라다보이는 산들까지도 얼어붙은 맑고 찬 풍경. 난생처음으로 나는 추위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p. 34 한국에서는 좁다는 뜻의 비유로 '메뚜기 이마' 같다는 표현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고양이 이마' 라고 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읽은 일본 소설에는 그렇게 나와 있었다.
'메뚜기 이마' 같다는 얘기 첨 들어본다. 찾아보니 김대중 전대통령의 연설에도 나오긴 했네..



태풍, 그 후


 p. 47 빗줄기가 거세지고 어두운 수면이 소란스러워졌다. 비 때문인지 울타리 너머에 있는 거리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이 세상이 빗줄기가 내리치는 수영장밖에 없은 것 같았다.


 p. 48 실제로 그날 밤 그녀를 따라 호텔 52층에 있는 바에 왔다.
    "도쿄 밤하늘에 의자를 늘어놓는 것 같은 바야. "
    ... 실제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순간, 밤하늘로 발을 내딛는 느낌이었다.


 p. 52 창밖으로 먹구름이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번갯불이 이따금 커다란 창을 푸르께하게 물들였다. 눈을 감자 내가 지상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데 있다는 실감이 났다. 떠 있는 게 아니라 뭔가에 떠받들린 듯한 느낌.


 p. 53 수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수영장에는 잔물결 하나 일지 않아, 마치 도쿄의 밤하늘에 깊고 푸른 구멍이 뻐끔히 뚫린 것처럼 보였다.


 p. 54 " ... 결국은 모두가 뭔가를 항변하고 싶은 거야."
    반쯤 물에 잠긴 귀에 그녀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하고 싶은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괴로움과, 하고 싶지 않은 말을 강제로 해야 하는 괴로움은 과연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울까.



24 Pieces


 p. 165~6 그녀가 사는 동네까지 가는 전철 경로를 머릿속에 줄곧 떠올린다. 도쿄에서 오직 그녀는 존재하는 느낌. 도쿄에 오직 나만 존재하지 않는 느낌.



등대


 p. 183~4 옛날에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이런 공상을했다. 미래에서 찾아온 나에게 질문하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는 재미 있는 공상이라며 기뻐했는데 막상 질문을 생각하기 시작하자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 대답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편이어야 할 미래의 자신이 적이 된 것 같았다. 즐거울 줄 알았던 공상이 어느새 악몽처럼 느껴졌다.



캔슬된 거리의 안내


 p. 231~2 흔들리지 않는 그네와 한쪽이 땅바닥에 닿은 시소. 나는 불현듯 손에 든 원고지를 시소 한쪽에 놓고 다른 한쪽에 내가 타면 균형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 235 미술관 같은 곳은 평생 인연이 없을 줄 알았고 조르조 데 키리코 라는 화가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그 작품 앞에 서보니 뭐랄까, 고요히 다가온 뭔가가 몸속을 휙 빠져나가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잘 표현하긴 힘들지만 어쨌거나 그림에는 조각이든 그앞에 서면 어느새 쉽게 물러날 수 없는 기분에 젖어들고 말았다.


 p. 258 느슨하기 때문에 바람에 흔들려 진동하고 격렬한 소리를 낸 것이다. 분명 그 느슨함은 내 안에도 있다. 그렇기에 이토록 심하게 진동하며 붕붕 소리를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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