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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의 상자 - 상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만이 가지는 망량이라는 무서운 상자
『망량의 상자』의 상자는 요리코의 친구이자 동경의 대상인 가나코가 열차에 치이는 사고로 시작된다. 1950년대의 도쿄의 전철역. 그 열차에 타고 있던 형사 기바 슈타로는 그 사실을 알고 얼떨결에 조사를 시작하지만, 요리코는 자신의 소중했던 친구의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충격을 받은 상태다. 가나코는 끔찍한 사고로 몸은 표지의 인형처럼 부서지지만, 다행히도 죽지 않았다. 급히 병원으로 후송되는 가나코. 그리고 그 즈음 토막난 소녀들의 팔다리가 발견된다. 뭔가 비슷하면서도 개연성 없는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소설가인 세키구치는 자신이 연재했던 작품들을 묶어내기 위한 고민을 하면서도, 다른 곳에 연재하던 편집 담당자의 요청으로 얼결에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연재물 단행본화와 끔찍한 사건에 관해 상담을 청하고자 친한 친구엔 추젠지를 찾아가는 그. 그리고 탐정인 에노키즈까지. 독특한 캐릭터들이 이번 『망량의 상자』에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망량이란 본래 늪에 살면서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사람을 현혹시키는 존재일세. 형태는 있어도 내용물은 없어. 무슨 짓을 하는 것도 아닐세. 현혹되는 것은 사람 쪽이지. 망량은 경계에 살면서 사람을 현혹시키는 걸세. 물에서 나와 주변을 돌아다니지만, 어떻게 해도 중앙으로는 들어올 수 없어. 즉 흙에서 나오는 일은 없단 말일세. 별 수 없이 가장자리에서 얼굴을 내밀고 땅속에서 시체 같은 것을 파내어 먹게 되지."
당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처음부터 살인을 하는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그들을 '악인'으로 만들었던 환경 또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단지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 저 친구가 살인을 한 이유는 어렸을 때 학대를 받아서 그래, 아버지가 없어서 그래,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래 등등 많은 이유를 꼽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것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살해'하고 싶은 충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이 있다. 그런데 왠지 지금이라면 이 사람을 죽여도 될 것 같은 상황이 찾아온다. 그 묘한 상황이 찾아와서 마침 살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구보와 똑같이 비참하게 자란 사람이라도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네. 그런 것은 무시해도 될 일이야. 알겠나? 계기는 반드시 있는 걸세. 비상식의 문을 여는 계기가 있고, 그것을 실행해도 될 듯한 분위기를 가진 온바코 님이라는 특이한 환경이 만들어져서 비로소 범죄는 성립한 거란 말일세. 범죄는 사회조건과 환경조건, 그리고 도리모노와 같은 광기 어린 한때의 마음의 진폭으로 성립하는 걸세. 구보는 우연히 그것을 만나버린 거야. 그뿐일세."
이 작품 『망량의 상자』의 클라이막스는 소위 말해 정말 '대단'했다! 폭풍 속으로 빨려들듯 읽히는 결말. 하지만 그만큼 각오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 결말은 '상식'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판도라가 호기심에 열었을 그 '상자'만큼, 망량의 상자를 열 때도 어느 정도 각오가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