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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생명수를 찾아 떠난 바리 공주의 끝나지 않은 여정!
딸 여섯을 낳고 또 딸이 태어나자 버려지는 아이, 바리.
북한에서 태어난 바리는 딸을 내리 여섯이나 낳고 노이로제에 걸린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지만,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할머니에 의해 되돌아온다. 언니들과 어린 시절을 보낸 바리는 할머니의 능력을 물려받아서인지, 영혼, 짐승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날 외삼촌이 찾아오는데, 이때부터 불행이 시작된다. 외삼촌이 탈남을 해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모진 고초를 받고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어머니와 언니들과 헤어지고, 할머니와 현이 언니의 죽음을 맞게 된다. 그녀는 혼자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 곁에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칠성'이가 함께했다.
바리는 중국을 거쳐 런던으로 밀항하는데, 그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 그녀의 삶이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는지 실험하는 것처럼. 그래도 자신의 특수한 능력이 '마사지사'라는 직업과 잘 맞아떨어져, 빚도 갚고 파키스탄 청년과도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 터지는 9.11테러, 그리고 지하철 테러.
이는 『바리데기』 속 바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설화 <바리 공주>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저자가 주인공 바리 소녀를 통해 신화와 현실을 넘나들며 새롭게 해석해낸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 중국, 런던 등 한곳에 머물지 않고 서구사회의 중심까지 들어가 현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드러내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면서도 문제의 초점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류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에게 들어왔던 <바리 공주> 이야기처럼 '생명수'를 찾아 나서는 바리. 설화 속 바리 공주가 아버지를 위해 겪었던 온갖 고초를, 소설 속 바리가 현실 속 힘겨운 고통을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며 겪어낸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바리가 생명수를 찾았는지 여부는 끝내 나오지 않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가 생명수를 그러모으는 과정이라 생각될 만큼 그녀의 고통은 구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할머니의 이야기 중에 장승이와 바리공주의 약속이 생각났다. 길값, 나무값, 물값으로 석삼년 아홉 해를 아들 낳아주고 살림 살아주어야 하는 세월.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도 어느 하늘 아래서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바리'. 그것은 소설 속 이야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바리데기가 자신의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주는 생명수는 미미하지만 정말 소중하고 또 중요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 책이 하나의 '생명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