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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독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천적 없는 종족,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지구상에 살아가는 종족 중, 유일하게 천적이 없으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바퀴벌레 같은(?) 개체는 무엇일까? 사실 깊이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것은 바로 인간일 것이다. 생태계 피라미드 제일 꼭대기에 '신'처럼 군림하고 있는 종족. 어찌 보면 정말 무서운 종족이다.
그런 것을 우리 인간은 얼마나 자각하고 있을까.
예전 생물 시간에 배웠던 한 실험이 문득 떠오른다(물론 본인이 실제로 한 실험은 아니다).
쥐를 이용한 실험이었는데, 적정 개체수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 그들은 결국 서로를 죽이는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천적 없이 다른 종족을 멸하면서 살아남을 인간의 미래를 보는 듯했다. 아니,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인간은 보이지 않는 독을 내뿜고 있으니까.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사건을 하나로 잇고 있는데 그 매개는 주인공인 스기무라 사부로. 그는 평범하게 태어나 부잣집 딸을 만나 그야말로 유복하게 살아가는 정말 재미없는 아저씨이지만, 한 가지 커다란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가 바로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저씨'라는 사실이다. 요즘처럼 남에게 신경쓰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적인 인간사회에서 남을 위해 '참견'하는 사람은 해독제다. 아마 저자는 해독제 '스기무라'를 통해 인간 사회의 독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물론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는 있지만, 재미와 교훈을 균형 있게 다루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상당한 볼륨을 자랑하는 이 책(580여 쪽)은 청산가리에 의한 무차별 연쇄 독살 사건부터 새집증후군, 택지 오염, 자살 사이트, 노인 문제까지 여러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그만큼 독은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것이 진정한 독인지 아닌지는 직접 맛보지 않고는 판단할 수 없다), 저자는 단순하게 이런 사건만을 다루지 않았다. 저자는 실질적인 '독'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자신만 살기 위해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인간의 '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독을 지닌 인간을 '평범한 인간'으로 분노하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남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훌륭한 인간'으로 나누는 독특함마저 보여주고 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인간을 '독'이라는 모습으로 감상하고 싶다면 당장에라도 『이름 없는 독』을 펼쳐보기를.
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이 책으로 처음 접했다. 이 작품은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2006년 『주간문춘』에 선정된 그야말로 '인정받은' 작품이지만, 그녀의 능력은 필시 이 작품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문으로만 접하고 있는 그녀의 진정한 면목을, 내가 읽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모방범』에서 확인하고 싶다. 그날을 기다리며 한껏 설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