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이 접하는 인간의 솔직담백한 이야기

사신 치바 ㅣ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사신이 접하는 인간의 솔직담백한 이야기
 

사신에게 이름이? 사신 치바. 그것도 일본의 한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여튼 사신에게 치바가 있다니, 왠지 친근하다. 책장을 펼치지마자 나오는 것은 사신 치바가 공무원처럼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일'은 죽음을 맞이한 한 인간이 정말 죽음을 맞아야 하는지 조사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매번 조사할 때마다 그 인간에 맞춰 몸이 바뀐다. 때로는 청년으로 때로는 중년, 노인으로. 그러니 인간세상이 평가하는 '나이'로는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그가 내리는 평가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가可'다. 즉 죽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어지간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사신 치바는 자신의 기나긴 삶 동안 여러 인간을 만난다. 그것이 때로는 야쿠자이건, 살인자이건, 꽃뱀이건,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감춘 미운 오리든, 사신 치바에게는 별 차이가 없다. 그것은 그들이 죽을 이유를 가졌다기보다는 오로지 '일'이라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이 인간들이 지금 죽음을 맞을 적당한 시기에 와 있는가 아닌가를 판단할 뿐.

사신 치바가 인간의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가끔씩 이야기의 초점이 벗어나기도 하지만, 모든 생사를 다룬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작품 또한 감동을 가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이라서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그 중 '사신의 로맨스 - 연애 상담사 치바'에서는 흔하지만 오히려 흔하기에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장면들이 마음에 남았다. 
 

<사신의 로맨스 - 연애 상담사 치바>

자신의 외모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에게 접근한다고 생각하는 오기와라는 자신의 진정한 '짝'을 찾기 위해 외모를 감춘다. 그러다가 만난 자신의 짝. 그녀는……. 

"자신과 상대방이 같은 것을 생각하거나 같은 말을 하게 된다는 건 행복한 일이잖아요. 가령 같은 음식을 먹은 뒤 같은 소감을 갖는다거나 좋아하는 영화가 일치한다거나 같은 일로 불쾌감을 느낀다거나 그런 경우 그저 행복하잖아요."
 

사신은 죽음을 맞이한 누군가의 근처에 반드시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치바'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한국은 '마포'나 '노원'이라는 이름을 가졌을지도ㅋㅋ 만약 주위에 음반 매장에 너무 자주 드나든다거나, 이름으로 동네나 시의 이름을 쓰고 있다거나, 대화의 초점이 묘하게 빗나간다거나, 맨손으로 사람과 접촉하려 하지 않는다거나, 항상 비를 몰고 다닌다면 그는 사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죽음을 맞는다는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자연스럽게 죽음의 길로 안내해주는 성실한 '사신'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신 치바는 어디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