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육에 이르는 병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당신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기본적으로 '추리 소설'이라 함은 읽는 이로 하여금 예상치도 못한 반전을 선물한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추리 소설을 읽을 때 범인이 '누군가'를 짐작하고 추리하면서 자신이 '탐정'이 된다는 일종의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아비코 다케마루의 1992년작 『살육에 이르는 병』은 반전 중에서도 최고의 반전을 선물한다. 오죽하면 뒤표지에는 '충격적인 결말을 확인한 순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써놓았을까. 사실 읽는 내내 나는 절대로 앞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다짐을 하면서 두 눈 부릅뜨고 읽었으나, 결국은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가슴아픈 현실 =_=;;
가모우 미노루. 그는 어딘가 아픔을 지닌 여성들을 대상으로 무참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다. 그것이 너무나 잔인하여 때로는 읽고 있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다. 하지만 죽이는 이유도 보통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 그가 그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안타까울 만큼, 잔인하고 또 잔인했다.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어머니 마사코. 설마 내 아들은 아니겠지, 그럴 리 없어. 내 아이는 착한 걸. 하지만 진실이 드러날수록 무너지는 속도는 신뢰와 비례한다.
그리고 애틋한 한 여성을 살인마에게 잃어버린 전직 형사 히구치, 이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그 눈에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나 충격, 범인에 대한 분노, 경찰에 대한 울분 같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그게 뭔지 순식간에 간파했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감정이 자기 내부에도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얼굴에 비치는 표정을 보아 그녀도 히구치의 눈에서 그것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오루는 필사적으로 히구치를 - 그리고 서로가 안고 있는 무게를 - 외면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으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현대사회는 갈수록 황폐해져가는 사회문제로 인해 사람들의 '정신병'을 키워나가고 있다. 서로에게 벽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소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서 희열과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간 실제로 벌어져왔던 잔인한 사건들을 제시하며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저자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보다 더한 작가의 노력이 이 책을 뒤덮고 있다.
작가가 보이는 엄청난 트릭으로, 배신감에 부르르 떨고 싶다면 당장 책장을 넘겨보시길, 읽는 이가 누구든 책을 1페이지로 다시 돌아가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