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부터 '나'만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휴직을 취하고 있던 혼마 슌스케. 그런 그에게 인연을 끊다시피 살고 있던 처의 조카 구리자카 가즈야가 찾아온다. 자신의 약혼녀였던 '세키네 쇼코'가 사라졌다는 것! 결혼을 준비하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해 신용카드를 만들라고 권유했던 가즈야는 그녀가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즈음, 그녀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자초지종도 모르고 무작정 사라져버린 약혼자를 어찌할 바 모르던 가즈야는 그간 소원하게 지냈던 혼마 슌스케에게 손을 내민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을 시작하게 된 슌스케. 하지만 단순하리라 생각했던 일이 뭔가 이상하게 꼬여가기 시작한다.
 

현대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된 신용카드. 사회는 신용 카드의 사용을 장려하고 대책 없이 진행되던 정부의 정책에 '신용 불량자'라는 딱지를 다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이것은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은 TV를 틀면 끊임없이 나오는 대출 광고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1992년도에 쓰여졌음에도 지금의 시대와 전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일본과의 시대 격차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사회 자본주의의 모습을 잘 담아낸 미야베 미유키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이 작품이 저자의 최고작이라 평가되며 그녀의 작품들이 『화차』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돈도 없고, 학력도 없고, 별다른 능력도 없고, 얼굴도 그걸로 먹고살 만큼 예쁜 것도 아니고, 머리도 별로 였고 삼류 이하의 회사에서 잡무만 보고 있었죠. 그런 사람이 마음속에서는 텔레비전이나 잡지, 소설에서 보고 들은 화려한 생활을 꿈꾸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냥 꿈만 꾸는 걸로 만족하든지, 그게 싫으면 어떻게 해서든 꿈을 이루어 보려고 노력해 보든지 했겠지요. 그래서 실제로 출세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나쁜 길로 빠져든 사람도 있을 거예요. 옛날에는 아주 간단했어요. 방법이야 어쨌든 간에 자력으로 꿈을 이루든가 현 상태에서 포기하든가 둘 중에 하나였잖아요?"

 
화차火車 -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

 
혼마의 추적으로 그녀의 과거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행복하고 싶었다는,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누리고 싶었다는 작은 소망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실종에는 개인파산이라는 어두운 이면이 있었다. 그래, 그녀는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몰고 간 화차 위에 올라탄 것이었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신용카드, 할부, 대출……. 이러한 모든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무서우며,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무참히 짓밟아버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 『화차』.
"걱정 마세요. 나에게 힘을 주는 카드가 있으니까요."
이 작품을 읽고 난 후 예전의 한 카드 광고 카피가 떠오르는 건 우연일까? 사실 그 '힘'이 빚이라는 걸 아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일이리라. 쓴웃음이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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