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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평점 :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이 유명하다는데, 처음 만나보네요.
최근에 나온 <제0호>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신문사의 어두운 세계(?)쯤으로 여기고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마치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 보물섬에 다녀온 기분이 드네요.

제목의 0호는 새 신문의 창간 예비판에 붙이는 이름이었어요.
제0-1호, 제0-2호 같은 식이요.
일단 제일 궁금했던 호기심이 이렇게 풀렸다죠. ㅎㅎ
그런 다음 코멘다토레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몇몇 인사들에게
그 기사를 읽어 보라고 권할 겁니다.
그럼으로써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금융계와 정계의 이른바 성역에 있는
거물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죠.
그러면 그 거물들은 신문 창간 계획을 중단하라고 콤멘다토레에게 요청하겠지요.
그 요청에 응하여 콤멘다토레는 <도마니>라는 신문을 포기하고,
그 대가로 거물들의 성역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될 겁니다. (p37)
이러한 나쁜(?)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신문, 아니 만들어지지는 않을 거지만
마치 만들어질듯한 인상을 주기 위해 예비판 기자들이 모입니다.
주인공은 숨겨진 진실을 알고 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정말 새 신문이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어요.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모두 뚜렷하게 느껴지는데 기자들답게 말을 정말 잘합니다.
바로, 이점이 보물섬에 숨겨진 이야기 찾는 듯한 인상을 받게 했어요.
그리고 중국의 마오쩌둥 사상을 따르는 운동 단체에 가입했지.
나중에 알고 보니까, 스탈린과 히틀러가 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마오쩌둥은 그 둘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더라고.
게다가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친중파 단체에 정보기관의 요원들이
침투해 들어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
그래서 나는 그 단체를 떠나 갖은 노력 끝에 기자가 되었고,
감춰진 음모를 찾아다니는 사냥꾼이 되었지. (p63)
이 책의 배경이 1992년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기자들의 고민과
가십거리를 어떻게 다루는지, 반박이 들어오면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것은
어쩌면 지금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실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분까지도 이렇게 디테일하고 논의하면서 준비하는지는 몰랐거든요.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제목만 봤을 때는 미스터리물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신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의견과 생각, 각자의 아이디어는 웃기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어요.
나는 자유에 찬성해요.
사람은 저마다 저기 생각대로 살면 돼요.
하지만 정계에도 비역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의회에도 있고 정부에도 있죠.
사람들은 작가들이나 발레 무용수 같은 사람들만 비역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비역쟁이들 가운데 일부는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알지도 못하죠. 그들은 하나의 마피아처럼 서로를 돕고 있어요.
그것에 대해서는 우리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만하죠. (p223)
그리고 이 책의 재미는
사람, 즉 등장인물들이 가진 꿈과 열정, 그리고 남몰래 숨기는 비밀도 한 몫합니다.
추리 소설까지는 아니지만, 시작부터 주인공이 무척 위험해 보였거든요.
죽음을 앞둔 그가 꺼내 놓는 기억들이 서막을 열어요.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모든 일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느니 말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기억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p28)
하지만 주인공 '콜론나'에 대해 말하자면 김빠진 사이다? 같은 느낌이랄까요.
딸 같은 나이 차이의 애인과 달콤한 장면도 있지만!
어쩌면 그러한 주인공의 처세가 지금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습니다. 남의 말을 인용해서 죄송하지만,
우리 두 사람 다 <특성 없는 남자>로군요.
저는 계약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p40)
1인칭 시점만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답답함은 못 느꼈어요.
끓일수록 진국이 우러나는 것처럼,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한 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한 번만 읽고 지나가기엔 너무 아까운 책인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