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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텍 ㅣ 이삭줍기 환상문학 2
윌리엄 벡퍼드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림원 / 2020년 2월
평점 :
고딕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새로운 '고딕 소설'이 나왔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읽었어요.
보통은 중세 유럽의 성이나 음산하고도 비현실적인 관념, 불멸의 존재로 비밀스러운 악마적 매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조금은 생소했던 '아랍풍'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죠.
(개인적으로) 고딕의 묘미는 가장 마지막에 등장했습니다.
이세상 모든 탐욕과 권능을 약속한 '지하 화염의 궁'
그로테스크 + 호러 + 공포를 넘어서 정말 특이하고 독특한 작품입니다.
이야기 자체의 중심은 잡혀있지만 읽다 보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아요ㅋ
그가 팔을 높이 들어 올릴 때마다 아이에게 주는 상이 공중에서 반짝거렸다.
그러나 칼리프는 한 손으로는 뛰어나오는 아이에게 상을 전달하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그 가엾고 순수한 아이를 심연으로 밀어 넣었다.
심연 밑바닥에서는 지아우르가 음침한 목소리고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더! 더!"
- 바텍 _44p
주인공 '바텍 칼리프'는 신을 대리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질 만큼 부와 권세를 모두 가진 인물인데
탐욕스럽기가 그지없습니다. 자신의 오감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5개의 궁을 짓고 향락을
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행성의 계시를 읽어 자신의 운명을 더욱 강력하게 하려 합니다.
최고의 자리에 대한 욕망에 물든 바텍 보다 '더 높은 탐욕'을 품은 여인도 등장하는데요,
바로 어머니 '카라티스' 입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견고한 탑을 만들어 온갖 사악한 것들을
보관하고 관리하는데 ..... 시체나 독은 기본이고 상상초월이라능;;
그녀는 자신과 아들만이 알고 있는, 두꺼운 벽 안에 교묘하게 파놓은 비밀 계단을 통해
우선 고대 파라오들의 무덤에서 꺼내온 미라들을 보관해놓은 신비의 방으로 갔다.
그녀는 벙어리들에게 이 미라들 가운데 몇 개를 꺼내라고 명령했다.
카라티스는 그곳에서 회랑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벙어리에 오른쪽 눈이 장님인 검은 여인 쉰 명이 가장 독이 강한
뱀들의 기름, 코뿔소의 뿔, 인도 내륙에서 가져온 미묘하면서도 강한 냄새를 풍기는
나무 등 무시무시하고 진귀한 물건들을 수도 없이 관리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때를 대비하여 모아놓은 것들이었다.
- 바텍 _50p
기묘한 나그네와의 만남으로 '권능의 탐닉'에 빠진 바텍은 그래도 신에 대한 믿음을 조금은
내비치기도 합니다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단호하게 끊어버립니다. 오로지 지옥의 모든
권한과 권속을 누리라고 채찍질합니다. 결국, 나그네가 알려준 방법대로 아이들과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면서 '지하 화염의 궁'으로 떠나는데...
지옥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던 장면과
이미 오래전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의 충격적인 모습
신이 마지막까지 참회의 기회를 주려고 했던 과정
무시무시한 지옥의 왕 앞에서도 전혀 굽힘 없이 원하던 것을 요구하던 카라티스의 탐욕
불과 고통이 곧 그대의 심장을 완전히 사로잡을 것이니,
어서 남은 시간을 이용하라!
당황스러울 정도로 잔인한 장면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충성심과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기묘한 괴담 같다고나 할까요.
욕심의 끝판왕이었던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18세기 초에는 <천일야화>가 알려지면서 유행을 했나 봅니다. 아랍 작가인가? 싶었는데
저자 '월리엄 베퍼드'는 영국에서 태어난 금수저로, 다양한 분야의 교육을 받고 여행을 즐겼으며
괴짜 예술가로 알려졌다고 하는데 단 한 권인 이 책만을 썼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번역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재밌더라구요.
확실히 호불호를 가진 책이지만, 새로운 고딕 문학을 즐길 준비가 되셨다면 과감히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이제까지 느끼지 못한 독특하고 기묘한 맛입니다.
"<바텍> 읽어봤어요?" 라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요 ㅎㅎ
'이삭줍기 환상문학'은 고정관념이나 기존의 틀을 고집하지 않으면서도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을 줍줍해서 풍성한 책의 잔칫상을 차리고자 하는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저는 대환영입니다. 숟가락 들고 다음 편도 냠냠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