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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1년 4월
평점 :
일기를 통해 조선인의 소소한 일상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호칭이나 명칭을 현대식으로 바꿔서 가독성을 높인 점과
사건 순서대로 나열한 일기가 코믹하기까지 하다.
이게 무슨 양반의 모습인가.
머리털을 숭숭 기른 스님이자, 수염이 숭숭난 전업주부지.
- 1801~1802년 심노숭의 일기 <남천일록> 中 _176p
1614년 10월 29일, 꼿꼿한 영남 선비 '김령'의 일기로 시작된다.
그의 계암일록에는 시험의 공정성과는 전혀 다른 비리들이 적혀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등수를 외치는 감독관이 있는가 하면
응시자의 얼굴을 빤히 보며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 체크도 하고
대리 작성도 모자라 형편없는 시험지에 '합격'을 써 붙이기까지 ㅋㅋ
<나는 네가 과거시험장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김령은 자신의 일기를 통해 수상한 감독관 고발을 이어간다.
조즙이라는 사람이 인맥으로 감독관이 되더니 실 거주지는 전혀 다른
다른 지역 사람을 우르르 데리고 시험을 친 것이었다. (아주 가관임ㅋ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항의하며 감독 거부, 응시 거부를 하지만
조즙파 일행이 나타나 선비를 폭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웃긴 건, 김령의 어르신이 "기출문제를 열심히 준비하게."라며 편지를
보내서 집안 식구들이 어르신까지 찾아뵙고 정보를 자세히 들었는데
이후 제출된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ㅎㅎ
뇌물과 청탁은 기본이고 이미 다른 곳에서 출제된 문제라니!
어쨌거나 출세를 향한 길은 험란하기만 하다.
어렵게 합격한 '노상추'의 일기에는 '거지꼴'이 된 신세를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자의 설명을 보면 그 이유가 이렇다.
순수한 교육비용과 가장의 부재로 인한 경제적 비용, 과거 일정을 따라
서울을 오가는 비용과 비리자금 등, '영끌'하는 서울살이까지 상상 초월인 것.
무과에 합격은 했으나, 가산과 유산 모두를 탕진한 뒤였다.
심지어 서울살이하던 사랑방의 집주인이 타인에게 방을 넘기려 한다.
사백 냥을 더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노상추는 인심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허탈해한다.
지금이나 조선이나 집값은 문제였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이렇듯 실제 일기뿐만이 아니라 저자의 설명과 조선 시대의 역사를 함께 다루고 있다.
배 한 필의 가치나 조선 시대의 기출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조선 사람들이 쓰던 재미있는 비유 '거자칠변'같은 부분도 다루고 있다.
<신입 사원들의 관직 생활 분투기> 그들이 어떻게 직장 생활을 했는지 와
<이 천하에 둘도 없는 탐관오리 놈아!> 조선 형벌도 나오고 (감방 생활 등 죄수 본인 부담!)
이문건이라는 양반의 꼼꼼한 일기(기록)로 노비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내용도 있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암행어사라니!> 이제까지 알던 암행어사와는
전혀 달랐던 상거지!ㅋㅋ 암행어사의 수난시대를 지나
ㅡ 나의 억울함을 일기로 남기리라
ㅡ 식구인지 웬수인지 알 수가 없다
ㅡ 예쁜 딸 단아야, 아빠를 두고 어디 가니
ㅡ 그 땅에 말뚝을 박아 찜해놓거라
ㅡ 이씨 양반은 가오리고, 류씨 양반은 문어라니까
노비들이 양반을 놀리던 상황을 기록한 일기까지 다양하고 흥미진진하다.
마음이 아팠던 내용도 많았는데, 바둑돌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흰 돌, 검은 돌을 가져다가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갈면
한 달에 30개 정도인데 200개 묶음이 되어야 팔았다고 한다.
게다가 나라에서 2천 개씩이나 가져가고...ㅠ
자연재해 어벤저스 총집합의 결과 대기근이 와서 5년 동안 4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윤이후의 일기도 놀라웠다.
조선 사람들은 일기를 쓸 때 누군가가 볼 것을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누군가의 사소한 기록이 그 시대를 얼마나 보여주는지 새삼 감탄스러웠다.
내 일기도 먼 훗날 이런 소중한 역사의 한 장면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시시콜콜 #존잼스 #조선 #역사 #책선물
역사 드라마보다 재밌는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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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실린 실제 사진과 그림이 흐릿하고 작은 것도 있어서
좀 더 선명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