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강
은희경 외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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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른이 되었다. 이 책에 글을 쓴 대부분의 작가들처럼, 나도 내가 서른이 된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내겐 스물 일곱 이후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어떤 삶이 펼쳐질지 막연하고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서른은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숫자이다.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던 시기이며,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배울 걸 어느 정도 배우고 본격적으로 사회에 정착하며 살아갈 나이다. 이 책에 글을 쓴 이들은 작가라는 특성상, 20대에 겪을 수 있는 경험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정착하지 못한 자의 불안함, 아웃사이더로 머문 삶, 여기에 결혼과 출산까지 겹치면 극도의 우울증을 동반한 이들의 삶으로 압축된다.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주의한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 하면서도 극단으로 치닫는 그들의 정서에는 깊이 동화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실제 삶이 소설처럼 거의 정신병자 수준이라면, 세상은 참 살맛 안나며 꽉 죽는 게 상책인 것.

그러나 이 소설들 하나 하나는 내게 어떤 면에서 위로가 되어 주었다. 아, 나만 불안한 게 아니구나, 나만 특이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 가끔 우울해지기도 하고, 바닥도 치고 해야 다시 살 힘이 생기니까...서른의 강을 건너는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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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밭으로 오세요
공선옥 지음 / 여성신문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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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처럼 어미의 마음을 가슴 아프게 드러내는 작가는 없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던가, '엄마의 마음'이라던가 하는 좀더 다듬어진 정서가 아니라, 헤어나오기 힘든 가난 속에 죽을 힘을 다해 자식들을 키워가는 '어미의 마음'. 거의 본능에 가까운 이 치열함에 우선 기가 질리고, 마음에 거칠게 생채기를 낸다.

그녀의 본능적 모성애 앞에서, 소위 배운자들의 가식은 위선으로 드러난다. 강필순의 두번째 남편이 되는 의사 심이섭은 가난한 자에 대해 드물게 사랑을 베풀던 결혼 전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결혼 후 차가운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 변화가 좀 낯설다. 그러나 심이섭을 중심으로 한 배운자, 가진자들의 세계는 얼마나 자아도취적이고 자기만족적인지, 강필순의 말대로 스스로가난하기로 결심한 자들의 모임 같은 것은 한번도 절대 가난 속에 살아본 적 없는 이들이나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쪽에 있는가? 이 소설의 주인공 강필순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적이다. 가족 이기주의에 깊이 빠져 자기와 친밀한 어떤 집단 속에서만 안정과 기쁨을 추구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공선옥은 아픈 진실을 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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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 엽기전
백민석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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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의 소설을 읽기는 이번이 두번째다. 특이한 소재와 구성을 선택한 짧은 단편 한 개를 읽어본 후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일의 현대 작가 파트라 쥐스킨트의 <향수>를 떠올렸다. 연쇄살인이라는 코드, 그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모습. 백민석의 이 소설은 한국인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의 특이한 상상력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으론 TV에서 아침 저녁으로 담담하게 내보내고 있는 각종 엽기적인 사건이 자극이 될 수 있고,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독특하고 묘한 분위기도 소재가 될 수 있었겠으나, 그런 소재에서 이런 기묘한 소설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재주이다.

나는 작가의 머리 속이 어떤 상상들로 채워졌는지 궁금하다. 윤리의식이 결여되어 인간과 동물 사이를 오가는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오늘날 현대인들 속에 내재된 극도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읽을 수도 있고, 과연 윤리란 어떤 것인지, 그들과 나는 얼마나 다른지도 생각할 수 있다.

다소 무겁고 결국은 교훈적인 얘기에 그치고 마는 수많은 한국 소설들 중에 특이한 냄새를 풍기며 매력적으로 다가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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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귐의 기도
김영봉 지음 / IVP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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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놀랐던 점은 이 책의 저자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개 신앙관련 서적이 번역서가 많거니와, 특히 성경강해서 등을 제외하면, 이처럼 기도를 주제로 한 책에 대해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는 필자로는 헨리 나우엔 등의 몇몇 외국저자들뿐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읽기도 쉬울 뿐 아니라, 그동안 나 혼자 이게 아닌데, 정말 영성 있는 삶은 이런 것이 아닌데, 뭐가 문제일까 늘 자책감과 의문에 싸여있던 여러 문제에 대해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기도에 대해 쉽게 오해하는 것은 급할 때 떼쓰듯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협박하고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동어반복이 되고, 의무가 되며, 끝끝내 투쟁해서 자신의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욕망의 투영이 된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며, 그래서 설레고 기쁘며, 기다려지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권한 침묵기도와 자연 속에서의 기도, 조용히 주 앞에 나아가는 것들에 대해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준 것이 가장 기쁘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영성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주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자세를 회복할 때가 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저자가 권한 방법들을 조금씩 실천해볼 생각이다. 그래서 좀처럼 변하지 않는 나의 인격이 하나님을 닮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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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봤다 - 작가정신 소설향 8 작가정신 소설향 23
성석제 지음 / 작가정신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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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위트, 풍자와 해학을 넘나드는 성석제의 글들은 사실 요즘 소설 같지는 않다.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연암 박지원의 소설들을 떠올린다. <허생전>이나 <호질>처럼 풍자할 대상을 마음껏 조롱하는 그의 글의 특징이 이 소설에 잘 나타나있다.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은 너무 짧다는 것이다. 서사가 좀더 강화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이 짧은 말장난도 그이기에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는 물고 등장한다. 우리 주위에도 가만 보면 누구의 무엇되는 관계로 얽혀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들의 사연 또한 얼마나 기구한가? 성석제 말마따나 모두 다 소설 같은 사연을 안고 산다. 다음번에는 좀더 긴, 성석제의 장편 소설을 읽어볼 생각이다. 그와중에도 그의 유머가 식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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