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어 도둑 - 이청준의 흙으로 빚은 동화
이청준 지음, 우승우 그림 / 디새집(열림원)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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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진짜 즐거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많이 먹게 되면 무엇을 기억하는 힘이 차츰 쇠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실제 있었던 일과 생각 속의 일들이 뒤섞이는 일이 생기게 된다. 요즘 이야기 중에 자꾸 실제의 일에서 옛날 기억 속으로만 빠져들어 가시려는 것을 보면 할아버지께도 차츰 그런 일이 생기시는 것 같다. 할아버진 아마 나이를 더해가실수록 그런 현상도 더해가실 게다. 그래서 나중엔 아예 실제 일과 기억 속의 일을 구분하지 못하시는 때가 올 수도 있다.할아버지께서 영영 옛날 기억 속으로 빠져 들어가시면, 그런 이야기 속엔 참다운 즐거움도 온전한 삶도 얻을 수 없는 거다. 우린 힘을 합쳐 그걸 막아드려야 한다. 할아버지께서 더 이상 남의기억을 자신의 일로 말씀하시는 것을 말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이다. 아빠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만류하고 드는 것은 그 때문이야." <이야기 서리꾼> 중-121~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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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8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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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있었던 사건일는지도 모르고, 지어낸 이야기일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옛날에 지혜로운 사람들, 많이 배운 학식 있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이 이야기를 사랑하고 철석같이 믿은 사람들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단순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머리말> 中-13쪽

"그 좋은 머리 때문에 우린 그 여자를 잃어버렸어. 손금을 보고 또 그밖에 다른 점을 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결국에는 마녀로 낙인이 찍혔어. 법에 따라 약한 불에 천천히 굽혀 죽었지. 죽음을 아주 당당하게 받아들이던 그 할망구의 장한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하다고......주위에 모여들어 넋을 잃고 바라보는 구경꾼들한테 그 할망구는 저주하며 욕을 퍼붓더라고. 불길이 날름거리며 위로 치솟아 올라가 자기 얼굴을 핧고 몇오라기 되지 않는 머리카락을 삼키고 잿빛 머리통 주위에서 바삭바삭 하는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말이야......사람들한테 욕을 퍼부었다고, 알겠어?......욕을 퍼붓고 있었던 말씀이야! 천년을 살아도 그렇게 가슴 후련한 욕지거리는 다시 듣지 못할 거야. 아, 그 여자와 함께 그녀의 욕 솜씨도 사라졌어. 지금도 천박하고 시시하게 흉내를 내는 것들이 남아 있지만, 그 할망구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뭐야." <17. 푸푸 왕 1세> 中-214~215쪽

"내 이름은 요컬이라고 하지. 한때 농사를 지었는데 제법 잘 살았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도 있었고.... 한데 지금은 지위도 직업도 달라졌단 말씀이야. 아내와 자식들은 먼저 이 세상을 하직했어. 어쩌면 천국에 가 있거나, 아니면 어쩌면 지옥에ㅡ그 반대쪽에 있는 곳 말이야.ㅡ가 있을 테지. 하지만 내 가족이 더 이상 영국에 살지 않는 것에 대해 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네! 어디 한 곳 비난할 데가 없는 우리 어머니는 아픈 사람들을 간호하면서 연명을 하려고 하셨지. 그런데 어느 날 병자 하나가 죽었어. 의사들이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자 졸지에 우리 어머니는 마녀로 몰려 불에 타 돌아가셨어. 내 새끼들이 그 모습을 쳐다보면서 흐느끼더군. 그게 영국 법이야!...자, 다들 한 잔씩 들자고!...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축배를 들자고!...우리 어머니를 지옥 같은 영국에서 건져 준 자비로운 영국 법을 위하여 건배! 고마워, 고맙다고, 친구들. 나는 이 집 저 집 구걸하러 다녔지...나랑 아내랑 둘이서...물론 굶주린 자식들을 데리고 말이야...하지만 영국에서는 배고픈 것도 죄가 되거든...그래서 놈들은 우리 식구를 홀딱 벗기고는 매질을 해 대며 동네-217쪽

세 곳을 돌아다니더군. 자, 자비로운 영국 법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축배를 드세!...내 아내 메리는 매를 너무 맞아 피를 하도 많이 흘린 탓에 다행스럽게도 지옥에서 빨리 벗어난 거야. 이제 온갖 고생에서 해방되어 지금 가마터 자리에 묻혀 있어. 또 우리 아이들은...글쎄, 법에 따라 내 이 동네 저 동네에서 매질을 당하며 쫓겨 다니는 동안 굶어 죽었어. 얘들아, 마시라고...한 방울만 마셔...새 한 마리 죽이지 못했던 불쌍한 내 어린 것들을 위해서 한 방울 마시자고...난 다시 구걸하러 다녔지...빵 부스러기 하나 얻으려고 다니다가 마침내 노예로 팔렸지 뭐야...여기 뺨에 불로 지진 자국이 있다고. 지금은 때 때문에 더러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깨끗이 씻으면 불에 달군 인두로 붉게 '에스(S)'라는 글자를 새긴 자국이 보일 거야! 이건 노예란 뜻이라고! 알겠어? 그 말을 알고 있느냔 말이야! 영국 노예!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이 몸이 왕년에 노예였던 말씀이야. 얼마 뒤 난 주인집에서 도망쳤어. 만약 붙잡히는 날에는...이런 법이며 이런 법을 명령하는 이 땅에 하늘의 저주가 내릴지어다!...난 모가지가 날아가게 되겠지!" <17. 푸푸 왕 1세> 中-218쪽

"너도 저애 말을 들었지, 마저리?...저 애가 왕이라고 했어. 그게 정말일까?"

"그럼 정말이잖고, 프리시? 저 아이가 거짓말을 할까? 내 말 잘 들어, 프리시. 만약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건 거짓말이 되는 거야.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잘 생각해 봐. 정말이 아닌 것은 하나같이 거짓말이거든...그러니까 그건 정말일 수밖에 없는 거란 말이야." <18. 부랑자들과 어울린 왕자> 中-243~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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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니 - 나의 삶 나의 문학 시리즈
이청준 지음 / 문학과의식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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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보면 지난 33년 동안 내가 소설을 써 온 일도 그와 비슷한 노릇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우리의 삶도 혼자 어두운 밤 눈길을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앞을 잘 알 수 없는 밤눈길처럼 이런저런 장애와 위험이 많은 삶의 길에서 누구나 마음의 위안을 얻고 의지를 삼아 갈 만한 동행자를 찾게 마련이라는 점에서. 앞서간 선행자의 발자국을 찾지 못해 그의 위로나 지혜를 얻을 수 없는 경우에도 혼자서 이리저리 그것을 꾸며 좇는 가운데에 우리 삶은 중단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그 허구 속의 선행자뿐 끝끝내 동행자의 부재 속에 종착지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그 허구를 허황하고 어리석은 희망으로 허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재의 선행자(그래서 동행자가 되는)를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다행스런 일이 없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소설의 몫이기보다 현실의 몫에 더 가까우리라는 점에서 그 밤길의 허구는 실재의 선행자(혹은 동행자)보다 훨씬 소설의 영역에 근접해 있고, 그 유용성도 더 소설적인 터이므로.

<작가의 말_밤길의 선행자 좇기> 中-18쪽

한양대는 86년까지, 2년 가까이 있었죠. 그 과정은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고 내가 할 수가 없어서.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것도 있지만 창작하는 입장에서 강의란 나한테 방해가 되더라구요. 나는 책을 읽어도 메모를 안 해요. 잊어버려야 돼요. 잊어버려야 되는 얘기들을 번호 붙여서 메모하고 판서하고...... 어떤 면에서는 체험들이 모두 녹아 없어져야 되는데, 뭘 쓰려고 하면 아는 체하는 잡지식들이 자꾸 나오니까.

<대담_이청준의 생애연표를 통해서 본 인문주의적 사유와 새로운 교육문화를 위한 이야기들> 中-146-147쪽

그 당사자들이야 우리들하고는 해석이 아주 다르죠. 7~80년대 오면서부터는 의식 자체가 집단화되잖아요. 저쪽이 워낙 집단적인 힘이 강하니까......, 그래서 양면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힘의 비밀에 대한 변화상이 있을 수 있겠고......, 상호 자존심, 존엄성이랄까 원초적인 존엄성이라고 부를 그런 인격을 모두 깔아뭉개 놓고 잘 살게 해 줬으니 되지 않았느냐고 큰 소리들을 쳤지요. 그 뒤 80년대 후반으로 가면 민주화를 해도 될 것 같았는데 잘 안 돼서...... 아까 정 선생이 말한 IMF 이야기는 그런 허세 속에서 싹튼 거겠지요.

<대담_이청준의 생애연표를 통해서 본 인문주의적 사유와 새로운 교육문화를 위한 이야기들> 中-152쪽

소설의 힘과 생명은 무엇보다 쉼없이 살아 움직이는 눈앞의 생생한 삶의 현실 가운데서 얻어지는 게 일반적 상식이다. 현실 부정과 관념 지향의 측면이 강한 추상적 본질 세계에의 탐구는 그 나름의 덕목을 부인해서도 안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철학적 영역의 소설 이전 단계이지 총체성과 구체성을 함께 요구하는 소설 미학의 표현 단계에는 이르기 어려운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생각을 다시 해 볼 수밖에 없었다. 내게 소설을 쓰게 한 보다 크고 결정적인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생각을 더듬어 찾아낸 것이 내가 어린 시절을 농촌 마을에서 보낸 시골내기라는 점이었다.

<문학 자서전_나는 왜, 어떻게 소설을 써 왔나> 中-190쪽

대량 정보의 고속 유통 현상은 우리의 삶과 말에 더할 수 없는 정확성과 공리성[+확정성]을 확보해 준 듯싶어 보인다[공리적 언어]. 그러나 이면을 살펴보면 그것은 그럴 법해 보이는 것뿐 실제로는 갖가지 폭력과 소외를 낳고 있다. 한 예로, 세상 읽기 공부삼아 전자통신망으로 잠시 정보의 양과 속도의 싸움터라 할 수 있는 주식시장엘 들어가 갖가지 정보와 주가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예측불허로 불합리하고 부도덕하게 움직이는가를 알 수 있다. 대량 고속 정보의 정확성과 공리성은 은행이나 대기업 투자기관들에게 일방적으로 선점, 좌지우지 되어 가게 마련이고, 개미군단이라는 대다수 개인들은 허겁지겁 그 기관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하위 정보에나 매달리다 종당엔 자기 주가의 무참한 학살을 겪게 된다. 그 보이지 않는 정보조직(정보언어)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고 만 개인들(개인언어)의 광범하고 무기력한 소외현상, 그리고 그 소외된 말들.

<문학 자서전_나는 왜, 어떻게 소설을 써 왔나> 中-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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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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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passio)'이 아니라 '감정(sentiment)'이라는 어간으로 동정이란 단어가 형성된 언어에서 이 단어는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나쁜 감정, 혹은 저급 감정을 지칭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어원이 발휘하는 비밀스러운 힘에 의해 이 단어는 또 다른 후광을 받아 보다 넓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co-sentiment)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동정(soucit, wspolczucie, Mitgefuhl, medkansla)은 고도의 감정적 상상력, 감정적 텔레파시 기술을 지칭한다. 감정의 여러 단계 중에서 이것이 가장 최상의 감정이다.-37쪽

어머니는 테레자에게 어머니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라며 지칠 줄 모르고 설명했다. 아이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한 여인의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녀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테레자는 삶의 최고 가치는 모성애이고 모성애란 큰 희생이라고 믿었다. 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 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79쪽

그녀는 그들의 만남이 처음부터 오류에 근거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날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던 <<안나 카레니나>>는 토마시를 속이기 위해 그녀가 사용했던 가짜 신분증이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사실이다. 오류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행동 방식 혹은 감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 불가능성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왜냐하면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하던 중 삼십 초쯤 말을 멈추었던 둡체크 같았고, 말을 더듬고 숨을 돌리고 말을 잊지 못했던 그녀의 조국과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강해질 줄 알아야 하는 사람 그리고 가장가 약자에게 상처를 주기에는 너무 약해졌을 때 떠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약자다.-133쪽

프란츠의 아버지가 느닷없이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 어느날 문득 어머니 혼자 남게 되었던 것은 그의 나이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였다. 프란츠는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고 의심했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평범하고 차분한 말투로 비극을 감추었다. 시내를 한 바퀴 돌자고 아파트를 나오는 순간, 프란츠는 어머니가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당황했고,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자존심이 상할까 두려웠다. 그는 어머니의 발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 채 두 시간 동안 그녀와 함께 거리를 걸어야 했다. 그가 고통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155쪽

화가였던 그녀는 프라하 시절부터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하고, 타인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생김새를 구별할 줄 알았다. 이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중지보다 검지가 조금 더 길었고 그 손가락을 상대방에게 겨누었다. 하긴 1968년까지 십사 년 동안 보헤미아를 통치했던 노보트니 대통령은 저 남자와 똑같이 미용실에서 파마한 회색 머리였고 중부 유럽 모든 주민 중에서 가장 긴 검지를 뽐낼 수 있었다.-163~164쪽

그들은 함께 오랫동안 뉴욕을 거닐었다. 환상적인 경치 사이로 꾸불꾸불 이어진 오솔길을 걷는 것처럼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구경거리가 바뀌었다. 젊은 남자 하나가 인도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예쁜 흑인 여자가 나무에 기대 졸았다. 검은 정장 차림 남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향악단을 지휘하듯 손을 내저으며 길을 건넜다. 분수의 수반에서 물이 졸졸 흘렀고, 그 주위에 석공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흉측하게 생긴 붉은 벽돌집 벽을 타고 철재 사다기락 달려 있었고, 이 집들은 너무 추한 나머지 그 추함 때문에 아름다워 보였다. 그 벽돌집 아주 가까이에 거대한 유리 마천루가 우뚝 솟아 있고 그 뒤로 탑, 회랑, 금빛 기둥이 있는 조그만 아랍풍 궁전이 꼭대기에 있는 또 다른 건물과 이어졌다.-169~170쪽

사비나에게 있어 진리 속에서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사비나는 작가가 자신의 모든 은밀한 삶, 또한 친구들의 은밀한 삶까지 까발리는 문학을 경멸했다.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고 사비나는 생각했다. 또한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도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사비나는 자신의 사랑을 감춰야만 한다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진리 속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187쪽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202쪽

테레자는 그녀가 가족과 어떻게 살았는지 표현하기 위해서 거의 유년기부터 이 단어를 사용했다. 집단수용소, 그것은 밤낮으로 서로 뒤엉켜 사는 세계였다. 잔인성과 폭력은 이 세계의 부수적 (전혀 필연적이지 않은) 측면에 불과했다. 집단수용소, 그것은 사생활의 완전한 청산이었다. 친구와 술을 마시며 토론할 때 자기 집에서조차도 (그것이 치명적 실수였음에 틀림없다!) 안전하지 못했던 프로하즈카는 집단수용소에서 살았던 것이다. 어머니 집에 살던 시절의 테레자는 수용소에서 지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수용소란 아주 예외적인 것, 놀랄 만한 것도 아닌 뭔가가 주어진 조건, 뭔가 근본적인 것,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있으며 온 힘을 다해 극도로 긴장했을 때만 벗어날 수 있는 그 어떤 것임을 그녀는 알았다.-222쪽

그녀는 나무를 껴안고 몸을 떨며 흐느꼈다.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그녀가 잃었던 그녀의 아버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 그녀의 증조, 고조할아버지, 거칠거칠한 나무껍질을 통해 그녀에게 뺨을 대 주기 위해 아득히 먼 시간의 심연에서 온 무한히 늙은 남자인 것 같았다.-246쪽

세월이 흐른 뒤 생각해 보니 이 익명성이 나라에 아무런 위험도 주지 않은 채 그냥 스쳐 지나간 것 같지는 않았다. 거리나 집이 어느 하나 원래 이름을 되찾지 못한 것이다. 보헤미아의 온천 도시가 하루아침에 상상 속의 작은 소련으로 변했고, 테레자는 그들이 이곳으로 찾으러 왔던 추억이 압수당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도저히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없었다.-272-273쪽

중부 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오로지 범죄자들의 창조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인 진리를 어둠 속에 은폐하고 있다. 범죄적 정치 체제는 범죄자가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발견헀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이 만든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을 처형하며 이 길을 용감하게 지켜 왔다. 훗날 이 천국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광신자들은 살인자였다는 것이 백일하에 밝혀졌다.-287쪽

1950년대 초 무고한 사람에게 사형선고가 언도되기를 요구했던 체코 검사가 실은 러시아 비밀경찰과 정부에 기만당했다고 해 두자. 그러나 그 기소가 허무맹랑하고, 피고가 결백하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지금, 검사가 자신의 마음만은 순수했다고 강변하며 가슴을 칠 수 있을까. 나는 양심에 한 점의 가책도 없어, 난 몰랐단 말이야, 그렇다고 믿었어! "난 몰랐어! 그렇다고 믿었어."라는 바로 그 말 속에 돌이킬 수 없는 그의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닐까?-288쪽

수많은 여자를 추구하는 남자는 두 범주로 쉽게 나뉠 수 있다. 한쪽은 모든 여자에게서 자기 고유의 꿈, 여자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찾는다. 다른 쪽은 객관적이 여성 세계가 지닌 무한한 다양성을 수중에 넣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324쪽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은 그와 다른 여자와의 사랑이 끝났던 시점에서 정확하게 시작되었다. 그 사랑은 그를 여자 사냥에 나서게 했던 필연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테레자의 그 어느 것도 들춰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완전히 드러난 상태인 그녀를 만난 것이다. 그는 세계의 육체를 열기 위해 사용하는, 그의 상상력의 메스를 채 손에 쥐기도 전에 그녀와 정사를 했던 것이다. 그녀가 정사 중에 어떠할 거라고 궁금해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이미 그녀를 사랑해 버린 것이다.

사랑의 역사는 그 후에나 시작되었다. 그녀의 몸에서 열이 나는 바람에,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 그랬듯이 그녀를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 불현듯 그녀가 바구니에 넣어져 물에 떠내려 와 그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은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337쪽

"그보다도 나는 무엇 때문에 내가 이 기사를 썼는지 자문하고 있어요." 토마시는 문득 그것이 생각났다. 그녀는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버려진 아기처럼 그의 침대 언덕에 좌초했더랬다. 그렇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찾으러 갔던 것이다. 그는 로물루스, 모세,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순간 불쑥 그녀가 보였고, 빨간 스카프로 감싼 까마귀를 가슴에 끌어안고 그의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 이미지가 마음을 한결 푸근하게 해 주었다. 마치 테레자는 살아있고 이 순간 그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며 그 밖에 다른 것은 전혀 중요치 않다고 그 이미지가 그에게 속삭이는 듯했다.-351~352쪽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것보다 생매장당한 까마귀를 꺼내 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요."

그는 이 말이 이해되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해졌다. 예기치 못한 돌연한 도취감이 느껴졌다. 아내에게 그녀와 아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던 그날 느꼈던 것과 똑같은 검은 도취감. 의사 직업을 영원히 포기하겠다고 쓴 편지를 우체통에 던져 넣었던 그날 느꼈던 것과 똑같은 검은 도취감. 그가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니 그가 원하는 바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서명하지 않겠습니다."-353쪽

그러나 작가란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은 말할 수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마당에서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 사랑이 고조된 순간 자기 배 속에서 끈질기게 꾸르륵거리는 소시를 듣는 것. 배신하고 또한 이토록 아름다운 배신의 길 중간에서 멈출 수 없는 것. 대장정 행렬 속에서 주먹을 치켜드는 것. 경찰이 숨겨 둔 도청 마이크 앞에서 유머 감각을 과시하는 것 등. 나도 직접 이런 상황을 겪어 보았다. 그러나 내 이력서 속 자아로부터 그 어떤 인물도 도출되지 않았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우회하기만 했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나는 바로 이 경계선(그 경계선을 넘어가면 나의 자아가 끝난다.)에 매혹을 느낀다. 그리고 오로지 경계서 저편에서만 소설이 의문을 제기하는 신비가 시작된다.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자, 이제 그만 하자. 토마시의 이야기로 돌아가자.-355~356쪽

똥은 악의 문제보다 더욱 골치 아픈 신학 문제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으며 따라서 인류 범죄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점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똥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을 창조한 신, 오직 신에게만 돌아간다.-395쪽

그것이 종교적 믿음이건 정치적 믿음이건 간에 모든 유럽인들의 믿음 이면에는 창세기의 첫 번째 장이 존재하며, 이 세계는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모양으로 창조되었고, 존재는 선한 것이며 따라서 아이를 가지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거기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근본적 믿음을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라고 부르도록 하자.
......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불린다.

이것은 감상적이었던 19세기 중엽에 생겨나 그 이후 다른 모든 언어에 퍼졌던 독일어 단어다. 그러나 그 단어를 자주 사용함에 따라 그것이 지닌 원래의 형이상학적 가치가 지워졌는데, 말하자면 키치가 본질적으로 똥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다. 문자적 의미나 상징적 의미에서 그렇다. 키치는 자신의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398~399쪽

공포는 하나의 충격, 완벽한 맹목의 순간이다. 공포에는 모든 아름다움의 흔적이 결핍되어 있다. 오로지 우리가 기대하는 미지의 사건이 내뿜는 광폭한 빛만 보일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슬픔이란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을 상정한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그들을 기다리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공포의 광채는 휘장에 가리고, 우리는 전보다 세상을 훨씬 아름답게 만드는 푸르스름하고 부드러운 빛 속에서 세상을 발견한다.-493쪽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 갔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 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5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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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172
알베르 카뮈 지음, 김예령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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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고전. 그 중 <이방인>으로 시작한 고전 읽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어쩌면 뫼르소라면 이런 말조차 부담스러워 했으리라 생각되어서, 이 소설에 '관하여' 이런저런 말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다. 담백하게, 유의미한 말만 남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세상 일에는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종종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그것은 현실과 소설세계와의 큰 차이점이리라. 하지만 <이방인>의 뫼르소에게 '이유'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이 소설이 쓰여진 '이유'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까.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울지 않고, 뜨겁게 쏟아지는 태양빛  아래 아랍인을 총쏘아 죽인 것은 그저 그렇게 '벌어진 일'이었다. 이웃들이 포주로 여기고 멸시하는 레몽과 친구가 되는 것도, 갈망하는 여인이지만 그녀와의 '결혼'이라는 제도에는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수식어도 필요없고, 발가벗은 존재 자체로만 그에게 의미가 된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이다. 관습에 따른 관습으로, 죄와 벌에 앞에서 그럴듯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뫼르소에게 판사는 사형을 구형한다.

   왜 끝내 그는 변명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는 것인지, 그것이 답답했다. 그는 설마 위선 없는 태도의 댓가로 사형에 이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두려움이 없는 걸까. 그의 존재는 정직함과 본능만으로 채워져 있는 건가. 이야기의 후반에 이르러서 벼락처럼 쏟아져 내리는 뫼르소의 말들에서, 그 의문이 풀리는 듯하다.

  "그들이 새벽녁에 나를 찾으러 오곤 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나의 저녁들을 그 새벽을 기다리는 데 썼다. 나는 기습당하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내게 어떤 일이 닥칠 때 그 준비가 되어 있는 편이 더 낫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낮시간에만 약간 자고 밤에는 내내 참을성 있게 창유리로 하늘의 새벽빛이 터오는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 가장 참기 힘든 때는 통상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시간대라 알고 있는 무렵으로 접어들 즈음이었다. 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리며 동정을 살폈다. 내 귀가 그처럼 많은 소리를 포착하고 그토록 희미한 음들을 분간해 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게다가 그 모든 시간 내내 발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그러고 보면 내가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엄마는 종종 사람이 완벽하게 불행해지는 법은 없다고 말하곤 했다. 하늘이 채색되고 새 빛이 내 독방 안으로 스며드는 시간이 오면, 나는 나의 감옥에서 엄마의 말에 동의했다. 왜냐하면, 간밤에 발소리를 듣지 말란 법도 없었고, 또 만약 그랬다면 내 심장은 터져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비록 아주 사소한 기척에도 문으로 달려가 나무 널판에 귀를 찰싹 붙이고 정신없이 기다리다 잠시 후 나 자신의 숨소리, 마치 개의 헐떡임처럼 으르렁거리는 그 소리를 듣고 스스로 놀랄지언정 내 심장은 아직까지 터지지 않았고 나는 또다시 24시간을 확보한 것이었다."(203-204)

  죽음 앞에 두려움 없는 것이 아니고, 생의 본능적 감각 앞에 누구보다 민감한 모습인 뫼르소의 모습. 터질듯한 심장을 그러쥔 뫼르소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 장면이 주는 감각이 낯익다. 위선도 위악도 없는 뫼르소의, 가장 그다운 모습이다. 사실 내게도 두려움이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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