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름대로 서재를 개편했다. 마이리뷰 분야를 대폭 손질했다. 새로 만든 꼭지들이 대여섯 개쯤은 될 것 같다. 내가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할 분야를 세분해서 만들었다. 예전에 문학과 비문학, 어린이책으로 삼분했던 대분류 방식에서 탈피하여 작은 분류방식을 취했다. 작정하고 책을 한번 읽어보겠다는 각오로 보아도 좋다. 

한비야식으로 한다면, 일년에 책 100권은 읽어야겠다는 각오다. 일주일에 최소 한권에서 두권 정도. 그게 안되면 방학을 이용해서 많이 읽어볼 심산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던가. 내 지식이 제법 된다는 것이 망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앎이란 것도 부스러기에 불과하고, 삶과 세계의 본질에 육박하는 제대로 된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 요즈음 내가 내린 결론이다.

여러 곳에 기웃거리지 말고, 이 곳에 한 십년 죽치고 앉아서 책읽고 글써 볼 요량을 한다. 무엇보다도 알라딘을 내 베이스캠프로 정하겠다는 결심이다. 이곳에 우선 글을 집적한 뒤 퍼날라도 퍼나르겠다는 것이지. 나도 알라딘 <서재의 달인>에 도전해보아야겠다. 그래서 덕도 좀 보고. 부지런히 읽고, 부지런히 쓰자. 부지런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이승엽의 좌우명은 '혼을 담은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혼을 담은 글쓰기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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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말들의 풍경] <20> 한자 단상(고종석)

2006. 7. 19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607/h2006071817372785150.htm

[말들의 풍경] <20> 한자 단상
인류 최고의 시각 기호… 인터넷시대 아이콘 잠재력
한글전용 승리는 이론 아닌 시장의 논리
한자어가 우리말 절반 넘어 '분리' 불가
동아시아 밖 확산 전망… 조기 교육 필요


루쉰은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며 이 네모난 글자의 궁극적 퇴출을 전망하고 모색했지만, 한자는 약점이 많은 만큼이나 매력적인 문자체계다. 그것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시각 기호다.

한국어 텍스트에서 한자를 보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극소수 학술 서적을 빼면, 한국어는 오로지 한글로만 적히고 있다. 1945년 해방 뒤 오래도록 국어학계를 갈라놓았던 한글 전용론과 한자 혼용론 사이의 드잡이에서 한글 전용론이 결국 이긴 것이다. 한글 전용론의 승리는 이론이나 논리의 승리가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한국어를 한글로만 적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 못지않게 한자를 섞어 써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도 튼실하다. 더 나아가, 같은 수준의 논리적 타당성으로 한국어를 로마 문자로만 써야 한다는 주장도 내세우자면 내세울 수 있다.

한글 전용론의 승리는 또 법규범의 승리도 아니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9일 법률 제 6호로 공포된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은 “대한민국의 공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고 이미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마 동안 필요한 때’가 한없이 늘어지면서 이 법률은 죽은 거나 진배없이 돼 버렸다.

이 법의 폐지와 함께 지난해 제정된 국어기본법이 그 14조 1항에서 “공공 기관의 공문서는 어문 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문자를 쓸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한글 전용론의 승리를 뒤늦게 확인한 것일 뿐 거기 어떤 운동량을 준 것은 아니다.

한글 전용론의 승리는 민주주의라는 가치의 승리이자 어찌 보면 시장의 승리다. 다시 말해 한국어 텍스트의 소비자인 한국 민중이 한글 전용을 바랐기 때문에 한글 전용이 이긴 것이다. 한자 혼용론의 실천적 성채였던 일간 신문이 하나 둘 한글 전용으로 돌아선 것도 새 세대 독자들의 문자 감수성을 마냥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일 테다.

가장 어기차게 한자 혼용을 고집했던 법학 교과서조차, 이제 한글만을 쓰되 필요한 경우엔 한자를 괄호 안에 가두어 덧대는 식으로 표기 체계를 바꾸고 있다. 한글 전용의 확산은 가로쓰기의 확산과 궤를 같이 했다. 한 세대 이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세로쓰기 조판에 한자 투성이 한국어 텍스트를 요즘 젊은 세대는 쉽사리 읽어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한 자연 언어를 한 문자 체계로만 적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텍스트나 한 문장 안에 이질적 문자 체계를 뒤섞는 관습은 일본어나 한국어 바깥에서는 쉬이 찾아볼 수 없다.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제1 공용어인 세르보크로아티아어는 키릴 문자로도 적고 로마 문자로도 적지만, 이 언어의 경우에도 한 텍스트 전체를 키릴 문자로 쓰거나 로마 문자로 쓸 뿐 한 텍스트 안에, 심지어 한 문장 안에 서로 다른 문자 체계를 섞어 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이미 한국어 형태 음운론에 바짝 달라붙어 있던 한글 한 가지로 한국어를 적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렇더라도, 한국어 화자가 한자에서 온전히 독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대 이래 지난 세기 말까지 한국인이 쌓아온 문화 자산이 대부분 고전 중국어, 곧 한문 안에 담겨 있다는 사정 때문만은 아니다.

넓은 의미의 중국어(19세기 말 이래 한국어로 쏟아져 들어온 일본제 한자어를 포함한)는 지난 2,000년 이상 주로 문자 통로를 거쳐 한국어에 깊숙이 파고들었고, 이제 중국계 한국어 곧 한자어는 한국어 어휘의 반을 훨씬 넘게 되었다. 이 한자어들의 적잖은 수는 한자에 대한 지식 없이 쉬이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가 한글로만 쓴 한국어 문장을 쉬이 이해할 수 있는 것도 한자 지식이 어슴푸레하게나마 그 밑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설령 한자어를 이해하는 데 한자 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한자 지식이 한자어 이해를 돕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어 문장을 한글로만 적는 관습을 확립하는 것과 나란히, 초중등학교에서부터 한자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한자 교육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들은 한자 교육 얘기만 나오면 “그 수만에 이르는 글자를?”이라며 과장하지만, 한국어 감각을 키우고 유지하는 덴 2,000 자 안팎이면 넉넉하다. 한 통계에 따르면 심지어 중국어에서도 출판물의 90%를 차지하는 것은 950자에 지나지 않고, 99%는 2,400자로 채워진다.

루쉰(魯迅)이나 궈모뤄(郭沫若) 같은 20세기 중국 지식인들은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漢字不亡, 中國必亡)며 이 네모난 글자(方塊字: 한글도 음절 단위로 네모나게 모아쓴다는 점에서 ‘방괴자’의 일종이다)의 궁극적 퇴출을 전망하고 모색했지만, 결국 한자도 중국도 망하지 않았다.

사실, 익히기 어렵다는 점을 잠시 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피면, 한자만큼 매력적인 문자 체계도 없다. 한자는 지금 살아있는 문자 가운데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체계다. 갑골 문자가 사용되던 기원전 1300년께부터 3천 수백년 동안 바탕을 흩뜨리지 않으며 이어진 그 문자사의 연면성은, 거기 담긴 중국 문화의 찬란함과 더불어, 인류 전체의 자부심을 큰 부분 떠받치고 있다.

상(商) 왕실의 점복(占卜) 기록인 갑골문에서 시작해 주대(周代)의 금문(金文), 춘추전국시대의 대전(大篆)과 고문(古文), 진(秦)의 소전(小篆)을 거쳐, 한대(漢代) 이후의 예서(隸書) 해서(楷書) 초서(草書) 행서(行書)에 이르는 그 필체의 변전도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한자는 ‘글’쓰기가 아닌 ‘글자’쓰기를 하나의 버젓한 예술 갈래로 만든 거의 유일한 문자 체계다. 이른바 인쇄체와 구별되는 필기체를 고안해낸 문자 체계들도 글자 쓰기를 깊이 있는 예술로 만들어내진 못했다.

게다가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의 네 조자법(造字法)과 전주(轉注) 가차(假借)의 두 용자법(用字法) 등 이른바 육서(六書)를 통한 기호와 현실의 율동적인 짝짓기도 눈 호사를 베풀기에 넉넉할 만큼 현란하다. 다른 모든 문자 체계처럼 한자 역시 음성언어의 그림자일 뿐이지만, 한자의 이 별난 진화과정은 한자 하나하나가 실물이라는 환상을 때로 불러일으킨다.

형태가 소리만이 아니라 뜻에 대응하는, 그래서 한 음절로 발음하는 한 글자가 그대로 한 형태소가 되는 표의성(表意性)은, 육서를 통한 그 독특한 발달 자취와 함께, 한자 물신주의을 부추긴다. 그것은 위험한 유혹이지만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기도 하다. 한자는 그 하나 하나가 의미 단위다.

다시 말해 형태소다. 또 한자는 그 하나 하나가 음절단위다. 다시 말해 부분적으로는 소리 글자이기도 하다. 한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형성자는 ‘소리 글자로서의 한자’라는 만화경 속에서 아름답고 진기하게 펼쳐지는 의미의 풍경들이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이런저런 속자(俗字)들, 국민당 정권의 간체자(簡體字)와 공산당 정권의 간화자(簡化字), 일본식 약자(略字) 등 수많은 이체자(異體字)의 존재도 호사가들의 눈길을 끈다. 이런 이체자들은 로마 문자 I와 J가 한 뿌리에서 나왔다거나 V와 U가 본디 한 글자였다는 것과는 급이 다른 문자의 화사한 곡예다. 이런 매력들 대부분은 자주 한자의 약점으로 거론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기나긴 세월 한 문자 체계가 겪은 모험과 장정의 위대한 흔적이다.

이 한자의 모험에 주동적으로 참가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중국인’이라 부르는 대륙 사람들이지만, 한반도와 일본열도와 (한 때의) 베트남 지식인들도 그 모험의 동반자들이었다. 그래서, 비록 베트남어 표기에서는 가뭇없이 사라졌고 한국어 표기에서도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한자는 동아시아 공통 문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인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니시가키 도루(西垣通)도 지적했듯, 한자란 무릇 중국어의 음성 표기라기보다 동아시아의 다양한 음성 언어를 연결하는 일종의 ‘번역’으로 기능해 왔다.

니시가키는 한 논문에서 인터넷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문자(시각 기호)’라는 가능성을 새롭게 연 미디어라는 점을 지적한 뒤, 기본적으로 ‘시각 언어’인 한자가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새 생태 환경의 적자(適者)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추상 개념을 표현하는 아이콘으로 한자보다 더 나아간 시각 기호는 없기 때문이다(‘언어제국주의란 무엇인가’, 미우라 노부타카 외 엮음, 이연숙 외 옮김, 2005, 돌베개).

니시가키의 전망이 들어맞든 그렇지 않든, 한자 지식은 지금보다 훨씬 빨리 동아시아 바깥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그리고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 한국 한자음의 특성
고유어와 다른 음운체계 '쾌' 왜엔 'ㅋ' 발음 全無
지식인 규범어… 방언 없어

한국 한자음은 한국어 음운 체계의 변화에 한편으로 순응하고 다른 한편으로 저항하며 제 나름의 체계를 이뤘다. 그래서 한자음 체계는 고유어 소리 체계와 꽤 다르다. 중세 후기와 근대를 거치며 고유어 음운 체계에서 반치음과 아래아가 사라지는 것과 나란히 한자음도 반치음과 아래아를 구축해 버린 것은 순응의 예다. 그러나 한자음은 그 시기 고유어에 매우 흔하게 된 /ㅋ/ 소리는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ㅋ/을 포함하는 한자음은 ‘쾌’ 음절 하나밖에 없다. 또 내과(內科), 불소(弗素), 활달(豁達), 격정(激情)의 둘째 음절에서처럼 한자음이 환경에 따라 된소리로 실현될 수는 있지만, 낱낱의 한자음에선 고유어에서와 달리 된소리가 체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드물게, 끽(喫), 쌍(雙), 씨(氏) 따위가 있을 따름이다.

한자음은 /ㄷ/ /ㅅ/ /ㅈ/ /ㅊ/ /ㅋ/ /ㅌ/ /ㅍ/ /ㅎ/ 따위를 마지막 음소로, 다시 말해 받침으로 취하지 않는다. 고유어에서라면 ‘믿다’, ‘웃다’, ‘멎다’, ‘낯’, ‘부엌’, ‘밭’, ‘뒤엎다’, ‘좋다’에서처럼 이런 음소들이 한 음절의 종성으로도 가능하다. 또 고유어에는 ‘넓다’, ‘굵다’에서처럼 겹받침이 존재하지만 한자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유어에서 볼 수 있는 /ㅂ/ 소리와 /w/ 소리의 역사적 음운 교체 현상(예컨대 ‘덥다’ ‘춥다’ 따위가 ‘더운, 더워서’ ‘추운, 추워서’ 따위로 활용하는 것) 따위가 한자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한자음에는 지역적 변이체 다시 말해 방언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유어는 여러 방언으로 분화돼 있고 그 방언에 따라 제 나름의 음운 체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자음은 통일된 규범에 따라 오직 하나의 체계로 존재할 뿐 방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물론 예컨대 /ㅡ/ 소리와 /ㅓ/ 소리를 구별하지 않는 일부 영남 방언에서 금(今)과 검(檢)이 중화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한자음에 방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지식인들의 보편적 규범어로 기능했다는 사정과 관련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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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말들의 풍경] <21> 한글-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고종석)

2006. 7. 26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607/h2006072518254085150.htm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 <21> 한글-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
한글은 음운론의 결정판이지만 한자의 영향으로 음절문자 한계
소리에 맞춰 글자꼴 갖춘 음소문자 "견줄 데없는 문자학적 호사" 평가


한 서양학자의 찬탄대로 한글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다. 거기엔 15세기까지 인류가 축적한 음성학 음운론 지식이 찬란하게 망라돼 있다.

한국인이 제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값어치있는 것 하나만을 골라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꼽을 것이다. 간송미술관이 간직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을 국보 1호로 새롭게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한글에 대한 이런 자부심에는 넉넉한 근거가 있다. 한글은 인류가 만들어낸 문자체계 가운데 가장 진화한 것이니 말이다.

문자체계의 진화는 대체로 그림글자(상형문자)에서 시작해 그것의 추상적 변형인 뜻글자(표의문자)를 거쳐 음절문자, 음소문자로 나아가는 경로를 밟아왔다. 음절문자와 음소문자를 아울러 소리글자(표음문자)라 이른다. 고대 이집트 문자나 고대 중국의 갑골문자는 그 추상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림문자로 뭉뚱그릴 수 있고, 갑골문자에 바탕을 둔 한자는 전형적인 뜻글자이며, 한자의 초서체에서 나온 일본의 히라가나와 이를 모난 꼴로 다듬은 가타카나는 음절문자다. 그리고 현대에 가장 널리 쓰이는 문자체계인 로마문자(라틴문자)와 키릴문자, 그리고 그것의 어버이격인 그리스문자는 음소문자다. 한글은 로마문자나 키릴문자 같은 음소문자에 속한다.

글자 하나를 음소 하나에 대응시키는 음소문자가 고안됐다는 것은 사람들이 음절을 자음과 모음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가/ 소리를 /ㄱ/ 소리와 /ㅏ/ 소리로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음절문자인 가나문자를 만든 사람들은 그런 분석을 할 수 없었거나, 설령 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문자체계에 반영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테다. 그래서, 로마문자나 한글 같은 음소문자에서와 달리, 가나문자 체계에서는 /가/ 소리가 낱글자로 표현된다.

그런데 한글이 음소문자라는 사실만으로 한글에 대한 저 큰 자부심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 그리스문자 로마문자 키릴문자 따위를 거론하기도 했거니와, 음소문자 체계는 인류사회에 드물지 않다. 게다가 그리스문자는 기원전 10세기께 이미 틀이 잡혔고, 로마문자는 기원 전 7세기께 확립됐으며, 늦둥이라 할 키릴문자가 고안된 것도 9세기다. 그에 비해 한글이 만들어진 것은 15세기에 이르러서다. 대표적 음소문자들과 한글의 탄생에는 길게 보아 2,500년, 짧게 보아도 600년의 시차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이 음소문자라는 사실만으로 으스대는 것은 한국인들이 서양사람들보다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나 늦깎이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내세우는 것과 다름없을 테다.

그런데 한글은 그 제자(製字)원리에서 다른 음소문자 체계와는 격이 다르다. 현존하는 주류 음소문자의 기원이 고대 이집트 그림문자에 있는 만큼, 이 문자들에는 별다른 제자원리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앞선 시대의 문자 꼴을 조금씩 바꾼 것이 전부다. 반면에, 훈민정음에는 고도의 음성학 음운론 지식이 응축돼 있다. 훈민정음 연구로 학위를 받은 미국인 동아시아학자 게리 레드야드는 제 학위 논문에 이렇게 썼다. “글자 꼴에 그 기능을 관련시킨다는 착상과 그 착상을 실현한 방식에 정녕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오래고 다양한 문자사에서 그 같은 일은 있어본 적이 없다. 소리 종류에 맞춰 글자 꼴을 체계화한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그 글자 꼴 자체가 그 소리와 관련된 조음 기관을 본뜬 것이라니. 이것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다.”

레드야드가 지적했듯, 한글 닿소리 글자들은 조음 기관을 본떴다. 예컨대 ‘ㄱ’과 ‘ㄴ’은 이 글자들이 나타내는 소리를 낼 때 혀가 놓이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ㅁ’은 입 모양을 본뜬 것이고, ‘ㅅ’은 이 모양을 본뜬 것이며, ‘ㅇ’은 목구멍을 본뜬 것이다. 조음기관의 생김새를 본떠 글자를 만든다는 착상 자체가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리 종류에 맞춰 글자 꼴을 체계화”했다는 레드야드의 말은 무슨 뜻인가?

조음 기관을 본뜬 기본 글자 다섯(ㄱ, ㄴ, ㅁ, ㅅ, ㅇ)에다 획을 더함으로써, 소리나는 곳은 같되 자질(소리바탕)이 다른 새 글자들을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예컨대 연구개음(어금닛소리) 글자인 ‘ㄱ’에 획을 더해 같은 연구개음이되 유기음(거센소리) 글자인 ‘ㅋ’을 만들고, 양순음(입술소리) 글자인 ‘ㅁ’에 획을 차례로 더해 같은 양순음이되 새로운 자질이 더해진 ‘ㅂ’과 ‘ㅍ’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홀소리글자의 경우에도, 이를테면 ‘ㅗ’와 ‘ㅜ’는 이것들이 둘 다 원순모음이면서도 한 쪽은 밝음이라는 (상징적) 자질을 지닌 데 비해 다른 쪽은 어두움이라는 자질을 지녔다는 점을, 덧댄 획의 위아래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문자와 견줘보면 한글에 녹아든 음성학 음운론 지식이 얼마나 깊고 정교한지 이내 드러난다. 예컨대 이나 잇몸에 혀를 댔다 떼면서 내는 소리들을 로마문자로는 N, D, T로 표현하지만, 이 글자들 사이에는 그 모양의 닮음이 전혀 없다. 그러나 한글은 이와 비슷한 소리들을 내는 글자들을 ‘ᄂ’, ‘ᄃ’, ‘ᄐ’처럼 형태적으로 비슷하게 계열화함으로써, 이 소리들이 비록 자질은 다르지만 나는 곳이 같다는 것을 한 눈에 보여준다. 즉 훈민정음 창제자들은 음절을 음소로 분석하는 데서 더 나아가, 현대 언어학자들처럼 음소를 다시 자질로 분석할 줄 알았다. 그래서 영국인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은 한글을 로마문자 같은 음소문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자질문자’라 불렀다.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라는 레드야드의 찬탄은 과장이 아니다. 훈민정음은 그 때까지 인류가 축적한 음운론 음성학 지식을 집대성해놓았던 것이다.

이런 제자 원리를 떠나서라도, 소리를 섬세하게 나타내는 기능에서 한글에 앞설 만한 문자체계는 찾기 어렵다. 근년에 이르러 한글 꼴을 다양하게 손질한 기호로 국제음성문자(I.P.A.)를 갈음하려는 한국인 학자들의 시도도 있었거니와, 이런 시도는 기실 훈민정음이 창제된 15세기부터 일찍이 이뤄진 바 있다. 훈민정음은 공들여 만들어진 뒤에도 한자의 위세에 눌려 문자왕국의 변두리에서 오래도록 숨죽이고 있어야 했지만, 그 기간에도 그 꼴이 조금씩 바뀌어 중국어나 만주어, 몽고어, 일본어 같은 외국어의 소리를 표기하는 발음기호로 사용돼 왔던 것이다.

이렇게 한글은 소리를 드러내는 데 체계적이고 섬세하다. 그렇다면 한글은 보탤 것이 전혀 없는, 완벽한 문자체계인가? 그렇지는 않다. 로마문자나 그리스문자와 한글을 순수하게 ‘미적으로’ 견줘보자.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보는 이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로마문자나 그리스문자 쪽을 편드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아직 한글 자체(字體)가 충분히 개발되지 않은 탓도 있을 게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한글이, 로마문자나 그리스문자와 달리, 음절 단위로 모아쓰게 돼 있다는 데 있는 듯하다. 이렇게 음절 단위로 네모나게 모아쓰는 이상, 아무리 자체를 다양화해 봐야 미적 세련의 정도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훈민정음 창제자들이 일껏 고생해서 음소문자를 만들어놓고도 그것을 음절 단위로 네모나게 모아쓰도록 한 데는 한자의 영향이 컸을 테다. 뜻글자인 한자 역시 그 한 글자 한 글자가 네모난 형상 속에 한 음절씩을 담아놓고 있는 음절문자 성격을 겸하고 있다. ‘훈민정음’의 첫 음절 ‘훈’을 굳이 네모나게 모아쓸 게 아니라 소리의 선조성에 따라 ‘ㅎㅜㄴ’처럼 한 줄로 벌여놓을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기엔 한자의 그림자가 너무 짙었으리라. 아무튼 한글은 본질적으로 음소문자이고 그 제자원리를 보면 거기서 더 나아간 자질문자의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도, 그 실제 운용에서는 음소문자에 못 미치는 음절문자에 머물러 있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주시경 이래 한글을 풀어쓰려는 시도가 더러 있었다. 예컨대 ‘한국’을 ‘하ㄴㄱㅜㄱ’처럼 쓰는 것이다. 이렇게 풀어쓰게 되면 자체에 변화를 주며 미적 치장을 할 여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진다. 북한은 정권 초기에 주시경의 제자 김두봉의 제창으로 한글 풀어쓰기를 진지하게 고려했으나, 과격한 문자혁명이 남북한 사이의 문자 소통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이를 통일 뒤로 미룬 바 있다. 한글을 지금처럼 음절 단위로 모아쓰는 것과 로마문자처럼 음소 단위로 풀어쓰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읽기 편한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다. 또 오랜 관습을 한꺼번에 허무는 문자혁명은 적잖은 부작용을 낳을 테다. 그러나 이런 모아쓰기가 한글 속에 남아있는 한자체계의 화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글 글자 수는 몇 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 뜻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가 많아 이를 안쓰럽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들었다"는 세종의 말처럼, 훈민정음은 보통 스물여덟자로 치는 것이 상례다. 그 가운데 넉 자가 없어져, 지금은 보통 한글 글자 수를 스물넷으로 친다. 그런데 한국어엔 이 스물넉 자로 적을 수 없는 소리도 많다. 그럴 땐 두 개 이상의 자모를 어울러서 적는다. 그런 겹글자는 닿소리글자 다섯(ㄲ, ㄸ, ㅃ, ㅆ, ㅉ)에 홀소리글자 열하나(ㅐ, ㅒ, ㅔ, ㅖ, ㅘ, ㅙ, ㅚ, ㅝ, ㅞ, ㅟ, ㅢ)를 더해 열여섯이다. 흔히 '한글 스물넉자'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겹글자들을 독립적 글자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겹글자들도 독립적 글자로 취급한다. 그래서 북한의 '조선어 자모' 수는 마흔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론적으로는 북한 쪽 체제가 더 합리적이다. 특히 남쪽에서처럼 'ㅐ'나 'ㅔ' 같은 단모음 글자를 독립된 글자로 여기지 않고 'ㅏ'와 'ㅣ', 'ㅓ'와 'ㅣ'의 병렬로 치는 것은 언어 직관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다. 겹글자들을 독립된 글자로 취급하는 북한에서는 사전에 말을 올리는 순서를 정할 때 홑글자로 시작하는 말들을 모두 배열한 뒤에야 겹글자로 시작하는 말들을 배열한다. 그래서 이를테면 'ㄲ'으로 시작하는 말은 'ㅎ'으로 시작하는 말보다 뒤에 나온다.

또 모음으로 시작하는 말들(소리값 없는 'ㅇ'으로 시작하는 말들)은 남한 사전에서처럼 'ㅅ' 항목 다음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음으로 시작하는 낱말들이 모두 끝난 뒤에, 즉 사전의 맨 뒤에 올린다. 모음 겹글자의 순서도 남쪽과 사뭇 다르다. 이 순서를 익혀야 북쪽 사전을 찾아보는 데 어려움이 덜하다. 그 순서는 'ㅐ, ㅒ, ㅔ, ㅖ, ㅚ, ㅟ, ㅢ, ㅘ, ㅝ, ㅙ, 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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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l magmum nisi bomum

선함이 없으면 위대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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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옥 | 시민발전 대표, 전태일기념사업회 운영위원

최근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세가지 사건이 있었다. 발전노조 파업, 한국노총과 경총의 복수노조-전임자 임금문제 5년 유예 담합에 뒤이은 노사정 3년 유예 합의와 로드맵 타결, 보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 타결이 그것이다. 지난 9월 4일 한전 산하 중부, 남동, 동서, 남부, 서부 등 5개 발전회사로 구성된 발전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의 강경대응과 직권중재, 40% 이하로 떨어진 파업참여율로 15시간 만에 파업을 철회하고 말았다. 쟁점사항에 대해 회사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게다가 발전노조가 부각시키려던 발전 5사 통합이나 민영화 반대 등 이른바 사회공공성 투쟁의 관점에서도 의미있는 의제화를 달성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실상 철저하게 패배한 파업이었다.

파업은 노동자의 유일하고도 유력한 무기임을, 때문에 맨 마지막에 꺼내드는 최후의 무기임을 모르는 노동자나 노동조합은 없다. 그리고 오늘날 파업에 대해 언론이 유리하게 보도하는 경우 또한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노동조합도 없을 것이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파업은 시민사회의 여론에 촉각을 세우고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그 자체 사회책임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노동조합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지옥에서 탈출하고자 몸부림치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일정하게 공감대가 있었던 1980년대와 달리 오늘날에는 특히 대기업 공공부문의 파업에 대해서는 오히려 정규직 고임금 노동자들의 배부른 투정이라는 즉자적 반감이 널리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단순히 조합원의 강철같은 단결만으로 승리하는 파업전술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전노조는 과연 무엇 때문에, 무엇을 얻고자 파업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발전노조의 파업 찬반투표 찬성률은 59%였다고 한다. 100%에 가까운 절대 찬성이라고 해도 파업에 들어가기까지에는 너무나 위험한 복병이 많은데, 이 정도의 찬성률은 미흡하기 짝이 없으며 쫓기듯이 파업선언을 하고 금방 철회를 하는 일련의 과정은 준비 또한 허술하기 짝이 없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협상의 마지막 핵심 쟁점이던 해고자 복직, 4조 3교대에서 5조 3교대로 확대, 핵심인력인 4직급의 조합가입 의무화 등의 사안이 과연 파업까지 할 만큼 중차대한 것이었는지도 의문이다. 이미 2002년 민영화 반대를 내걸고 38일 동안 파업을 벌였던 발전노조의 학습효과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결국 발전노조의 이번 파업은 노동조합 내부정치의 결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내년에 실시될 예정이던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는 결국 막판에 한국노총과 경총이 맞바꾸기식으로 5년 유예에 전격 손을 잡으면서 연기되고 말았다. 이어 노동부가 이를 받아들여 3년 유예로 노사정이 합의하면서 그동안 지루하게 손때만 묻히던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도 타결되었다. 그러나 한국노총의 이같은 결정은 그럴듯한 명분과 까닭이 없다는 점에서 노동조합 내부정치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날과 달리 경총이 오히려 산별체제로 가야 자신의 존재의의를 더 얻게 된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번 3년 유예 결정의 배후로 무노조의 삼성(최근 삼성전자와 삼성중공업이 경총에 가입했다)이 지목되고 있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참여정부의 로드맵 가운데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고 결국 노사관계 로드맵 또한 차기정권으로 떠넘기며 무책임 무능력의 '노(盧)의 맵'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극도의 실망감도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한국노총은 해서는 안될 검은 거래를 하고 말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복수노조 금지는 그동안 단결권 제약의 주범이자 산별체제로의 전환에 핵심 걸림돌이었다. 때문에 내년도 실시를 앞두고 지난 6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대우자동차 등 금속연맹 산하의 수많은 노조에서 산별전환 투표가 가결되고 다양한 업종에서 이제 새로운 산별체제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차원이 전혀 다른 전임자 임금문제와 연계해 시행을 몇년 뒤로 미루자고 사측과 합의한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기득권자의 소탐대실이다. 얻은 것은 몇년 연장된 불안한 의자일 뿐이지만 잃은 것은 도덕과 명분과 정체성이다. 노동조합의 현실과 내부 고민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한국노총의 운동이념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드는 사건이다. 한국노총의 선언과 강령에서 밝히고 있는 노동자의 기본권 확보와 노동조합의 자주성 확립, 단결과 조직의 통일 등에 모두 위배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8월 25일 충분한 준비와 경험을 바탕으로 총파업 하루 만에 직권중재 없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산별협약서를 체결한 보건의료노조의 성과는 단연 돋보인다. 게다가 의료노사정위원회 설치, 병원식당에 우리 농산물 사용, 국내외 재난지역에 노사공동 긴급 의료지원 등 의료공공성 강화의 내용까지 합의한 것은 앞으로의 산별노동운동에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성과와 더불어 지금 이 시간에도 온갖 고난과 악조건을 견디며 우애와 협동의 정신을 믿고 아래서부터 조직화에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노조들이 풀뿌리 노동운동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눈을 돌려 오늘날 한국 노동조합이 도대체 어떤 운동이념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아니 운동이념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이제 사회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은 사라지고 노동조합의 내부 권력정치와 투쟁과 협상만 즐겁지 못한 소음으로 남을 것인가. 오늘날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어서며 갈수록 양극화가 확대되는 상황은 새로운 노동운동의 이념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석유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는 피크오일은 한국경제에 지진해일을 몰고 올 것이며, 식량재앙 또한 조만간 밀어닥칠 현실이다.

이런 재앙의 상황은 가장 먼저 빈곤층과 노동자들의 삶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이런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좁아터진 내부정치에 골몰하는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새로운 이념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지만 삶과 자연에 뿌리를 둔 이념은 녹색을 띤다. 한국 노동운동의 이런 풀뿌리 녹색이념은 어디서 씨앗을 틔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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