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 > [말들의 풍경] <21> 한글-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고종석)

2006. 7. 26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607/h2006072518254085150.htm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 <21> 한글-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
한글은 음운론의 결정판이지만 한자의 영향으로 음절문자 한계
소리에 맞춰 글자꼴 갖춘 음소문자 "견줄 데없는 문자학적 호사" 평가


한 서양학자의 찬탄대로 한글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다. 거기엔 15세기까지 인류가 축적한 음성학 음운론 지식이 찬란하게 망라돼 있다.

한국인이 제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값어치있는 것 하나만을 골라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꼽을 것이다. 간송미술관이 간직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을 국보 1호로 새롭게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한글에 대한 이런 자부심에는 넉넉한 근거가 있다. 한글은 인류가 만들어낸 문자체계 가운데 가장 진화한 것이니 말이다.

문자체계의 진화는 대체로 그림글자(상형문자)에서 시작해 그것의 추상적 변형인 뜻글자(표의문자)를 거쳐 음절문자, 음소문자로 나아가는 경로를 밟아왔다. 음절문자와 음소문자를 아울러 소리글자(표음문자)라 이른다. 고대 이집트 문자나 고대 중국의 갑골문자는 그 추상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림문자로 뭉뚱그릴 수 있고, 갑골문자에 바탕을 둔 한자는 전형적인 뜻글자이며, 한자의 초서체에서 나온 일본의 히라가나와 이를 모난 꼴로 다듬은 가타카나는 음절문자다. 그리고 현대에 가장 널리 쓰이는 문자체계인 로마문자(라틴문자)와 키릴문자, 그리고 그것의 어버이격인 그리스문자는 음소문자다. 한글은 로마문자나 키릴문자 같은 음소문자에 속한다.

글자 하나를 음소 하나에 대응시키는 음소문자가 고안됐다는 것은 사람들이 음절을 자음과 모음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가/ 소리를 /ㄱ/ 소리와 /ㅏ/ 소리로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음절문자인 가나문자를 만든 사람들은 그런 분석을 할 수 없었거나, 설령 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문자체계에 반영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테다. 그래서, 로마문자나 한글 같은 음소문자에서와 달리, 가나문자 체계에서는 /가/ 소리가 낱글자로 표현된다.

그런데 한글이 음소문자라는 사실만으로 한글에 대한 저 큰 자부심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 그리스문자 로마문자 키릴문자 따위를 거론하기도 했거니와, 음소문자 체계는 인류사회에 드물지 않다. 게다가 그리스문자는 기원전 10세기께 이미 틀이 잡혔고, 로마문자는 기원 전 7세기께 확립됐으며, 늦둥이라 할 키릴문자가 고안된 것도 9세기다. 그에 비해 한글이 만들어진 것은 15세기에 이르러서다. 대표적 음소문자들과 한글의 탄생에는 길게 보아 2,500년, 짧게 보아도 600년의 시차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이 음소문자라는 사실만으로 으스대는 것은 한국인들이 서양사람들보다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나 늦깎이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내세우는 것과 다름없을 테다.

그런데 한글은 그 제자(製字)원리에서 다른 음소문자 체계와는 격이 다르다. 현존하는 주류 음소문자의 기원이 고대 이집트 그림문자에 있는 만큼, 이 문자들에는 별다른 제자원리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앞선 시대의 문자 꼴을 조금씩 바꾼 것이 전부다. 반면에, 훈민정음에는 고도의 음성학 음운론 지식이 응축돼 있다. 훈민정음 연구로 학위를 받은 미국인 동아시아학자 게리 레드야드는 제 학위 논문에 이렇게 썼다. “글자 꼴에 그 기능을 관련시킨다는 착상과 그 착상을 실현한 방식에 정녕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오래고 다양한 문자사에서 그 같은 일은 있어본 적이 없다. 소리 종류에 맞춰 글자 꼴을 체계화한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그 글자 꼴 자체가 그 소리와 관련된 조음 기관을 본뜬 것이라니. 이것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다.”

레드야드가 지적했듯, 한글 닿소리 글자들은 조음 기관을 본떴다. 예컨대 ‘ㄱ’과 ‘ㄴ’은 이 글자들이 나타내는 소리를 낼 때 혀가 놓이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ㅁ’은 입 모양을 본뜬 것이고, ‘ㅅ’은 이 모양을 본뜬 것이며, ‘ㅇ’은 목구멍을 본뜬 것이다. 조음기관의 생김새를 본떠 글자를 만든다는 착상 자체가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리 종류에 맞춰 글자 꼴을 체계화”했다는 레드야드의 말은 무슨 뜻인가?

조음 기관을 본뜬 기본 글자 다섯(ㄱ, ㄴ, ㅁ, ㅅ, ㅇ)에다 획을 더함으로써, 소리나는 곳은 같되 자질(소리바탕)이 다른 새 글자들을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예컨대 연구개음(어금닛소리) 글자인 ‘ㄱ’에 획을 더해 같은 연구개음이되 유기음(거센소리) 글자인 ‘ㅋ’을 만들고, 양순음(입술소리) 글자인 ‘ㅁ’에 획을 차례로 더해 같은 양순음이되 새로운 자질이 더해진 ‘ㅂ’과 ‘ㅍ’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홀소리글자의 경우에도, 이를테면 ‘ㅗ’와 ‘ㅜ’는 이것들이 둘 다 원순모음이면서도 한 쪽은 밝음이라는 (상징적) 자질을 지닌 데 비해 다른 쪽은 어두움이라는 자질을 지녔다는 점을, 덧댄 획의 위아래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문자와 견줘보면 한글에 녹아든 음성학 음운론 지식이 얼마나 깊고 정교한지 이내 드러난다. 예컨대 이나 잇몸에 혀를 댔다 떼면서 내는 소리들을 로마문자로는 N, D, T로 표현하지만, 이 글자들 사이에는 그 모양의 닮음이 전혀 없다. 그러나 한글은 이와 비슷한 소리들을 내는 글자들을 ‘ᄂ’, ‘ᄃ’, ‘ᄐ’처럼 형태적으로 비슷하게 계열화함으로써, 이 소리들이 비록 자질은 다르지만 나는 곳이 같다는 것을 한 눈에 보여준다. 즉 훈민정음 창제자들은 음절을 음소로 분석하는 데서 더 나아가, 현대 언어학자들처럼 음소를 다시 자질로 분석할 줄 알았다. 그래서 영국인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은 한글을 로마문자 같은 음소문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자질문자’라 불렀다.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라는 레드야드의 찬탄은 과장이 아니다. 훈민정음은 그 때까지 인류가 축적한 음운론 음성학 지식을 집대성해놓았던 것이다.

이런 제자 원리를 떠나서라도, 소리를 섬세하게 나타내는 기능에서 한글에 앞설 만한 문자체계는 찾기 어렵다. 근년에 이르러 한글 꼴을 다양하게 손질한 기호로 국제음성문자(I.P.A.)를 갈음하려는 한국인 학자들의 시도도 있었거니와, 이런 시도는 기실 훈민정음이 창제된 15세기부터 일찍이 이뤄진 바 있다. 훈민정음은 공들여 만들어진 뒤에도 한자의 위세에 눌려 문자왕국의 변두리에서 오래도록 숨죽이고 있어야 했지만, 그 기간에도 그 꼴이 조금씩 바뀌어 중국어나 만주어, 몽고어, 일본어 같은 외국어의 소리를 표기하는 발음기호로 사용돼 왔던 것이다.

이렇게 한글은 소리를 드러내는 데 체계적이고 섬세하다. 그렇다면 한글은 보탤 것이 전혀 없는, 완벽한 문자체계인가? 그렇지는 않다. 로마문자나 그리스문자와 한글을 순수하게 ‘미적으로’ 견줘보자.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보는 이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로마문자나 그리스문자 쪽을 편드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아직 한글 자체(字體)가 충분히 개발되지 않은 탓도 있을 게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한글이, 로마문자나 그리스문자와 달리, 음절 단위로 모아쓰게 돼 있다는 데 있는 듯하다. 이렇게 음절 단위로 네모나게 모아쓰는 이상, 아무리 자체를 다양화해 봐야 미적 세련의 정도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훈민정음 창제자들이 일껏 고생해서 음소문자를 만들어놓고도 그것을 음절 단위로 네모나게 모아쓰도록 한 데는 한자의 영향이 컸을 테다. 뜻글자인 한자 역시 그 한 글자 한 글자가 네모난 형상 속에 한 음절씩을 담아놓고 있는 음절문자 성격을 겸하고 있다. ‘훈민정음’의 첫 음절 ‘훈’을 굳이 네모나게 모아쓸 게 아니라 소리의 선조성에 따라 ‘ㅎㅜㄴ’처럼 한 줄로 벌여놓을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기엔 한자의 그림자가 너무 짙었으리라. 아무튼 한글은 본질적으로 음소문자이고 그 제자원리를 보면 거기서 더 나아간 자질문자의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도, 그 실제 운용에서는 음소문자에 못 미치는 음절문자에 머물러 있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주시경 이래 한글을 풀어쓰려는 시도가 더러 있었다. 예컨대 ‘한국’을 ‘하ㄴㄱㅜㄱ’처럼 쓰는 것이다. 이렇게 풀어쓰게 되면 자체에 변화를 주며 미적 치장을 할 여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진다. 북한은 정권 초기에 주시경의 제자 김두봉의 제창으로 한글 풀어쓰기를 진지하게 고려했으나, 과격한 문자혁명이 남북한 사이의 문자 소통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이를 통일 뒤로 미룬 바 있다. 한글을 지금처럼 음절 단위로 모아쓰는 것과 로마문자처럼 음소 단위로 풀어쓰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읽기 편한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다. 또 오랜 관습을 한꺼번에 허무는 문자혁명은 적잖은 부작용을 낳을 테다. 그러나 이런 모아쓰기가 한글 속에 남아있는 한자체계의 화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글 글자 수는 몇 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 뜻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가 많아 이를 안쓰럽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들었다"는 세종의 말처럼, 훈민정음은 보통 스물여덟자로 치는 것이 상례다. 그 가운데 넉 자가 없어져, 지금은 보통 한글 글자 수를 스물넷으로 친다. 그런데 한국어엔 이 스물넉 자로 적을 수 없는 소리도 많다. 그럴 땐 두 개 이상의 자모를 어울러서 적는다. 그런 겹글자는 닿소리글자 다섯(ㄲ, ㄸ, ㅃ, ㅆ, ㅉ)에 홀소리글자 열하나(ㅐ, ㅒ, ㅔ, ㅖ, ㅘ, ㅙ, ㅚ, ㅝ, ㅞ, ㅟ, ㅢ)를 더해 열여섯이다. 흔히 '한글 스물넉자'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겹글자들을 독립적 글자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겹글자들도 독립적 글자로 취급한다. 그래서 북한의 '조선어 자모' 수는 마흔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론적으로는 북한 쪽 체제가 더 합리적이다. 특히 남쪽에서처럼 'ㅐ'나 'ㅔ' 같은 단모음 글자를 독립된 글자로 여기지 않고 'ㅏ'와 'ㅣ', 'ㅓ'와 'ㅣ'의 병렬로 치는 것은 언어 직관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다. 겹글자들을 독립된 글자로 취급하는 북한에서는 사전에 말을 올리는 순서를 정할 때 홑글자로 시작하는 말들을 모두 배열한 뒤에야 겹글자로 시작하는 말들을 배열한다. 그래서 이를테면 'ㄲ'으로 시작하는 말은 'ㅎ'으로 시작하는 말보다 뒤에 나온다.

또 모음으로 시작하는 말들(소리값 없는 'ㅇ'으로 시작하는 말들)은 남한 사전에서처럼 'ㅅ' 항목 다음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음으로 시작하는 낱말들이 모두 끝난 뒤에, 즉 사전의 맨 뒤에 올린다. 모음 겹글자의 순서도 남쪽과 사뭇 다르다. 이 순서를 익혀야 북쪽 사전을 찾아보는 데 어려움이 덜하다. 그 순서는 'ㅐ, ㅒ, ㅔ, ㅖ, ㅚ, ㅟ, ㅢ, ㅘ, ㅝ, ㅙ, 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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