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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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프리랜서 만화가인 저자가 부모님과 함께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살며 겪은 일화를 귀여운 만화로 그려낸 그림에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이상한 위화감이 있었는데,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이 그림에세이는 '구씨집안 이야기'라는 연재만화와 오리지널 에피소드를 덧붙인 책이었다! 제목인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에 묘하게 어울리지 않던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 이야기에 약간 머리를 긁적였는데 (조금은... 공감이 안 되어서...) 가족이야기라고 하니 바로 납득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제목과 마케팅 전략은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머리에 30살을 꽂고,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말하며 '캥거루족'이라는 말을 쓰는데, 책의 내용은 그것보다 더 큰 '가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물리적, 사회적으로 독립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찾아나서는 포부와 다짐, 그 노력이 담겨있다. 그러나 에피소드 전반에 '가족애'가 잔잔하게 드러나다보니 모종의 이유로 독립을 하려고 이 책을 펼친 사람이라면 당황할 수도 있다고 느꼈다.

  게다가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흔히 말하는 정상가정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책의 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만화이기에 도톰한 종이를 썼을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얇은 종이가 팔락팔락 넘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챕터별로 배경색을 달리해 책배도 굉장히 귀여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내용에 따라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칸수가 다른 것이었다. 네 칸만을 배치해 여백을 많이 주어 캐릭터만 강조할 때도 있고, 여섯 칸을 배치해 이야기의 전개를 한 페이지 안에 가득 담아 구체적인 스토리를 전달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구씨집안 이야기'는 온라인에도 올라오고 종이신문에 인쇄되기도 했기에 배경 등에 제한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전에는 폰트도 딱딱하지만 가독성이 좋은 걸 사용했다. 이를 잘 엮어서 종이책으로 출간되며 책의 타겟이 2030 여성으로 옮겨오며 폰트도 변경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지금 서체가 더 귀여워서 그림체와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전작이 『기후위기인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한겨레라 그런지 (뭔느알...?) 여러 사회문제를 톡톡 잘 집어주는 에피소드가 있어 좋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읽으면서 "한겨레 깔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이게 바로 출판사가 주는 이미지인 거 아닐까? 이 책이 만약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더라면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겠거니~ 하겠지만, 왠지 한겨레니까 이런 결이 잘 맞아서 이 저자와 연재를 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편견일 수도)


  하니포터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작가님이지만, 앞으로의 활동이 궁금해서 구희님 인스타그램도 팔로우했다. 기후위기를 고민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이란 걸 글과 그림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호감이 절로 갔다.


* 하니포터 10기로서 한겨레출판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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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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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공 붕괴』는 표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빛이 쏟아지는 사진에 연한색으로 유광 처리가 된 제목은 은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블로그에 올릴 서평을 위한 사진을 찍을 때, 책의 내용과 주제, 그리고 표지와 어우러지는 배경을 선정하며 나름 신경써서 촬영한다. 이 책의 표지는 환상적이면서도 밝은 빛의 모습이 잘 드러나면서도 제목이 보이기 위해선 강렬한 태양빛 아래에서 찍어야 했다. 의문의 길바닥 뷰가 되었지만 제목도 표지 이미지도 잘 드러나 이 사진을 표지 사진으로 고르게 되었다.


  뒤표지에는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정보라 작가의 추천사가 있다. 저자인 해도연은 잘 모르더라도 추천사를 어떤 사람이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 책을 향한 기대감은 달라지기 마련인데, 정보라 작가의 추천사를 먼저 읽으니 '정교하고 장엄'한 해도연의 작품 세계가 매우 기대되었다.


  첫 번째 소설 「검은 절벽」은 필립 K.딕 상을 받은 『데드 스페이스』가 생각이 났다. 광활하고 새카만 우주를 배경으로 인공지능과 이러쿵저러쿵하는 내용은 여러 매체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지만, 해도연 소설은 그 안에서도 사랑을 뒤섞어 두었다. 그리고 단편 소설답게 내용에 공백을 두어 읽는 사람이 상상할 여지를 충분히 준다. 이 소설 역시 SF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읽으면 훨씬 몰입이 잘 된다.


  "지구라는 유한한 땅 밖으로 거침없이 뻗어 나가는 살인, 사랑, 광기가 뒤엉킨 압도적 서사"


  뒤표지에 쓰인 마케팅 문구처럼 전반적으로 인간미가 넘치면서 서늘한 기분이 느껴지는 소설집이었는데, 그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소설은 「콜러스 신드롬」이었다. 웹툰 「똑 닮은 딸」의 명소민이 생각나는 초반 전개에 의아하기도 했고, 재호가 영화 〈어바웃 타임〉의 톰처럼 스윗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재호는 그냥 미친놈이었다. 미친놈.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도 나오지만 시간을 멋대로 오가다보면 여러 시간선이 생긴다. 이는 『유월의 복숭아』처럼 웹소설에도 등장하는 타임루프물에서 지적하는 '시간여행의 어두움'이다. 그렇게 반복하다보면 시간여행자는 알지만 바뀌어버린 당사자는 모르는 그 간격에서 서사가 생기는 게 정설이다. 이 소설은 시간여행의 객체인 유슬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한다. 당찬 유슬이 윤하를 그에게서 놓아준 이후, 한 챕터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는 이기적인 남자가 파괴한 여러 생명을 생각하며 씁쓸해지는 기분이었다. 비슷한 이미지로 「마리 멜리에스」 역시 과학이 해결하지 못하며 감정만이 구원하는 이야기에 찌릿찌릿한 느낌이었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과학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쓴 SF 소설은 새로운 재미였다. 설정은 채우되 서사는 비우며 상상할 여지를 많이 준 점도 좋았다. 다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소설은 많이 읽다보면 얼추 패턴이 보이다보니 SF 입문자라면 나보다 훨씬 즐겁게 읽을 거라 생각한다.


* 하니포터 10기로서 한겨레출판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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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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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부터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각자의 자리에서 현 시국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삶을 말하며 다양성과 교차성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단체는 뭐니뭐니해도 '민주노총'이지 않았을까.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


  광장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노동현장에서 가장 앞선 곳에 위치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보며 그들의 삶과 투쟁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가까이는 급식부터 마트, 배달, 화물, 건설까지 우리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노동자가 셀 수 없이 많았고, 그들의 투쟁은 지속 중이었다.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는 우리가 밟고 서있는 건물을 짓는 건설노동자의 이야기다. '건설노동자'에는 중년 남성만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여성은 물론 92년생 청년, 각국에서 온 이주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이 일하고 있으며 이 책에는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을 읽다보면 거대한 건물을 손수 짓는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자부심이 절로 느껴진다. 그러나 자부심만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노릇. 사측이 쥐고 있는 돈과 고용 가능성 때문에 부당한 일을 당해도 쉽게 항의할 수 없다. 그래도 노동조합 차원에서 말할 때는 들어주나 싶더니,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때문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버렸다.


왜곡된 보도 때문에 건설노조를 깡패 집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언론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는 거죠.

우리 마음이랑 정반대 분위기가 형성된 게 요즘 제일 힘들어요.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169쪽


  현장의 문제점과 그들의 노동은 노가다가 아니라며 외치는 건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니, 앞으로 이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건설노조 탄압을 몰랐던 과거가 부끄러워지면서 주변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증언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하니포터 10기로서 한겨레출판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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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위기 돌파 경영 전략 - 세계 최대 스포츠 브랜드, 디지털 전환의 기록
시라쓰치 다카시 지음, 박유미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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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서평은 일러두기가 필요할 것 같다.


  *일러두기 : 이 글을 쓴 함함은 주식과 경제와 경영 등에 관심이 없어 잘 찾아보지도 않고 대기업의 여러 소식도 잘 모르는 사람이니, 어떤 뇌피셜을 쓰더라도 댓글 등으로 정정해주시면 매우 감사하겠다.


  ...이런 나에게 갑자기 다가온 『나이키의 위기 돌파 경영 전략』이라니, 이것이 서평단의 묘미 아닐까? 예상하지 못한 책을 읽어보는 즐거움과 낯섦은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 말이다.


  나에게 나이키란 'Just Do It'과 '칼발들만 신을 수 있는 잔인한 신발 사이즈'라는 키워드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만큼 큰 감흥도, 애정도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객관적으로,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나이키의 경영 전략을 체감한 경험이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중 하나가 '나이키런클럽'이었다. '나이키런'은 어느 순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내 주변 러너들은 전부 '나이키런클럽'으로 러닝 인증을 올리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나도 '운동삼아 러닝이나 해볼까' 할 때 '나이키런클럽'을 다운 받았고 몇 번 이용해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러닝화를 홍보하고 추천한 화면이 꽤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기억이 나는데, '나이키런클럽'을 비롯한 여러 디지털 전략은 디지털 매출과 여성 매출을 늘리게 되었다고 한다.


  IT 기업도 아닌 신발 회사가 이렇게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맞춘 마케팅 전략을 낼 수 있는 건 경영진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강조한 점이지만 신임 CEO의 의지와 지휘가 현장에서 효과적이었던 것을 보아, 적재적소에 어떤 경영진을 앉히느냐 (올리느냐)에 따라 회사의 위기를 돌파할지, 아니면 위기를 그대로 마주할지 다를 듯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에게 나이키는 '무자비한 발볼 넓이'의 이미지가 강해, 동양인 체형엔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키의 한정판 신발이 불티나게 나가고, 가격이 미친듯이 오르는 게 아닌가. 크림(Kream) 같은 리셀 어플은 들여다보지 않는 내게도 소식이 들려올 정도면, 사실상 모두가 한정판 신발에 미쳐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책에서는 한 챕터를 '리셀 시장과 NFT 운동화'로 선정할 정도로 그 시장이 어마무시하게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말이 좋아 '리셀'이지 사실상 '웃돈 주고 사고 팔기'다. 이러한 리셀은 공연이나 기타 업계에서는 재화를 누군가가 독점하고 돈을 번다는 점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며 나이키는 이런 리셀 문화를 어떻게 바라볼지 짚어주길 바랐고, 적절하게 등장했다.


나이키는 리셀 시장의 성장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정 판매한 운동화의 가격이 리셀 사이트에서 높게 책정됨으로써 나이키 브랜드의 높은 인기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또 정품 여부를 판정하는 리셀 시장의 존재가 위조품을 배제하는 데 도움을 주고, 브랜드의 신뢰성도 보장해 줍니다.

  나이키의 거점인 미국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리셀 문화가 어디서 시작했는지부터 상세히 설명을 해준 덕분에 이베이와 페이팔, GOAT를 거쳐 현재 운동화 리셀까지 왔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쓴 사람이 미국인이 아니기에 들을 수 있는 배경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다녀온 《스티븐 해링턴 : 스테이 멜로》나 《그래피티의 연금술사, 시릴 콩고》에서 여러 럭셔리 브랜드나 스포츠 브랜드와 콜라보한 제품도 같이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 이런 콜라보 역시 한정판 운동화를 많이 만들어 내는 전략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외에도 나이키의 매출 증대를 이끌어낸 경영 전략이 많았다. 신장 위구르 문제나 흑인 커뮤니티에서 어떤 태도, 메세지를 보여주었는지, 디지털 전환을 어떻게 이끌어냈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가 많았다. 경영 전략을 고민하는 경영자나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이 필요한 사람 모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론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어떤 태도로 위기를 헤쳐나갈지 알 수 있기도 하다!


👟유엑스리뷰어 10기로서 유엑스리뷰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한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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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
맥스 디킨스 지음, 이경태 옮김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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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 엄청나게 당돌한 이 책은 SNS에서 소개글을 볼 때마다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을 일으켰다. 다만 신간인지라 도서관에도 딱히 들어와있지 않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어보아야지 노리고 있었는데 창비에서 '독서모임 지원 이벤트'를 연 것이다!

  마침 내가 속해있는 독서모임은 돌아가면서 책을 고르는 규칙으로, 4월 모임은 내가 고를 차례였다. 지난 모임이 끝나갈 때쯤 이야기를 꺼내니 다들 좋아해주신 덕분에 열심히 지원서를 작성해 당첨이 되었다. 우리집으로 온 다섯 권의 책을 정성스레 포장해 각자 댁으로 보내드리고 두근거리며 모임을 준비했다.


  내 책상 위에 놓인 이 책을 보더니 애인이 '이게 뭐야?'라며 묘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독서모임 책이라고 하니 뻔한 소리만 있을 거 같다며 일반화가 아주 많이 되어있을 거 같아 자긴 별로라는 거다. 아직 책을... 펴보지도 않았는데...! 나 역시 책을 읽은 상태가 아니었기에, '영국 남자가 쓴 거라는데 우리나라랑 얼마나 비슷할지 봐야할 거 같아'라고 가볍게 넘어갔다.

  모임 중에도 나온 이야기로, 이 책은 제목으로 '어그로'를 너무 잘 끌었다. 원제인 'billy no - mates(외톨이 빌리)'를 직역한 '외톨이 동현' 같은 제목이었으면, 이렇게까지 뭇 남성들을 '긁'었을까 싶다. (근데 긁혔을 거 같기도 하고...?)


  제목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라는 문구와 소개 카드뉴스 등을 보았을 때, 기존에 내가 읽었던 젠더 문제를 다룬 『보이지 않는 여자들』 같은 엄청난 연구와 자료가 포함된 사회과학 도서일 것이라 예상했다. 게다가 마케팅 포인트가 '광장에서 없어진 2030 남자', '고독사하는 남성 노인' 등이었으니!

  그런데 왠걸. 첫 시작부터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할 반지를 사러 간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가. 오케이,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신랑 들러리'에 세울 친구가 없다는 걸로 생각이 뻗어나가더니 작가의 인간 관계를 같이 살펴보게 되는 게 아닌가!!!!!!!


  예상과 다른 흐름에 휩쓸리듯 책장을 넘겼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고 쓰여 있던 걸 간과했던 탓이었을까, 온갖 유머의 향연에 피식피식 웃기도 하고 가끔은 빵 터지기도 하며 읽었다. 꽤나 무거운 제목에 찌질하고 외모 콤플렉스 있는... 중학교 교실에서 개그캐로 통하는 어정쩡한 남자 같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내가 이해할 수 없던 남자의 언어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남자들에겐 농담이 전부이며, 전부가 농담이다. (중략) 농담은 남성관계를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이며, 상대방을 밟고 위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에서 무력을 과시하는 것과 같다.

  농담을 가장한 무례한 말을 하거나 괜한 데를 쑤시는 건, 그들이 농담에 관대한 것이 아니라 농담으로 위계질서를 잡기 때문에 거세질 수밖에 없다고 이해했다. 남성관계에서는 그게 통할지 몰라도 복수의 성이 섞인 공간에서 그렇게 구는 사람들이 있어 짜증이 났다. 그러니까 친구가 없지!

  그래서일까, 저자 맥스 디킨스도 농담을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내뱉는 바람에 이 책의 몰입도가 종종 깨졌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거나 연구 결과에 대해 말할 때, 혹은 인터뷰이와 대화할 때 등 여러 상황에서 저자는 야한 농담을 하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것처럼 음담패설을 뱉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남성 독자들이 끝까지 읽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초반에는 깔깔 웃다가도 나중에는 '아저씨 제발요!!! 그만!!!'이라고 책에 쓸 정도로 너무 과해서 조금 짜증이 났다.



  무엇보다 이 책은 공동저자로 '나오미'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오미의 구구절절 맞는말 대향연에 전부 밑줄을 치다간 책이 형광펜으로 물들 수도 있다. 독서모임에서 이 페이지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생각난 건데, 최근 '기획육아'라는 말이 신혼부부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 분유 주기가 육아의 전부가 아니라 신생아 접종 시기는 언제인지, 현재 개월수에는 뭘 먹여야 할지, 어떤 육아용품이 좋은지, 어린이집은 어디로 갈지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에 필수적인 노동도 육아의 한 부분이고 이것을 '기획육아'라고 부른다. 이러한 '기획육아'는 대부분 여성(엄마)가 담당하며,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 정신을 쓰면서 힘들어하지만 배우자(공동육아 당사자)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특징이다. 단어가 생기며 가시화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야 그 기획육아의 어려움을 알고 이해하는 수준이라고 알고 있다.


  책에서도 이러한 감정노동의 결핍은 남성우정의 문제의 핵심에 있다고 말한다.


남성은 셔츠를 다리미질할 책임뿐만 아니라, 우정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책임도 여성에게 위임해버린다. 나자는 삶에서 여자를 개인 회사의 인사담당자로 대한다.

(중략) 나는 나오미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친구관계가 생겼다. 내가 나오미 한명과의 관계라는 상품을 구입하면 열다섯개 정도의 관계가 서비스로 딸려오는 느낌이랄까? 결과적으로 내가 지금 가장 자주 만나는 남자들은 나오미의 여사친들의 남편이나 남친들이다. (중략) 그런데 문제는 여기엔 도덕적 해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내가 사교적 창의성(쉬운 말로 내 파트너의 노동!)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그룹을 구축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하지 않는다.

  진짜로 개열받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며느리가 시댁 어른들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챙기고 대리효도를 해주면 남자들은 거기서 우리 마누라 잘하지 ㅎㅎ 이러고 있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저자는 '엣큥 이런 게 문제였쟈낭 >_<'하는 태도라 상당히 열받긴 하나, 그 나름대로 열심히 현장 연구도 하고 여러 사례도 가져오며 꽤 괜찮은 사회과학 도서라고 생각한다. 그놈의 섹드립만 10분의 1로 줄이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텐데 너무 아쉽다. 모임에서도 모두들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해서 '나만 느낀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이 책의 결론은 생각보다 허무하고 맥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쪽에 걸쳐서 '잉잉 난 친구가 없어'라고 할 정도로 남자들은 친구 만들기 (그러니까 있는 인연 유지하고 새 인연 강화하는) 작업이 얼마나 먼 이야기인지 알게 된다. 제목에 이끌려 읽어보고 싶어진다면 꼭 여러 사람의 서평을 잘 찾아보길 바란다... 그래도 내용은 좋다, 잘 찾아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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