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XX. X건(5)

 

  

    

 

 

 잠에서 깨자마자 바로 선우의 상태를 확인했다. 스크린에 비치는 선우의 모습은 위태위태하게 걸어가는 줄타기 꾼 같아보였다. 워먼덱스에 준비된 식료품 향수 치즈 스파게티 맛을 뿌리고 다시 선우를 관찰했다.

 

 여태까지 별 이상한 기운은 없어 보인다. 그냥 멍하니 밥 먹고 멍하니 씻고 멍하니 옷을 갈아입을 뿐이었다. 뭐 잠이 덜 깨서 그러려니 하고 난 내 일을 했다. 선우는 괜찮을 것이다. 나보다 강한 아이니까, 정말로 괜찮을 것이다.

 학교를 가는 동안 선우는 말이 없었다. 난 안심했다. 어제 했던 마음의 고백이 효과가 있던 모양이었다. 그래, 이대로 선우의 마음도 회복이 된다면 루어의 마법이 통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견뎌 가면 되는 거야. 선우.

 

 안경을 통해서 보는 하늘은 카르텔 성과 다르게 너무나 푸르렀다. 할머니께서 보시던 잡지에 나오는 하늘보다도 더 맑았다. 그런 하늘 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아 하늘에서 눈을 뗐다. 옆에 나란히 서있는 매점, 서점, PC방 건물의 벽 색깔을 보자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 보이더.

 갑자기 선우가 나를 불러왔다.

 ㅡ ?

 - 저기 할 말이 있는데.

 ㅡ .

 - 계속 고민했거든.

 ㅡ ? 뭐든 말만 해봐.

 - 있잖아.

 ㅡ .

 

바람이 불어왔다.

 

 -...... 계약 해지, 하게 해 주면 안 돼?

 ㅡ .....

 

 아아. 하늘이, 건물이, 선우마저도 제 색을 잃어갔다.

 

 - 계속 생각해 오던 거야. 역시 나는 더 이상 네게 폐만 끼칠 수는 없어.

 ㅡ ....

 

 아니야, 아니야.

 

 - 네가 아니라고 하면 할수록 나는 더 비참해져가. 무기력해진다구. 이러면 너도, 나도 둘 다 죽어버릴 거 아냐.

 ㅡ ....

 

 선우의 말은 내 속으로 들어와 온몸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빠져나갔다. 온몸이 휘청거리는 충격을 느끼며 나는 어떤 말이라도 꺼내보려고 했다. 하지만 온전히 단어가 되지 못한 글자조차 난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었다. 난 그 상태로 선우가 학교 정문을 통과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아침 2교시, 겨우 말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나는 선우에게 직설적으로 말했다.

 ㅡ 선우, 정말 떠나지마!!

 - .......

 ㅡ 난 너보다 강한 사람이 아냐! 오히려 너보다 약한 사람이라고. 정말 이러지마! 날 이렇게 버릴 거야? 정말! 난 너 없으면 안 된다고.

 내 본심을 다 들어냈다.

 

 - ..... 그렇게 말하지 마.

 ㅡ ?

 

 -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난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거 너도 알잖아? 그러니까 떠나가라는 거야!

 선우가... 기억이 돌아왔어?

 

 ㅡ 선우, 기억이 돌아온 거야?

 - 그래! 누가 나에게 그런 마법을 걸었는지도 다 기억났어. 봤지? 난 어떤 저항도 못한 채 그 사람에게 마법을 걸렸어. 그러니까 가라고! 어차피 오빠같이 누굴 확실히 지켜 주는 성인은 못 되는 거야! 잘 봐! 지금도 이렇게 너에게 민폐만 끼치고 있잖아.

 ㅡ ......

 - 그래서 계약해지를 해 주라는 거야!보이더...그럼 내가 과거로 돌아가 오빠를 살리고 너를 지켜주라고 사정을 할 거란 말야!! 그 사람이라면 나를 과거로 돌려보내줄 수 있어.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안 이상, 너를 이렇게 못난 나에게 넘겨줄 수는 없어! 난 너와 계속 함께 있고 싶어오빠라면 나보다 널 더 잘 지켜줄 거란 걸살려줘... 알고 있어.

 ㅡ 아니야.. 그건 그냥 환상일 뿐이야. 죽은 사람을 그렇게 다시 불러들이는 건 안 돼. 넌 속고 있을 뿐이라고!

 - 아니야! 정말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어! 그러니 난 너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

 

 선우는 그 말을 끝으로 나하고의 말을 끊었다. 나는 스크린을 두드리며 선우를 불러보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불렀지만 선우는 대답이 없었다. 난 울었다. 선우 때문에 운 건 아니었다. 루어의 치밀함 때문이었다. 쉬는 시간에 그 귀여운 리본 소녀가 선우. 오늘 무슨 일 있어? 안색이 안 좋아.” 라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선우는 대답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저 멍한 상태로 공부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난 불안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힘껏 소리 질러보았지만 선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흘러서 마칠 시간이 되었다.

 선우는 마치자마자 교실을 뛰쳐나갔다. 복도를 달리고 달려 테이블과 음료수 자판기가 있는 쪽에 도착했다. 문득 가느다란 실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선우는 나를 버려두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시야도 마음속도, 새하얗게 빛을 잃어버렸다.

 

 바로 안경을 나왔다. 입고 있었던 드레스의 다리 쪽을 찢었다. 그리고 선우가 도망친 방향으로 달렸다. 맨발이라도 괜찮았다. 단지 처절하게 달렸다. 안 돼, 선우. 안 돼. , , , ! 텅빈 복도에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복도를 미친 듯이 달려서 도착한 곳은 음악실이었다. 발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고 불이 꺼져있어 약간 음산한 기운도 들었다. 불을 켜기가 두려웠지만 불을 켰다.

 

 한가운데 서있는 선우. 선우의 발을 먹고 음악실 복도에 핀 옅은 갈색의 얼음 꽃은 바닥을 타고 벽까지 자라있었다. 음악실 곳곳에는 옅은 갈색의 고드름이 맺혀있었고 선우 자신도 옅은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선우의 앞에는 경멸스런 루어 퀸비가 선우의 짝꿍인 리본 소녀를 인질로 삼고 있었다. 루어의 표정은 더할나위없이 황홀한 표정이었다.

 “후후, 겨우 찾았네. 우리 달링~”

 최악이었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천천히 드십시오.
주방장 비스무리로부터

 

 

​--------------------------------------------------------------
오늘의 메뉴 : 화이트 초콜릿 상자에 담겨있는 카카오 70% 함량의 작은 초코볼
​--------------------------------------------------------------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열린 창문 사이로 작은 벌레가 내 손등에 날아들었다.
무심코 죽였다.
이 벌레가 순간 나인 것 같아 돌아가는 내내 우울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너에게XX. 사건(4)

 

 

 

 

 

    

 양호실에 갔다 오고 나서 선우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형태가 다른 무언가로 변해버린 것은 아니다. 언제나처럼 선우는 조용하고 까칠했다. 다만 선우의 무기력과 죄책감이 증폭된 것뿐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로써 선우에게 주어지는 정신적 충격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상이상일 것이다.

 역시 그 녀석이었다. 이건 내가 전에 전쟁에서도 봐온 루어의 고유한 스타일이었다. 마법을 거는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한 절망을 선보여준 뒤에 나락에 떨어뜨려버리는 아주 질 나쁜 방법. 난 이 녀석을 잘 알고 있다. 전에 이 녀석의 스타일을 정말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으니까.

 불타는 카르텔 성에서 선우가 살고 있는 지구로 오는 90년 동안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 그 날의 광경, 그 날의 감정. 나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드는 할머니, 할아버지. 루어에게 공격당하면서도. 당신들은 행복한 듯이 웃고 있어. 아직도, 아직도 당신들은 내 마음에서 행복한 듯이 웃고 있어.

 

 선우는 나에게 말한다. “보이더, 난 너에게 좋은 계약자인 걸까....” “아니야.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 “나 있잖아, 슬비에게 너무 걱정시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나같이 마음 약한 소리뿐이다. 넌 약한 게 아니라고, 오히려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야자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도, 그리고 지금 기숙동으로 가는 중에도 그 소리뿐이다. 루어의 마법이 강력하게 걸린 것이다. 정말 싫다. 선우가 이렇게 절망하다 나를 버릴까봐 두려웠다. 난 선우가 말하는 것처럼 속까지 강한 사람이 아니다. 지금도 이렇게 손발이 떨리고 있는데.

 

 - 보이더.

 ㅡ ?

 -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러는데 너는 어렸을 때 어땠어?

 ㅡ 뭐가?

 - 공부 말이야. 공부. 너는 그때 공부 잘했었어?

 ㅡ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래도 상위권은 된 것 같아.

 - , 그렇구나. 그래도 그거로도 굉장하네!

 워먼덱스 속에 부착된 모니텨에서 선우가 쓴 웃음을 짓는 게 보인다. , 실수다. 선우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 역시 넌 달라. 아직 그 카르텔 성이 있었으면 넌 유명한 사람이 됐을 거야! 연구원이나 교수 같은 거!

 ㅡ , 그럴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그 카르텔 성에 있던 성립(星立) 식물 연구소가 생각이 났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막 태어난 인공 식물의 싹을 보여주시던 그 시간이, 그 환희가, 내 발끝에서 뿜어져 나와 워먼덱스를 감쌌다. 황홀했다.

 ㅡ 그래도 있잖아. 너도 이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도 안 꿀리는 외고에 다니고 있잖아?

 - 에이, 안 그래. 요즘 이 나라에서는 이 외고 졸업장 딸랑 하나 가지고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어. 얼마나 잘나신 나란데 이정도 가지곤 쨉도 안 돼. 높은 점수를 받아야 된다고. 그래야 어느 정도 앞서나갈 수 있어.

 ....... 정말로 숨 막히는 나라네. 성적으로도 보이지 않는 성적이 있잖아? 안 그래?

 - 그런 의미에서 넌 대단한 거야.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거네! 근데.. 별이 멸망해버리고..

 ㅡ 뭐 그렇긴 하지만..

 

 기숙동 우리 방에 돌아와서 선우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보이더.

 ㅡ ?

 - 전부터 궁금한 게 있어.

 ㅡ 뭔데?

 - 넌 왜 이렇게 완벽한 건데?

 ..... ? 갑자기 무슨 말을.

 ㅡ 난 별로 완벽하지 않아.

 - 아니야. 넌 완벽해.

 ㅡ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 , 내가 너를 좀 이상하게 여길 때에도 나를 상냥하게 대해주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챙겨주고.

 ㅡ .........

 - 니 고향이 멸망당해서 무서울 텐데도, 처음 보는 나를 보고 떨지도 않고.

 ㅡ .......

 - 게다가 나이스 바디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선우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니.

 - 난 너와 달라서 겁쟁이에, 찌질이에, 너보다 못 생겼어.

 ㅡ ........

 - 있잖아. 보이더.

 ㅡ....

 - , 너하고..

 

 ㅡ 아니야!

 - ... ?

 

 아니야! 넌 나의 둘도 없는 계약자야! 누가 뭐래도 넌! 내 둘도 없는 계약자야!

 

 시계 소리만이 우리들을 갈라놓았다. 째깍, 째깍.

 

 - 정말, 그렇게 생각해?

 ㅡ . 100% 확신이야.

 - ... 고마워.

 ㅡ ..... , 그런 거 가지고.

 선우는 안심이 되는 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웃음은 금방 사라질 신기루처럼 투명했다. 왜일까, 난 그 웃음이 중병에 걸린 사람이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고 난 다음에 지어보이는 웃음 같았다. 불안이 엄습해오는 소리가 났다.

 붕대감은 선우의 발에는 아직도 피가 조금 배어나오고 있었다.

 

 

 

 

보이더는 약한 여자입니다. 연약하고도 연약한, 얇은 얼음 한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ゆっくり천천히 드십시오.
주방장 비스무리로부터

 


​--------------------------------------------------------------
오늘의 메뉴 : 조금 단맛이 느껴지는 아몬드 쿠키
--------------------------------------------------------------

 


가까이서, 너의 숨결과 나의 숨결이 섞이는 데서
서로 껴안고
웃고
함께 떠들어 주지는 못해도
멀리서라도 조금 떨어져서라도
너를 응원해줄께
너의 앞날에 행복을 빌어줄께

그게,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일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너에게29. 사건(3)

 

 

 눈을 떴을 때, 나는 양호실에 누워 있었다. 조금 기절한 것 같았다. 발바닥이 따가워서 그 쪽을 쳐다보니 발바닥에 붕대가 감겨있었고 그 붕대사이로 피가 번져 나왔다.

 왜 발바닥에 이런 상처가 생긴 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양호실에 누워 있는 건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럴 텐데, 그 기억만 기억 속에서 통째로 없어진 것 같았다. 어차피 내가 또 쓸데없는 행동을 한 거겠지,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아이니까. 내 옆에는 보이더가 내 발을 보며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보이더가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것 같았다.

 “괜찮아? 선우.”

 “.... 니가 왜 여기 나와 있어. 들어가서 쉬어.”

 “네가 이렇게 아픈데 내가 어떻게 네 안경 속에 들어가서 쉴 수 있겠냐?”

 “뭐 맘대로 하셔..”

 보이더는 놔두기로 하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발바닥 언저리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 보니까 보이더가 나를 위해 발라준 거 같았다. 에구, 보이더. 니가 바보 같은 계약자 때문에 고생이구나. 왠지 찡했다.

 “보이더.”

 “?”

 “..... 나 어째서 여기 온 거야?”

 

 “.... 너 아무것도 기억 안나?”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 데?”

 

 보이더는 내 말을 듣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 뭔가 있어?”

 “너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 구나.”

 “아이! 그러니까 좀 빨리 말해 보라구! 안 그래도 답답해 죽겠으니까.”

 나는 보이더에게 소리쳤다. 보이더는 대단히 충격 받은 모양이었다.

 “... 차미애에게 습격 받았다고.”

 미애, 차미애?

 

 “, 그렇구나..”

 그 재수 없는 미애에게 습격당했었다니. 그리고 이렇게 당해서 양호실에 누워 있는 건가. , 당연한 결과겠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애니까. 어이없이 오빠를 보내버린 애니까. 어쩔 도리가 없었겠지.

 “, 나를 구하려고 안경까지 벗어 들었다고? 그리고 미애 안에 있던 누군가가 너에게 마법을 걸었어. 그래서 너 여기로 끌려온 거야.”

 아. 그런 거야? 그런 거구나.... 근데 잠깐만.

 

 “, 너를 구하려고 안경을 벗었어?”

 “. 그땐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

 “...... 그거 진짜?”

 “?”

 

 “아냐아냐아냐. 거짓말. 너 거짓말쟁이구나.”

 “......”

 “내가 무슨 수로 너를 구할 수 있겠어? 오빠를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낸 내가 어떻게 너를 구해. 분명 누군가 도와줬겠지.”

 “아니야. 너는 분명 나를 구했어. 정말이야.”

 “거짓말이야. 나는 한심한 놈이니까, 네가 나를 위해 거짓말 하는 거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

 정말 그럴 거야.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심한 놈이야. 보이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나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 걸?

 보이더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안쓰러운 건지 침울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 표정, 내가 걱정 될 때마다 지어보이던 그 표정. 나는 보이더를 보고는 살짝 쓴 미소를 띠었다. 언제까지 난 너에게 걱정만을 끼칠까. 난 너의 계약자로서 자격이 있었을까? 얼굴도 예쁘고 무슨 일이든지 척척해내는 너와 주위에 있는 누구에게도 짐만 되는 나. 보이더, 너는 왜 나하고 만나버린 거야? 다른 힘 센 사람과 계약했으면 너는 이런 꼴 안 당했겠지.

 

 침대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여기에서 쉴 시간이 없다. 슬비도 나를 많이 찾고 있을 것이다. 발은 조금 따가웠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보이더를 안경에 들어가게 한 후에 절뚝거리며 양호실을 나왔다.

 괜찮겠냐고 보이더가 물어본다. 걱정마라고 보이더에게 말했다.

 

 복도에서 희미하게 사람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천연파마에 리본이 달려있다. 슬비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슬비는 저 복도 끝에서 달려와 가지고는 나를 껴안았다. 슬비의 양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바보! 어디 갔다 온 거야! 한참 찾았잖아. 니 사는 기숙동 다 뒤져 봐도 없고! 나에게 전화도 없고, 문자도 없고! 너 혼자 갈 수가 있냐?”

 ... 너도 많이 걱정했구나.

 “하하하. 미안, 미안. 너 화장실 갔잖아. 그 뒤에 나도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어져서.... 좀 많이 큰 거드라.”

 “그래도 그렇지! 40분이나 화장실 가는 놈이 어디 있어! 그래가지고 걱정시키게 하고!”

 “미안...”

 에휴, 너도 나 만나서 고생이네.

 “빨리 가자. 좀 있으면 야자시간이야.”

 “, 그래.”

 슬비는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같이 복도를 걸어갔다. 빨리 가자. 빨리, 지금 야자 시간 5분 전이라고! 오늘 야자 담당 그 무서운 양재춘이래! 그래? 큰일 났다! 나하고 슬비는 달렸다. 달리면서 슬비가 내 발의 붕대를 보며 발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나는 침묵했다. 이이상 슬비에게까지 걱정 끼치긴 싫으니까. 그러면 정말 나는 아무도 지키질 못할 테니까.

 발의 피는 점점 많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