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29. 사건(3)

 

 

 눈을 떴을 때, 나는 양호실에 누워 있었다. 조금 기절한 것 같았다. 발바닥이 따가워서 그 쪽을 쳐다보니 발바닥에 붕대가 감겨있었고 그 붕대사이로 피가 번져 나왔다.

 왜 발바닥에 이런 상처가 생긴 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양호실에 누워 있는 건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럴 텐데, 그 기억만 기억 속에서 통째로 없어진 것 같았다. 어차피 내가 또 쓸데없는 행동을 한 거겠지,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아이니까. 내 옆에는 보이더가 내 발을 보며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보이더가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온 것 같았다.

 “괜찮아? 선우.”

 “.... 니가 왜 여기 나와 있어. 들어가서 쉬어.”

 “네가 이렇게 아픈데 내가 어떻게 네 안경 속에 들어가서 쉴 수 있겠냐?”

 “뭐 맘대로 하셔..”

 보이더는 놔두기로 하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발바닥 언저리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 보니까 보이더가 나를 위해 발라준 거 같았다. 에구, 보이더. 니가 바보 같은 계약자 때문에 고생이구나. 왠지 찡했다.

 “보이더.”

 “?”

 “..... 나 어째서 여기 온 거야?”

 

 “.... 너 아무것도 기억 안나?”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 데?”

 

 보이더는 내 말을 듣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 뭔가 있어?”

 “너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 구나.”

 “아이! 그러니까 좀 빨리 말해 보라구! 안 그래도 답답해 죽겠으니까.”

 나는 보이더에게 소리쳤다. 보이더는 대단히 충격 받은 모양이었다.

 “... 차미애에게 습격 받았다고.”

 미애, 차미애?

 

 “, 그렇구나..”

 그 재수 없는 미애에게 습격당했었다니. 그리고 이렇게 당해서 양호실에 누워 있는 건가. , 당연한 결과겠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애니까. 어이없이 오빠를 보내버린 애니까. 어쩔 도리가 없었겠지.

 “, 나를 구하려고 안경까지 벗어 들었다고? 그리고 미애 안에 있던 누군가가 너에게 마법을 걸었어. 그래서 너 여기로 끌려온 거야.”

 아. 그런 거야? 그런 거구나.... 근데 잠깐만.

 

 “, 너를 구하려고 안경을 벗었어?”

 “. 그땐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

 “...... 그거 진짜?”

 “?”

 

 “아냐아냐아냐. 거짓말. 너 거짓말쟁이구나.”

 “......”

 “내가 무슨 수로 너를 구할 수 있겠어? 오빠를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낸 내가 어떻게 너를 구해. 분명 누군가 도와줬겠지.”

 “아니야. 너는 분명 나를 구했어. 정말이야.”

 “거짓말이야. 나는 한심한 놈이니까, 네가 나를 위해 거짓말 하는 거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

 정말 그럴 거야.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심한 놈이야. 보이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나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 걸?

 보이더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안쓰러운 건지 침울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 표정, 내가 걱정 될 때마다 지어보이던 그 표정. 나는 보이더를 보고는 살짝 쓴 미소를 띠었다. 언제까지 난 너에게 걱정만을 끼칠까. 난 너의 계약자로서 자격이 있었을까? 얼굴도 예쁘고 무슨 일이든지 척척해내는 너와 주위에 있는 누구에게도 짐만 되는 나. 보이더, 너는 왜 나하고 만나버린 거야? 다른 힘 센 사람과 계약했으면 너는 이런 꼴 안 당했겠지.

 

 침대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여기에서 쉴 시간이 없다. 슬비도 나를 많이 찾고 있을 것이다. 발은 조금 따가웠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보이더를 안경에 들어가게 한 후에 절뚝거리며 양호실을 나왔다.

 괜찮겠냐고 보이더가 물어본다. 걱정마라고 보이더에게 말했다.

 

 복도에서 희미하게 사람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천연파마에 리본이 달려있다. 슬비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슬비는 저 복도 끝에서 달려와 가지고는 나를 껴안았다. 슬비의 양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바보! 어디 갔다 온 거야! 한참 찾았잖아. 니 사는 기숙동 다 뒤져 봐도 없고! 나에게 전화도 없고, 문자도 없고! 너 혼자 갈 수가 있냐?”

 ... 너도 많이 걱정했구나.

 “하하하. 미안, 미안. 너 화장실 갔잖아. 그 뒤에 나도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어져서.... 좀 많이 큰 거드라.”

 “그래도 그렇지! 40분이나 화장실 가는 놈이 어디 있어! 그래가지고 걱정시키게 하고!”

 “미안...”

 에휴, 너도 나 만나서 고생이네.

 “빨리 가자. 좀 있으면 야자시간이야.”

 “, 그래.”

 슬비는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같이 복도를 걸어갔다. 빨리 가자. 빨리, 지금 야자 시간 5분 전이라고! 오늘 야자 담당 그 무서운 양재춘이래! 그래? 큰일 났다! 나하고 슬비는 달렸다. 달리면서 슬비가 내 발의 붕대를 보며 발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나는 침묵했다. 이이상 슬비에게까지 걱정 끼치긴 싫으니까. 그러면 정말 나는 아무도 지키질 못할 테니까.

 발의 피는 점점 많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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