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새, 선비의 마음 - 보림한국미술관 02, 화조화
고연희(지은이)
작가가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꽃과 새, 선비의 마음]은
옛사람들이 꽃과 새를 어떻게 보고 느끼며 글 혹은 그림으로 그렸는가를 전하고자 한다.
비록 책에 수록된 작품을 그린 화가들의 시대로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책에 실린 유명한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면서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꽃을 그리고
새를 표현했는가를 지은이의 섬세한 설명글을 읽으며 짐작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관조적 입장의 감상객이 아니라
그림에 써넣은 한시의 멋드러진 한구절에 감탄을 자아내고 있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때론 섬세하게, 때론 과감하게 붓놀림을 했을 그들의 표현법에 갈채를 보내게 될 것이다.
사실 ‘화조화’라는 장르는 현대미술에 익숙해져 있는 나나 아이들, 모든 현대인들에게
무척 생소하면서도 낯설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장르가 아닌가 싶다.
풍경을 그린 것 같기도 하고 정물을 그린 것 같기도 한데 여러 소재를 망라하는 이들 분야와는 달리,
꽃과 새에 국한해 그들의 어울림을 한폭의 그림으로 담아 놓았다.
그리고 여타 분야와는 달리 그 그림 하나하나에 화가의 마음을 반추해 놓았고 각 그림들은 제각각 희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많은 지식과 상식을 접하게 되는데
옛사람들은 그들이 벗하며 사는 주변의 자연물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를 즐겼고
그 상징을 바로 그림에 끌어들여 그들의 속내를 그림으로 멋드러지게 표현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라 함은 여러 학식을 갖추고 임금에게는 충의와 지조를 지키며
사회적으로는 인격을 수양하여 도덕적 귀감이 되는 사람들로서 책에 수록된 그림들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하나같이 선비로서 추구했을 덕목과 수양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굳이 많은 말이 필요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는지를 단지 한폭 그림만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차가운 날씨에도 깔끔한 모습으로 지저귀는 까치에게서는 기쁜 소식을 예감했고,
갈대밭에 내려앉는 기러기는 갈대와 믿음을 쌓은 친구로 여겨 사랑했습니다.
또한 새벽을 깨는 수탉의 울음을 세상을 깨우는 한마디로 존중했고,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규화는 충직한 마음으로 여겨 아꼈습니다.
인간보다 오래 산다는 학은 삼천년 장수의 상징으로 보았고,
연못 한가운데서 맑게 피어나는 연꽃은 고고한 군자의 덕으로 칭송했습니다-
이 상징들을 보기만 해도 우리 선조들이 꽃과 새를 경히 여기지 않고 얼마나 애정을 쏟았는지..그들의 멋스러움이 시대를 초월해 다가옴을 느낀다.
또한 눈을 떠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을 온갖 종류의 황홀한 자연의 세계가 부럽다. 그 자연의 풍요가 바로 선조들의 마음을 이렇듯 넉넉하게 만들었으리라.
이럴진대 지금의 우리는 현대화, 도시화라는 명목으로 너무 무분별한 발전을 가속화 시켜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 가속화 속에 우리는 선조들이 지녔을 풍류도 여유도 너무 많이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이 책의 지은이는 책의 독서대상을 어른뿐 만이 아니라 초등 고학년 정도의 수준이면
흥미있게 그림을 보며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그림설명을 해주고 있다.
선명하고 눈에 띄는 그림들에 익숙해져 있을 우리 아이들,
정지화면을 지루해하며 모든 것이 수동적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선조들의 자연을 대했던 깊은 마음가짐과 자연과 어울려 살아갔던 지혜를 한 폭의 그림을 통해 배울수 있기를 바래어 본다.
김홍도가 그린 ‘매화와 까치’를 보며 봄을 부르는 까치의 지저귐에 한번 귀를 기울여도 보고
장승업의 ‘닭’을 보며 수탉의 멋스러움도 느껴보기를..
변상벽의 ‘암탉과 병아리’는 새끼를 돌보는 어미의 정성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양기훈의 ‘백로’에서는 옛선비의 올곧은 기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렇듯 의미가 듬뿍 담긴 작품들을 고정된 시선으로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아이들은 그들만의 감각으로 한 폭의 그림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고
이런 감각이 쌓여 어느날 문득 작가가 담아둔 의미를 눈치채게 될 것이다.
자연을, 환경을 보호하라고 낮은 소리로 엄히 꾸짖지 않아도
이런 그림들에 젖어 자연의 소리를 경청하는 아이들은 저절로 꽃을, 새를 사랑하지 않을수 없으리라.
책의 서문에 지은이의 글이 있는데 이 책은 그 서문에서 언급했던 여러 가지 약속에 아주 충실했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과 문체에 신경을 쓴 점,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를 쉽게 설명해 준 점,
화조화를 그린 화가들을 세기별로 잘 묶어 놓은 점,
쉽게 찾지 못하는 그림의 부분을 알기 쉽도록 표기해 둔 점...
여러모로 독자층과 호흡을 맞추고자한 지은이의 배려가 돋보인다.
첫장을 들추면서 ‘화조화’의 느낌을 좀체로 잡을수가 없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때엔 그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시선을 붙잡는 소박하고 단아한 그림들의 매력에 흠뻑 취할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계속해서 발간될 보림의 [보림 한국 미술관]시리즈에 자못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