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행, 참 괜찮다.
겉핥기식 관광이 목적이 아닌 살내음 나는 유람.
고작 초등3학년 아들내미를 데리고 엄마는 겁도없이 남미를 횡보한다.
그것도 렌트카를 빌려 유명관광지를 들르거나 휴양지에서 느긋한 휴식을 하는 돈냄새 물씬 풍기는 여행기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그러는 가운데 현지인과 섞이고 그네들의 삶의 풍경에서 느끼는 감상을 펼쳐보이는 여행기.
치안이 불안하다고 알려진 남미는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탓에
유럽이나 북미를 다닌 여행기나 지인들의 이야기는 많이 접할수 있지만 남미는 생소한 낯설음이 먼저다.
그런데도 그녀가 풀어놓는 남미 여러 곳을 따라가노라면 점차 낯설음은 옅어지고
모자의 머무는 곳에 멈춰서 그들이 바라보는 것을 함께 보고 그녀의 감상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어느새 여행의 동반자로 섞인다.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점령하에 있었던 남미 대부분의 나라엔 어디를 가나 그 흔적과 마주하게 되고 그것은 그들의 아픈 상처와의 조우를 뜻한다.
JB가 알아듣기 쉽게 들려주는 남미의 역사이야기가 귀에 쏙쏙 박힌다.
화려해 보이는 건축물 뒤에 가려진 인디오들의 애닮은 역사를 간과하지 않는 그녀의 세밀한 준비가 고맙다.
유적지 순례를 최소화 한 채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야기는 참 정겹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그네들의 차림새, 기질, 여유, 삶의 양식들을 미주알고주알 잘도 전한다.
거기에 그녀가 말하는 ‘내일은 없는 것처럼’의 기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들의 삶이 얼마전 우리네 모습이었는데 무슨 소중한걸 잃어버린양 아련한 그리움이 마냥 밀려드는 느낌, 그것이다.
여기,
우리와 정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남미의 라티노들,
그들에게서 받은 경박함을 드립니다.
내일이나 모레를 짊어지는 건 너무 무겁다고,
오늘은 오늘만 생각하자고,
일단 물고,
일단 빨고,
일단 사랑하고 보는
그들의 열정을 드립니다. -프롤로그
내일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라티노들의 삶을 통해 카르페디엠을 리마인드해 본다.
책말미에 수록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밝다.
책읽으며 중간중간 새로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이 친숙해져버린 얼굴들,
그만큼 그녀가 사람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일게다.
그리고 JB와 토닥거리는 모습에서도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그녀의 도서관 짓기 프로젝트에 응원을 보내며 남미 여행기 2부도 읽어야 할까보다.
흔히들 이야기하듯, 우리는 생의 나그네들이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일하고 금은보화로 창고를 채워두려 하지만, 사실 나그네에게 축적은 무의미하다. 생은 ‘현재’에 짤막하게 머물다 사라지는 것. -p.120
부디 개미처럼 살지 말라. 모두가 인류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을 지을 필요는 없다. 새로운 사조의 창시자가 될 수도 없다. 정복 같은 건 더더욱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나무를 심어라. 그저 꽃에 물을 주어라. 그저 자식을 낳아라. 나이를 먹으면 약간의 지혜를 얻거든 어린 이들에게 물려주어라. 그로써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발판을 닦아놓아라.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 떠나는 방의 쓰레기통을 비워놓듯이.
지금 네가 머무는 곳에 앉아라. 곁에 있는 사람의 입을 맞추고 사랑을 속삭여라. 죽을대 후회되지 않을 만큼 사랑해, 사랑해, 그리고 또 사랑해 속삭여라. 이유를 묻지 말고 안아라.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안아라. -p.121
어린아이도 알아가는 것이다. 존재의 아름다움은 그 안에 내재한 것들 때문이란 걸, 외관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그럴싸해도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망가지거나, 망가지지 않더라도 보는 이를 질리게 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가슴속 마음 조각에 있다. 내 마음 한 조각을 누군가에게 떼어주면 그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그 사람이 머무는 그곳도 아름다운 곳이 된다. -p.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