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프다 - 김영미 세계 분쟁 전문 PD의 휴먼 다큐 에세이
김영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앞에 설수 없고

그 어떤 이유로도 ‘사람’을 빼고는 명분이 있을수 없다.

그것이 비록 국익일지라도, 하물며 세계평화라 할지라도.

분쟁지역...나는 그동안 이것을 외면하며 살았다.

뉴스에서 다큐에서 그렇게도 자주 다루었건만 정치적으로 복잡미묘하게 얽혀있는 상황에서 자기편의 이익을 위해 분쟁을 불사한다고 생각하며 혀를 찼던 적도 여러번이다.

지금껏 내가 보아온 분쟁은 얼굴에 회칠을 하고 총을 높이들고 구호를 외치며 화염에 휩싸인 시가지를 누비던 시민군이나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정부군간의 반목, 그것이었다.

정작 그 속에서 신음하며 절망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6.25전쟁을 겪을 때 민주진영과 공산진영간의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와중에 선량한 국민이 쓰려져갔듯 그럴듯한 명분따위가 무색하게 하루하루를 작은 행복에 의지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신음이 거기에 있었다.

그 신음과 절망의 깊이가 어찌나 큰지 여지껏 그 소리를 듣지 못했음이 놀랍다. 이렇게까지 무관심에 철저했다니 한탄이 절로 나온다. 저자의 말이 딱 그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 모르면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사정이 복잡하게 얽힌 분쟁 지역은 늘 무관심의 그늘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p.10

이 책은 그리멀지 않은 땅,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분쟁을 다루고 있다. 아니 그 분쟁의 끔찍함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초점을 두어 촬영한 이야기다.(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 나라에 태어났기에 겪어야만 하는 척박한 환경틈에서 의사나 선생님이 되려는 희망을 꿈꾸고 있는 구걸소녀 오마이라, 이면지 노트를 받아들고 ‘선물을 처음 받는다’고 좋아하는 이 아이에게는 세 가지 권리가 있다.

배고프지 않을 권리,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받을 권리,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우리에게 부여된 권리라해서 누구든 누리고 있는 권리가 아니었다. 이곳 분쟁지역 아이들은 이 세가지 가운데 기본권리에 속하는 한가지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이순간에도 하루를 연명한다.

 

부르카를 벗어던지고 탈레반 정부가 물러난 소식을 아프간 국민에게 최초로 알린 여성 앵커 마리암은 여성이 교육받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키던 탈레반 시절, 집에서 독학으로 공부하며 비밀리에 동네 여자아이들에게 글자와 수학을 가르쳤다. 사형을 당할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쓸수 있는 용기는 순전히 배우고 싶은 열망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여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알고 싶고 배우고 싶었습니다. 나도 그랬고 내가 가르친 아이들도 그랬습니다.” -p.70 

교육을 받을 권리 또한 누구나 누릴수 있는게 아니었다. 지금도 마리암은 많은 협박을 받으며 방송을 한다.

 

책에 소개되고 있는 각양각색의 가슴아픈 사연들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아름다운 시를 지은 죄로 남편손에 맞아죽어야 했던 스물다섯 살의 여인 나디아,

미군이 낸 교통사고에 남편을 잃어 태어난지 갓 석 달된 딸을 작가에게 버리다시피 맡기며 갔던 열여덟살 여인,

쌍둥이를 낳았지만 이틀만에 추위에 둘을 잃어야만 했던 난민촌 새댁...이런 이야기가 그곳에선 놀랄일도 아닌 일상이라고 한다.

 

아프간 뒤에 들른 이라크에서의 취재는 전쟁전에 누리던 일상의 행복을 전쟁으로 빼앗긴 바그다드 사람들을 담았다. 작가는, 살아 있지만 언제 시체로 변할지 모르는 사형수 같은 바그다드 사람들을 다큐멘터리에 담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회의한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 속에 그녀가 있어야만 했던 이유는 서두에 밝혔듯이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나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쟁은 잔인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버린다. 하지만 작가가 한명, 한가족, 한부대 속에 들어가 만나본 개개의 ‘사람’은 우리와 같은 아주 평범한 행복을 찾는 이들이었다.

 

전쟁이 앗아 간 것은 바그다드 사람들의 행복이었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행복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행복, 학교 가면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행복, 단골손님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요리사의 행복, 맛집을 찾아 외식을 하는 가족의 행복... 이런 것들이었다. -p.174  

총을 맨 채 작전에 임하는 미국 군인들 또한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다. 그저 직업군인으로 이라크에 있지만 가족과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직업을 찾을거라고 말한다. 그들도 아내와 아이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인 것이다.

누가 씌운지 모르는 전쟁이나 분쟁의 굴레속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사람이다. 지옥과도 같은 처지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있는 이들의 다른 한손을 이제 외면하지 말고 잡아야한다. 에필로그에는 그 희망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감동적인 이야기의 단편들이 수록돼 있다. 어딘가에서 시작된 작은 정성이 얼마나 ‘사람’을 들뜨게하고 꿈꾸게 만드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내민 손을 어떻게 잡을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우리가 평소 하루에 마시는 커피 값이면 아프가니스탄의 평범한 일가족이 하루 식량을 해결할 수 있고, 한 달 커피 값이면 아프가니스탄의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몇 사람이 내는 큰돈보다 작지만 많은 사람의 정성으로 모인 후원금이 큰 힘을 발휘한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당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들을 위로해 줄 차례이다.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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