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 원시의 자유를 찾아 떠난 7년간의 기록
제이 그리피스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나만의 착각이었나보다. 이 책을 단순히 오지여행탐사 쯤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인 것이.

그리고 고백한다. 이 책은 여행과 관련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덤빌 그런류의 책이 아니라는 것을.

지구 곳곳을 누볐다는 실증사진 한 장 실리지 않았지만 그 어떤 여행관련 서적보다 작가의 체험은 실제적이고 주장은 분명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생명력으로 꿈틀거린다.

그리고 원주민들과 나누었던 대화의 증언은 생생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풀어내는 어원의 분량은 너무도 방대해 매번 기술될 때마다 체증을 느낄 정도인데다 풍부한 어휘력으로 토하듯 구사하는 내밀한 사색은 짧은 기일에 읽고 감상하기를 감당하기에 솔직히 벅찼다고 밖에 말할수 없다.

작가의 생명을 담보한 7년에 걸친 여행기를 담은 이 책은 원시의 숲에서 시작하여 빙하, 심해, 사막, 벌거숭이 산 그리고 사원을 두루 찾아다닌다. 지구의 그 원시자연에서 삶을 살아내는 부족들과 때론 대면하고 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기도 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땅’에 대한 생각들을 경청한 내용들을 통해 그들과 동떨어져 소위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원시성(또는 야생성)이 품고 있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한편의 서사시를 읊조리듯 들려준다.

작가는 어디를 가도 공통되게 던지는 물음이 있다. 바로 ‘땅’에 대해 생각하는 원주민들의 생각을 묻는 것.

우리가 보기에 오지와도 같은 자연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밟고 서있는 땅은 하루하루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곳일진대 지구의 어떤 동물보다 태생적으로 열등한 인간이 살아가기엔 너무도 척박한 지대가 아닌가. 하지만 그녀의 이 물음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먹고 살기에 편안한 의미에서의 땅의 개념을 넘어선다. 땅에서 얻은 풍요로움을 들려주고(숲) 땅을 영혼이자 고향이라 말하며 육체가 돌아가야 할 곳이라 여기고(사막) 자유를 느끼는 곳이자 사람들의 치유를 도와 주는 곳(빙하)으로 그들에게 있어서의 ‘땅’은 한결같이 경의로 가득차 있다.

이들과 대조적으로 책에는 인간이 그토록 정복하고자 했던, 그것도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자 열망했던 숱한 ‘정복의 역사‘를 나열하고 있다.

 

이누이트는 북극에 도달하려는 백인들의 욕망을 약간 바보스러운 노력이라고 보았으며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고생과 노력 그리고 그 모든 의미 없는 죽음에 대해서 , 이누이트는 매우 현실적이었기에 어떻게 추상적인 관념이 그러한 고통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p.246

그들은 말한다. 도시인들이 ‘문명화’를 내세워 그들의 땅에 들어온 이후로 잃어버린 것과 서글픔에 대해서. 개척의 정신은 어느 한편에서의 이론일 뿐 그 개척으로 인해 망가져 잃어버려야 했던 야생성과 그들의 풍요로움 그리고 생명, 갇힘.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봤느냐고.

 

선교사들과 접촉이 있기 전에는 “모든 것이, 우리한테도 식물과 동물과 물고기한테도 다 좋았어. 우리는 강하게 살았지. 옷도 입지 않고 깃털만 달았어. 몸에 색을 칠하고 노래도 불렀어.” 그때가 더 좋았나요? “질병도 없었고 걱정이나 문제도 없었지. 당연히 그때가 더 좋았지. 우리는 있는 그대로 풍요로웠거든.”-p.132

 돈과 에스파냐어와 일을 배웠다네. 전에는 필요도 없었던 성냥, 소금, 설탕 같은 것을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거야. 우리는 왜 문명화되었나? 결국 무엇을 위해 문명화 되었을까? 우리는 설탕과 석유와 돈과 옷과 음식을 시장에서 더 많이 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야.” -p.133

 

그렇다면 원시를 문명화 시키겠다고 쳐들어온 그들의 세계는 행복한가? 우리는 현재 더워지는 대기의 온도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재앙으로 목숨을 잃고 급격히 높아지는 탄소 수치로 인해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나날이 올라가는 해수면으로 인해 가라앉게 되는 나라의 이민을 걱정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내땅 네땅이라며 획을 나누어 소유를 주장하고 자본을 내세워 많은 것을 욕심내며 욕심에 눈멀어 전쟁까지 불사하는 이 행태는 우리가 문명화 되었기에 겪어야 하는 불행은 아닐는지.

 

 

"우리는 ‘환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브라질 야노마미족의 한 남자는 말했다. “그것은 당신네 백인들이 스스로 파괴하고 남은 것에 붙이는 당신들의 언어일 뿐입니다.” -p.146

    “내가 보기에는 콘크리트 정글인 도시가 황무지입니다.” -p.217

신은 태초에 이 모든 것을 창조했고 보기에 좋았다고 했다. 그것 자체로 만족스러웠다. 우리가 ‘발명’과 ‘발견’이라 일컫는 것은 삶에 편리성을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지구상의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 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작가가 둘러본, 지구의 원시성이 살아있으리라 기대했던 여러 곳들도 이미 정복되었고 원시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목격했다. 그곳의 부족민들은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그곳 젊은이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문명에 침략당해 앞으로 그 극한 지대에서의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곳에서 작가가 무심하게 던지는 도전적 물음은 이 책이 개인적 여행기가 아니라 지구의 얼마남지 않은 원시성, 결국은 그 속에 내재돼 있는 생명의 근원에 대한 성찰을 구하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런 현실에서 우리 인간이 차지할 위치를 작가가 서술한 한자락의 글에서 가늠해 본다.

 

“야생의 숲을 헤쳐나감으로써가 아니라 바로 그 숲 안에 머무름으로써 길을 찾아내는 동시에 길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중략> 인간은 합창단의 어엿한 일원이다. 불협화음을 내는 존재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란처럼 필요하고도 아름다운 한 부분이다.”

짧은 기간이라 부분부분 충분히 머물지 못하고 페이지를 넘겨야 했던 것이 아쉬운 시간으로 남는다. ‘원시성’이란 단어에 무턱대고 들어서는 선입견을 가차없이 깨뜨리고 새로운 견지에서 원시에의 의미를 되찾고 성찰하도록 하는 작가의 깊이있는 서술에 숨이 헐떡거려진다. 일독을 했지만 겉핥기로 넘겨진 부분도 있고 작가의 언어적 해석이 버거워 따라잡지 못한 부분도 많다. 그리고 원시에의 여행은 절대 낭만적일수 없다는 진리같은 명제를 얻었다. 자신의 처지에 맞물렸건 어떤 이유에서건 생명의 용트림을 찾아나선 작가의 용기에 갈채를 보냄과 동시에 그녀가 겪었을 온갖 고초를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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