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남자들! 문학동네 청소년 10
이현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은 '남자'가 아니면 '여자'로 갈리던 관점을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와 '내가 아닌 사람들'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그린 청소년 소설.
책에는 할아버지, 남자친구, 아빠친구, 선생님, 동아리선배, 오빠, 친구를 좋아하는 동급생,
아빠, 변태,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이렇게 열가지류의 남자들이 소챕터를 이루며 이야기가 엮어진다.
나열해 놓고보니 남자류도 참 다양하고 많으네.
금영이는 노래방을 운영하고 계시는 부모님 밑에서 전문계고를 다니는 그저 평범한 여고생이다.
금영의 절친으로 등장하는 마루와 현지, 최강태진이 한데 어우러진 이야기는
마루에게로 갔다가 현지에게로 갔다가 또 이들과 엮여져 다른 주변인물로도 옮겨다닌다.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다보니 처음엔 어찌나 방방뜨는지 청소년들의 재기발랄함이
그들이 내뱉는 대화속에 그대로 들어차있어 한껏 미소지으며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엔 이렇게까지 방방~ 뜨는게 요즘 트렌든가 싶어 살짝 거부감이 일려고도 했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기면서 이야기는 갈등단계에 이르고 그에 따라 이 말놀이 같던
언어구사도 조금씩 차분해지면서 내용을 충실히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작가의 경쾌한 문체는 끝까지 이야기의 묘미를 살려준다.)

대개의 청소년 소설을 보면 입시스트레스나 왕따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반해
전문계고 졸업후 진로를 고민하고 어렴풋하지만 자신의 꿈을 찾아 당당하게 첫발을 내딛는 이야기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대학진학만이 정도(正道)가 아니며 그보다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심을 주문하고 있어
신선한 자극이 되어준다.
그리고 학업성적이 부진해서 인문계 고등학교와 대학교라는 진학을 포기하는게 아닌 설정 또한 기존의 선입견에서 탈피해 있어 긍정적이다.
노래방 출입제한 시간 여덟 시 이후의 시간이 금영이에게는 충격이었고 외면하고 싶은 세상일 것이다.
변 모씨는 여덟 시 이후의 세계에서 겪은 사건이다. 
여덟 시를 기점으로 예전의 자기로부터 떠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금영.
이 여덟 시 이후의 세상에서 혼자인듯 외로움을 느낀다. 

예전의 나로부터 훌쩍 멀리 떠나와 버린 것만  같았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외로워졌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외롭게 했다. -p.276
그러나 그 시간의 경계 너머엔 혼자 있는게 아니었다.
이미 중학교때 경계를 넘어와 버린 현지가 있고 마루가 있고 최강태진이 있다.
경계를 넘어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지금 서 있는 세계를 직시하며 잘 살아가면 된다.
세상엔 여자가 아니면 남자가 있다고, 남자가 아니면 여자가 있다는식의 논리는 이제 여덟 시 이전의 세상이었다.
경계를 넘어오며 아픔도 있었지만 넘어온 이 세상을 보는 금영의 눈은
'나'와 '내가 아닌 사람들'로 나 아닌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졌다.
그리고 내가 아닌 사람들에는 남자도 있지만 현지나 마루, 엄마와 같은 여자도 있는 것이다.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던 여덟 시 이전의 세상을 벗어난 여덟 시 이후의 세상 초입은 끔찍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이후의 세상에서 금영과 친구들은 한단계 더 성장해 갈 것이다
혼자면 힘들지 모르지만 '함께'이기에 희망적이다.

 
지금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지금의 내가 믿고 있는 무언가를 향해
자신 있게 움직이는 시간들. 그럴 수 있다면, 앞으로 다가올 그 모든 시간들도 내 것이 될 것이다.
9256번. 오늘의 첫 곡이다.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나의 노래.
<혼자가 아닌 나>는 모두와 함께 부를 것이다. 나의 친구들, 나의 선배들, 그리고 먼 자유를 찾아
날아오를 나의 선생님과 함께. -p.293

자유를 찾아 날아오른 세상의 '내가 아닌 사람들'...모두에게 힘찬 화이팅을 외친다. 



나에게도 교복이 로망인 시저이 있었다. 초등학교 육 학년 때였다. 물론, 중학교에 입학하는 즉시 교복이란 초등학생들에게만 그럴싸해 보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어린이의 자유도, 선택할 수 있는 어른의 자유도 없는, 교복은 자유의 결핍에 시달리는 우리의 처지를 상징할 따름이다. -p.92

식탁 위에 놓인 케이크 표면이 번들거렸다. 더운 날씨에 초콜릿이 녹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케이크에 꽂아 둔 양초를 뺐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육군사관학교에 실패했다고 해서 오빠에게 이 양초가 쓸모없는 것은 아닐 테니까. 오빠에게는 앞으로 축하해야 할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남았다. 육사가 아니라도 다른 대학에 얼마든지 갈 수 있고, 여동생에게는 까칠한 오빠지만 어여쁜 여자 친구를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을 테고. -p.155

"너무 그러지 마라,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대한민국의 모든 아들딸은 제 아빠 때문에 헛구역질하며 살아야 될 거다. 너희아빠가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쓴다고? 그래서 뭐? 그럼 그 도우미를 부르는 사람들은 뭔데? 너희 노래방에서 도우미 불러 달라고 신용카드 내미는 아저씨들은 아들딸 없을 거 같아? 그런 아저씨들은 특별히 이상한 사람들인 줄 알아? 다들 그냥 직장다니고 뭐 그런 사람들이야. 누구네 아빠, 누구네 삼촌, 이렇게 말하면 억울한 사람도 있겠지. 세상에 왜 착한 아저씨들이 없겠니? 하지만 난 그런 가능성은 접어 두기로 했다. 괜히 그런 기대하면 실망만 커지잖아."
마루의 의기양양하던 말투가 시무룩했다. 무엇에 실망했던걸까. 얼마나 실망하고서 저런 말을 하게 된 걸까. 나는 가슴으로 아픔이 번지는 걸 느꼈다. 나의 아픔인지 마루의 아픔인지 알 수 없었다. -p.226~227 

여덟 시 이후의 세계를 몰랐던 그 시간들은 어제 내게 완벽한 과거가 되었다. 예전의 나로부터 훌쩍 멀리 떠나와 버린 것만 같았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외로워졌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외롭게 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뒤미처 무언가를 깨닫고 그로 인해 조금씩 더 외로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275~2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