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 박원순 세기의 재판이야기
박원순 지음 / 한겨레신문사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어느 시대의 법정은 죄를 규명하는 장소가 아닌
시대가 요구하는 희생자를 처형하는 도구로써 사용되곤 했다.
(지금의 법정은 이제 그러하지 아니한가...??)
이 책은
프랑스 비시정권의 수반, 필리페 페탱과
D.H. 로렌스의 저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제외한
여덟편의 이야기(소크라테스, 예수, 잔 다르크, 토머스 모어, 마녀재판, 갈릴레오 갈릴레이,
드레퓌스, 로젠버그 부부)를 들려줌으로써 
지난날 법정에서 벌어졌던 정의와 불의, 진실과 허위, 무고와 희생, 억압과 저항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맞섰으며
이 드라마틱한 순간에 어떤 이들이, 어떻게 주인공과 주변인 역할을 담당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제시하고
이후 역사는 이들을 어떻게 판명하고 기억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였다.

책에 등장한 인물들은 모함에 의해서든 자신의 신념에 의해서든
법정의 판결에 따라 죽음을 향하여 의연히 걸어갔다.
그들의 이런 모습은 마치 순교자와 같아서 훗날 시대는 이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진실을 외면한채 권력과 이해관계에 타협했던 이들은 잠시 죽음을 미루고 한때의 호시절을 누렸을지언정
역사는 결코 그들을 묵인하지 않았다.
사람의 법정은 정직을 오도하고 진실을 외면할 수 있었을지언정
오늘 역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필귀정이라는 그 명쾌한 판결에 금치 못할 전율을 느끼고 말것이다.
  

크리톤: 탈출을 돕겠다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은 돈을 요구하지 않네. <중략>
소크라테스: 우리는 단순히 사는 것을 소중히 여길 게 아니라 잘 사는 것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하네. 우리가 평생토록 진지한 논의를 통해 동의했던 그 모든 것들을, 이 나이의 우리가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며칠 동안에 내동댕이쳐 버려야겠는가? <중략> -p.33  


소크라테스가 평생 추구한 것은 선과 덕이었다. 그는 사형선고 직후에 단언하였다.
"어려운 것은 죽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피하는 것"이라고. "악에게 붙잡히지 않는 것은 죽음에 붙잡히지 않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악은 죽음보다 발걸음이 빠르기 때문"이라고. "지금 나는 늙고 발걸음이 느리기 때문에 그 느린것(죽음)에 붙잡혔지만 나를 고소한 사람들은 영리하고 발걸음이 빠르기 때문에 그 빠른 것(악)에 붙잡혔다."고. 그래서 독백처럼,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말하였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각기 우리의 길을 가야 합니다. 나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그러나 어느 쪽이 좋은지는 신만이 알고 계십니다." -p.36 (소크라테스의 재판中) 

클레망소는 드레퓌스 사건에 관하여 약 800편의 글을 썼다. 매일 매일 그는 굽힐 수 없는 논리로 <오로르>지에 드레쉬스를 변호하는 힘찬 글을 썼다. 그에게는 불법성 자체가 불의의 한  형태였다.
국가이익-그것이 법을 위반할 힘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법에 관해 말하지 말라. 자의적인 권력이 법을 대신할 것이다. 오늘 그것은 드레퓌스를 치고 있지만 내일은 다른 자를 칠 것이며, 국가이익은 이성을 잃은 채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반대자를 비웃으며 쓸어 버릴 것이고, 군중은 겁에 질린 채 쳐다만 볼 것이다. 정권이 국가이익을 내세우기 시작하면 끝이 없게 마련이다. 그것은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차이를 허용치 않고 차이를 감내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드레퓌스에게 적용된다면, 다른 누구에게도 적용될 게 분명하다. 새시대의 동이 터올 때, 대혁명이 보인 첫 행동은 국가이익의 저 거대한 요새, 바스티유를 쳐부수는 것이었다. -p.230 (드레퓌스의 재판中)

프랑스가 부역자 처리 문제에서 보여주었던 단호함은 우리의 귀감이 될 만하다. 프랑스는 자신의 어두운 역사와 부끄러운 과거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민족적 정통성을 곧추세웠다. '클라우스 바르비' '폴 투비에르' '모리스 파퐁' 사건 등 최근까지도 공소시효를 배제한 채 나치 부역자에 대한 재판을 계속해왔다.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우리로서는 부러움과 부끄럼을 함께 느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p.268 (필리페 페팽의 재판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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