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영미권에서 전해오는 'GOLDILOCKS AND THE THREE BEARS'라는 전래동화를 각색해서 만들어진 책인데 책 내용에 등장하는 금발머리 그러니까 Goldilocks의 등장이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표지의 노란색을 통해 은근히 내비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뒤표지를 보면 정말 말괄량이처럼 생긴 금발머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독자를 쳐다보고 있다.
「곰 세마리」는 영미권에서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이다. 다른 창작물에서 조차 이 이야기를 빌어쓰는 형식을 취하는 책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니 영어에 입문하려면 이 정도의 이야기는 기본으로 알아두어야만 할 것 같다. 그렇게나 유명한 이야기...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도서시장에도 이 원본의 번역본들을 어렵잖게 만나게 된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책들은 하나같이 내용을 축약시켜 놓았고 삽화 또한 정성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접하게 된「곰 세마리」. 헝가리 출신의 폴 갤돈이라는 작가가 내용을 쓰고 삽화를 그렸다는데 나는 솔직히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이름이다. 그는 칼데콧 명예상까지 수상했다고 하는데... 이런 낯선 느낌으로 표지를 넘기니 대충 그려진듯한 뒷배경에 반해 투박하게 생긴 나무밑둥이 작가가 제법 정성을 기울인 흔적을 지니고 서있다.
다음 장에는 숲속에서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곰세마리의 모습이 나오는데 작가가 배경을 두고 그린 그림은 이게 전부이다. 이후부터는 오직 이야기의 주인공들에만 초점을 맞춘채 배경을 생략해 버린다. 그래서일까... 책에 등장하는 곰세마리는 제법 세밀한 텃치로 표현되어 있다.
한 마리는 조그맣고 조그만 곰,
한 마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곰,
한 마리는 커다랗고 커다란 곰,
이 곰을 표현한 방식은 책을 읽어나가는데 있어 대단한 묘미로 작용하는 것 같다. 원본에는 커다란 곰, 조금 작은곰, 작은곰으로 표현되어 단지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으로 구분짓고 있는데 작가는 읽는재미에 착안해서 중간중간에 이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효과를 통해 그릇, 의자, 침대를 거치면서 엄마가 아이와 이구동성으로 자연스럽게 이 표현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장치해 놓았다.
이렇듯 아이와 엄마가 한참 조그맣고 조그만, 크지도 작지도 않은..을 외치고 있을때 느닷없이 금발머리 소녀가 등장하면서 아이눈은 휘둥그레진다. 금발머리는 게걸스러운 얼굴에서도 알수 있듯이 원래는 곰돌이네 이웃에 사는 말괄량이라고 한다. 이 말괄량이는 도저히 어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데 주인없는 집으로의 침입. 아이니까 그럴수 있지. 하지만 다음에 벌어지는 일들은 더 심각하다. 주인이 먹으려는 죽을 먹고 의자를 부서뜨리고 주인이 없는 집 침대에 누워서 잠까지 잔다.
이 쯤에서 독자들은 어쩌면 말도 안되는 책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교육‘을 염두하고서 책을 읽히는 부모라면 아예 책을 덮어버릴지도 모르지. 하지만 '곰 세마리'이야기는 엄연히 영국이라는 나라의 전래동화이고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정서를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겠다. 전래동화라는 게 우리의 것을 들어도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들이 많은가! 그러니 이야기를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동화가 주는 재미를 만끽하지 못한다. 그저 아이의 마음으로 책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빠져 볼일이다.
그렇게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던 금발머리 앞에 곰가족이 나타나고 당황한 금발머리는 창문으로 도망쳐 버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황당하다고? 하지만 그 황당함을 이제부터 이야기의 시작으로 삼으면 된다.
그 뒤로 금발머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글쎄, 정말 아무도 모를까? 금발머리가 다시 곰돌이를 기웃거리지는 않았을까?
곰 세 마리도 금발머리를 다시는 본 적이 없대
-곰 세 마리는 못봤지만 금발머리는 곰돌이네 집 근처에 숨어 있었을지도 몰라
이런식으로 아이랑 다음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 되는 것이다. 이「곰 세마리」에서 특별난 재미나 교훈을 찾으려고 한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전래동화는 그저 읽히는 맛과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을 즐기는데서 재미를 찾아야하니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곰 세마리」는 아이의 귀와 입을 즐겁게 해주고 금발머리로 인한 일대소동으로 인한 독특한 재미를 안겨다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