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너구리네 봄맞이 민들레 그림책 6
권정생 글, 송진헌 그림 / 길벗어린이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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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멀리서 바라보는 겨울산이 있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온통 산을 뒤덮고 있는 희끄무레한 겨울산. 멀리 조그맣게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렇게 먼 산속엔 너구리네가 겨울잠을 자고 있는 집이 있지요. 페이지를 한장 넘기면 이제 멀리 보이던 산은 조금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너구리들이 잠들어 있는 굴도 조그맣게 보이고 그 굴속에 황색빛 너구리들이 서로 웅크린채 긴긴~ 겨울잠을 자고 있습니다.

또 한 장을 넘깁니다. 이제 너구리는 여섯임을 알게 됩니다. 그 다음장엔 각기 너구리들이 겨울잠을 자는 자세와 표정까지 알 수 있을만큼 너구리집이 눈앞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이렇듯 멀리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카메라의 렌즈를 당기듯 클로즈업 기법을 사용하며 <아기너구리네 봄맞이>는 시작됩니다.

여기쯤에서 다시 앞으로 넘어가 내용을 읽으니 이들은 모두 가족입니다. 따뜻한 봄이 올때까지 굴속에서 서로의 체온으로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너구리네 가족.. 아무일이 없을것만 같은 동굴속에서 아기너구리들은 겨울잠을 깨버리고 겨울이 어떤지도 모른채 바깥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왜 잠을 자고 있어야 하는지를 모르는냥 말입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굴들머리에 닿은 아기너구리들.. 거센 눈보라가 불어치는 겨울 바람에 놀라서 감히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한채 생전처음 눈을 구경하고는 '하얀 찔레꽃잎이 마구마구 쏟아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쳐다본 바깥의 겨울엔 앙상한 가지만을 남긴채 눈보라를 맞으며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는 겨울나무를 보게 되지요.

세마리 아기너구리들의 모습은 굴머리에 얼굴만을 조금 내민채 우두커니 바깥을 내다보면서 어리둥절해 있는 표정이 한겨울의 서릿발을 이기기에 너무 작은 존재임을 전체페이지에 아주 작게 그려 표현해 주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는 굴속으로 되돌아 갑니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한 걸까요? 엄마너구리 곁에 옹크리고 엎드리면서 그들이 깨달은 것은 봄이 올 때까지 조금 더 기다리며 그렇게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을 알았겠지요. 한동안 아기 너구리들의 호기심으로 부산스럽던 굴은 다시 조용해지고 겨울산은 조용히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양화를 전공했음에도 따뜻하고 정감어린 그림으로 우리네 정취와 잘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는 송진헌님의 그림과 낮은 곳에 있는 것들에 대한 따스한 글말을 쓰시는 권정생님의 글이 잘 어우러진 겨울소재의 내용임에도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새까만 연필의 터치를 쌓고 쌓아서 삭막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겨울산하를 봄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있는 자연의 생명들을 내세워 커버해 버린 그림들.. 은회색의 겨울을 인내해낸 너구리네 가족들의 눈앞에 펼쳐진 연두빛과 분홍빛의 봄은 겨울의 모습과 너무도 대조적으로 펼쳐져 있어 마치 마술을 부린듯 계절이 바뀌어 있습니다.

눈이 뭔지도 모르는 아기너구리들의 천진스러움이 마치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어 책을 읽는 엄마들은 피식~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지요. 또한 겨울의 지리함을 재미있는 글말로 달래주려는듯 쓰여있는 예쁜 글귀에 아이들은 귀가 즐겁구요.

눈이 말똥말똥 / 발가락이 꼼지락꼼지락 / 똥구멍이 간질간질 / 가슴이 두근두근

분위기에 맞도록 잘 선정된 글귀들은 때론 포근하게 때론 우습게 또 때론 과감하게 쓰여져 있어 아이들 그림책을 쓰는데도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이는 작가의 글표현에 또한번 놀랍니다.

굴 문은 아주 비좁고 쪼꼬만했어요. / 그만 방귀를 '뿡!' 뀌어 버렸어요. / 차가운 바람과 함께 얼굴을 후려쳤어요.

춥고 긴~ 겨울의 지리함을 이기고 나면 버들강아지 피어나는 연두빛 봄이 찾아올 거라고.. 처음 맞는 봄맞이에서 마시는 개울물의 물이 새로운 날을 살아갈 기운을 북돋아주듯 '봄'은 그렇게 기다리는 자에게 자연스레 주어지는 자연의 선물임을 아기 너구리들은 첫겨울을 지내면서 깨닫게 되었겠지요. 그들의 성숙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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