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글이 하나도 없지만 아이의 상상력에 의지해서 책을 읽어나갈 수 있는
'글없는 그림책'을 한번 살펴볼까해요..
글없는 그림책은 어찌보면 참 쉬울 듯 한데 또 다른 면으로 아이가 이야기를 요구할 때
엄마의 재치가 요구되는 책이기에 한편으론 다루기 힘든 면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일정한 지문으로 아이의 상상력에 제한을 두었던 여타 책과는
또다른 성격의 분야이기에 한번 다뤄볼까 합니다.


빨간 풍선의 모험


이탈리아의 디자이너이자 그림책 작가인 옐라 마리의 글없는 그림책이예요..
제목처럼 빨간 풍선이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대상에 따라서 이런 저런 모습으로 모습을 변화시키는데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얼마든지 이야기 살을 붙이며 읽어 나갈수 있는 책이예요..
그럼, 제가 하은이랑 책을 읽을 때 가끔씩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적어 볼께요..

안녕?
나는 요술을 부리는 빨간 풍선이란다.
난 내가 되고 싶은건 뭐든지 될 수 있어..
어.. 소년이 나를 불고 있네..
이렇게 커졌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볼까?

많이 돌아다녔더니 좀 피곤한데..
옳지, 저기 나무가 있네..
가지에 앉아서 쉬고 가야지..
나뭇가지에서 쉴려면 뭐가 좋을까?
그래, 빨간 사과가 되어 보는거야..

나무에 오래 매달려 있었더니 좀 심심한데..
아래로 내려가 볼까? 뚝~
와~ 여기엔 친구들이 많이 있잖아..
친구들아~ 나랑 같이 놀자~
개미야~, 쇠똥구리야, 애벌레야~
어, 모두들 바쁘잖아..
그럼 다른 곳으로 가 볼까..
옳지, 빨간 나비가 되어서 저쪽에 있는 꽃밭으로 날아가 봐야지..
훨훨~

야~ 꽃향기 정말 좋다..
어..개미 친구도 어느새 놀러왔네..
예쁜 꽃을 보니까 왠지 꽃이 되고 싶은데..쨔짠~~
어때? 애벌레야..빨간꽃이 잘 어울리니?

어~~ 누가 나를 데려 가잖아..
누구세요?
저기 비구름이 오고 있어요..어떡해요?
제가 우산이 되어 줄까요?
됐죠? 비가 와도 괜찮죠?
이제 집에까지 바래다 줄께요..


눈사람 아저씨


박스컷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빌어 옅은 크레용톤으로 그려진 그림이 무척 따스한 느낌으로
와 닿는 책이예요.
원본인 'Snowman'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또 책을 영상화한 video도 유명하죠..
하은이는 솔직히 책보다는 video를 더 좋아하는 편인데
책은 지면상의 이유인지는 몰라도 상상력을 극대화해 놓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들어요..
통통하니 귀엽게 생긴 눈사람 아저씨,
그의 품에 안기면 왠지 따뜻하니 폭~ 안아줄것만 같은 편안함이 느껴지는건 왜일까요?
눈사람 아저씨의 엉뚱한 행동에서 비롯되는 사소한 사고(?)들에서 하은이는 어김없이 웃게
되고 그를 따라서 함께 하늘도 날아보는 상상을 하게 되죠..
그런후에 다가오는 존재의 상실..
아직 어려서 눈사람이 왜 쓰러져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뭔가 좋지 않은 분위기임을 감지하고는 슬퍼하지요.

글이 하나도 없지만 그림을 따라가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그렇기에 지문없이도 아이들이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책..
어린 소녀의 가슴에 포근하니 눈사람 아저씨의 잔상이 남아있을 테지요..


구름 공항


데이비드 위스너의 「구름 공항」은 제목에서 함축하고 있는 의미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구름 공항이라니??
비행기 공항은 알지만 구름도 공항이 있다는 이야기는 난생 처음인데다가
상상의 착안조차도 하지 못했던 용어가 아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름 공항」은 정말 기발한 상상력으로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책 인
것 같아요.

늘 일정한 형태로만 있는 구름들이 자신들의 모습에 싫증이 나서 여러 가지 모양의 구름으
로 바꿔달라고 일대 소동을 벌이죠.
구름들이 생각을 하고 또 협심해서 일을 꾸미고..
참 재미있는 상상이죠.
그래서 바뀌어진 모양들-문어모양, 복어모양, 해파리 모양 등등..
클라이막스에 보면 하늘에 떠있는 갖가지 모양의 구름을 보고 고양이들도 놀라고
바다속의 물고기들도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지요..
정말 천지가 개벽할 일입니다.

이렇듯 평소에 전혀 있지 않을 법한 이야기들을 그림책은 아이들의 상상의 세계에서 가능하
게 해주는구나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있어 그림책의 존재라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말이겠죠..

지금은 아이가 어려서 때로 엄마에게 읽어주기를 요구하지만
때가 되면 제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읽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는 이 한 권의 그림책이 볼 때마다 내용이 달라질테니 두 권이 되고 세 권이 될테지요.
엄마는 아이가 지어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아이가 어떤 상상을 하는지 어림짐작 할 수
있을테구요.
어서 그 날이 오면 좋겠네요..^^


이상한 자연사 박물관


이 책의 원제는 'Time Files'입니다.
어떻게 해서 번역본의 제목이 「이상한 자연사 박물관」으로 붙었는지는 모르지만
원제가 더 책의 내용을 분명하게 전달해 주는 것 같아요.
공룡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주제가 아니라 시간을 넘나드는 상상력이 주제라는 거죠.
하지만 공룡전시관(자연사 박물관)을 배경으로 한 것은 어쩌면 작가의 탁월한 선택인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들은 현존하지 않는 거대한 몸집의 공룡이란 것에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지는데다가
예전엔 존재했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대상이기에 얼마든지 현재에서 고생대로 시간을
넘나들면서 그들을 만나보게 되는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을테니까요.

현실에서 살아있는 한 마리의 새가 화석으로 가득차 있는 박물관으로 날아듭니다.
공룡들이 죽은것이라는 걸 아는 듯이 작은새는 여기 저기를 날아다니다가
아무 공룡에 앉아서 쉬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현실의 세계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죽어있는 공룡을 깨우고는
아무 거침없이 날아다니던 겁없는 새를 잡아먹어 버리죠..
이쯤되면 아이들은 경악을 하지요..
어른들은 영문을 몰라서 앞장을 넘기기 바쁘구요..
하지만 사건은 거기까지입니다.
곧바로 시간은 현실로 되돌아와 버리죠..
살아서 꿈틀대던 공룡들도 다시 화석으로 돌아오고
공룡의 입에 삼키웠던 작은새도 다시 날개짓을 하면서 화석의 몸을 뚫고 나오죠..

이 책을 보면서 공룡에 대한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어찌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의 초점을 '시간'이란 것에 맞추어 책을 읽는다면
에릭 로만이 무엇을 염두해 두고 책을 만들었는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하실수 있겠지요..
1995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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