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를거야 내가 누군지 - 솔거나라 전통문화 그림책 5
김향금 (지은이), 이혜리(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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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그림책 시리즈 ‘솔거나라' 중에 탈과 탈춤을 소재로 한 그림동화예요.

말썽쟁이 건이의 심리를 통해서 우리 조상들이 지녀왔던 여러 가지 탈의 성격과
탈이 지니는 의미를 잘 전달해 주고 있죠.

시골의 할아버지 집에 맡겨진 건이는 한껏 말썽을 피운 뒤
혼날 것이 두려워 다락방에 숨습니다.
아이들의 심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지요..
이 부분 부터가 어쩌면 탈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모습을 다락방에, 그리고 더 완벽한 어딘가에 숨고 싶은 마음을 탈이 가능케 해 주니까요..

옛적 우리 조상들은 현실에서의 갈등과 불만을 탈춤을 통해서 많이 정화시키곤 했다죠.

다락방에 숨어들은 건이는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으신(방의 액자 사진을 볼 때) 탈들을
발견하고는 하나씩 뒤집어 쓰기 시작합니다.

그 탈들을 썼을 때 현실에서 맞닥뜨린 건이의 걱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건이는 단지 탈주인공이 되어 호통도 치고, 웃기도 하고, 춤도 추어 보게 되지요..
이건 우리 조상들이 탈을 통해서 가졌던 탈의 역할을 꼬마아이 건이도 금방 익숙하게 섭렵(?)하고 있다는 것이죠..

한 달이 지나면 데리러 오겠다던 아빠, 엄마에 대한 불만도 잊어버리고..
마당에 한껏 말썽을 피우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혼날 걱정도 탈을 통한 역할놀이로 금새 망각해 버립니다.

네눈박이 방상씨탈을 쓰고는 다락방 귀신들을 혼내주고,
소탈을 쓰고 네발로 돌아다니고,
양반탈을 쓰고 점잖게 기침도 에헴~ 거리며 해보고,
개구쟁이 말뚝이 탈을 쓰고는 양반들을 골려주기도 하며 신나게 놀지요.

그렇게 실컷 놀고 난 후 탈을 벗고 보니 현실의 문제가 덜컥 생각납니다.
하지만 걱정은 잠시,
애초에 사건의 발단이었던 엄마, 아빠의 출현으로 건이의 불만은 해소가 되고
행복한 결말로 책장을 덮게 되지요..

마지막 장의
'그런데 탈을 쓰면… 정말 아무도 모를까, 내가 누군지? '
라는 건이의 의미심장한 말의 여운을 지닌채로...

이 책에는 아이들이 알아야 할 대표적인 우리 탈, 6가지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신앙가면의 일종인 구나가면(귀신 쫓는 탈)인 방상씨탈,
풍년을 기원하는 양주 소놀이굿의 소탈,
가장 한국적인 얼굴로 뽑히는 하회 양반탈,
전형적인 민중을 상징하는 말뚝이탈,
각시탈과
미얄할미탈...

얼마전에 아산 민속박물관에서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탈들을 볼 일이 있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탈들이 모두 전시되어 있더군요..
제가 보았던 느낌은 책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어찌보면 흉측(?)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긴 그 당시에 일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놀잇감으로서의 탈일 뿐인데
좋은 재료로 멋지게 만들어 졌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했던 저의 생각이 참으로 짧았다는 것을 금새 깨닫게 만들더군요...

이 책은 우리 아이들이 좀체로 접해 보기조차 힘든 소재인 '탈'을
건이라는 개구쟁이 아이를 등장 시킴으로써 책을 읽은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건이의 움직임에 따라 여러 종류의 '탈'을 따라 잡을수 있도록 글을 구성한 점이 단연 돋보이는 점인 듯 합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책 평론집 「그림책」에서 최윤정 氏가 언급했던 평을 옮겨 봅니다.
이하는 「그림책」에서 발췌한 부분입니다.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누군지」의 가장 큰 미덕은 이처럼 중심이 분명하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예술적 성과에 대해서는 다분히 회의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혜리 그림 특유의 가벼움이 탈의 무거움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대부분 따로따로 작업을 하는 우리 나라 그림책의 창작 현실 탓이겠지만 많은 그림책들의 그림은 글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복사하는 일에 그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혜리는 텍스트 해석력이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로 꼽힌다. 그것은 분명 이 작가의 커다란 장점이다. 하지만, 때로는 만화와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일러스트레이션들에서 깊이를 찾아보기가 힘든 것은 종종 그의 약점이 되기도 한다.
모든 문화유산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탈'에도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흔적이 무겁게 스며 있다. 탈이 민중의 삶 속에 자리잡고 있던 당시의 문화적 맥락과 지금의 그것 사이에는 분명한 거리가 있다. 탈이라는 오브제 자체는 그 앞에 선 감상자에게 필연적으로 그 거리를 환기시킨다. 그래서 아주 우스꽝스러운 광대탈 같은 것까지도 일종의 숙연함을 자아내지 않던가. 그런데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누군지」의 탈 속에는 이 거리가 없다.
건이의 일상 속에 있는 다른 오브제들과 탈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건이의 이야기라는 '허구'속에 녹아 들어 가버린 탈을 그려 낸 이혜리는 그 허구 바깥쪽에서 우리들에게 대물림되어 오고 있는 '문화유산'의 믿음직한 무게감을 별 고민없이 털어버린 셈이 되었다. 그 결과, 양반탈, 소탈, 말뚝이탈, 미얄할미탈 등등의 탈은 건이의 장난감과 별로 다르지 않게 전락될 위기에 처해 버렸다.
만일 작가가 탈에 관해서만은 다른 기법을 사용하든가, 사진이나 세밀화 등 보다 진짜 탈에 근접하는 이미지를 보여 주었더라면 전통이나 문화유산이라는 것이 훨씬 실감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표지 그림에 재사용된 컷을 보자.
탈 자체도 강조되어 있어서 그런지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른 탈에 비해서 훨씬 실제 탈답다. 그리고 탈에 난 구멍을 통해서 보이는 건이의 눈과 벌어지 입이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누군지'라는 발상을 생생샇게 시각적 이미지화하고 있다. 그런데 탈 뒤에 숨어 있는 건이의 얼굴을 잘 보면, 탈을 쓰고 있지 않았을 때와는 달리 기형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눈과 입 사이의 거리가 엄청나게 떨어져 있다. 이런 실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책 속에는 부록으로 종이탈이 한 장 들어 있답니다.
저희는 말뚝이 탈이었는데 각기 다른건지 아니면 모두 말뚝이 탈인지는 알 수가 없네요..
하은이는 시댁에서 읽혀왔던 책인지라 책구입 시부터 무척 좋아했었답니다.
탈을 쓰면서 한번씩 따라하던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누군지?"하는 말이 떠오르네요..*^^*


하은이의 활용이 궁금하시면 +클릭+


*안동의 탈춤페스티벌에 갔었어요~*


*다양한 탈들이 정말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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