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석굴 - 인류의 위대한 유산 2
타가와 준조 지음, 박도화 옮김 / 개마고원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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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화이며 예술을 다루고 있고, 또한 여행기이다.
내가 돈황 석굴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때가 언제이던가...
한 소설가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윤대녕이 아니다.
윤대녕의 울림도 큰 것이지만 그보다 내겐 오랜 것이다.
윤후명의 <돈황의 사랑>...
소설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소설을 읽은 직후 나는 <돈황석굴>이라는 타가와 준조의 글을 빌려 읽었고
이번에 다시 그 책을 들여다 본다.
이번엔 윤후명이 아니라 윤대녕 때문이다. 사막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아직도 내 주변을 떠돌고 있구나.

낙준이라는 걸승에 의해 처음 조성된 돈황석굴...
그 후 4세기 중반부터 14세기까지 천년에 걸쳐 만들어졌다는 석굴...
현재 남은 석굴만도 4백 92개, 남북 1,600미터의 길이에 여러 층의 석굴이 뚫려있다.
웅장하다... 천년에 걸친 조성이라니....

각 시대별 미술의 특징이 들어있고 불교가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유적...
그들이 석굴을 조성하고, 불상을 조각하고, 불화를 그리면서 염원한 것은 무엇일까?
지나간 많은 흔적들이 사라졌지만 아직 남은 것만으로도 거대하다.

이 책을 쓴 타가와 준조는 일본 NHK <실크로드> 취재반의 일원으로 돈황석굴을 둘러보고 이 글을 썼다. 예전에 KBS에서 소지로의 오카리나 소리와 함께 본 기억이 있는 바로 그 길에서 보이던 것이다. 비디오라도 구할 수 없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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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시인선 108
이하석 지음 / 세계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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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측백나무 울타리>보다 못한 느낌... <김씨의 옆얼굴>보다 못한 느낌... 환경과 생태가 전면으로 나서면서 오히려 시가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거기엔 <측백나무 울타리>에서 보곤 하던 상징(그 곳에서 보던 울타리를 사이에 둔 경계라는 상징은 아직도 유효하다)도, <김씨의 옆얼굴>에서 보이던 공감도 보이지 않는다.

이하석의 장기는 씨니컬한 비웃음과 섬뜩한 상징이다. 그것의 거세는 곧 시의 고갈을 뜻할 터...이하석의 시선이 김지하와 최두석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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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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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최정수 역, (문학동네, 2001.12)
2004년 1월 19쇄

'바로 그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납은 세상이 더이상 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납의 역할을 다 하고, 마침내는 금으로 변하는 거야.
연금술사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야.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지.'

- 산티아고가 해에게 들려준 말. 241-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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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신화를 찾아 나선 양치기 산티아고. 동화적 몽상. 파랑새를 찾아나선 찌르찌르와 미찌르. 행복은 바로 자기 집에 있었다. 먼 길을 떠나 그 속에서 찾게 되는 행복. 우리도 늘 이렇게 변죽을 울리며 겉돈다. 그러나 그러기에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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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조용히 좀 해요
레이먼드 카버 지음, 손성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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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제발 조용히 좀 해요>(손성경 역, 문학동네, 2004.3)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에 알게 되었다.
1. 정치, 경제, 사회적 요소를 언어로 토로하지 말 것.
2. 철저히 객관적일 것.
3. 인물과 사물에 대한 묘사를 진실하게 할 것.
4. 철저히 간결할 것.
5. 따뜻한 마음을 지닐 것.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내가 이해하기에는 좀 힘들었다.
짧은 단편이라는 응축에 어느 때는 숨이 턱턱 막히기도 했다.
내가 책을 읽으며 뭔가 발견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들은 숨어 버린다. <뉴욕 삼부작>도 그렇고 카버의 소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중 몇몇 단편은 긴장을 요구했다. 팽팽한 긴장감에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이웃 사람들>이란 단편은 여행을 떠나고 맡긴 옆집 가족이 텅 빈 이웃집을 훔쳐보는 것이다. 무한한 호기심. 인간은 어느 누구나 다른 누군가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게 아닌가. 그 호기심이 더이상 생겨나지 않는 공간에서 관계는 단절된다. 빌과 알린은 옆집 부부에 대한 무한한 궁금증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을 마음껏 탐닉한다. 그것은 알린이 열쇠를 안에다 둔 채 문을 잠그고 나와 버리기 전까지 계속된다. 호기심의 결과... 그것은 큰 낭패를 불러온다. 어쩌면 이 우연적인 사건은 하나의 계시인지도 모른다. 그들을 파멸로 이끌어 갈...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키티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당신, 의사세요?>는 우연한 사건(느닷없이 걸려온 전화로 그 부름에 응답하여 그녀를 만나고 온 것)으로 인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남자(아놀드 브레이트)가 나온다. 아내로부터 당신의 목소리 같지가 않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이미 그는 아놀드가 아니었다. 최소한 아내가 아는 아놀드는 그 순간 그 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순간의 상실... 좀더 크게 보아 순간이 많은 윤회 속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끔찍하다. 매 순간 나는 나에게서 나를 잃어버리고 타인에 불과한 낯선 나와 대면하게 된다..

<학생의 아내>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경험이 자세하게 사실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카버의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카버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을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어떤 큰 연쇄적인 사건들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부분들이라면... 전체를 알 수 없기에 부분은 이해되지 않지만 그것들은 각기 나름의 사실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 된다. 불면증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녀의 불면증이 단순히 말장난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불면증에 시달리며 변화되는 심리에 대한 치밀한 심리 묘사.. 머리끝이 쭈뼛거리며 곤두섰다.

<왜 그러는 거니, 얘야?>는 주지사가 된 아들의 어머니가 누구에게론가 보내는 서간 형식의 글이다. 이 글에서 내가 읽은 것이 무엇인가? 두 개의 성격을 가진 사람.. 무한한 능력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신망과 명망을 얻고 있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뭔가 작업하는 사람. 그 작업은 폭력성이다. 아주 착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행세하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폭력성은 잔인함과 피로 얼룩진 잔혹함이다. 그렇다. 바로 야누스... 현대의 누구나에게 이러한 잔인함은 존재한다. 다만 억압되고 가리고 있을 뿐이지... 작은 개미 여러 마리가 함께 큰 지렁이를 옮기는 것을 보고 발로 밟아 짓이기며 짓는 순진한 어린아이의 미소처럼..
몇몇 단편들의 이름을 바꾸어 보았다. 허접하게~

1. 뚱보 --> 비만과 결핍의 상관 관계
2. 이웃 사람들 --> 훔쳐보기, 또는 고양이 죽이기
3. 좋은 생각 --> 훔쳐보는 사내
4. 그들은 당신 남편이 아니야 --> 전리품
5. 당신, 의사세요? --> 나는 아놀드인가?
6. 아버지 --> 누굴 닮았지?
7. 학생의 아내 --> 불면증에 대한 심각한 고찰
8. 제리와 몰리와 샘 --> 내 인생 돌리도! (^^;;)
9. 왜 그러는 거니, 얘야? --> 감춰진 야누스의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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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삼부작
폴 오스터 지음, 한기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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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뉴욕 삼부작>, 한기찬 옮김 (웅진출판, 1996.5)

폴 오스터의 <뉴욕 삼부작>을 읽었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의 세 편의 중편이 모인 글인데, 소설집이 아니라 장편소설이라고 나온다. 글 속의 연계는 뉴욕(역자후기에서 뉴욕인=현대인, 그러므로 뉴욕은 현대)과 일탈, 그리고 낯설음이다.

먼저 '유리의 도시'에는 다니엘 퀸이라는 사립 탐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다시 세 번째 이야기 <잠겨 있는 문>에서 소피 팬쇼의 의뢰로 팬쇼의 행방을 찾기 위한 탐정으로 고용된다는 것을 통해 그의 직업은 재차 확인된다. 그러나 그는 이 글에서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로 더욱 각인된다. 그에게 닥친 우연적인 사건... 버지니아 스틸맨이 전화를 걸어 폴 오스터라는 사립탐정에게 남편인 피터 스틸맨의 안전을 위해 그의 아버지인 감옥에서 출감해 뉴욕으로 돌아오는 피터 스틸맨을 감시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퀸이 호기심에 운명처럼 이끌려 그 의뢰를 받아들이고 사건에 접근한다. 그러나 미행만으로 그의 행동의 비밀을 전혀 알 수 없었던 퀸은 그를 관찰하기를 포기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장을 통해 그에게 접근하면서 이야기는 틀어진다. 피터 스틸맨 교수가 자취를 감춘 후 퀸은 부랑자로 변장해 피터 스틸맨을 보호하기 위해 오랜 시간 스틸맨의 집을 감시한다. 그러나 그의 감시는 이미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마는데 이미 피터 스틸맨 교수가 자취를 감춘 바로 그날 브루클린 다리에서 자살을 한 이후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폴 오스터라는 작가를 통해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퀸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 의미가 완전히 지워진 것을 알고나서, 그제서야 퀸은 어릴 적 피터가 감금되어 있던 교수의 69번가의 집을 찾아가 자신에게 제공되는 음식을 먹으며 빨간 공책에 자신의 여러 가지 상념을 기록한다. 공책이 들어줄수록 낮이 점점 줄어들고 어둠만이 지속되어 그는 거의 완전한 어둠 속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던 피터와 동일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글쓰기를 계속한다. 그의 빨간 공책은 폴 오스터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막 돌아온 이 글의 서술자인 '나'에 의해 발견된다. 나의 실종(아마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아마도 이 사건의 주동자는 버지니아일 것이다. 피터의 동조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이 소설에서 아마 이 지루하고 조잡한 줄거리는 반밖에 이해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 절반은 피터 스틸맨 교수와 사립 탐정 퀸의 대화 속에 나오는 것이니까...

퀸이 스틸맨 교수를 미행하기를 그치고 변장(특별한 변장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이름만 바꾼다. 심지어 그의 아들인 피터가 되기도 한다) 하고 스틸맨 교수와 만나 그의 비밀스런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된다. 그것은 피터를 가두었던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이다. 인간이 신에게 도전한 흔적인 바벨탑과 관련된 것.. 이후 인간의 타락... 신의 도전과 인간의 타락.. 그렇다면 다시 타락 이전의 언어를 회복하는 것. 신대륙인 미국은 이미 여러 사람들에 의해 진정한 낙원을 건설할 곳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피터는 신의 언어를 회복하지 못했고, 스틸맨 교수는 자신의 실패를 알고 원고를 불태운다. 자식을 감금한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피터는 병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자신의 언어 치료사인 버지니아와 결혼하게 된다.

퀸은 스틸맨 교수와 세 번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첫번째는 공원에서 퀸으로 만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두 번째는 헨리 다크라는 이름으로 식당에서 만나 스틸맨에게서 그의 논문에 나오는 인물인 헨리 다크(또는 H.D.라는 이니셜)라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늗다. 루이스 캐롤의 <거울을 통해서> 6장(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험프티 덤프티라는 계란..그것과 인간은 둘 다 피조물이며 잠재적인 존재, 완성되지 못한 샘플이기에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 우리가 할 일, 거기에 또 하나의 계란.. 콜럼버스의 달걀... 달걀과 흡사한 달의 발견. 세 번째 만남은 리버사이드 공원 가장자리 마운드 콤에서 노인의 아들 피터 스틸맨으로서 만나게 된다. 교수는 자식에게 아들에 대한 아비로서의 걱정, 충고 등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이러한 만남은 퀸에게도 나에게도 큰 단서를 준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고 의문만 더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황당하고 낯설은 줄거리가 내게 주는 느낌은 아직도 계속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폴 오스터가 기존 추리 소설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이 소설의 인과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우연에 의해 어떤 사건을 겪게 되고 타인에 의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 상실이 현대의 본질인가? 무수한 질문만이 머리속에서 생겨났다 사라진다. 나의 이러한 느낌에 대해 폴 오스터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은 블루의 입을 통해 잘 밝혀주고 있다.

"뭔가 줄거리가, 적어도 그 비슷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으나 이것은 허튼소리,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끝없는 장광설에 불과했다."(유령들, 222쪽)

두 번째 이야기인 '유령들'에서도 비슷한 추리가 반복되면서 변주되어 나타난다. 이번엔 화이트라는 고객이 블랙을 감시해 달라는 의뢰를 사립 탐정인 블루에게 하게 된다. 오렌지 거리의 창문에서 바라다 보이는 건너편 블랙의 일상은 독서와 집필이 모두이다. 그리고 식료품점으로 가는 단조로운 일상. 꽤 오래 계속된 이 미행에서 그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는 여러 가설을 세우고 머릿속에서 구체화시키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다 보게 된다. 블랙에 대한 객관적인 보고서를 제출하고 관찰하는 단조로운 일상. 그 속에서 블루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는 블랙을 보고 그는 자신을 고용한 화이트를 의심하게 되고 어쩌면 블랙마저도 화이트가 고용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는다. 이 생각은 반은 맞다. 후반부에서 밝혀지기로는 블랙이 바로 화이트이기 때문이다. 화이트는 마지막으로 결판을 내기 위해 블랙의 집으로 찾아간 블루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화이트는 자신의 죽음을 블루로 대체하기 위해 이제껏 연기를 해 온 셈이다. 블루가 이제껏 적은 보고서는 화이트가 관찰한 블루의 미행으로 대체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자살을 하는 인물은 바로 화이트 자신이 아닌 블루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왜 화이트가 자살을 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살을 블루의 자살로 대신하는지, 블루의 자살로 자신이 어떻게 이득을 보게 되며 삶을 되찾게 되는지 역시 언급이 없다. 어쨌든 블루는 분노에 사로잡혀 제 정신이 아닌 채 블랙(화이트)에게 달려가 짓밟고, 찧고, 주먹질을 해댐으로써 응징을 한다. 그리고 블랙의 원고를 다 읽고 난 후 사라진다. 서술자는 30년 전의 이 일에서 블루가 떠난 곳이 중국이라고 '해 두자'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린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방 밖으로 걸어나가려는 순간이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도 중요한 것은 블루의 상상이다. 아니 그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가설이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하다. 화이트와 블랙의 유산, 동업자금 등의 독차지, 또는 같은 목표를 향해 뛰고 있는 경쟁 관계라고 생각한다. 또는 블랙이 하나의 책략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아마도 나중에 블랙이 이미 블루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블루는 블랙이 방 안에서 꿈적도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자신과의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이 단절되었기에 그는 고독이나 어떤 감정보다 강한 공포감에 휩싸인다. 이런 감정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블루는 관찰이 계속되면서 블랙과의 사이에 강한 유대감을 느끼게 되면서 동시에 단절감을 맛보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블랙으로부터 점점 더 대담하게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블랙의 미행을 멈추고 블루는 혼자 야구장이나 영화관으로 스며들기도 하고 <월든>을 읽기도 한다.

블루는 사건을 진전시키기 위해 변장을 결심한다. 그는 떠돌이 노인 지미 로즈로 변장해 블랙을 만난다. 그는 블랙에게서 월트 휘트먼의 뇌수가 사방으로 튀어 빗자루에 쓸려 쓰레기통 속에 버려졌다거나, 헨리 워드 비처의 설교를 듣기 위해 오렌지 거리로 온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거기서 유령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에이브러햄 링컨, 찰스 디킨스, 이(오렌지) 거리를 지나 교회로 간 사람들... 또 블랙은 "우리 주위엔 유령들이 잔뜩" 있다는 말을 한다. 호돈의 예에서도 유령은 나온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어머니의 집에서 12년 동안이안 소설을 쓰기 위해 두문불출한 호돈... 글을 쓰는 일만이 삶을 차지해 자기 인생이 없는 사람, 그는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거나 다름없는 유령인 것이다. 두 번째 블루는 위스콘신 주 케노샤 출신의 생명보험 외판원인 쾌활한 허풍선이 역인 스노우로 변장해 호텔의 식당에서 블랙을 만난다. 블랙은 이번엔 자신이 사립탐정이라고 밝힌다. 블랙은 여기에서 블루의 작업을 그대로 흉내내어 말한다. 그리고 블랙은 블루의 보고서에 기록된 블랙의 행동을 그대로 스노우에게 자신의 고객이라고 소개한다.

"그건 그가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오. 그는 내가 자기를 감시하는 일을 필요로 하고 있소. 내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기를 원하는 거요."

이 말은 나중에 밝혀질 화이트/블랙이 블루에게 일을 청구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온 블루는 화이트가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어느 누구도 파멸시키지 못하는 가엾은 사람인 불쌍한 친구 블랙을 회상하며 잠이 든다. 세 번째로 블루는 풀러 사의 솔 외판원으로 변장하고 블랙의 집을 찾는다. 그곳에서 블루는 블랙의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으며 언젠가 끝장볼 날을 꿈꾼다는 블랙의 말을 듣늗다.

어느날 밤에 블랙을 미행하다 블랙의 행방을 놓친 블루는 곧장 블랙의 방으로 달려가 궁금해 하던 원고를 훔친다. 그가 집에 돌아와 원고를 훍던 블루는 그것이 실은 자신의 주간 보고서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찾아간 블루에게 블랙은 가면을 쓴 채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들이댄다.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연적인 사건들의 중첩과 순간의 선택적인 판단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지고 덩그라니 남겨지는 일이 반복되는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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