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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삼부작
폴 오스터 지음, 한기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1996년 5월
평점 :
절판
폴 오스터, <뉴욕 삼부작>, 한기찬 옮김 (웅진출판, 1996.5)
폴 오스터의 <뉴욕 삼부작>을 읽었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의 세 편의 중편이 모인 글인데, 소설집이 아니라 장편소설이라고 나온다. 글 속의 연계는 뉴욕(역자후기에서 뉴욕인=현대인, 그러므로 뉴욕은 현대)과 일탈, 그리고 낯설음이다.
먼저 '유리의 도시'에는 다니엘 퀸이라는 사립 탐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다시 세 번째 이야기 <잠겨 있는 문>에서 소피 팬쇼의 의뢰로 팬쇼의 행방을 찾기 위한 탐정으로 고용된다는 것을 통해 그의 직업은 재차 확인된다. 그러나 그는 이 글에서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로 더욱 각인된다. 그에게 닥친 우연적인 사건... 버지니아 스틸맨이 전화를 걸어 폴 오스터라는 사립탐정에게 남편인 피터 스틸맨의 안전을 위해 그의 아버지인 감옥에서 출감해 뉴욕으로 돌아오는 피터 스틸맨을 감시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퀸이 호기심에 운명처럼 이끌려 그 의뢰를 받아들이고 사건에 접근한다. 그러나 미행만으로 그의 행동의 비밀을 전혀 알 수 없었던 퀸은 그를 관찰하기를 포기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장을 통해 그에게 접근하면서 이야기는 틀어진다. 피터 스틸맨 교수가 자취를 감춘 후 퀸은 부랑자로 변장해 피터 스틸맨을 보호하기 위해 오랜 시간 스틸맨의 집을 감시한다. 그러나 그의 감시는 이미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마는데 이미 피터 스틸맨 교수가 자취를 감춘 바로 그날 브루클린 다리에서 자살을 한 이후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폴 오스터라는 작가를 통해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퀸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 의미가 완전히 지워진 것을 알고나서, 그제서야 퀸은 어릴 적 피터가 감금되어 있던 교수의 69번가의 집을 찾아가 자신에게 제공되는 음식을 먹으며 빨간 공책에 자신의 여러 가지 상념을 기록한다. 공책이 들어줄수록 낮이 점점 줄어들고 어둠만이 지속되어 그는 거의 완전한 어둠 속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던 피터와 동일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글쓰기를 계속한다. 그의 빨간 공책은 폴 오스터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막 돌아온 이 글의 서술자인 '나'에 의해 발견된다. 나의 실종(아마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아마도 이 사건의 주동자는 버지니아일 것이다. 피터의 동조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이 소설에서 아마 이 지루하고 조잡한 줄거리는 반밖에 이해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 절반은 피터 스틸맨 교수와 사립 탐정 퀸의 대화 속에 나오는 것이니까...
퀸이 스틸맨 교수를 미행하기를 그치고 변장(특별한 변장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이름만 바꾼다. 심지어 그의 아들인 피터가 되기도 한다) 하고 스틸맨 교수와 만나 그의 비밀스런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된다. 그것은 피터를 가두었던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이다. 인간이 신에게 도전한 흔적인 바벨탑과 관련된 것.. 이후 인간의 타락... 신의 도전과 인간의 타락.. 그렇다면 다시 타락 이전의 언어를 회복하는 것. 신대륙인 미국은 이미 여러 사람들에 의해 진정한 낙원을 건설할 곳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피터는 신의 언어를 회복하지 못했고, 스틸맨 교수는 자신의 실패를 알고 원고를 불태운다. 자식을 감금한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피터는 병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자신의 언어 치료사인 버지니아와 결혼하게 된다.
퀸은 스틸맨 교수와 세 번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첫번째는 공원에서 퀸으로 만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두 번째는 헨리 다크라는 이름으로 식당에서 만나 스틸맨에게서 그의 논문에 나오는 인물인 헨리 다크(또는 H.D.라는 이니셜)라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늗다. 루이스 캐롤의 <거울을 통해서> 6장(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험프티 덤프티라는 계란..그것과 인간은 둘 다 피조물이며 잠재적인 존재, 완성되지 못한 샘플이기에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 우리가 할 일, 거기에 또 하나의 계란.. 콜럼버스의 달걀... 달걀과 흡사한 달의 발견. 세 번째 만남은 리버사이드 공원 가장자리 마운드 콤에서 노인의 아들 피터 스틸맨으로서 만나게 된다. 교수는 자식에게 아들에 대한 아비로서의 걱정, 충고 등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이러한 만남은 퀸에게도 나에게도 큰 단서를 준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고 의문만 더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황당하고 낯설은 줄거리가 내게 주는 느낌은 아직도 계속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폴 오스터가 기존 추리 소설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이 소설의 인과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우연에 의해 어떤 사건을 겪게 되고 타인에 의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 상실이 현대의 본질인가? 무수한 질문만이 머리속에서 생겨났다 사라진다. 나의 이러한 느낌에 대해 폴 오스터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은 블루의 입을 통해 잘 밝혀주고 있다.
"뭔가 줄거리가, 적어도 그 비슷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으나 이것은 허튼소리,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끝없는 장광설에 불과했다."(유령들, 222쪽)
두 번째 이야기인 '유령들'에서도 비슷한 추리가 반복되면서 변주되어 나타난다. 이번엔 화이트라는 고객이 블랙을 감시해 달라는 의뢰를 사립 탐정인 블루에게 하게 된다. 오렌지 거리의 창문에서 바라다 보이는 건너편 블랙의 일상은 독서와 집필이 모두이다. 그리고 식료품점으로 가는 단조로운 일상. 꽤 오래 계속된 이 미행에서 그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는 여러 가설을 세우고 머릿속에서 구체화시키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다 보게 된다. 블랙에 대한 객관적인 보고서를 제출하고 관찰하는 단조로운 일상. 그 속에서 블루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는 블랙을 보고 그는 자신을 고용한 화이트를 의심하게 되고 어쩌면 블랙마저도 화이트가 고용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는다. 이 생각은 반은 맞다. 후반부에서 밝혀지기로는 블랙이 바로 화이트이기 때문이다. 화이트는 마지막으로 결판을 내기 위해 블랙의 집으로 찾아간 블루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화이트는 자신의 죽음을 블루로 대체하기 위해 이제껏 연기를 해 온 셈이다. 블루가 이제껏 적은 보고서는 화이트가 관찰한 블루의 미행으로 대체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자살을 하는 인물은 바로 화이트 자신이 아닌 블루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왜 화이트가 자살을 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살을 블루의 자살로 대신하는지, 블루의 자살로 자신이 어떻게 이득을 보게 되며 삶을 되찾게 되는지 역시 언급이 없다. 어쨌든 블루는 분노에 사로잡혀 제 정신이 아닌 채 블랙(화이트)에게 달려가 짓밟고, 찧고, 주먹질을 해댐으로써 응징을 한다. 그리고 블랙의 원고를 다 읽고 난 후 사라진다. 서술자는 30년 전의 이 일에서 블루가 떠난 곳이 중국이라고 '해 두자'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린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방 밖으로 걸어나가려는 순간이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도 중요한 것은 블루의 상상이다. 아니 그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가설이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하다. 화이트와 블랙의 유산, 동업자금 등의 독차지, 또는 같은 목표를 향해 뛰고 있는 경쟁 관계라고 생각한다. 또는 블랙이 하나의 책략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아마도 나중에 블랙이 이미 블루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블루는 블랙이 방 안에서 꿈적도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자신과의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이 단절되었기에 그는 고독이나 어떤 감정보다 강한 공포감에 휩싸인다. 이런 감정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블루는 관찰이 계속되면서 블랙과의 사이에 강한 유대감을 느끼게 되면서 동시에 단절감을 맛보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블랙으로부터 점점 더 대담하게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블랙의 미행을 멈추고 블루는 혼자 야구장이나 영화관으로 스며들기도 하고 <월든>을 읽기도 한다.
블루는 사건을 진전시키기 위해 변장을 결심한다. 그는 떠돌이 노인 지미 로즈로 변장해 블랙을 만난다. 그는 블랙에게서 월트 휘트먼의 뇌수가 사방으로 튀어 빗자루에 쓸려 쓰레기통 속에 버려졌다거나, 헨리 워드 비처의 설교를 듣기 위해 오렌지 거리로 온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거기서 유령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에이브러햄 링컨, 찰스 디킨스, 이(오렌지) 거리를 지나 교회로 간 사람들... 또 블랙은 "우리 주위엔 유령들이 잔뜩" 있다는 말을 한다. 호돈의 예에서도 유령은 나온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어머니의 집에서 12년 동안이안 소설을 쓰기 위해 두문불출한 호돈... 글을 쓰는 일만이 삶을 차지해 자기 인생이 없는 사람, 그는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거나 다름없는 유령인 것이다. 두 번째 블루는 위스콘신 주 케노샤 출신의 생명보험 외판원인 쾌활한 허풍선이 역인 스노우로 변장해 호텔의 식당에서 블랙을 만난다. 블랙은 이번엔 자신이 사립탐정이라고 밝힌다. 블랙은 여기에서 블루의 작업을 그대로 흉내내어 말한다. 그리고 블랙은 블루의 보고서에 기록된 블랙의 행동을 그대로 스노우에게 자신의 고객이라고 소개한다.
"그건 그가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오. 그는 내가 자기를 감시하는 일을 필요로 하고 있소. 내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기를 원하는 거요."
이 말은 나중에 밝혀질 화이트/블랙이 블루에게 일을 청구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온 블루는 화이트가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어느 누구도 파멸시키지 못하는 가엾은 사람인 불쌍한 친구 블랙을 회상하며 잠이 든다. 세 번째로 블루는 풀러 사의 솔 외판원으로 변장하고 블랙의 집을 찾는다. 그곳에서 블루는 블랙의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으며 언젠가 끝장볼 날을 꿈꾼다는 블랙의 말을 듣늗다.
어느날 밤에 블랙을 미행하다 블랙의 행방을 놓친 블루는 곧장 블랙의 방으로 달려가 궁금해 하던 원고를 훔친다. 그가 집에 돌아와 원고를 훍던 블루는 그것이 실은 자신의 주간 보고서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찾아간 블루에게 블랙은 가면을 쓴 채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들이댄다.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연적인 사건들의 중첩과 순간의 선택적인 판단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지고 덩그라니 남겨지는 일이 반복되는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