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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프랑스 비시 정권 하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아버지와 삼촌의 이야기를 삼촌에게서 들음으로써 피에로로 사람들을 웃기려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를 이해해 가는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이면서 무보수로 불려나가 삐에로 복장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아버지(앙드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한 아버지로 인해 어릿광대 삐에로를 싫어(12쪽)하게 된 나는 가족과 함께 보러 간 베르나르 비키의 영화(96쪽) "다리"를 보고 난 후 가스똥 삼촌에게서 아버지와 삼촌 자신, 그리고 니꼴 숙모의 이야기를 듣는다.
레지스탕스 세포조직에 가담해 활동중 아버지와 함께 두에 역의 변압기를 폭파시킨 이야기, 그러다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이야기, 그들이 잡혀온 이유가 폭파의 진범을 잡기 위한 인질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구덩이 감옥에서 같은 이유로 잡혀온 앙리와 에밀과의 만남, 삐에로였던 독일 군인 베르나르 비키와의 인간적 만남, 이후 진범이 잡혀 사형은 면했으나 수용소로 이송된 이야기와 수용소에서의 탈출, 독일 패망 후 진범으로 처형당한 사내의 아내를 찾아가서 알게 된 진실 (두에 역의 전기공이었던 그는 자신의 아내에 의해 고발되었는데, 폭발이 일어나던 날 그는 폭발물을 설치하러 온 두 사람을 목격하고 숨어서 지켜 보다가 변압기 폭발에 화상을 입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그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뜻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자신의 아내의 의견에 동조하고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범인으로 고발하게 된다), 형제가 둘 다 그녀에게 끌리게 되고 그 중 삼촌인 가스똥이 그녀 니꼴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지금의 니꼴 숙모가 바로 그녀라는 이야기. 그제서야 나는 삼촌과 숙모의 진한 애정, 그리고 니꼴 숙모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길을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와 삼촌, 숙모 다 돌아가셨고, 나는 나이가 들어 아버지의 삐에로 복장이 든 가방을 들고 모리스 파퐁의 전범 재판이 열리는 보르도 법정으로 간다. 엉터리 화장에 너덜너덜 해진 광대옷을 입은 어릿광대는 경찰들에 의해 입장이 저지되었으나, 판결이 내려지던 날 법정의 서기는 어릿광대의 말을 듣게 된다.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아폴리네르의 시집 <칼리그람>의 시귀가 인용된 이 작은 작품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칼리그람의 시귀절에 보이는 처절한 정원과 석류 이야기는 작품의 제목 <처절한 정원>과 서술자의 아버지인 앙드레의 입을 통해서 나타난다.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극한 상황 속에서 떠올리게 되는 석류의 상큼한 자극은 얼마나 자유를 그립게 하겠는가 말이다. 이상도 죽어가면서 레몽을 외치지 않았던가. 석류의 붉은 원액의 상큼한은 죽음을 목전에 둔 그들에게 삶의 처절한 이미지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보기엔 처절한 정원은 석류는 그들의 삶의 절규에 다름 아니다.
유럽인들에게 자신들의 숨겨진 죄의식과 양심, 시련을 떠올리기에는 너무도 적절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러한 인상적인 구절과 우리 삶의 우연적인 전개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집에 대해 그다지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 2001년 프랑스 출판계를 뒤흔들고 영화로 만들기에 가장 좋은 소설로 선정되었고, 전세계를 울렸다는 허울좋은 이 작품에 대한 예찬이 과연 정말인가 의아스럽기만 하다. 한 시대를 처절하게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 속에서 피어나는 적과의 우정, 그리고 한 여성과 남성의 희생 정신.. 이런 것들이라면 좋다. 그 정도라면 우리에게도 충분히 읽힐 수 있다.
이 소품이 전세계를 울린 경이적인 책이 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의아스럽기만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줄곧 번역자(또는 편집자) 의 의식이 의심스럽기만 했다. "지구 전체를 흔든, 짧고 아름다운 우화 같은 소설!"이라니. 독일에 저항한 프랑스인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지? 일제에 목숨 걸고 저항한 우리의 역사를 생각할 때 과연 우리가 이 소설에서 얼마만큼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을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이 소설이 제국에 의해 식민지 경험을 했던 제 3세계 국민들에게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지. 프랑스인들과 유럽인들이 감동받았다고 말한다면 수긍이 간다.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인간이 인간을 고발하고 실험 대상으로 거리낌없이 던져주던 과거의 기억, 자신들이 지우고 싶던 과거의 망령 앞에서 그들은 다시 한 번 치를 떨며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억지로 떠올렸을 것이다. 그들의 깊은 마음 속의 양심은 다시 한 번 그 기억을 떠올리며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며, 그런 치욕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식민지의 치욕스런 역사를 가진 나라들에게도 그 이야기가 감명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의아스럽기만 하다.
부기 1: "공복으로서 거역할 수 없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파퐁은 나치의 꼭두각시 정권이었던 비시 정권하에서 보르도 지역의 치안 부책임자로서 1942년부터 1944년까지 1,590명의 유대인을 체포하여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낸 인물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행정장관, 파리 경찰국장, 예산장관 등을 역임하며 자신의 과거를 숨겼다. 1981년에야 그의 반인륜적 범죄가 밝혀져 1999년 재판이 열렸다고 한다. 자신의 친일 행각을 숨기고 남한 정권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돈을 불리고 유세를 떨던 친일파에 대한 우리의 단죄는 어떠했는가?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희망이 있는가?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기에-이것은 소설 외적 접근이지만- 충분한 소재인 듯도 하다. 단지 소재만...
부기 2: 아뽈리네르 시집 『칼리그람』중에서
우리의 처절한 정원에서
석류는 얼마나 애처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