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란트의 고백처럼 인간이 스스로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한 순간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한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추하게 만드는 전환점은 지성적인 인식, 냉철한 깨달음만이 아니라, 온 몸으로 체감하게 되는 심원한 것에 대한 형
‘언할 수 없는 느낌,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어떤 뜨거움의 순간 또는 그 계기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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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크레졸 냄새로 자리잡는다. 누가 떠나는 죽든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턱턱, 짧은 숨 쉬며 내부의 아득한 시간의 숨 신뢰하면서천국을 믿으면서 혹은 의심하면서 도시, 그 변증의 여름을 벗어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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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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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돌보고 지키는 사람이 되라”
 
통신사 고객서비스센터 해지 방어 팀에서 일했던 여고생의 자살, 구의역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 숨진 청년, 장시간 업무와 선임자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특성화고 졸업생, 안전장비 없이 엘리베이터를 수리하다가 추락한 청소년 노동자. 그들은 모두 현장실습생였다. 비진학, 탈학교 학생들로 분리되어 있는 그들이 처한 부당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큰 관심을 두는 이는 얼마나 될까. 작가는 한 줄 뉴스에 실려 지나갔던 그들의 죽음을 ‘겸손한 목격자’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한다. 그들은 희생당했다고. 그들이 낯선 회사에 적응할 초반 시스템이 없었고, 일하는 동안 기본적인 노동조건도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과중업무와 폭행으로 인한 고통을 그 누구와도 나누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CJ에서 소시지 포장을 했던 실습생 김동준은 회사를 다니며 원치 않은 술과 담배를 해야 했고 내려오는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했다. 선임의 폭행이 있은 후 그는 친구와 엄마에게 호소했다. “회사에 가기 싫다, 그 사람이 날 죽일 것 같다.”고. 하지만 동준의 엄마는 지금의 힘든 상황도 다 거쳐 가는 과정이겠거니 하며 회사로 돌려보냈다. 동준은 학교 선생님이 선임의 폭행을 회사 인사과에 말한다면 혹시 보복이 있을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결국 그는 투신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자신의 고통을 말했으나 친구도, 엄마도, 선생님도 동준이를 구할 수 없었다. 동준이를 회사로 돌려보냈던 엄마는 죄책감 속에서 살아간다. 아이가 죽은 원인을 회사에서,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면 엄마는 어느 정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잇을 것이다. 그래서 동준이 사건의 산재처리의 여부가 중요했다.
 
생수공장에서 기계고장이 났는데 초보 실습생인 민호가 고치러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었다. 숙련된 기술자가 옆에 있었는 데도 말이다. 청소년들의 죽음이 있는 곳에는 항상 어른들이 현장에 있었다. 연약한 18살, 19살에게 충분히 돌봐주고 배려해야할 어른들이. 연이은 현장실습생들의 사고가 있으면 교육청, 학교, 회사에서 엄중한 처벌과 책임이 뒤따라야 하는데 모두가 사건을 덮기에 급급하기만 하다. 버틸 수 없는 곳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힘들어서 학교에 돌아가려 해도 학교는 오지 못하게 했다. 회사에서 사건, 사고가 나면 이미지 추락을 막기 위해 돈으로 사건을 덮고 합의하기에 급급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오로지 “버텨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노동교육, 인권교육을 받았더라면 현장에서 받은 고충을 어디에 호소해야하고 회사로부터 받은 부당 행위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어느 정도 알았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현 교육시스템에서 노동인권 교육의 부재에 안타까움이 들었고 이제는 아이들에게 힘든 상황에서 “자기를 돌보고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을 위한 정책은 안 나와요. 정책 만드는 사람을 다 힘 있는 사람이기에 나올 수 없다.”라는 위로부터의 현실을 한탄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낮은 점을 채워야만 다른 사람들이 같이 좋아지겠다.”라는 말에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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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쿠바는 행복하다 - 저성장 고복지, 쿠바 패러독스의 비밀을 찾다
배진희 지음 / 시대의창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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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기꺼이 수용하는 쿠바인들

아직 가보지 않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은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해 보곤 한다. “낡고 오래된 악기로 배우는데도 훌륭한 음악가가 정말 많아요.” “현지인을 알고 있지 못하면 비싼 값을 내야해요.” “모든 치료비가 무료라니요.” 몇 안 되는 지인에게 들은 쿠바는 가난, 격차, 교육, 의료 등의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60여 년 전 체 게바라의 모토였던 ‘공평하게 나누자. 차별하지 말자. 누구나 배우자‘는 지금도 유효할까. 사회복지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1년 정도 쿠바에서 현지인과 생활하며 쿠바의 의료기관, 학교, 사회 복지 시설을 방문하며 혁명 정신의 줄기를 따라간다.

쿠바는 1인당 총 생산이 한국의 3분의 1이 안 되는 나라다. 하지만 교육에 투자하는 국가 재정 비율이 186개국 중 두 번째로, 한국의 3배다. 어린이집에서부터 직장인이 다니는 평생교육까지 학비는 물론 공책, 필기구도 무료다. 교도소에서도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과정이 마련되어 있어 누구나 어느 때고 배울 수 있다.

본예산 세출과 비율 항목을 살펴보자. 교육비는 25.%, 의료 및 공업부조 24.4%, 사회보장비 14.6%다. 한 개인의 기본 생활, 교육, 의료를 국가가 책임지고 있음이 명백하다. 1959년 혁명 이전에는 의료서비스를 부자 계층인 8%만이 이용했다. 혁명 정부는 민간 병원과 제약회사를 모두 국유화한다. 이에 반발하여 250명였던 의과대학교수가 12명만이 남고 6,000명 의사 중 4,000명이 미국으로 떠난다. 쿠바는 꾸준히 의대를 증설하고 라틴 아메리카 의대생들을 무료로 교육시킨 결과, 현재 쿠바에는 종합 진료소, 지역마다 주민 건강을 책임지는 콘술토리오, 7블럭마다 의사가 방문하는 패밀리 닥터 제도가 체계적으로 잡혀있다.

쿠바의 무상진료는 국경선을 넘는다. 재해 지역과 의료 도움이 필요한 세계 어디든지 의료전문인들을 파견한다. 다른 국가와 다르게 쿠바 의료진은 장기간 머물며 재해 피해자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 치료하고 예방, 심리적 재원활동, 의료진 양성까지 병행한다. 특히 종교적 이유로 남자 의사에게 치료 받을 수 없는 여성을 치료한다.

소련의 붕괴이후 지속되는 미국의 경제 제재에 쿠바는 어려움을 겪었다. 쿠바는 이를 벗어나고자 해외미션 프로그램으로 전문 인력 파견한 대가로 현금, 석유, 금과 같은 현물을 받고 관광객에게 쿠바인들이 쓰는 화폐 가치의 24배 되는 태환페소를 쓰도록 했다. 교환 가치가 높은 태환페소를 벌기 위해 쿠바인들은 외국인을 만날 직업으로 전직하기도 한다. 의사나 교사가 호텔 청소원, 택시 기사, 식당 종업원으로 겸직하는 일은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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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정부는 자본주의 시장을 계속 해서 넓혀가고 있다. ‘신 외국인 투자법’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 유입이 커지고 소득 격차가 심해질 것이다. 저자는 강력한 조세 정책으로 자양업자의 소득 일부를 사회보장제도로 전환시키는 것은 가능하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보았다.

발달되지 않은 대중교통, 한정된 지역에서의 통신 수단, 비싼 식료품, 수질 오염으로 물을 매번 끓여 먹어야 하는 쿠바. 교육, 의료, 사회보장제도라는 최대의 복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 쿠바인들에게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비하는 삶은 불편함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과연 “쿠바의 경제 개발은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일지 변화하는 쿠바를 주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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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즈 2020-09-21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구의 사회민주모델과 더불어 쿠바도 관심깊게 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체제사회주의 모델이 실패했음에도 쿠바가 아직 진행중이라는 사실은 대단한 일이긴 합니다. 아마 미국의 제재가 없었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았을 겁니다. 도시의 유기농, 의료제도는 우리도 눈여겨볼 부분이 분명 있고요. 그러나 빛 보다는 그늘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봅니다. 이데올로기에 치중하지 말고 모든 인민들의 복리를 위해 끊임없는 개선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민음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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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등반은 인생의 축소판

엄홍길 산악인은 19년 동안 히말라야를 38번 도전해 20번 성공하고 18번 실패했다. 그는 “사고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실패를 경험했기에 산은 이제 새로운 길을 가게 하는 인생의 스승과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라며 여전히 산에 오르는 것이 두렵다 했다. 8천 미터의 희박한 공기 속을 오르는 산악인들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력의 한계치에 도전하려는 것일까. 그들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일까.

존 크라카우어는 잡지 <아웃사이드>에 에베레스트의 상업화 풍조와 그에 따른 논란에 관한 기사를 쓰기 위해 동료 7명과 함께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유명한 산악인인 로브 홀이 인솔하는 어드벤처 컨설턴츠 팀에 병리학자 벡 웨데스, 심장 분야 전무가 스튜어트 허친슨, 마취 전문의 존 태스크, 우체국 직원였던 더그 한센, 일본인 여성, 남바 야스코, 홍콩에서 온 출판업자 프랭크 피슈벡, 팀 가이드인 앤디 해리스가 함께한다.

등반의 첫 시작부터 적신호였을까. 저자는 동료들이 히말라야에 오기 전 일의 중압감에 눌려 살았고 지난해에 한두 번이상 등산할 기회를 가져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6주 동안 5364미터에 위치한 베이스 캠프에서 적응생활을 하며 고도를 높혀 정상으로 향했다. 극심한 추위와 빙산 폭포, 가파른 절벽.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려는 무리와 하산하는 사람들 기다리는 정체 현상은 등산인들의 산소를 더욱 빼앗아 간다.

저자는 바닥나는 산소통에 겨우 의지하며 정상에 오른다. 하산할 때 역시 긴장감을 유지하고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해발 8,810미터에서 보조 산소 없이 강풍과 탈진 상태에서 그는 겨우 제 4 캠프에 도달한다. 팀원들 중 다섯은 이미 중도에 포기하였다.

기상악화로 인해 하산 중에 야스코, 로브 홀, 한센등 동료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 등반 대장이었던 로브 홀은 더그 한센과 1년 전 정상과 아주 가까운 지점에 이르러 하산했었다. 그 아쉬움에 이번엔 돌아와야 할 시간을 어기고 무리하며 정상에 오른다. 하지만 하산길에 산소부족과 체력저하로 인해 둘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로브는 “자기는 내려갈 수 있으나 더그를 함께 데려갈 수 없다”며 더그와 함께 산에 남게 된다.

살아 돌아온 저자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책 출간 후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그는 생과 사의 현장을 반드시 기록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저산소증과 탈진상태에서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의식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저자는 서술에 신중을 기했다. “등산은 골프나 테니스, 혹은 그의 동료들을 사로잡은 그 밖의 무수한 도락들과는 사뭇 달랐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한 고투를 해야 하고 위험성이 아주 높다는 점에서 등산은 어느 평범한 게임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등산은 인생 그 자체였다.” 죽음의 수수께끼가 도사리는 등반길에 오르는 이들은 고통, 실패, 선택, 노력, 성공의 ‘인생 축소판’을 몸으로 오롯이 경험해 보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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