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수업 - 인공 지능 시대의 필수 교양
존 조던 지음, 장진호.최원일.황치옥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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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해 의료계에서 로봇의 활용도가 높아졌다. 미국의 첫 코로나 환자는 로봇이 모니터링했고 중국과 이탈리아의 병실에서는 로봇이 환자의 상태 체크와 병실 자외선 소독을 맡았다. 봉쇄령이 내려진 영국에서는 취약계층에 음식을 배달하는 로봇도 등장했다. 인공지능과 비대면 시대에 로봇의 역할은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다.

 

 

정보기술이 이끄는 사업과 인간중심의 정보 융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좋은’ 로봇은 무엇인가 질문한다. 로봇의 설계 단계에서 기술적 선택, 그리고 어떻게 작동해야하는지, 또 로봇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

 


로봇이라는 단어는 100년 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줌 유니버설 로봇>에서 처음 등장했다. 인간성이 파괴, 노동해방의 욕망, 로봇집단 반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연극은 후에 여러 영화와 문학작품에 영향을 끼친다. 로봇은 실제 산업 분야가 아닌 소설과 영화 등 대중매체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해 왔다. 이는 로봇 공학에 관한 개념과 기대에 대한 환상을 낳았다.

 

 

실제 로봇 공학은 소설이나 SF영화에 등장하는 막강한 힘을 가지거나 감정을 느끼는 로봇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봇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일치된 의견은 찾기 힘들다. 또한 로봇에 대한 정의도 공학자들마다, 사회적 맥락과 기술의 수준이 변화함에 따라 달라진다.


로봇, 인공지능 분야에서 인간의 추론 능력을 재현하려는 연구가 계속 되고 있기에 윤리적인 질문이 발생한다. 자율 자동차 사고 발생 시, 제조사, 부품공급회사, 소프트 웨어 회사 중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전시상황에서 죽이거나 죽임을 당한다는 개념이 없고 보복 및 히스테리가 공격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는 로봇은 인간군인보다 과연 나은가. 로봇은 인간의 항복 신호에 반응할 수 있는가. 로봇이 잘못 살인하는 경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등.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로봇과 인간이 혼합된 팀에서 전시상황을 관찰하며, 인간의 윤리 위반 또는 기타 규칙 위반 여부를 점검하길 제안한다. 로봇 전쟁의 기술적, 정치적, 인권, 운영에 관한 문제는 이제 막 연구되기 시작했다.

 


농작물을 키우고 수확하는 일, 천연 자원을 채굴하는 일, 자동차 생산등 주로 산업라인에서 배치되었던 로봇은 이제 일상생활에서 손길을 제공한다. 장애인들을 위한 컴퓨터와 기계공학적인 보조 장치, 다빈치 외과 수술, 식사를 보조하는 로봇, 노인 돌봄 등. 저자는 로봇이 앞으로 인간과 감정을 나누는 단계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저자는 어떤 종류의 업무를 인간이 로봇, 인공지능 보다 잘 수행하는지를 질문하기 보다는 인간과 로봇의 협력을 강조한다. 로봇 공학을 통해 증강된 인간의 능력은 인간-로봇 협력 혹은 상호작용을 더욱 증진시킬 것이라 말한다. 이 책은 30년 후의 로봇 분야의 미래학적 상상보다는 현재 로봇 공학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과 로봇 윤리에 주목한다. 인문 사회적 시각으로 로봇과 관련된 다양하고 포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 로봇분야 입문서라 할 만하다.


사진출처: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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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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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의 옛집은 내게 도심 속 별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나는 일에 지칠 때 그의 집 툇마루에 앉아 있다 오곤 했다. 선생이 직접 가꿨던 나무와 꽃, 풀들이  뒷마당에 널려 있어, 그곳은 현판에 쓰인 대로 “문을 닫으면 깊은 산중”이었다. 책과 소박한 가구 몇 점이 놓인 방안에서 글을 쓰다 이따금 정원을 내려다봤을 선생을 공간에 그려 본다.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독자들을 고도 1,000미터가 넘는 깊은 숲속에 자리한 별장으로 데려가, 녹음 속에서 설계도면을 그리고 있는 건축가들을 소개시켜 준다.

 

대학을 막 졸업한 사카니시는 평소에 존경했던 무라이 선생의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한다. 여름이 되면 사무소 직원들은 별장에서 모여 작업을 한다. 국립현대 도서관 설계경합에 참여하기로 한 이들은 도서관을 짓기 위한 아이디어와 설계방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소설은 여름별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건축가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큰 사건이나 등장인물의 심리의 묘사보다는 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풍경 묘사에 집중한다.

 

건축가들이 조용히 설계도를 제도하고 있으면 여름 벌레, 바람 소리, 오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이 커다란 소리를 낸다. “음표 없는 긴 오선보가 완성되어간다. 보통 선, 흐리고 가는 선, 짙은 선. 세 종류의 오선보”, “비에 씻긴 초록에서 솟구치는 냄새, 서쪽 하늘이 이상할 정도로 밝아지면서 일몰 직전의 광선을 숲에 던진다. 완전히 황혼에 가라앉아가던 나무들의 잎사귀 가장자리가 오랜지색으로 빛난다.”

 

집 안팎에서 들려오는 새와 벌레 울음소리, 잎사귀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예초기 엔진 소리 등. 별장을 둘러싼 계절의 변화, 식사준비하는 과정, 별장 안에 놓인 가구 묘사 등을 작가는 자세히 다룬다. 주변 묘사가 뛰어나 독자들은 어느새 별장의 한 가운데에 가있게 된다.

 

최종 결과물을 완성하지 못한 채 무라이 선생은 뇌경색으로 쓰러진다. 이후 도서관 경합에 실패하고 직원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30여년이 흐른 후 사카니시는 다시 여름 별장을 찾아가 선생님을 추억한다. 무라이의 건축은 실용성을 추구했다. “침대와 벽 사이는 말이야. 한밤에 잠이 깨서 화장실에 갈 때, 한 손을 가볍게 내밀면 바로 닿을 만한 거리가 좋아. 캄캄해도 벽을 따라서 문까지 갈 수 있고 말이지. 다이닝 키친의 경우, 요리하는 냄새가 좋은 것은 식사하기 전까지 만이고 식사가 끝나면 바로 싫어지지. 주방의 천장높이와 가스풍로, 환기통 위치가 냄새를 컨트롤하는 결정적인 수단이야.”

 

중견 건축가가 된 사카니시는 건축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조언을 해줬던 무라이 선생, 여름별장, 동료들과의 시간을 기억하며 살아왔다. 그 당시 설계하고 모형을 만들었던 그 건축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사카니시의 가슴속에는 무라이 선생의 건축 철학이 남아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마쓰이에 마사시는 오랜 기간 건축관련 책과 설계도면을 꾸준히 읽어왔다. 작가는 소설 속 무라이 선생의 실제 모델인 건축가 요시무라 준조의 제자에게 자신의 집 건축을 맡겼다고 한다. 집이 지어지기까지 과정을 지켜보고 완공된 후 그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작가는 건축가의 일상을 더욱 현실적이면서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출처: silentmasters. 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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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4-27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성북동에 있는 그 집인가요? 저는 얘기만 들었는데,,,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어요.

청공 2020-04-27 17:31   좋아요 0 | URL
네 성북동에 위치한 곳 맞아요^^ 한국에 오시면 꼭 한번 들러보세요. 특히 비오는 날 가시는거 추천해요!

2020-05-04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라면서, 누굴 믿어야 할지 몰랐지, 스쿨버스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내 입엔 크고 단단한 사탕, 학굔 아무렇지도 않았어, 내가 집에서 나가게 해줬거든.
_랩 <점프>중에서 p.36

가난은 경쟁하는 소수의 정치적 팀 사이에 벌어지는 게임이 됐다.그 팀은 나라마다 다양하지만 게임의 규칙은 대개 똑같다.가난의 책임은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진다.가난을 조장해 그로부터 혜택을 얻을뿐더러 가난한 사람들한테서 쾌감을 느낀다는 어떤 외집단 탓으로 말이다.p.188

어떤 사람은 가난이 불공정한 체제의 결과라고 믿는다.또 어떤 사람은 체제는 잘하고 있으며 자신의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한다고 믿는다.진실이 무엇이건, 가난에 대한 담론 자체가 이 문제의 근원인 불평등이 낳은 유감스런 부산물이다. 이것은 보통 가난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가난에 대한 담론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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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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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산문에는 그의 소설에서 만나지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위화가 글을 쓰는데 영향받은 작가, 성장기, 중국 사회의 변화와 갈등. 그의 육성으로 듣는 작가 개인의 이야기는 친근하고 생생하다.  책 제목에서 짐작해 볼 수 있듯이 위화는 이 산문집에서 문학 작품과 클래식 음악, 그리고 소설가와 작곡가의 서술을 탐구한다.

 

윌리엄 포크너는 화려한 문장보다 정확성을 추구했던 작가다. 위화는 포크너의 문장이 평범한 일상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우리를 매혹하고 감탄시키는 동시에 그것들 자체가 삶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근사한 문장들이 우리 삶과 별 차이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포크너 소설은 위화가 자주 펼쳐보는 사전과도 같았다. “인물의 심장 박동을 멈추는 방법, 인물의 눈을 키우고 귀를 쫑긋 세우는 방법, 신체활동을 활발히 만드는 방법”등 심리표현과 인물묘사는 포크너에게 많은 빚을 졌다.

 

작가들의 문장에서 서술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야스나리의 글은 부드러운데 반해 카프카의 글은 날카롭다. 가령, 죽음을 묘사할때, 야스나리는 “딸의 얼굴에 평생 처음으로 화장을 해 놓으니 시집가는 신분 같았다.”고 표현하는 반면, 카프카는 썩어가는 환자의 상처에서 “빨간 장미꽃”으로 썼다. 루쉰과 보르헤스도 상반된 길에 서있었다. 루쉰은 현실을 “총탄이 몸에 남는 게 아니라 그대로 뚫고 지나가듯 순간적이고 강렬하게" 서술한 작가였다면, 비현실 세계에 관심이 많은 보르헤스는 인물을 언제나 ”미지의 낭만 속에 침잠하듯“ 모호하게 그렸다.

 

중학생 때 작곡에 매료된 위화는 광인 일기를 자기 나름대로 악보표기로 옮기기도 했다. 그러다 30살 즈음 반 년 만에 4백장의 음반을 모으며 음악에 빠져든다. 음악은 곧 글쓰기에 영향을 준다. 민속 음악풍의 버르토크의 음악에서는 세속성을 읽고 메시앙의 곡에서는 현대성을 발견한다. 세 시간이 흐르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의 선율에서 그는 고요와 찬란함, 고통과 환락을 느끼며, 마치 단편 소설 한편의 분량으로 소설의 긴 주제를 쓴 것과 같다고 말한다.

 

소설과 음악의 서술이 비슷하게 흘러갈 수 있을까. 호손의 <주홍글씨>중 처형대에 오르는 서술과정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의 침략자 에피소드의 클라이 맥스는 같은 방식으로 묘사된다. <주홍글씨>에서 주인공이 사형대 앞에 이를때 서술은 극도로 차분해진다. 쇼스타코비치는 점점 빨라지는 북소리를 한 순간 현악의 날카로움으로 가볍게 사라지게 연주한다.

 

차이코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처럼 19세기 말의 절망을 표현한 작곡가였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속 부조화는 자아와 현실간의 긴장관계, 내면의 뒤틀림과 내적 분열을 나타냈다. 위화는 <교향곡 6번, 비창>은 개인의 절망뿐 아니라 인류의 절망까지 연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는 인간미가 담겨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담은 힘은 “분노, 격동, 세상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마음을 파고드는 친근감”에 있었다.

 

위화는 고전을 읽고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영감을 얻었다. 여러 소설가들의 문장에서 등장인물의 심리, 이야기 전개를 배웠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고통, 감동,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혔다.소설 작품과 클래식 음악은 위화의 직설적이고 세밀한 문장으로 설명되어 있어 평론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이제 그가 들려준 소설의 서술에 독자의 경험과 기억이 더해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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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은 삶처럼 소박하다. 산속의 돌이나 물가의 비탈, 먼지 날리는 도로, 미시시피강의 범람하는 홍수, 저녁 식탁과 술 중개상의 위스키 같고 활짝 열려 땀을 내보내는 모공이나 담뱃재 묻은 입술 비슷하다.그의 작품에는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것 등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해 향수도 없고 군더더기 화장이나 치장도 없이 맨발로 어슬렁거리는 듯하다.p.29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서술에서 응시를 통해 영혼과 사물의 거리를 단축시킨다면, 카프카는 절단으로 그 거리를 넓힌다. 야스나리가 육체의 미궁이라면, 카프카는 심리의 지옥이며,야스나리가 만개한 양귀비처럼 혼곤한 잠으로 이끈다면 카프카는 혈관에 헤로인을 투입한 듯 강렬한 흥분을 일으킨다. p.41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몽 같은 서술은 근접 촬영과 확대로 구성된 듯하다. 그는 사소한 부분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불가사의한 둔탁함으로 그것들을 압박한다. 수건의 수분을 모두 쥐어짠 것으로도 모자라 수건 자체를 찢어버릴 기세이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서술의 클라이맥스를 6백 페이지가 넘는 책 곳곳에 넣고 거의 모든 줄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작가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의 서술에는 경중이나 농담 濃淡을 구분할 수 없다.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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