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 3 : 경주 편 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 3
이종호 글.사진 / 북카라반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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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 답사기, 경주편 - 선조들의 지혜를 생각하며 우리의 역사를 생각한다.




건축공학을 전공한 저자는 해외유치과학자로 활동하다가 국내에 와서도 과학 관련 저술활동에도 열정을 다하고 있다.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을 맡으면서 과학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려 노력하는 그는 우리의 선조들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과학적 상상력에 감탄을 표시하고 있다.


과학문화유산에 대한 답사기라는 시리즈물의 3번째 작품인 경주편은 신라 천년의 역사적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도시이다. 경주시 대다수의 지역 자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을 뿐 아니라 불국사와 석굴암이 별도로 등록되어 있어 유산 중의 유산이라는 평가를 받는 세계 유일의 문화역사도시인 것이다. 단일 왕조의 천년 역사라는 세계 유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신라의 수도답게 우리 후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강력하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특히 과학자의 시각으로 보는 역사인식이라는 점에서 과학의 발전이 과연 맞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측면이 들기도 한다. 특히 석불사로 불러야 할 석굴암의 현실은 그러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책에서 자세히 정리하고 있지만 일제가 한국을 침탈한 후 석굴암을 일본으로 반출하려 했으나 무위에 그친후 개보수를 하겠다고 새롭게 콘크리트로 개보수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 이전에는 없었던 결로현상이 지속되면서 세쳑과 보수를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천오백년을 아무 일 없이 굳건히 버틴 민족문화유산이 최신기술이라며 접근했던 보수과정이 더 후진적인 결과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것은 경주의 다양한 문화유산에서 발견된다. 경주시 전체가 하나의 역사문물로 뒤덮여 있는 상황은 철저한 고려의 신라 역사부정으로 인해 경주의 많은 부분을 왜곡시켰음에도 얼마나 강력한 문화유산이었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경주의 유물 중 대부분의 유물은 불교와 관련된 유물이다. 특히 석불이 매우 많은데 인도나 중국의 석불과는 달리 한국은 화강암이 많아 신라의 석공기술이 뛰어났음을 알게 해준다. 화강암이 매우 강한 석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조각하는 것은 일반 대리석 재질하고는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신라의 불상은 얼굴표정의 느낌을 살린다거나 의상의 부드러움을 살리는 등 매우 정교하면서도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혹자의 표현처럼 돌을 떡주무르듯 하는 신라인의 높은 석공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불상은 앉아 있는 자세의 모습, 손의 모습, 표정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진다. 이 이름은 그 불상이 상징하는 다양한 교리적 성격을 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신라에서는 매우 다양한 석불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다양한 불교의 사상이 굥존했음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불상에 인도의 양식과 중국의 양식 등 다양한 양식들까지 있는 것을 보면 신라의 문화교류가 얼마나 다양하고 넓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신라의 특이한 유물은 다양하게 등장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고분군에서도 여왕의 금관이 남왕보다 더 화려한 것을 볼 때 그 당시 왕권이 샤먼적 성격이 아니겠는가 하는 추측도 해본다. 여왕이 존재했던 신라는 인류의 이상인 민주주의의 실현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강한 왕권보다는 전체적인 화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화백제도(나라의 중대사를 보통 일주일이나 길게는 한 달 정도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회의를 거쳐 의결하는 제도)가 중심인 신라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화백제도는 인류의 놀라운 발전을 가져온 현대사회 조차 꿈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놀라운 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신라인과 우리가 정말 얼마나 진보했는지는 생각해볼 대목이다.

사실 위의 부분은 포석정과 관련된 상상으로 생각하고 있는제 저자는 잔치를 벌이는 장소가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은 이곳에서 화백회의가 열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며칠동안의 회의를 하다보면 술이라는 것도 필요했을 것이고 포석정이라는 모습(술잔이 계속 돌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음) 자체가 논의가 다시 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포석이라는 말은 지금도 우리가 어떤 논의를 할 때 중요한 주제를 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화백제도가 논의의 순환과 그 주제에 가감을 약간의 위트를 곁들여서 하는 점이라고 볼 때 이렇게 해석을 해야 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 얘기는 개인적인 상상이다. 어떤 역사학자도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첨성대와 관련한 저자의 의견도 좋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일단 북두칠성과 관련이 되었다는 것에 본인도 동의한다. 그러나 중심은 북극성이 아니라 북두칠성이다. 하늘의 천국인 북두칠성과 땅의 북두칠성 마을을 연결시키는 순환선 역할이 북극성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북두칠성을 상징화했다는 윷놀이판을 얘기하시는 권천문박사님의 얘기에서 잘 들어난다.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고 접착제를 하나도 쓰지 않았지만 큰 지진에도 끄떡없었고 무던한 세월을 지나온 첨성대의 건축학적 요소만으로도 놀라운 건축기술이라 할 수 없다.

세계 최초의 냉장고인 석빙고 등 수많은 보물들은 그 하나만으로도 놀라운 과학기술을 보여준다. 한때 포항과 울산의 고래연구를 함께 하면서 우리는 고래와 관련된 기술이 신라의 과학기술과 관련이 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상상력의 흐름은 지금도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위기의 상황에서 다시 일어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낸 한국인의 저력은 그러한 놀라운 선조들의 유전자에 기인한 것이라고 본인은 강력하게 생각하고 있다. 오늘 저자의 생각은 이러한 생각을 더욱 강인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선조들의 좋은 유산을 계속 이어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책의 서평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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