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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바꾸고, 버리고, 개혁하라며 조선의 현실타파를 외치다.
"언제까지 우리 것만 좋다고 주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맹목적인 민족주의와 패쇄된 농본주의를 정면 비판한 그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정체된 사회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오랜 시간 우리는 독북아시아에서 가장 약하고 못사는 나라였다. 기본적인 의식주마저 해결하기 어려웠던 조선의 현실을 개탄하고 중국을 다녀온 몇몇 선각자들이 선진문물을 배워야 한다고 외쳤지만 기존 지배세력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족적 자주성과 유학에 기본을 둔 농본주의를 더욱 강조한 쇄국적 태도로 일관하였다. 결국 이러한 쇄국의 결과는 조선의 멸망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으나 자주적이지 못한 개혁으로 인해 일제 36년이라는 치욕을 안겨다 주게 되었다.
이책은 박제가가 서얼출신으로 자신의 출생을 어려서부터 고민하면서 현실을 인식하게 되고 우연히 찾아 온 정조의 개혁의지로 인해 관료로 등용되면서 자신의 생각을 유감없이 논하다가 결국 못 이룬 개혁을 아쉬워하게 되는 모든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그가 자신의 현실만이 아니라 중국을 사신단의 자격으로 다녀오면서 조선이 마음으로 멸시하던 청나라의 문물을 한국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좋은 문물은 받아들여야 함을 말했던 그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그는 조선이 민족주의와 농본주의를 강조한 배경은 자신의 권력기반인 농촌중세사회의 안정을 통해 기득권을 연장하려는 목적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신랄할 정도로 조선의 문물을 비판하는데 아름다운 농본사회를 찬양하면서 상공업을 억제하는 조선의 제도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지적하고 있다. 이런 측면을 보면 우리 시대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논리와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박제가는 단순히 비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한다. 간장공장을 만들어 농업과 상업을 육성하자는 것이나 중국온돌방식으로 교체하여 무리한 장작소모로 인한 산림파괴를 피하지아는 의견이나 농기계 개량 등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특히 수레문제를 비판하는데 오히려 고구려때보다 낙후된 수레를 사용하는 현실이 조선의 상업발전을 막은 원인이라고 비판한다.
사실 조선이 상공업을 멸시한 것은 중세사회의 붕괴를 가져온 자본의 축적으로 인한 사회불안을 의도적으로 막은 결과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양반들마져 풍족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낙후된 경제체계를 가지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다. 박제가는 이 모습에 과격하게 비판을 했고 결국 정조의 죽음과 함께 역사의 뒷자리로 물러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규장각에 앉아 쓸쓸히 자신의 생각을 마음에만 담은 채 떠나갈 생각을 하던 그들의 모습은 잘못된 나라의 모습에 한탄만 하는 한낱 바람소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저작 북학의가 중국의 문물을 소개했다는 정도의 소개만으로 그치지 과연 그 속에 무슨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선진국 문물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그들의 견해는 조선의 것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진국을 배우자고 하는 것은 그것을 넘어 더 발전시키고 결국 우리의 것을 만들자고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외세의 전도자로 낙인을 찍고 이후 들어온 종교(카톨릭)과 연관시켜 박해를 했던 것은 조선에게 주어진 자기반성과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시켜버리게 된 것이다. 남을 제대로 알아야 자신을 알 수 있고 그래야 진정한 자존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한 박제가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역시 유효하다는 생각을 말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 시대에 박제가를 읽는 이유는 정체된 자기반성없는 사회의 위험성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변화의 기회를 상실한 조선이 민족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것이 좋은 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같은 병폐를 가지고 있다. 기득권세력이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좌우대립이라는 교묘한 틀로 사회변화의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성장과 변화의 기회는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세계경제의 리더자로서 나눔과 소통의 새로운 역할이다. 이번 녹색기후기금사무국 유치가 독일이 확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가져오게 된 것은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었다(물론 정부는 자기가 잘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러한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위기와 환경위기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고민해야 할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선진국의 입장이 아닌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한국이 손들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또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국내정치의 기득권 때문에 나눔과 상생보다는 구시대적인 논쟁에 소모를 하고 있는 모습은 결국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한걸음 물러서서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자신의 것을 다 갖고 논의를 하겠다는 자세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박제가가 이 시대에 태어난다면 그는 반성과 함께 새로운 화합의 길로 상생의 자리를 말할 것이다. 오늘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생의 길을 생각해보는 의미일 것이다.